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oyd Jones와 사역한 바가 있는 전기 작가이자 부흥 신학자인 Iain Murray는 『The Life of Arthur W Pink』에서 20세기의 유명한 복음주의 신학자였던 Arthur Pink 진술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하면서 그가 회심하기 탁월한 영매였으며, 훗날 그가 회심하고 거듭나면서 자신이 의사소통했던 영혼들과 다른 영매들이 부르는 모든 영혼들은 죽은 이들의 영혼이 아닌 바로 악한 영들이었다고 증언합니다이렇게 귀신이 인간의 안에 거주할 사람을  귀신들린 자( 4:24), 악한 영에들렸다라고 말하는데( 9:17, 4:33), 이런 귀신들이 자신이 점령하고 있는 사람의 입을 통해 말을 하는 것은 축귀 사역에서 일반적으로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1:23-24).  예를 들어 보통 악한 영들은이것은 집이다( 12:43-44), 혹은나는 여기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라고 말하면서 육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피로 주고 하나님의 자녀이기(벧전 1:18-19, 고전 6:19-20), 마귀의 소유물이 없을 뿐더러 무단 침입자인 귀신들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법적인 권리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책임이며 진정으로 귀신들린 자녀의 부모처럼 귀신을 내쫓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9:18-26), 어떤 마귀도 인간의 육체를 집으로 삼고 거주할 수는 없습니다( 4:7).

 

이렇게 귀신들의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일을 귀신축출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은 어떤 기술이나 방법을 따르지 않으셨고 모든 상황에서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셨기 때문에( 5:19), 사실 축귀사역에 있어 꼭 이렇게 해야만 귀신이 쫓겨나간다라는 공식은 없습니다.  Charles H. Kraft는 『Christianity with Power에서귀신축출이라는 용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귀신들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사역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러한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적들의 수중에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그러한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고자 하는 우리로서는 아주 당연히 행해야 할 일인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이 말의 의미는 축귀사역에 있어 비밀스러운 공식은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귀신들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나를 믿는 자는 나의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14:12)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오직 성령의 능력( 12:28)과 그리스도의 이름( 10:17)을 힘입을 때만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역을 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음성에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는 것과 귀신들린 당사자 편에서의 협조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Robert G. Tuttle는 『The Partakers』에서귀신을 쫓아낼 역량을 가진 사람은 그 같은 직임을 세심한 주의로만 할 것이 아니라 오직 많은 기도와 금식 후 성령의 능력으로 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고( 9:29),  Lloyd Jones 역시성령의 비상한 활동이 있을 때마다 귀신들림의 나타남을 보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누가복음 1120 말씀을 인용하였는데, 여기서하나님의 손을 힘입어라는 말은 마태복음 1228절에서는성령을 힘입어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기간 동안 언제나 성령을 힘입어 사역을 하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5:17, 10:38).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놀라운 권세가 우리 믿는 자에게 실제적으로 어떻게 발휘될 있느냐는 것인데, 이것을 알려면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역이 마귀를 물리친 권세의 궁극적인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마귀를 이기셨고( 4:1-13), 십자가가 바로 마귀를 결정적으로 물리친 순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 2:15, 2:14, 12:11)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는 완전히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마귀는 이상 우리를 다스릴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16:11).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위치는 우리가 영적 전쟁을 치르는데 있어 십자가가 견고한 영적 발판이 된다는 것으로( 2:15), 사도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말합니다( 3:26).  한 마디로 칠십 인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낸 것처럼( 10:17-19), 우리에게도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10:17).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와 야고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마귀를 대적할 것을 말했고(벧전 5:8-9, 4:7), 바울도 신자 모두에게 영적 전쟁을 위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6:10-18).  사실 마귀가 사용하는 무기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인데( 10:10),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서 귀신을 꾸짖고 책망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면( 16:17), 마귀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고(딤후 1:7), 더 나아가 귀신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요일 4:4).  이런 문제를 가지고 John Wimber귀신들에 대한 권세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능력에 있고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귀신들을 이기기에 필요한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다라고 했고( 16:17-18), Maxwell Whyte사탄과 귀신에게는 그리스도인을 능가하는 합법적인 권리가 없다. 따라서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위임하신 권세를 받고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완전히 복종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Thomas White는 『A Believer's Guide to Spiritual Warfare』에서지극히 높으신 예수님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믿음(11:22-24, 18:18-20)과 그분의 보혈의 능력에 대한 확신( 12:11), 그리고 우리가 부여받은 악을 대적할 권세를 사용할 용기( 10:19)와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에 대한 전적인 믿음( 10:38)은 어떠한 종류의 마귀의 억압이라도 물리쳐 이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일곱 가지 무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마귀의 공격을 물리치실 수 있고( 4:1-11),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종종 마귀의 공격을 물리쳐 주시기도 하지만( 13:10-16),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도 더러운 영들에게 직접 명령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마귀를 대적하면 그는 물러갈 것이고(요일 4:4), 때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간단한 명령이면 족할 때가 있으며( 16:18), 어떤 때에는 악한 영에게 떠나도록 명령하는 과정에서 주님처럼 성경말씀을 인용할 수도 있습니다( 4:1-11).  결론적으로 성경은 귀신을 제거해 주기를 기도하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분이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다고 말하고 있고( 1:12), 하나님의 자녀는 그 주신 권세를 가지고 요한복음 1412절 말씀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얼마든지 믿음으로 담대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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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는 말씀에 기뻐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신자들 중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 가운데(눅 6:46), 귀신들이 결코 억압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그저 이 구절을 가지고 자신을 옹호하는데 사용합니다(요 10:28).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지니고 있지 않는 자유를 신학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뿐이지(마 7:21), 만약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사울 왕처럼 얼마든지 원수의 시험과 억압을 대적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삼상 16:14, 18:10).  한 마디로 이 약속의 말씀(요일 5:8)은 믿는 자의 순종 여하에 따라 좌우 된다는 것입니다(요일 3:21-22).  그래서 베드로는 한 때 자신이 교만하게 행동하다가 마귀에게 이용당했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충고를 한 적이 있었고(벧전 5:5-9),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신자들에게 야고보는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 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합니다(약 4:7).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주의 자녀라도 교만하거나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얼마든지 마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고전 10:7-12).  다시 말해 십자가로 인해 신자들이 악의 세력에서 무장해제 된 것은 사실이지만(히 2:14-15), 아직도 귀신들과의 영적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엡 6:12).


