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서 나오는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큰 재앙과 그 결과로 일어난 그의 백성들을 그 나라로부터 인도해 내심을 묘사하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었던 표현이고(신 4:34, 6:22, 7:19, 23:9, 26:8, 34:11, 느 9:10, 시 135:9), 신약성경에서도 표적과 기사는 예수님(행 2:22)과 사도들(행 2:43, 14:3, 15:12, 롬 15:18-19:2, 고후 12:12), 그리고 스데반(행 6:8)과 빌립(행 8:6)의 사역들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들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활동과 능력을 가리키는 ‘표적’과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고 경탄하게 만드는 ‘기사’는 기적을 행하기 위한 성령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묘사하고 있는 데에 사용되었는데, 그저 한두 가지의 기적이나 치유가 일어나는 문맥에서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기적들이 발생했던 장소, 예를 들면 사도들이 백성들 사이에서 손으로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거나(행 5:12),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택된 헬라파 유대인 빌립(행 6:5)이 많은 기적을 행할 때, 귀신이 떠나가고 중풍 병자와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본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표적과 기사들은 복음의 선포와 관련하여 신앙부흥이 한창일 때 일어났는데(행 2:43, 5:12, 6:8, 14:3), 이 기적들이 사도들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는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과 사도들을 제외한 표적과 기사를 행했던 사람들 중에 사도가 아닌 일반 평신도인 스데반과 빌립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반해 B. B. Warfield는 성령의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은사들이 단지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논의를 널리 보급시켰는데 『Counterfeit Miracles』에서 “특별한 카리스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소유가 아니라 소수에게 주어진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있었다는 것은 신약성경의 기록을 볼 때 매우 분명하다. …사실상 사도의 교회나 혹은 사도 시대에 속한 것도 아니다. 그 은사들은 분명 사도들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은사들을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 하나님의 인정된 대리인들로서 사도들 자격 인정물 중의 일부였다. 그리하여 은사들의 기능은 그들을 사도의 교회에 분명히 한정시켰고, 사도들과 함께 필연적으로 사라졌다.” 쉽게 말하면 은사의 목적은 사도들을 믿을만한 교리 선생들로 확증하는 것이었고 사도들이 죽었을 때 그 은사들도 그들과 함께 끝나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사도행전에서 ‘표적과 기사’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모든 경우에 그것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행한 많은 기적들을 말하고 있는데(막 6:7, 행 5:12, 19:11-12), 솔직히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스데반과 빌립이 사도들에게 안수를 받고(행 6:5-6), 이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행 6:8, 8:5-8). 여기서 질문할 것은 Warfield와 그의 신학적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표적과 기사의 주요 목적이 사도들을 확증하는 것이었다면, 왜 사도가 아닌 스데반과 빌립 집사가 표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Warfield와 오늘날 그의 계승자들이 Jack Deere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사도들이 안수했기 때문이고(행 6:6), 사도들과 밀접한 관계의 동역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들은 아직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하고 정확한 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표적과 기사들이 사도들을 확증하기 위해 의도되었다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스데반과 빌립이 기적들을 행해야 할 이유는 없을뿐더러, 만약 사도들 외에 어떤 사람이 표적들과 기사들을 행하도록 허락한다면, 그것은 실제로 사도들의 사역을 확증하는 도구로서의 표적과 기사의 가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여기서 은사중단론을 가르치거나 주장하는 목사/신학자들 가운데서 이 문제에 대해 거의 만족스러운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므로 이들의 주장이 궤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행한 소수의 사람들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소수의 사람들만이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Warfield와 그의 추종자들이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은사들의 목적을 사도들을 확증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인데, 같은 부류인 Richard B. Gaffin Jr의 말로 인용한다면 “사도직과 연결되어 있던 은사들은 성경이 완성된 이후 교회생활에서 철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면 모순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 두 제자와 달리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 속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교회의 설립자입니다(엡 2:20). 그리고 대부분의 사도들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나아가기 보다는 오히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는데(행 1:12-14), 여기서 궁금한 것은 “만약 소수의 사람만이 교회를 세우거나, 제자들이 죽었을 때 교회를 세우는 일도 끝났는가?”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죽었을 때 교회를 세우는 일이 끝나지 않은 것은(마 28:18-20), 세상을 복음화하고 가르치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눅 24:47, 행 1:8). 그리고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칠십 인에게 병 고치는 은사를 허락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눅 10:17-19), 만약 소수의 사람들만이 기적적인 은사를 받거나 이 은사가 사도들을 확증하는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본문구절은 상당한 모순이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도들을 확증하는 목적을 위해 기적을 행하도록 의도하셨다면, 왜 사도가 아닌 칠십 인에게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느냐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사건인데, 이 사람은 예수님에게 안수를 받은 적이 없었고 사도들과 친분을 쌓거나 사도들 집단의 공식적인 멤버도 아니지만 귀신을 내어 쫓는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막 9:38-39). 이것은 기적이 사도들의 사역을 확증하는 목적을 위한다는 이론에 대한 중요한 예외가 되는데, 한 마디로 초자연적인 사역은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것처럼 베드로와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스데반과 빌립이 표적과 기사를 행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다섯 사람만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도록 되어 있다고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이름은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행 2:43), 다른 사도들 역시 표적과 기사를 행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행 5:12). 예를 하나 더 든다면 아나니아는 기적적인 사역을 한 비사도적인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비교적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에 대하여 아는 유일한 것은 율법을 헌신적으로 지키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행 22:12). 그가 사울에 대한 사역에서 그는 치유와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고(행 9:10-18), 이외에도 사울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은 아나니아의 손에 의해서인 것처럼(행 9:17), 사울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열 두 사도가 아닌 평범한 사람인 아나니아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Warfield와 그의 추종자들이 내세우는 이론들, 즉 사도들만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거나 기적들이 사도의 사역을 확증하는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신학적 편견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허상이고, 더 나아가 사도행전이나 그 밖의 어디에서도 기적적인 은사들이 오로지 사도들을 통해서만 주어졌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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