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과정을 웨슬리 계통 신학교에서 마치고 박사과정을 개혁주의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그 당시 Calvinism 신학사상으로 무장된 교수들로부터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배운 개혁주의 신학만이 정통 신학입니다. 이 신학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 다른 신학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하는 가운데 오직 칼빈주의만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신학이라고 주장하십시오.”라고 말하는 정신나간 석두(石頭)교수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었습니다. 사실 구 프린스톤 학파인 Charles Hodge와 B. B. Warfield, 웨스터민스터 학파인 John Gresham Machen와 Cornelius Van Til, 그리고 Abraham Kuyper, Herman Bavinck, W. G. T. Shedd 등등 개혁주의 서적들을 탐독하면서 교만의 성(城)을 높게 쌓아갈 때 겸손과 남에 대한 배려를 가르친 사람들이 개혁주의 신학 교수들이었습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만 열린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지 만났던 모든 교수들은 겸손과 학식을 겸비한 진정한 칼빈주의자들로서 오늘날 같이 비루한 성경지식을 가지고 논쟁을 일삼는 사이비 칼빈주의자들과 다르게 교리적 논쟁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훼손하면서까지 거만한 신학적 추론을 그럴듯하게 내세우는 자칭 개혁주의 신학자/목사들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들은 종교적인 신학적 자긍심으로 인해 다른 교파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해로운 논쟁을 일삼는 정통 칼빈주의가 아닌 ‘골빈(?)주의’ 사람들로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성도의 견인’(영원한 안전)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하신 예정에 의해 선택을 받고 성령의 의해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보장된다는 칼빈주의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교리로 Calvin을 비롯한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정에 속한 ‘견인교리’을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기 때문에 절대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을뿐더러 끝까지 보존되고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이 성도의 견인에 대해 Saint Augustine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은혜로 철저하게 보호받는 것을 『Of the Gift of Perseverance』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기업이 되도록 하셨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도록 역사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그분을 떠나지 못하도록 역사하신다.” 즉 우리의 택하심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영원 전부터 이루어진 것이고(딤후 1:9), 그 놀라운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며(요 17:4, 히 10:14),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엡 2:8)은 바울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롬 11:29), 말한 것처럼 그분의 특권과 초대는 결코 취소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칼빈주의자들은 ‘성도의 견인’에 대해 하나님의 자녀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온전하고(히 10:14)도 충분함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요일 2:2).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는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에(고전 15:3),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난 속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죄는 없다고 강조하면서(롬 3:23-26),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어떠한 정죄 아래에 놓여 있지 않고(롬 8:1-2),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성경의 많은 증거들을 내세웁니다(눅 22:32, 요 5:24, 6:37-40, 10:27-29, 17:6-11, 롬 8:29-33, 35-39, 11:29, 고후 5:17, 엡 1:4-5, 13-14,빌 1:6, 살전 5:23, 살후 3:3, 딤후 1:12, 4:18, 히 7:25, 10:14, 벧전 1:4-5, 요일 3:9, 유다서 24절).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인간은 전적으로 죄로 부패되어 있고(렘 17:9), 영적으로 죽어 있으며(요 6:44), 복음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엡 2:1-3)에 타락한 인간의 중생 이전의 어떤 반응에 대한 논의는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행위로 봅니다. 그러나 영생주기로 작정된 자들(행 13:48), 즉 바울(행 9장)이나 자주장사 루디아처럼(행 16:14), 하나님께서는 절대 주권을 갖고 자신에게 불가항력적으로 이끌어 중생하도록 하는데(엡 2:8), 이렇게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 안에서 끝까지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이러한 ‘성도의 견인’을 John Wesley는 ‘궁극적인 구원’이라고 불렀는데, 그에 설교 『The lord Our Righteousness』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행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해 행하고 고난 받는 이유 때문에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용납 된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칼빈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Wesley도 ‘전가된 의’라는 개념을 받아들였지만, 성령의 유효적인 부르심을 통해 한번 구원받은 사람이 끝까지 타락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성경에 지적한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궁극적인 구원의 교리를 성경을 통해서 거부했는데 『The Works of John Wesley Volume 10』에서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는 말씀(겔 18:24)과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후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인용하여(히 10:26-29),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견인 교리를 부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참된 포도나무의 가지인 신자들(요 15:4-6), 즉 거룩함을 입은 자들(벧전 2:9)도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얼마든지 타락할 가능성이 있고(히 4:1-2), 영원히 멸망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롬 11:22).
이렇게 웨슬리주의자들은 교회에서 물세례를 받고 중생한 가운데 거룩한 삶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타락의 여지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기독교 신자라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결국 구원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성경에서 나오는 많은 구절들을 제시합니다(마 7:21-23, 10:33, 12:31-32, 24:13, 눅 8:13-15, 요 8:31-59, 15:4-6, 고전 3:11-17, 9:27, 15:2, 갈 5:4, 살후 2:3, 딤전 4:1-2, 5:15, 딤후 2:12, 히 2:1, 3:6-14, 6:4-8, 10:26-39, 12:14, 약 2:14-26, 벧후 2:20-22, 3:17, 요이 8절, 계 3:5, 15-16, 22:19). 물론 이러한 구절들이 칼빈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결코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웨슬리주의자들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경우에 대해 신자가 죄(알려진 죄보다는 의식적으로 회개하지 않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짓는 죄)를 고백하지 않거나(히 3:13),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을 통해(히 3:12), 그분에게서 떠나는 배교의 행위가 있을 때(마 26:14-16, 딤후 4:10)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만약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철저히 회개를 하더라도(눅 13:3-5, 요일 1:9), 웨슬리주의자들은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다시 회복되거나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두 부류의 견해를 요약한다면 Calvin은 『기독교강요』에서 말한 것처럼 타락한 인간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선택되었지 거룩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예정과 선택에 있어 인간의 공로를 철저하게 제거해 버렸고, 더 나아가 구원의 진행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결정하여 주시는 은혜의 선물임을 강조하는 가운데(롬 9:11-13), 이 구원의 교리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서만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Wesley는 『The Works of John Wesley』에서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 가장 고상하게 지음 받은 인간의 존재는 기계에 불과한 타의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의적인 존재로 자기 자신에게 부여된 어떤 일을 실행하는 것은 자유의지를 가진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면서(막 16:16),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이 질문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환언하면 Calvin은 구원의 문제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진다는 것이고(롬 1:17), Wesley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인간의 자유이기 때문에 구원 문제에 대해 인간 책임을 강조합니다(요 3:36). 이러한 견해들을 살펴볼 때 모든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하셨다는 점에 대해서는 서로간의 의견을 일치하지만, 그분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여 구원하시는가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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