사실 마귀는 닫혀진 문을 통해서는 들어올 수 없고 베드로나 가룟유다와 같이 책 잡힐만한 행동을 했을 때(마 16:22) 들어오게 되는데(요 13:27, 30), 가령 어떤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마귀를 만나거나 또는 집을 찾고 있는 귀신들과 마주치는 일이 없는 것처럼 영적전투에는 일정한 원리가 작용합니다.  다시 말해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요 8:44), 사탄 나라의 조직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개인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짜여 있기 때문에(엡 6:10-13),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악의 세력에 의한 영적인 속박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Thomas White는 영적인 속박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네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A Believer's Guide to Spiritual Warfare』에서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한 우상숭배, 분노, 증오, 원한, 성적인 방종과 조상의 죄가 후대에까지 물려 내려온 경우, 그리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범죄인 강간, 근친상간, 폭행, 더 나아가 마귀의 공격목표가 된 목회활동이다.”  그러면서 처음 세 가지는 사탄의 계략이 인식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공격과 억압을 잘 분별하는 가운데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누군가가 귀신들에게 억압을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탐욕과 거짓말로 가득 찼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죄 문제를 간과할 수 없고(행 5:3), 이것은 저절로 생겨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Occult Bondage and Deliverance』의 저자인 Kurt E. Koch 박사는 정신병 환자와 귀신들린 사람을 구별하는데 있어 중요한 점을 이렇게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정신병 환자들은 악령들이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관하여 감추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정말로 귀신들린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철저히 감추려하고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이 말의 의미는 마귀는 아주 교활하고 간교하며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해(요 10:10),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상태에서(고후 11:14), 마치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추종자였던 가룟유다를 지옥으로 끌고 간 것처럼(요13:2, 27, 행 1:25),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인간을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적전쟁을 경험해 본적이 없거나 성령의 사역을 부정적으로 보는 목회자에게는 이 말이 조금 비위가 거슬리거나 성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Maxwell Whyte가 말한 것처럼 만일 우리가 육체의 속성에 굴복하여 손과 눈과 귀를 그 속성에 내어준다면 그 특정 부위에 해당하는 귀신들이 그 부분을 차지해 버릴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간이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과 금을 보고 탐내듯이(수 7:21), 정욕의 귀신은 눈을 점유하고(요일 2:16), 이렇게 들어온 귀신은 신자의 선한 판단을 거스려 죄악된 행위를 점점 더 많이 행하도록 계속 부축일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음란한 영화가 시각이나 청각을 자극함으로써 우리의 정신을 오도하고 색욕을 자극하여 마귀가 역사할 발판을 마련해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마 12:43-45).


