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T. Wright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죽음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어 칭의를 설교하는 것은 할 일의 절반 밖에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구속’과 ‘구원’에 대해 혼동하거나 로마서 4장25절, 10장9절과 베드로전서 1장3절 말씀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오직 십자가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들에게 있어 ‘칭의’란 판결을 내리는 행위, 즉 하나님께서 죄인을 향해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의로운 자’라는 법적 선언을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칼빈주의자들의 말을 인용한다면 칭의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옛 사람은 죽고 그와 함께 새 사람을 입은 현재 완료형 사건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 의롭다는 선언이 종말적 선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을 바르게 공부한 사람이라면 Calvin에게 있어 칭의가 종교개혁의 핵심적 교리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신앙의 목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칭의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 가운데 일부이지 그것이 구원의 완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독교강요』에서 “선행이 없는 믿음이나 선행이 없이 성립하는 칭의를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행함은 인간 구원의 전제 조건이 아니지만 행함 없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약 2:26).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윤리와 도덕적(순종) 열매가 전혀 없더라도 “처음 믿을 때 얻은 의는 나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이기 때문에 마지막 심판 때까지 지켜주시는가?”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거룩한(출 19:6), 성도(시 30:4), 성별(느 3:1), 성화(살전 5:23)라는 단어를 발견한다면 이는 대부분 ‘분리’, ‘따로 데어냄’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번역일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뜻을 지닌 모든 히브리어 단어의 어근은 ‘잘라내다’, ‘이별하다’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나 장소 혹은 사물이 ‘거룩하다’라는 것은 그들이 세속으로부터 또는 속된 것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거룩함은 단지 ‘무엇으로부터의 분리’ 만을 뜻하지 않고 ‘무엇을 향한 성별’(따로 떼어내어 거룩하게 준비함)의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찾는 사람들의 삶 가운데서 이 ‘거룩함’을 재생산한다는 것입니다(레 20:7-8). 예를 들어 출애굽기 31장13절과 히브리서 2장11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성품, 즉 그분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거룩’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와 같이 거룩해질 수 있도록 그의 거룩하심(레 11:44-45)을 알리시는데, NIV 성경은 이 구절을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who makes you holy)이라고 번역을 해놓았지만 원문 그대로 번역한다면 ‘너희를 성화시키는’(who sanctifies you)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화’란 사람, 장소, 사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행위, 즉 사람, 사물, 장소가 본연의 목적으로부터 결별한 뒤 또 다른 차원의 목적과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출애굽기에 보면 땅(호렙산)이 거룩해진 사건이 나오는데, 사실 그곳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계시하시기 위해 따로 구별하신 장소였고(출 3:5),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시기 전(출 19:10-14)에 시내산은 사람이나 짐승을 성결케 하신 곳이었습니다(출 13:2). 이 ‘성결’은 다른 여러 방면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안식일(신 5:12)과 성막과 기구(출 30:25-29)들, 성전(대하 7:16)과 도피성(수 20장)과 가옥(레 27:14)을 구별시켰습니다. 신약에 와서도 거룩은 사람이나 장소를 구별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예루살렘이라는 도성 역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교통하시는 장소(느 11:1)였기에 거룩한 곳이었습니다(마 4:5).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15-16절의 말씀처럼 ‘거룩’이란 단순히 도덕성의 성격만을 가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은총임을 알 수 있는데(고전 6:11), 그 이유는 인간이 자력으로 성결해지기 전에 그분이 먼저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딛 2:11-14). 사실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장소나 성전의 기물들 그리고 성전은 본래 평범한 것들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목적을 이루는 일에 사용하시려고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따로 구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하여 성별된 사람은 Martin Luther가 말한 것처럼 비록 죄인이긴 하지만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신 28:9).
이렇게 구별되고 거룩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장차 올 세대의 생명을 맛본 사람들로서 그 미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실현이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에 양자 됨(롬 8:15)과 칭의(롬 5:1)가 그러하듯이 구속이란 ‘이미’(엡 1:7)이며 동시에 ‘아직’인 것입니다(엡 4:30). 그러나 한 가지만큼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를 ‘주’라고 진정으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를 살아가는 동안 천국 시민권을 가진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빌 3:20). 이런 우리들에게 성경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벧전 1:15-16),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빌 1:27)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영적으로 흠이 없는 삶(엡 5:27)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벧후 3:14). 비록 성경에는 실질적으로 신자들이 죄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고 선언하지만(롬 6:6-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일매일 죄와의 전쟁(엡 6:10-19)에서 주님의 승리(롬 8:37)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대해 현실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회심 후에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사탄의 실질적인 공격은 줄어들지 않았기(벧전 5:8)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할 책임(히 12:14)과 죄를 정복함에 있어(히 12:4),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있습니다(빌 1:6). 그러기에 ‘성화가 없는 칭의’는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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