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한 교인이 죽어 장례식을 치르는데 예배를 인도하던 목회자가 죽은 교인과 성도들을 앞에 놓고 이 성도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 그때에는 신앙이 초보인지라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말이 다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Jonathan Edwards가 말한 것처럼 이미 고인이 된 그 사람에 대해 비록 그가 외형적으로는 신앙생활을 잘한 것처럼 보였을지는 모르지만 내적으로 중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례를 맡은 목사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 것에 대해 천국에 갔다, 안 갔다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최종판결을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8, 20:11-15).  예를 들어 어떤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설교를 할 때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을 듣는 사람 전체가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닌 것처럼 분명 그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지옥에 갈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7:21).  사실 구원의 문제만큼은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고, 사람들 마음에 들려는 인간적인 욕망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치른 생명의 복음을 싸구려 다른 복음으로 대처하지 말아야 합니다(1:8).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성경에 보면 한 때 믿음 생활을 잘하다가 타락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칼빈주의자들이나 웨슬리주의자들은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들을 내놓고 있지만,  한 가지 만큼 확실한 것은 이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회심의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유다는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삼년 동안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생활을 하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들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9:1-6).  나아가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 7:21-23)바울의 동역자이며( 24), 사랑을 받았던 데마는( 4:14), 세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리스도를 헌신짝처럼 버렸고(딤후 4:10), 마술사 시몬 역시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8:13), 성령의 능력을 주고 사려다 베드로 사도로부터 무서운 책망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8:18-23),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 같이 한 때 그리스도를 믿는 가운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칼빈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예정의 토대에 의존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들은 처음부터 참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고, 반면 웨슬리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들이 처음에는 참된 신자였지만 죄로 인해 타락의 길을 갔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회심의 증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먼저 로마서 815-16절에서 나오는 말씀처럼 우리가 주님의 자녀임을 보여주는 성령의 주관적인 증거가 있는데(요일 4:13), 이 증거는 대체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로 성령께서 인도하신다는 느낌을 수반하지만( 8:14), 만일 성령께서 진정으로 개인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신다면 그는 소위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라고 부른 성품들을 형성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5:22-23).  물론 문제는내가 이러한 특징들을 가운데 완전하게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나의 삶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런 특징들을 나의 가운데서 보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신약성경에는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성품으로 다른 사람들을 그럴듯하게 속일 있었다는 예를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 안에는 후메네오와 빌레도처럼 다른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고 혼란과 분열을 야기 시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딤후 2:17-18), 이들의 사역의 결과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대화를 하든, 기도를 하든, 어떤 사역을 하든지 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하신 말씀처럼 삶의 열매를 통해 그들을 있다는 것입니다( 7:16-20). 

 

이러한 성령의 열매와 관련된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의 중요한 부분은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요일 2:4-6).  물론 완벽한 삶을 살거나 혹은 완전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더 나아가 말하고 행동하는 일에 그분의 형상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4:25-32).  다시 말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 같이( 2:17-22), 진정으로 회심했다면 삶 가운데 분명히 순종의 결과가 나타나야 하고(요일 3:9-10, 24, 5:18), 무엇보다도 그 순종의 결과를 보일 수 있는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다른 형제들에 대한 사랑입니다(요일 3:14, 25:31-46).  따라서 누군가 진정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는 구절 중에 하나인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계속 믿을 것이며, 또한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고( 1:23), 처음 시작할 때 믿은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을 것입니다( 3:14).  반면에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7:21), 삶이 불의로 가득하거나(13:23-27), 주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저버린(14:21), 가룟유다, 혹은 데마와 같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세상으로 돌아간다면(딤후 4:10), 그는 실제로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딤후 4:10).   

 

이처럼 신앙을 저버리고 떨어져 나간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은 애초부터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혹은 이 사람은 한 때 그리스도인이었으나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견해 모두 믿다가 타락한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는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칼빈주의자와 알미니안주의자, 그리고 웨슬리주의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의 과거에 대한 해석에는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 당신의 구원을 위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라는 말에는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날 복음적인 교회에서 균형 있는 교리를 가르치는 대신 목회자들이 변질된 교리, 즉 한번 신앙을 고백하거나 물세례 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식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11:52).  그 결과 전혀 거듭난 적이 없는 사람도 물세례를 받을 때 입술로만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7:21), 그렇지 않다는 거짓된 확신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지금 현대 교회의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가?”라는 질문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주를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견디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0:22, 3:6).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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