따라서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죄악 가운데 살아갈 경우에는 그들이 사탄의 손에 넘어갈 위험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귀신들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귀신이 신자의 삶 가운데 발판을 마련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가장 빨리 몸에 침투하는 방법은 죄를 통해서인데(갈 5:19-21), Francis MacNutt 박사는 이것을 ‘체내 침입’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귀신들이 체내에 침입할 수 있는 근거로 John WimberKevin Springer는 『능력치유』에서 여러 가지 죄악된 행동들을 열거하는데, 그것은 부당한 분노와 타인들에 대한 증오심과 자기혐오, 그리고 복수심과 탐욕과 성적인 범죄와 변태적인 행위, 즉 성도착증, 동성연애, 동물과의 성교행위, 더 나아가 알코올이나 약물중독을 통해 귀신의 영향을 불러들이는 문을 열어 놓게 된다고 경고하면서 “나는 악령이 들렸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는 그들에게 자신과 또는 가까운 친척들 가운데 ‘밀교’나 ‘사교’ 특히 동양 종교에 관련된 사람들이 없었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어떤 사람이 그러한 것들에 관련된 경험이 있을 경우 거의 예외 없이 귀신들림과 관련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면서 밀교(密敎)에 관련된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성경구절 출애굽기 20장3-5절, 레위기 19장31절, 20장6-8절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귀신이 인간의 몸에 들어가는 과정을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구약에서는 사울 왕이 계속된 불순종으로 인해(삼상 13:8-14, 15:17-23),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을 때(삼상 16:1), 여호와의 신이 떠나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 적이 있었습니다(삼상 16:14).  신약에 와서는 초대교회의 신자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그 모든 수입을 교회를 위해 헌금하려고 했지만, 문제는 이들 마음속에 탐욕이 생겨 그 돈의 일부를 자신들을 위해 남겨 놓기로 결정하고 이러한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하는 죄를 범했을 때, 베드로는 지식의 말씀을 통해 이들의 잘못을 알아내어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  쉽게 말해 탐욕이란 죄 때문에 이들 부부는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들의 마음을 거짓말과 속이는 영들로 가득 차게 만들어 주의 영을 시험한 것입니다(행 5:4, 9).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이와 같은 일이 생길 수 있고(살후 5:19, 히 10:29), 무엇보다도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육체에게 죄짓는 것이며(갈 5:19-21), 그런 죄를 통하여 마귀가 침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육체의 본성에게 죄를 짓는 것(막 7:21-23)과 마귀에게 공격당하는 이중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날마다 점검하는 가운데 죄와 싸워야 하고(히 12:4), 또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겸해서 해야 할 것입니다(막 16:17).


오늘날 마귀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을 공격하기 위해 땅에 두루 돌아다닌 것처럼(욥 1:7),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을 통째로 멸망시키려고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찾아다니고 있습니다(벧전 5:8).  그렇다면 마귀가 어떤 그리스도인을 잡아서 삼키고 파괴시킨다면 “한 번 구원을 받으면 그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되고 내 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기 때문에 악한 자가 만지지 못하는가?”(요일 4:4)라는 신학적 강령을 끝까지 주장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것은 논쟁이 심한 신학적 문제이긴 하지만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처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고 경고를 했고(딤전 4:1), 성경은 귀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얼마든지 미혹할 수 있으며 신자들 역시 ‘귀신의 영’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고후 11:3-4).  예를 하나 더 들어 마귀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와서(고후 11:14), 신자들을 미혹하여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귀신들과 영적간음을 하도록 유혹할 수 있는데(약 4:4), 가령 어떤 그리스도인(남편/아내)이 유혹에 넘어가 다른 사람의 아내나 남편을 범하여 한때 신실했던 부부관계가 깨어진다면 그는 이미 간음케 하는 귀신에게 복종하고 굴복한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적의 진영, 사단에게 속박되어 있는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눅 4:5-7), 육체의 본성과 욕구를 철저하게 다스리지 않는다면(갈 5:24), 마귀는 그것을 발판삼아 우리를 공격하고 억압하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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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글에 가명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댓글을 남기면서 익명성 뒤에 숨으려하는 좋지 못한 자세를 가지고 있지만 정상적인 댓글을 남기는 사람은 언제나 가명보다는 실명을 사용할 것입니다.  사실 댓글을 달 때 실명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의를 갖추는 것이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예의에 벗어난 댓글을 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요즘 인터넷에 쓰여진 댓글들을 간혹 읽다보면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욕설을 무차별적으로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불신자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엡 4:18),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불신자 못지않게 비난이나 악성 댓글을 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사람은 ‘말기증상’은 아니지만 귀신들릴 수 있는 ‘초기증세’라고 볼 수 있는데, 성경은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약 3:15)라는 말씀처럼, 만약 이런 행동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이 사람에게는 인간적인 측면을 다루기 위해 마음의 치유와 귀신축출 사역이 필요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단은 자신의 삶을 조금도 그의 수중에 넘겨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접근할 길이 없지만(벧전 5:8-9), 가령 마음속에 상대방에 대한 미움, 원한, 복수심, 두려움 등의 감정에 사로잡힌다면 사단에게 역사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엡 4:26-27).