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율법관

율법 2022. 10. 30. 16:52

오늘날 ‘율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략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먼저 예수님을 삼위의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자신들의 혈통적 선민의 지위에만 연연하여(마 4:7-10, 요 8:31-59), 구약만을 믿으면서 오직 율법을 통해서만 의롭게 되고 지금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율법 절대론’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부류는 ‘도덕률 폐기론’ 혹은 ‘반율법주의’로 불리는 자들로(롬 7:7-13), 이들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약 율법의 구속력은 완전히 상실되었고, 율법이 규정하는 모든 의와 형벌의 요구를 그분이 다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율법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유 4절),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자유케 되었으므로(갈 5:1), 율법은 자연히 폐기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다시 말해 십계명을 포함한 성경에 기록된 율법에서 유추할 수 있는 모든 원리들이 신약시대에 사는 성도의 생활을 구애받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부류는 ‘성경적인 율법관’을 가진 사람들인데,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사실이지만(엡 2:8), 여전히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는 선한 것으로(롬 7:12), 자기 힘이 아닌 성령을 힘입어(롬 8:4),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인 율법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한다(겔 11:19-20). 즉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의 바른 도리(道理)로 율법이 교훈하는 삶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먼저 율법의 고유한 본질에 대해 알아본다면 율법은 근본적으로 그 법의 주체자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사 33:22).  나아가 그 원리가 그분의 창조와 섭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집행과정이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므로 절대적으로 완전하다(시 19:7).  율법은 선택된 이스라엘이 언약의 조건과 내용으로 체결한 법이지만(출 19:1-24:11), 구속사점 관점에서 볼 때에는 그 효력이 시간적인 면에서 제한이 있고(마 11:13) 능력면에서 한계가 있다(히 10:1-2).  하지만 그 내용 자체만은 영원히 전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시 119:89).  따라서 율법은 단순한 구약시대의 생활규범이 아니라 신약의 복음과 연결되어 매우 오묘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갈 3:24).  원칙적으로는 신구약을 망라한 성경의 모든 행위 규범 규정 및 인간 양심에 내재(시 37-31)한 하나님의 신적 의지까지 다 포괄하고 있지만(롬 7:7), 이것을 조금 더 구분하면 둘로 나누어진다.  

먼저 ‘기본적 율법’(Elemental Law)이란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 자체 안에 심어놓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가리킨다(신 29:29, 롬 2:15).  이는 그 대상이 비이성적 피조물인가(롬 1:19-21), 혹은 이성적 피조물인가(롬 2:14-15)에 따라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비이성적 피조물에 내재(內在)한 고유한 특성을 가리켜 ‘자연율’(Natural Law)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도덕률(Moral Law)은 자유 의지를 갖는 이성적 존재로 지음 받은 모든 피조물의 본성에 내재(內在)한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으로 ‘이성과 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롬 2:15).  도덕률은 이성적 피조물 내부에 선천적으로 심어준 것이므로 이에 대해 무지나 몰이해가 있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는 인간에게 불필요한 것을 강압적으로 심어준 것이 아니라 신적 지혜에서 비롯된 조화로운 것이므로 그 대상도 도덕률의 내용이 합리적인 것을 인식한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생래적(生來的)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Calvin의 『기독교강요』을 인용하고자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타고난 본능에 의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각(知覺)이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아무도 무지를 구실로 삼아 핑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 위엄을 어느 정도나마 깨달아 알 수 있는 이해력을 각자에게 심어주셨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겪게 되는 죄책감을 누가 가르쳐 주어서 안 것이 아니다.  이미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하나님의 신적 의지의 표현이 이성과 양심으로 반영된 것이다(창 4:13).  모세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을 알았으며 따라서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홍수가 인류 대부분을 쓸어버린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창 6:5).

기본적 율법이 창조 시부터 모든 피조물 내부에 심어진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인 반면 ‘성문적 율법’(Enactive Law)은 그 후에 특별 계시의 방법으로 성경에 기록된(히 1:1), 하나님의 의지로써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만을 대상으로 한다(마 22:37-40).  이는 기본적 율법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지닐 뿐 아니라(출 20:1-17), 간접적이고 제한적이나마 멸망받을 인간 구원의 방편이 된다는 점에서 탁월성을 지니고 있으며(갈 3:19-22), 이 성문적 율법은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이 세 부분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법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법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요점은 어떤 측면은 한시적이고 또 다른 측면은 영구적이라는 것이다.  

