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오늘날에도 우리가 육체의 질병과 악한 영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시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복음서에 생생히 기록된 그분의 생애와 가르침이 이를 증명한다. 예수께서는 늘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마 4:23).
주님께서 공생애 동안 복음을 가르치고 선포하신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마 5-7장), 열두 제자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셨으며’(눅 9:1), 칠십 인의 제자들에게도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다’(눅 10:19).
예수 자신 역시 ‘각색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고’(막 1:32-34),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제자들 앞에서 많이 행하셨다’(요 20:30).
뿐만 아니라, 장차 복음(고전 15:1-4)을 통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따를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게도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뱀을 집어 올리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놀라운 약속을 주셨다(막 16:17-18).
이 모든 성경의 기록이 변함없는 진리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벧전 2:21) 고통받는 이웃의 치유를 위하여 반드시 믿음으로 선포하며 기도해야 한다. 또한 동시에, 나 자신의 영육 간의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다른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베풀어주는 믿음의 기도를 기꺼이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약 5:14-16).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죽을병에 걸리거나 사랑하는 가족이 위독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비로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음의 문을 쉽게 연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으며 고통받던 여인의 일화처럼, 불치의 병만큼 오만했던 인간의 마음을 뒤흔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막 5:25-34). Douglas MacArthur 장군이 “참호 속에는 무신론자가 없다”(There are no atheists in foxholes)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날 성령의 치유나 축귀 사역에 대해 성경적 분별도 없이 그저 잡설에 가까운 무익한 말들을 쏟아내는, 바리새인의 영을 가진 신학자들과 목사들은(마 12:22-37) 한 번쯤 자기 자신이나 사랑하는 가족이 히스기야처럼 죽을병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 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내가 현장에서 목도하고 경험했던 것처럼,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물러가듯 아날로그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기적을 그 오만한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될지 말이다(왕하 20:1-11).
내가 성경에서 발견하고 목숨처럼 확신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치유와 기적들이 결코 사도 시대에만 일시적으로 계획된 소멸성 은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끝으로, 오래전 책을 읽은 후 내 머릿속에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문장으로 남아 있는, 스스로를 ‘Calvinistic Methodist’라 부르기를 선호했던 Lloyd Jones의 날카로운 일침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교회 안에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신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데도, 오늘날의 교회가 그런 영혼들을 도울 능력이 없다는 비성경적인 주장을 우리가 과연 믿어야 한단 말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