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며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 자신의 구원을 확고히 믿었던 자들이 있었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행악하는 모든 자들은 나를 떠나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눅 13:25-27).  마찬가지로 귀신들린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귀신들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막 5:1-20), 그러한 사람에게 귀신을 밝혀내는데 도움을 주는 여러 가지 증세들이 있는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러한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귀신에 들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귀신들린 것처럼 보이는 증세라고 해서 모두 귀신이 역사한 결과라고 볼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귀신들림’인지 아니면 ‘정신병’인지를 분별할 필요가 있고(마 4:24, 막 1:34), 귀신들림이 영적인 현상이라면 정신질환은 육체적인 병이기에 귀신들림은 축귀사역을 통해 ‘영적치유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정신질환은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가복음에서 나오는 아이처럼 귀신들림과 신경학적 증상인 뇌전증(epilepsy)이 결합하여 발생할 수도 있지만(마 17:14-18), 이런 경우에는 영적치료와 의학적 치료를 동시에 받아야 하고, 단지 문제가 되는 행동이나 증세만 보고 그 원인이 마귀의 역사라고 단정 짓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즉 진단에 의해 좋은 추측을 만들 수는 있지만 영분별의 은사(고전 12:10)를 받지 않는 이상 성령께서 이런 면에 도우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어떤 사람이 귀신이 들렸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Frank Hammond는 『Pigs in the Parlor』에서 축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일곱 가지 징조들에 대해 이렇게 제시합니다.  ① 감정적인 문제들 (증오, 분노, 공포, 거절, 질투, 우울증, 걱정. 열등감, 불안감), ② 정신적인 문제들 (정신지체, 우유부단, 타협, 혼란, 의심, 기억상실증), ③ 언어상의 문제들 (거짓말, 저주, 신성모독, 비평, 조롱, 악담, 험담, 비방), 성적인 문제들 (정욕, 변태, 동성애, 자위행위, 호색, 간음, 근친상간, 매춘, 흥분제 사용, 공상적인 성경험), 중독증 (마약,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 약물, 음식), 육체적인 질병들 (귀신에게 사로잡힌 것은 아니지만 귀신에게 억압과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던 여자 / 눅 13:10-17), 종교적 오류 (거짓종교/집단들, 기독교 이단들, 신비주의와 강신술, 거짓교리, 사이비). 반면에 Thomas White는 『A Believer's Guide to Spiritual Warfare』에서 위에 열거된 것들 외에 두 가지를 더 추가시켰는데 하나는 생리학적 요인(간질, 편두통, 건망증, 노쇠현상, 조울증, 스트레스, 피로증후군, 월경전 증후군)과 상황적 요인(결혼생활의 파탄, 가족 간의 불화, 재정적인 압박, 가족의 질환, 계절적인 스트레스, 불순한 일기, 우울한 사회분위기) 등을 제시하면서 귀신의 역사로 인한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실은 심리적, 정서적, 생리학적 요인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나타남에 의해 직면되어질 수 있는 가장 강한 증세들(심하게 귀신들림)을 열거해 본다면 Francis MacNutt가 말한 것처럼 ‘신체적인 뒤틀림’‘목소리의 바꿈’ 그리고 ‘얼굴의 표정’의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신체적 뒤틀림의 현상에 대해 찾아보면 마가복음 1장26절에 더러운 귀신이 사람으로 하여금 신체적인 경련 즉 돌발적인 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고 인정하며 드려지는 예배 속에서 혹은 기도모임에서 평상시 그런 일이 전에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몸이 심하게 뒤틀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귀신에게 억압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본래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누가복음 8장28절에 보면 거라사의 광인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평상시 음성하고는 전혀 다른 매우 부자연스러운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령 귀신들린 여성에게 축귀사역을 시작하기 전 갑자기 남자의 거친 목소리로 말을 하거나 혹은 비열하고 무례한 음색으로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귀신들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귀신들린 것의 가장 흔한 외부적인 표시는 사람의 얼굴 표정이 변하는 것인데, 만약 상담을 받던 사람이 대화중 더 이상 상대방의 눈을 보려하지 않고 눈이 위로 말려 올라가 섬뜩한 느낌의 흰 자만을 보일 때, 이것은 축귀사역자에게 도움 받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징후로 보아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극단적인 예로 마귀의 출현에 대한 또 다른 징후가 있는데 이것에 대해 치유사역자인 Francis MacNutt 박사는 『Deliverance from Evil Spirits』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더러운(좋지) 않은 냄새와 무엇보다도 싸늘한 냉기이다. 성령 하나님이 오실 때 우리는 종종 뜨거운 열기를 경험한다. 그러나 악한 영이 나타나면 방안에 차가운 냉기가 돈다.”  이외에도 귀신들린 사람의 증세는 엄청난 완력을 보여주기도 하고(눅 8:29, 행 19:16),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막 5:6-7, 행 16:16-18), 말을 하되 ‘나’ 대신 ‘우리’ 라는 복수로 말을 사용하는데(마 8:29), 자신을 일인칭으로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을 이인칭, 그리고 자기가 내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삼인칭으로 언급하기도 합니다(눅 8:27-28).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징후들이 나타날 때 그것이 마귀의 행동 결과인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자유함을 얻기 위해서는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반드시 여러 사람들이 합심 기도할 필요가 있고(약 5:14), 아니면 더 숙련되고 경험이 많은 축귀사역자에게 보내야 할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악한 영의 출현을 가장 정확하게 진단하는 방법이 있다면 Peter Wagner가 말한 것처럼 ‘영분별의 은사’를 통해서이지만(고전 12:10), 문제는 오늘날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논쟁이 심한 틈을 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대부분의 교회가 마귀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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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끊임없이 악의 유혹과 시험에 부딪치고 있으며(벧전 5:8), 때로는 마귀의 세력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기에(엡 6:10-18), 사도 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는 주의 자녀들에게 영들을 분별하는 가운데(요일 4:1), 악한 마귀의 흉계를 경계하고 대적하라고 말합니다(약 4:7).  