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 for all Nations의 창시자이며 복음 전도자 Reinhard Bonnke는 아프리카 Lesotho에서 선교할 때 일어났던 일을 『Charisma and Christian Life』에서 이렇게 간증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유명한 설교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작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제가 이 모임에서 설교할 때 사랑하는 주님이 기적들을 행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를 드리고 설교를 시작했을 때, 곁에서 통역하던 사람이 성령의 능력과 임재 속에 쓰러졌고 성령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들의 눈이 떠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 Bonnke의 사역 속에서 이러한 기적들은 계속 일어났는데 그는 “기적은 우리의 흥미와 지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그분이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계약”이라고 말하면서(행 1:8, 마 18-19, 막 17-20), “기독교는 시작부터 끝까지 기적의 운동이며(행 2:43, 3:1-10, 6:8, 8:6, 13:50-14:3, 고전 12:28-29), 신유의 기적, 구출의 기적, 변화된 삶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나는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안다. 이러한 경이는 그분의 검증서이고 예수님이 불변하신 이상 그분의 능력과 영광중에 재림하실 때까지 기적 행함의 은사는 교회에 남아 있다.”라고 말하면서 아주 중요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라는 다른 세상 사이에 벽을 헌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이며 특별히 그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성령은 오직 구속을 근거로만 기적을 행하신다.”
반면에 오늘날 개혁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 특히 B. B. Warfield의 추종자들은 하나님께 기적들을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고, 심지어 죄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12장39절에 나오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할 것은 “불신자들이 주님을 믿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표적과 기사들을 수반한 성령의 놀라운 능력 부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정말 죄가 되는가?” 그리고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이 기적적으로 치유 받고 건강해지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죄가 되는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보면 두 가지의 다른 경우에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비난하셨는데, 그들이 표적을 구하는 첫 번째 요구는(마 12:38), 예수께서 마귀에 사로잡혀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직후에 나왔고(마 12:22), 두 번째 요구는(마 16:1), 예수님께서 사천 명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먹이신 후에 나왔습니다(마 15:32-39). 다시 말해 두 본문에서 복음서의 저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표적을 요청받으실 때 이미 두 가지의 놀라운 표적들을 행하셨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 누가 표적을 요청했느냐는 것인데, 마태복음 12장38절에서는 바리새인들이고 16장4절에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인데, 이들은 불신앙과 외식하는 자들이었기에 그 요청이 신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귀신들려서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치유하는 것보다 혹은 사천 명을 먹이시는 것보다 더 인상적일 수 있는 어떤 종류의 기적은 없을덴데 그 이상의 표적을 또 구한다는 것 자체가 신실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불순한 의도가 마태복음 12장28절에 대응하는 구절에서 누가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하여 그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고(눅 11:16), 표적을 구하는 두 번째 요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마 16:1, 막 8:11). 여기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는지 왜 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데, 분명 이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이 있다면 이 기적만큼은 조작하거나 속일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만약 예수님께서 이것을 행하신다면 그분이 메시야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서 치유 받은 눈먼 사람은 진짜로 눈먼 사람인지 혹은 그의 실명은 신체적 원인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사천 명을 먹였다는 기적에 대한 보고는 어떤 가벼운 속임수로 과장된 것은 아니었는지 그들은 의심하거나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의 속마음은 진정으로 표적을 원하지 않았으며, 단지 예수님께서 표적 보여주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분에 대한 불신을 믿음이 없는 백성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입니다(요 9:16, 22). 그러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에수님께서(요 2:24), 그들을 꾸짖고 계신 것은 표적들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악하고 불신하는 마음에서 표적을 구하는 그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함으로 사람들에게 믿게 하신 것보다(요 6:26), 그들의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서 기적들을 행하셨던 적이 많았습니다(마 8:1-3, 막 2:5, 10:52, 눅 7:9, 8:48). 그러므로 만약 표적들을 소망하거나 심지어 그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신약교회는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고.(행 4:29-30), 이 기도가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기도가 아니었다면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지진을 수반하는 표적과 기사들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을 것이며(행 4:31), 사도행전의 연이어진 표적과 기사들의 흘러 넘침을 기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행 5:12). 더 나아가 기적적인 일들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들을 열심히 사모하라고 권면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고전 12:31, 14:1, 39).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방법과 올바른 이유들을 위하여 기적들을 구할 때 그분은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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