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vin에게 있어 ‘경건’이란 거룩한 삶과 세속적인 삶을 분리해서 인간이 세속적인 삶에서 떠나 있는 소위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경건주의 또는 은둔적 신령주의”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했는데, 그는 『기독교강요』에서 경건에 대해 이렇게 강조합니다.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결합된 것을 말하는데, 이 사랑은 그분의 은혜를 깨달아 앎으로 오는 것이다.  …완전한 행복을 하나님 안에 두지 않는 한 진정으로 그리고 중심에서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을 쉽게 요약하면 진정으로 하나님의 경외하고 그분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구별된 삶’, 즉 신앙생활에 있어 믿는 것과 삶의 방식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세상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셨고(벧전 2:9), 이렇게 그분의 은혜로 부름 받은 성도들은( 2:8), 이 세대을 본받지 말고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1-2).  물론 우리는 금욕적인 수도 생활을 하는 사람처럼 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수는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삶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 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도 아니고(고전 5:10), 오히려 우리가 그분의 정하신 때까지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운데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5:13-16).

 

다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것은 세상 속에서 살라는 말씀이 음란하고 죄 많은( 8:38), 세상의 원리에 순응하고 부패한 세속적인 문화를( 2:2),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적당히 타협하고( 5:11),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4:4).  다시 말해 도살의 날을 위해 사치와 방종과 쾌락을 즐기며 살지 말아야 하고( 5:5), 무엇보다도 어두운 세상 속에서 살기는 살되 세상 풍속을 본받거나( 12:2),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2:2), 즉 악한 영향을 받고 사는 것이 아니라(벧전 4:3), 오히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2:15-16), 특히 불신자들 앞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라는 것입니다(벧전 2:12).  한 마디로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것처럼 이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과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으로 살아가라는 것인데(11:33-36), 이를 위해서 절대 요구되는 삶의 원리가 있다면 바로 경건과 거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의 말을 인용하면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사람만이( 1:27), 타락한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경건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연예인들처럼 특별한 몸짓이나 행동을 통해서 남들에게 주목 받는 신앙을 가진다든지 혹은 세상과 단절하여 산 속 깊숙이 들어가 사는 것이 경건한 삶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삶의 자리에서 맡겨진 사명을 성실히 이행하며 사는 생활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인 것입니다( 14:21).


이러한 문제를 놓고 개혁주의 신학자이며 목회자인 Sinclair B. Ferguson은 “성화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면(고후 5:17),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가운데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고 옛 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리라고 말합니다( 3:10).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의 생각까지도 주님을 닮아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화에 대해 Abraham Kuyper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영혼에게 있어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의 거룩함이다.”라는 말한 것처럼 히브리서 기자( 12:1, 14)와 야고보( 1:22), 그리고 베드로 역시 독자들에게 모든 행실로 거룩한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벧전 1:15).  이렇게 신약성경은 많은 부분을 여러 교회에 있는 신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가운데 자라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2:22, 4:13-15).  이 모든 도덕적인 권면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성화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고, 또한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한결 같이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신자의 삶이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모든 행실에있어 더 거룩해져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벧전 2:15).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우리의 마음속에 아직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6:12-13),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동안은 온전한 성화가 완성될 수는 없겠지만( 3:13-14), 만약 우리가 죽어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때에(고후 5:1-7), 우리의 영혼이 죄로부터 해방되어 완전해지므로 우리의 성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완성될 것입니다(고전 15:40-44).  예를 들어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예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믿는 자는 완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에게로 나아온다고 했는데( 12:23), 이는 거룩한 성 하나님 앞에는 부정한 것은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요한계시록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21:27), 만일 성화가 우리의 육체까지 포함한 전인적인 것임을 인정한다면(고후 7:1, 살전 5:23), 이 성화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가 부활의 육체를 입을 때까지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고전 15:49).  다시 말해 회심 이전에는 우리가 죄의 종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6:20), 회심하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분명히 성화가 시작되었고(고전 6:11), 이 성화는 그리스도인 삶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가운데 죽음의 순간에 완전해 진다는 것입니다( 3:21).  따라서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능력과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죄와 일평생 싸워야 할 존재일 뿐 아니라( 6:10-18), 매일매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고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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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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