이 타락한 천사들의 활동에 대해 Louis Berkhof는 “어둠의 세력들인 타락한 천사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비난하고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여 싸우며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한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끊임없이 반항하며 선택된 사람들을 눈을 멀게 하고 그릇 인도하려고 하며 또한 죄인들을 자극하여 악을 행하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비관적인 편집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광에 대한 찬양으로 넘쳐흘러야 하지만(고전 14:15), 문제는 악의 세력들이 우리의 길을 가로 막고 있을 때 그 귀신들의 정체를 밝혀내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 교회 현실은 그렇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Lloyd Jones는 『귀신들림, 점술, 강신술』에서 “천사나 성령이나 심지어는 모든 영적인 영역까지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더 심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인격과 영적인 영역을 믿으면서도 귀신들림을 정말로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귀신에게 시달리거나 공격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사람들이 경멸적인 어투로 던지는 질문 중에 하나가 “신자도 귀신에게 사로잡힐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먼저 ‘사로잡히다’라는 말은 고통당하는 자를 귀신이 꼼짝달싹 못하게 완전히 차지해 버린다는 뜻으로 생각한다면 이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처럼 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를 전혀 사용할 수 없고 완전히 악령에게 굴복되어 있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막 5:2,16, 18), 이것은 불신자에게는 가능한 일이지만 신자에게 있어서는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귀신에게 억압과 고통을 당할 수는 있어도 귀신에게 사로잡힐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로잡힘’이라는 말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괴로움’‘속박’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용어상의 문제로 발생하는 혼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C. Fred Dickason는 『Demon Possession and the Christian』에서 “‘다이모니조메노스’는 마귀에게 ‘사로잡힌’ 상태가 아니라 단순히 마귀가 ‘들린’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마귀가 어떤 사람 안에 거하면서 다양한 차원의 지배를 통해 다양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뜻한다. 사로잡힘이라는 개념은 신약의 용어나 그 용례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건실한 이론을 제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에게 혼동과 정서적인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귀신에게 사로잡히다’라는 말보다는 ‘귀신들리다’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귀신에게 사로잡힐 수 없다면 그리스도인의 귀신들림, 즉 귀신에게 억압과 속박을 받는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냐는 것입니다.  먼저 ‘들리다’(have)라는 말을 고려해 볼 때 이런 비유가 좋은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령 집에 달갑지 않는 방문객을 갑작스럽게 ‘맞아들일’ 경우가 있는데 만일 생쥐 한 마리가 집에 몰래 ‘들어와 있다’고 가정할 때 여기서 ‘들어와 있다’라는 말의 의미는 더러운 쥐 한 마리가 집을 장악했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그것으로 인해 짜증이 나는 귀찮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난 빨리 쥐덫을 놓아 제거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에게도 달갑지 않는 불청객인 귀신들의 방문을 욥이 받은 것처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욥 1-2장).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인 베드로는 자신이 사단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했던 것을 경험으로 깨닫고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권면한 적이 있는데, 물론 베드로가 그 당시 사단의 도구로 이용당했다고 해서 귀신이 들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막 8:33),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단이 가룟유다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 것처럼(요 13:2, 행 1:25), 베드로를 청구하려고 애썼고(눅 22:31-32), 그가 선한 의도에서 예수님을 견책했던 그 순간까지도(마 16:22), 틈이 있던 베드로에게 사단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과 악령이 결코 한 사람 안에 함께 거할 수 없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은 결코 신자가 귀신들릴 수 있다는 입장에 대해 완강히 반대하겠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할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마귀가 거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면 얼마든지 귀신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과 혼과 몸 사이의 차이점을 통해 조금 더 살펴보면 먼저 ‘영’(spirit)을 뜻하는 신약적 단어는 pneuma(눅 8:55)로 육적인 것, 즉 혼과 대조해 볼 때 영은 거룩한 것들을 파악하고 인식하는 능력을 가진 부분인(고전 2:14), 반면에 ‘혼’(soul)을 뜻하는 단어는 psyche(살전 5:23)로 생명 그 자체, 즉 감정과 지성과 의지를 정의하고 있는데(히 4:12), 성경에서 구원받기 이전의 인간은 허물과 죄악 가운데 죽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엡 2:1).  쉽게 말해 육체적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영적으로 본다면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어 있다는 것입니다(엡 4:18).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고 새 생명을 얻게 되는데(롬 6:4),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영에 자신의 생명을 가져다주셨기 때문입니다(요일 5:11-12).  이것으로 볼 때 죄로 죽었던 우리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성령은 우리의 영속에 내주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고전 12:3), 이렇게 거듭난 자는 구원을 얻어 주의 자녀가 되었지만(요 3:6), 그와 동시에 일정 영역은 특정 죄에 의해 귀신들에게 공격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벧전 5:8).


