“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실제로 그를 믿는 자들의 죄 값만을 지불하셨는가 아니면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죄 값을 지불하셨는가?” “오직 선택받은 자만을 위해 죽으셨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무엇인가?” 만약 “온 세상을 위해 죽으셨다면 왜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가?”라고 누군가 질문을 한다면, 그에 대한 답변은 ‘전택설’ 견해를 취하는가 아니면 ‘후택설’ 견해를 취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먼저 전택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할 것을 작정하시기 전에 이미 일부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예정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에 따라 구원하지 않기로 작정하셨다는 ‘이중예정론’을 주장한다. 반면에 후택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전택설적 예정론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 얻을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선택할 것을 미리 알고 그 사람의 믿음을 조건으로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전택설 입장은 하나님의 절대 예정을 강조하고, 후택설 입장은 하나님의 예지와 인간의 자유의지 선택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의 믿음이나 선행에 대한 예지와 무관하게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선택했는지 아니면 하나님은 유기될 자들의 죄(불신앙)에 대한 예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을 정죄받도록 예정했는지에 대한 Calvin의 ‘이중예정론’은 오늘날 칼빈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Calvin이 그리스도가 택한 자들만을 위해 죽었다는 ‘제한속죄’를 믿었는지 혹은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를 위해 죽었다는 ‘보편속죄’를 믿었는지에 대해서도 개혁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Calvin의 속죄 범위에 대한 논쟁은 크게 두 부류로 갈라진다. 하나는 제한속죄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W. R. Godfrey, R. A. Muller, J. H. Rainbow)과 다른 하나는 보편속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B. G. Amstrong, R. T. Kendall, J. B. Torrance)이다.
이러한 Calvin의 속죄론을 가지고 Augustus H. Strong은 『Systematic Theology』에서 “Calvin은 그의 초기저서 『기독교강요』에서 속죄의 범위에 관한 자기의 결정적인 견해를 피력해 왔으나, 그의 후기 저서인 ‘주석’에서 보편적 속죄설에 동의를 표했다. 그런즉 전택설은 단순한 칼빈주의적이라기보다는 초극단적인 칼빈주의적이다”라고 말했다. 보편속죄론을 주장하는 B. G. Amstrong도 Calvin이 보편적 속죄교리를 강조하지만, Theodore Beza와 16-17세기 강성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제한속죄를 말하는 것처럼 잘못 해석되었다고 주장한다.
먼저 보편속죄론을 지지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통해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있다(요 1:29). 하지만 그 효과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을 구원의 주로 영접하고(요 1:12),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막 16:16). 이들은 많은 성경구절들 중에 중요한 두 구절 디모데전서 4장 10절과 요한일서 2장 2절을 내세운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죽음은 온 인류에게 충족하나(고후 5:14), 제한된 수의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사역은 택함 받은 자의 구원을 보충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구원을 효과적으로 보증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롬 10:1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롬 10:13).
이러한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모든’(all)이란 단어와 ‘전체’(whole)라는 말은 언제나 그 의미대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가이사가 다스렸던 당시에 온 천하 사람들에게 호적등록 할 것을 명령했을 때(눅 2:1-5), 여기서 말하는 ‘온 천하’란 로마제국 전역을 말하는 것이지(행 11:28),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모든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두 구절에서 나온 ‘모든 사람’과 ‘온 세상’은 지리적으로 다른 지역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특별히 선택받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것처럼(신 7:8, 암 3:2),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 모든 지역에 있는 택함 받은 자들을 향한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제한속죄론을 지지하는 사람 역시 그리스도는 성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사람을 위해 죽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요 6:37-40). 이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자기 백성(마 1:21)과 자기 양(요 10:15), 그리고 자기 피로 산 교회(행 20:28)만을 구원하셨다고 주장하면서 로마서 9장 11-13절에 나오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무차별적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의 소망으로 이끌지 않으시고(요 6:44), 오직 창세전에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엡 1:4), 구원을 허락하시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그 구원에서 제외시키셨다고 주장한다. 즉 속죄의 적용은 오직 하나님의 소요된 백성만을 위한 것이지(벧전 2:9), 유기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요한복음 6장 37-40절에 나오는 말씀은 제한속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특정 수효만이 택함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즉, 그리스도의 속죄가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는 않으나 모든 사람에게는 유효한 것은 사실이고(요 12:32),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지만(딛 2:11), 구원은 실제로 정한 수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보충설명을 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사람과 유일한 관계이기 때문에(히 2:9), 이 관계를 거부하거나 거스리는 자는 그 결과를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양쪽 견해를 살펴보면 서로 간의 동의하는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 것(막 16:15-16)과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행 1:8).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죽으심이 충분한 지불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되었는지,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의 죄 값만을 지불하였는지(마 1:21), 아니면 모든 사람들의 죄 값을 지불하였는지를 놓고 볼 때(딤전 4:10), 이것은 각 개인의 성경해석과 판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롬 12:3).
문제는 신학과 신앙에 균형 잡히지 않는 사람과 마귀에게 쉽게 충동질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신학적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쓸데없는 논쟁을 야기시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편을 갈라 분쟁을 일으키게 만든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Wayne A. Grudem이 말한 것처럼 성경은 이 난해한 교리를 매우 중요하게 따로 취급하거나 명백하게 신학적으로 자세하게 설명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보편속죄론보다 제한속죄론이 좀 더 강력한 논리적 기반을 가진 듯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다른 교리적 혹은 실제적 문제들을 다루는 구절들에서 추론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질문은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 안에 일어나는 일을 파고드는 것이기 때문에 단정해서 결론지을 수 없는 문제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