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것은, 영적 체험이 전혀 없는 일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사역의 본질을 놓쳐 버린 채, 성경적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난 껍데기뿐인 신학적 궤변으로 나팔을 불어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들에게 당장 사도행전을 펼쳐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자를 오늘날의 의학 용어로 말하자면 말초신경의 손상으로 인한 ‘다발성 신경병증’ 환자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번에 고침을 받아 걷고 뛰는 역사가 일어났다면(행 3:1-10), 과연 그 경이로운 기적을 박제화된 은사중지론 신학 따위로 온전히 해석해 낼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눈앞에 고침 받은 사람이 멀쩡히 서 있는 것을 보고도 비난할 말을 찾지 못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처럼(행 4:14), 신학적 망상에 사로잡혀 있거나 횡설수설하는 와해된 언어를 가진 조현병 환자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말세(末世) 인가?  그 명백한 성령의 기적 앞에서 기를 쓰며 변명하려 드는 ‘석두’(石頭) 목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천명하고 싶다.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레 19:31)는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처럼, 영매들과 무당들의 초혼 의식은 인간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악한 귀신들의 잔재이다(요 10:10).  더 나아가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임했던 악령의 장난(삼상 28:3-25)을 힘입은 사탄의 기만일 뿐이다(살후 2:9).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성경에 기록된 참된 축귀와 치유 사역은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는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행 4:10)으로 행하는 사역이다.  또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가락(성령)을 힘입어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내고 성도를 자유케 하는 거룩한 권능의 역사다(눅 11:20).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날 교회가 성령의 권능을 잃어버린 채 불신 속에 갇히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회가 직면했던 역사적, 교회사적 정황(가짜 기적과 구마 사기극)을 전후 맥락 없이 난도질하여 받아들인 데서 생겨난 심각한 오해이다.  동시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주권을 교리라는 틀 안에 가두어 버린 ‘신학적 망상장애’의 결과다. 

다른 하나는 성령의 귀한 열매 중 하나인 ‘절제’가 결여된 채 과대망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들, 특히 일부 극단적 은사주의자들의 책임이다.  이들은 비성경적인 주장과 몰지각한 신비주의적 과도성에 매몰되어,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앙의 본질은 내팽개친 채 축귀 사역의 자극적이고 현상적인 측면에만 치우친 추태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겉모습만 멀쩡할 뿐, 속은 이미 영적, 육체적으로 처참하게 황폐해진 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많다.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신음하는 이들, 육체의 모진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 그리고 영혼이 바짝 메말라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이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목사들조차 이 영적 질병과 무기력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에 의하면 사탄(마귀)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고 분내어 활동하고 있다(계 12:12).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사탄이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는 선언은(벧전 5:8), 현대라는 화려한 문명의 이면 속에서 그 어느 시대보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악한 영에게 포로가 되어 눈멀고 눌린 자들이 수없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눅 4:18-19).

이러한 영적 영양실조와 질병의 문제는 오늘날 모든 교회가 예외 없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만큼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지극히 건강하다며 현실을 부정하고 우겨대는, 바리새인 같은 영적 소경인 목사도 없지 않아 있다(요 9:40-41).  

내가 현장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들은 그저 말라비틀어진 북어처럼 생기 잃고 메마른 율법적 말씀만을 앵무새처럼 강조할 뿐이다.  막상 영육이 병든 양이 고통 속에서 교회를 찾아와도,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이름을 사용할 줄 몰라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무기력하게 방관만 하고 있다.  

입만 열면 성도들을 향해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며 요란하게 나팔을 불어댄다.  그러나 정작 치유와 축귀 사역이라는 치열한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영적 권세와 존재감을 단 한 자락도 드러내지 못한다.  그 진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들이 영적 무능에 빠진 이유는, 종교개혁자들이 처했던 신학적 정황을 성경적, 교회사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깊이 숙고하여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들의 진술을 편협하게 비틀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 성경이 약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역 중 일부를 스스로 상실해 버리는 우를 범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복음에 대한 차가운 지적인 깨달음에만 지나치게 만족하며 교만해졌을 뿐(고전 8:1),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역 가운데 위대한 능력을 나타내실 것이라는 영적 기대감은 일절 품지 않는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라던 예수의 약속마저(요 14:12) 자신들의 메마른 교리 체계 아래 파묻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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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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