예를 들어 바울은 신자의 육체를 성령의 전이라 가르쳤는데(고전 3:16), 여기서 ‘인간의 육체’는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적으로 오염될 수 있는 성전의 ‘바깥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으며(막 11:15-17), ‘인간의 혼’은 성결한 제사장이 접근할 수 있는 ‘성소’에 해당되고(히 9:6), ‘인간의 영’은 오직 대제사장만이 접근할 수 있는 ‘지성소’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히 9:7).  만약 제사장의 삶 가운데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있을 경우 그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듯이(레 10:1-7), 사단도 전능하신 그분의 거룩함으로 충만한 지성소와 같은 인간의 영에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민 18장).  같은 맥락에서 영원한 구속을 위해 성별된 영은(요 5:24), 여전히 타락의 가능성을 지닌 혼과 몸과 구별되지만(살전 5:23), 아직 완전히 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죄에 속박되거나 부분적으로 귀신들릴 가능성(억압이나 괴로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Calvin 역시 “하나님께서 신자의 영혼에 대해서는 사단이 그 어떤 권세도 행사하지 못하게 하셨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영은 성령으로 점유될 수 있는 반면에 혼과 육(요일 2:16)은 아직 그분의 주권 하에 온전히 항복시키지 않았습니다(롬 7:19).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사단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요 5:24, 골 1:13), 아직 혼과 육체가 자유를 얻을 때까지(빌 2:12), 죄악 된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한 구석에 얼마든지 악한 영이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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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전도사로 사역하던 시절 백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3박4일 동안 연합수련회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수련회 이틀째 되는 날 오락시간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편을 가르고 밀가루 속에 있는 사탕을 집어 먹는 게임을 하다가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혼자 수양관 이층 다락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지금은 목회를 하고 있는 당시 고등부 선생 한분이 허겁지겁 상기된 얼굴로 제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면서 “전도사님, 큰일 났습니다! 한 아이가 쓰러져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전도사님이 가보셔야 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갔는데 쓰러진 학생 곁에는 언니만 울면서 남아 있고 선생님 몇 분은 어찌할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구루는 가운데 그 많던 학생들은 무서워서 도망갔거나 나무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쓰러진 여자 학생의 얼굴을 보니까 두 손을 꽉 움켜잡은 상태에서 입에 거품을 흘리고 눈은 뒤로 젖어져 흰자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입고 입던 바지는 소변으로 인해 다 젖었고 얼굴은 예전 얼굴이 아닌 완전히 뒤틀린 상태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시퍼런 색깔로 변해 있었습니다.  사실 귀신들과의 영적전쟁은 신학교 졸업반 때 한두 번 가진 적이 있었지만 솔직히 축귀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이 학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릎을 꿇고 쓰러진 학생의 머리에 손을 얹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기 전 “만약 이 학생에게 들어간 귀신이 나한데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생기면서 그 짧은 순간 기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곁에 있는 선생님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전도사님 빨리 기도하세요.”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고, 솔직히 “기도하고 싶으면 먼저 손을 얹고 기도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원망(?)스러운 선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얼떨결에 손을 학생 머리 위에 얹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의 자녀를 괴롭히는 더러운 귀신은 떠나가라”고 명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쓰러진 학생 입에서 이물질이 나오고 큰 숨을 한 번 내어 쉬더니 눈이 뒤집혀진 얼굴이 서서히 원래 상태로 돌아오면서 몸을 떠는 현상이 멈춘 것입니다.  사실 이 학생의 부모님들은 믿음이 좋고 충성스러운 일군이기에 교회에서 중책을 맡은 분들이시고 귀신에게 억압을 받았던 학생 역시 매주일 주일학교에서 예배드리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물론 각 사람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최종 판단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 판단할 수 없겠지만(벧전 1:17), 이들 가족과 3년 이상 같이 신앙생활을 해왔었기에 이들이 믿음의 가정인 것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과연 “하나님의 자녀도 귀신이 들릴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Thomas B. White가 말했듯이 악에 대한 승리는 우리가 회심할 때(골 2;15), 이미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셨고(롬 8:37-39), 그리스도인들은 마침내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이며(고후 5:1-5), 하나님의 자녀는 John Calvin이 말한 것처럼 “신자들은 전 생애를 통해 수고하여 마침내는 승리를 거둔다.”라는 말과 같이 고난 속에 승리를 거두게 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롬 8:18-39).  그러나 악에 대한 경험적인 승리는 믿음의 실천을 통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주의 백성들이 쟁취해 나가야만 하기 때문에(엡 6:10-13), 우리는 누군가 회심하면 마귀가 그에 대한 음흉한 계획을 다 포기해 버리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악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의롭게 된 존재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죄에 대하여 죽고 날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롬 7:17-24)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 대답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계속해서 악과 씨름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고(벧전 5:8-9), 죄의 허물로부터 깨끗하게 되는 것과 죄의 결과를 치유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죄지은 과거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을 수는 있지만(요일 1:7), 여전히 강박적인 행태와 정서적인 손상, 그리고 법적인 복권 등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죄는 용서받았지만 마귀는 여전히 우리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약 4:7).