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논쟁거리/속죄 2024. 5. 5. 14:49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속죄가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역사적으로 세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첫째, Anselmus는 범죄 한 인간의 구원여부와 구원방법의 결정은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사역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둘째, Augustine은 택한 자의 구원에는 속죄나 공의의 만족함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상대적 필요성만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속죄의 필연성을 부인하는 견해로서 속죄는 본래 필요치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그렇게 결정하신 것뿐이라고 Schleiermacher는 주장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속죄’(atonement) 사역이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죄가 속해지도록 인간의 죄책에 해당하는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는 행위를 가리킨다(히 9:11-14).  이는 제2위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법적으로 연합하기 위해(롬 6:5), 인간의 몸을 취하심으로 단순히 낮추신 정도가 아니라(빌 2:6-8), 아예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요 1:29),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시며(요 19:34), 아버지께 버림을 받은 사건을 말한다(마 27:46). 

이 속죄와 관련된 용어로 ‘구속’이라는 단어가 있다(롬 3:24).  이것은 속죄가 죄를 속하는 행위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라면(엡 1:7), 구속은 속죄행위는 물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인간의 구원을 이루게 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성경에서 속죄라고 할 때는 죄인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사역을 말하는(벧전 1:18-21), 반면에 구속은 속죄에 비해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구속’이란 넓게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사역 전 과정을 가리키고(롬 3:24-26), 좁게는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여 구금된 자리에서 해방시키는 것으로 ‘속량’을 가리킨다(갈 3:13).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구속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때 구속은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구속의 성격을 갖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지불하시고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하여 내셨기 때문이다(마 20:28).  이것은 구약 희생 제사에서 대속교리를 잘 증명해 주고 있는데,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을 대신하는 동물의 희생 제사를 받으시고 그의 형벌을 면해주셨다(레 9:7).  즉 예물을 드리는 자가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 자신의 죄를 그 제물에 전가한 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으시고 그 사람의 죄를 사해 주셨던 것이다(레 1:4). 

이러한 구약의 동물 제사는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에 대한 예표이기에(히 10장), 하나님은 생명이 피 속에 있으므로 동물의 피로 죄를 사하셨다(레 17:11).  하지만 동물의 피가 죄를 영원히 깨끗하게 할 수 없기에(히 10:11), 그리스도로 하여금 죄인을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인간의 죄를 속하게 하셨다(히 10:4-18).  실제로 요한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시었고(요 1:29),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 제물로 삼으셨던 것이다(고후 5:21).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으로 드리신 제사는 제사장들에 의해 드려 지는 것들과는 구별된다.  즉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는 영 단번의 성격을 띠는 완전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히 10:10-14).  아론의 뒤를 이은 대제사장은 매년 지상의 지성소에서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다(히 9:1-7).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 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히 9:12).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고통의 순간에 ‘다 이루었다’(요 19:30)는 외침과 동시에 자신의 사역이 완성되었다.  이는 온전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손으로 만든 성소가 아닌 참 하늘에 들어가 하나님의 존전에 서신 것이다(히 9:24). 

따라서 그 자신의 피로 지성소에 들어가신 그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속죄를 이룰 수 있었다.  그가 문자 그대로 피를 가지고 들어가신 것이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구속에 필요한 모든 결과를 성취할 수 있었다(벧전 3:18).  그런데 Gore Charles는 『The Body of Christ』에서 그리스도의 속죄는 십자가 위에서가 아니라 하늘에 들어가실 때 완성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마다 대속죄일에 희생 제사를 드렸던 모든 제사장과 달리 그리스도는 단번(once for all)에 십자가에서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대제사장의 희생 제사가 완료되었다(히 10:12).  이제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히 1:3).  실제적인 제사가 십자가에서 드려졌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완전하고 반복될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영원하다’(히 10:18).

비록 신학자나 목사들 중에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하신 어떤 일에 근거를 두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를 가지고 하늘로 들어가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헬라어 원문 하고는 거리가 멀고 성경적이지 않다.  심지어 RSV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자기의 피를 가지고’라고 번역하므로(히 9:12), 마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여전히 그분은 지상의 대제사장들이 속죄일이면 지성소에 피를 가지고 들어가듯 하늘에서도 그런 대속적 행위를 하셔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단 번에 제사를 드림으로(히 7:27), 대제사장의 희생 제사가 완료된 것이고(히 10:12),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것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한 것이지(히 9:12, 24), 그 뒤에 일어난 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의 제사를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제물, 다시 말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기의 피(골 1:20)를 가지고 옛 지성소의 원형인 ‘참 하늘’(히 9:24)에 들어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존전에 서셨고, 지금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계신다(히 9:24).  우리의 구원을 위한 모든 사역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이고(요 19:30), 참 하늘에 들어가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완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속죄사역의 단회성은 속죄의 완전성과 종결성, 즉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히 10:14).  따라서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며(히 10:18),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히 7:27).  무엇보다도 이 속죄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모두 그 일에 관여하신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안전한 인간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닌 완전하신 하나님의 계획(갈 4:4-5) 속에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히 9:14), 신인(神人)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들은 율법을 어김으로 받게 될 형벌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갈 3:13), 의식적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어졌다(갈 4:4-5).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을 받지 못한 자들 위에 왕 노릇 하던(요 12:31), 이 세상 임금, 즉 사탄으로부터 구속을 받았으며(요일 3:8), 타락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에 대한 근본책임이 그리스도에게 다 전가된 것이다(롬 3:2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죽으심으로 인간의 구속사역이 성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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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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