먼저의식법’은 구약 구속사의 주역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성 훈련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이는 제사법( 1:1-7:38)과 성결법(레 17:1-22:33), 그리고 절기( 23:1-44), 특히 종교생활의 의식적 측면과 관련된 것으로( 24-27), 입법 원리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원리에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구약의 모든 제사에 관련된 의식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10:1).  따라서 법은 아직 예수님께서 성육신 강림하여 구속 사역을 성취하기 전에 주어진 것으로 그리스도의 구속 희생 사역의 여러 원리와 측면을 반영하지만( 20:28), 그것이 예표 하던 본래의 내용이 성취된 신약시대에 와서는 규범으로서의 문자적 구속력은 상실되었다( 8:7, 13).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것처럼 실체인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의 몸으로 영원한 제사로 드렸기 때문에 매일 드리던 모든 제사는 영원히 사라졌다( 10:10-12).  십자가 사건( 19:30)을 통해 구약성경에 있는 모든 제사와 의식들이 끝이 난 것이다( 15:38).  따라서 오늘날 짐승을 잡아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26:28)을 힘입어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4:16). 성소의 휘장이 찢어질 의식적 율법이 성취된 것이고( 10:19-20), 신약의 예배는 예수님이 수가성 여자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신령과 진정한 마음으로( 4:24), 생활 속에 몸으로 드려지는 예배이다( 12:1). 우리가 더는 의식법의 구속을 받지 않지만 그 배후의 원리들, 즉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른 하나는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함께 모여 살면서 성결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주어진시민법’이다.  이 법은 재산법( 21:2-11, 19:14)과 형사법( 21:12-32, 21:1-9, 21:18-23, 24:16, 25:1-3), 이혼법( 24:1-4)과 재판법( 23:1-9, 19:15-21, 24:17-18), 그리고 민사법( 21:15-17)과 보장법( 23:24-25, 24:6-13, 14-15, 25:5-10)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분야의 율법은 그야말로 특정 시대와 공간의 상황, 역사 발전 단계에 맞추어 주어진 매우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법이기 때문에 자구적으로 영원히 적용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데 있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문제를 판결해 이런저런 법을 만들어 주셨지만, 시민법도 예수님이 오시므로 막을 내린 것이다.  쉽게 말해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21:43).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만을 두고너는 선택받은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지 않고,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 16:16)이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다(벧전 2:9-10).  따라서 오래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시민법도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2:15).  그러나 이 법들의 배후에 있는 원리는 우리의 행동 지침에 적용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신약에 와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 시민법의 규정보다 그 원리를 극대화하여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 더욱 고도의 시민법 규정을 주셨기 때문이다(마 5-7장). 

끝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인간 상호 간에 지켜야 할 기본적 윤리강령을 규정한도덕법’이다( 12:28-31).  이 도덕법은 기본적 율법 가운데 도덕률(道德律)을 요약하여 성문화 한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토록 구속력을 가진 모든 법에 기본이 될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영구 불변한 창조와 섭리 원리에 근거한 것이므로 시대에 따라 불변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 및 인간 상호 간에 지켜야 할 바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십계명과 그리스도의 강령이다(마 22:37-40).  이 법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98문항에서 이를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도덕적 율법은 십계명에 요약적으로 포함되어있다. 이것은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의성으로 주어지고 판에 친히 써주신 것으로 계명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 나머지 여섯 계명에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포함되어 있다.”( 10:4).  

도덕법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범죄 한 인간이 지키지 못한 것을 예수님께서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완전히 성취되었다( 10:4).  하지만 성경은 이 법에 대해서는 다른 두 법(의식법과 시민법)과 다르게 영원하다고 선언한다( 119:89).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의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으로 공포된 가지 계명( 22:37-40)은 도덕법의 대표적인 것으로, 이는 결국 십계명의 요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눅 10:26-28).   도덕법의 핵심은 하나님( 6:5)과 이웃 사랑이며( 19:18), 주의 자녀로서 거룩한 백성답게 살도록 삶의 규범으로 주어진 법으로( 3:31),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영원토록 존속되는 이상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5:17).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이 도덕법을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폐지된 율법으로는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의식법과 시민법이다(엡 2:15).  이 두 가지 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순간,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찢어질 때(눅 23:45), 의문에 속한 각 절기들과 안식일, 그리고 제사에 관한 모든 의식들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다(골 2:16-17, 갈 4:9-10).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율법에 내재된 정신과 원리들, 즉 거기 담긴 교훈적인 면과 내적 의미까지 폐지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할례’가 ‘세례’로, ‘무교절’이 ‘성만찬’으로 ‘제사’가 ‘예배’로 이어진 것이 그 사례이다.  그리고 폐지할 수 없는 율법으로는 도덕법이 남은 것이다(마 5:17).  

만약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율법을 폐지한다면 죄가 죄로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롬 3:20, 5:13), 결국 이 세상에 죄인은 하나도 없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율법은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 죄를 지적해 주는 거울의 역할을 했지만(롬 7:7),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에는 율법의 역할이 달라졌다.  즉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롬 5:20)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서가 되었다는 것이다(딤전 1:8).  따라서 율법은 비록 부정적인 측면을 반영하기도 하지만(롬 4:15) 반면에 인간 구원에 공헌을 하며 구원사역에 필요한 것이다(갈 3:24).  결론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을 받았지만(갈 3:13) 율법 자체만은 삶의 지표로 삼아 존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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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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