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신약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마귀의 영향력이 아니라 신자의 삶에 아직도 남아 있는 죄의 문제로(롬 7:17), 이 죄는 하나님 자녀의 삶 안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귀신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행 5:1-11).  예를 들어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한 의도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견책했지만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를 대적하셨던 것처럼 베드로에게 똑같이 말씀하셨는데(막 8:33), 이것은 주님을 구하려는 베드로의 인간적인 의도는 좋았고 진실했지만 그 순간 그는 사단에게 틈을 주고 도구로 이용을 당하다가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진심으로 고백한 사람이었지만(마 16:16), 사단이 얼마나 간교한지 그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결국에는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저주하고 부인하게 만들었습니다(마 26:69-75).  여기서도 궁금한 것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굴복당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베드로 자신의 생각과 말 가운데서(마 26:33-35), 사단에게 틈을 보였기 때문이고(눅 22:24-34),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죄는 마귀로 하여금 신자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입니다(엡 4:26).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로 귀신들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요일 5:18).  사실 사람들이 혼동하거나 문제가 되는 용어는 악한 영에게 ‘들렸다’라는 말과 귀신에게 ‘사로잡혔다’라는 말인데, 실제로 영어번역본들 가운데는 ‘귀신들림’(have demon)을 ‘귀신에게 사로잡힘’(demon possessed)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막 9:17, 눅 4:33), 이것은 원본에 대한 좋은 해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어에는 그런 의미를 반영하거나 표현을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헬라어 성경은 귀신 ‘들리다’라든지(마 11:18, 요 7:20, 8:48-49, 10:20), 아니면 마귀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심하게 고통당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지만(눅 8:27), 마귀가 실제로 어떤 사람을 소유했다는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A. A Hodge는 이 문제를 가지고 “마귀는 불신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며 그들을 사로잡지만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허용된 범위 안에서 고통을 주고 괴롭히며 시험한다.”라고 말하였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히지 않지만 얼마든지 ‘억압’과 ‘괴로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막 5:1-20), 귀신에게 ‘사로잡히다’라는 용어의 문제는 마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자가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이 완전히 눌려버린 뜻을 지니고 있기에, 이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를 전혀 사용할 수 없고 완전히 악령에게 굴복되어 있는 것을 말해줍니다.



반면에 ‘귀신들린’ 상태를 나타내는 헬라어를 보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사로잡힘’이 아닌 ‘귀신들리다’가 되지만(마 4:24, 막 1:32, 눅 8:36, 요 10:21), 보통 사용하기 적합한 용어는 ‘귀신에게 시달리다’ 혹은 Francis MacMutt 박사가 말한 것처럼 ‘마귀화 되었다’로 이는 어떤 형태로든 악령의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 가운데 고통과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Mark I. Bubeck는 ‘귀신들림’이라는 말은 합당하지 않고 ‘귀신에게 괴로움을 당하다’라는 말이 신자에게 합당하다고 주장하였는데 한마디로 귀신들린 사람은 그 속박으로 인해 심한 괴로움을 당하거나 시달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신자도 귀신에게 사로잡힐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이 질문이 한 개인의 의지가 완전히 마귀에게 정복당했다는 의미로서 그에게 옳은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택할 수 있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뜻이라면 그 대답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귀신에게 사로잡힌다는 개념은 성서적인 것도 아닐뿐더러(요일 4:4),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바 된 이후로는 죄가 다스리지 못한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 6:14).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 여러 가지 차원의 마귀의 공격과 영향력 아래 놓일 수 있고(눅 4:2, 고후 12:7, 엡 6:12, 약 4:7), 만약 마귀에게 죄의 발판을 마련해 준다면 결코 사로잡히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귀신들에게 억압과 고통을 당할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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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Wimber에 의하면 1982년 6월 세계복음주의협의회와 세계복음화로잔위원회 후원으로 이루어진『전도와 사회적 책임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회의』에서 27개국으로부터 50여명의 지도자들이 Grand Rapids, Michigan에 모여 복음의 사회적 표적을 토론했는데 그들의 최종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세 번째 표적은 귀신축출이다. 우리는 귀신에 대한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비신화하는 것을 반대한다. 정사와 권세가(엡 6:12), 비록 악마적 이념들이나 구조들을 언급하는듯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이 분명하게 귀신의 명령에 따르는 악한 개인적 지성이라고 믿는다. 귀신들림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상황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행해지는 능력대결로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1989년 7월 Manila, Philippines에서 있었던 세계복음화를 위한 제2차 로잔대회에서 영적인 전투분야를 담당하고 세미나를 인도했던 전문사역자인 Thomas B. White도 “구원받은 자들의 임무는 깨어 무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으로 적의 술책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보고서와는 달리 보고 만지고 들을 수 있는 현실만을 인정하려는 자연주의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오늘날 귀신들의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며, 특히 ‘신자의 귀신들림’에 대한 그와 같은 현실을 믿는 것은 고대문화와 성경이 가르친 진부한 세계관을 수용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대체로 회의적인 견해를 취하며 신약성경의 모든 개념들을 ‘비신화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Rudolf Karl Bultmann은 마귀와 천사의 초자연적인 세계의 실존을 강력히 부인하면서 그것들은 모두 고대의 신화들이고, 신약성경의 메시지에서 그와 같은 모든 신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비신화화 시켜 현대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믿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는 『Kerygma and Myth』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의 힘과 법칙들이 발견된 이상 우리는 더 이상 선한 영이건 악한 영이건 할 것 없이 도대체 영이라는 존재를 믿을 수 없다. 병과 그 치유는 모두가 자연적 인과율에 돌려야 하는 것이지 마귀의 장난 혹은 악한 귀신의 저주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아니다.”  지금 Bultmann이 제시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지하세계로 된 신약의 세계관을 신화라고 비판하고 과학과 인간 자율사상에 근거하여 신약을 재해석함으로써 사단이 없는 현대에서 인간 스스로 무엇이든지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낙관적 인간관계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는 찾나니’라고 말하는데(벧전 5:8), 사실 귀신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미 거짓을 무기로 사용하는 귀신에게 속은 것이고(요 8:44), 만약 우리의 오감을 가지고 그와 같은 관여를 느낄 수 없다면 귀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영적으로 병들었거나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듯 Bultmann이 귀신이 없다고 선언한 반면에 또 다른 극단은 악한 사람의 죽은 영이 귀신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부류와 아담 이전에 살았던 인류의 영 혹은 노아 홍수 이전 사람과 천사 사이에 태어난 존재로 보는 잘못된 견해가 있고, 더 나아가 모든 질병과 사고와 고통이 귀신이 들어와서 일으키는 것이라고 믿는 귀신론에 빠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불신자의 사후가 귀신이라고 보고 귀신들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본래 사람이 수명은 80-120년인데 불신자가 자신의 수명을 살지 못하고 죽을 경우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니다가 주로 가족에게 들어가 질병이나 사고를 유발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증거 하는 것은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하여 타락한 천사장의 부하들이고(사 14:12-15, 계 13:9), 질병의 원인도 육체적, 정신적, 영적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마 4:24, 요 9:3).  사실 귀신의 활동기간을 불신자가 자신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다음부터 본래 인간의 수명인 80-120년까지라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오해한 것이고, 만약 사람의 수명이 본래 80-120년이라면 노아 홍수 이후에 셈의 후예 족보에 나오는 200년 이상 살았던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것입니다(창 11:10-26).  이렇게 양극단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귀신의 활동을 단순히 미신적인 것으로 간주하려고 하지만 사단은 불과 유황 못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계 20:10).


여기서 더 나아가 과연 “그리스도인도 귀신들릴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오늘날 목회자나 신학자들 중에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고전 3:16), 그리스도께서 피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고전 6:19-20, 행 20:28), 성령과 귀신이 결코 한 사람 안에 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령이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몸에 동시에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진리라고 확정지어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먼저 구약신학자 Merrill F. Unger는 사울 왕이 귀신들린 사실을 예로 들어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사무엘상 10장6절에 의하면 사울 왕은 사무엘을 통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고(삼상 10:1),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지만 후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과는 본질상 뚜렷이 대조되는 사악한 영(악신)에게 괴로움을 당한 것을 제시하면서(삼상 16:14),『What Demon Can Do to Saints』에서 ”하나님의 영은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 시점에 그에게로 들어와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요 14:16). 반면에 마귀는 무단 침입자로 들어와 일순간에 쫓겨날 수 있다“라고 주장합니다(요일 3:8).  그러면서 Unger는 몇 가지 예를 들면서 마귀는 성령께 복종하는 신자의 삶 가운데 어떠한 영역에 대하여도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도 얼마든지 귀신들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딤전 4:1).  한마디로 하나님의 자녀는 귀신에게 사로잡히지 않지만 귀신이 들릴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John Calvin 그리스도인의 귀신들림에 대해『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약속은(창 3:15),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인 모든 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들이 사단에게 정복되거나 압도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그들은 자주 근심에 빠지지만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잃지는 않는다. 상처는 받기는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다. 요컨대 그들은 전 생애를 통해 수고하여 마침내는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Kurt E. Koch 박사는『Occult ABC』에서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써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귀신들린 자를 다루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그리스도인은 귀신들릴 수 없다고 부정하는 반면 귀신들린 자를 다수 카운슬링 해 본 경험자들은 비록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귀신의 지배를 당하며 제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요약한다면 신약시대보다 현재 귀신들의 활동이 줄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고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요 8:44), 동기가 정직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즉각적이고 가혹한 심판을 받았던 초대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행 5:3), 그리고 열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인 가룟유다(요 13:2), 심지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처럼(마 16;17), 만약 누구든지 마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준다면(엡 4:26), 신자라도 얼마든지 귀신에게 억압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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