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론'에 해당되는 글 492건

  1. 2017.01.17 제자들은 예수님이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이란 사실을 믿었는가?
  2. 2017.01.10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교회가 생겨날 수 있었는가?
  3. 2017.01.03 영원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지니셔야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4. 2016.12.27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셨던 사건이 우리에게는 어떤 유익이 있는가?
  5. 2016.12.20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이셔야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6. 2016.12.13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셔야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7. 2016.12.06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신이신 동시에 인간이란 사실을 증거 하는가?
  8. 2016.11.29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9. 2016.11.22 그리스도는 하나님일 때도 있고 인간일 때도 있었는가?
  10. 2016.11.15 그리스도께서 양성(兩性)을 지니셨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11. 2016.11.08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12. 2016.11.01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께서 실패의 삶을 사셨음을 보여주는 것인가?
  13. 2016.10.04 그리스도는 죽어 장사되신 후 과연 지옥에 내려가셨는가?
  14. 2016.09.27 예수님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15. 2016.09.20 예수님의 시신은 무덤 속에서 부패되었는가?
  16. 2016.09.13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신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17. 2016.09.06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인가?
  18. 2016.08.30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19. 2016.08.23 그리스도의 죽음은 어떤 배경 하에서 일어났는가?
  20. 2016.08.16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으셨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사실은 무엇인가?
  21. 2016.08.09 그리스도께서 경험하신 죽음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가?
  22. 2016.08.02 그리스도께서 경험하신 죽음은 무엇인가?
  23. 2016.07.26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24. 2016.07.19 율법은 누구를 대상으로 주어졌는가?
  25. 2016.07.12 하나님의 은혜는 율법을 폐하는가?
  26. 2016.07.05 율법과 은혜는 전혀 무관한 것인가?
  27. 2016.06.28 율법은 불신자에게도 효용성이 있는가?
  28. 2016.06.21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효용성이 무엇인가?
  29. 2016.06.14 인간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율법은 악한 것인가?
  30. 2016.06.07 인간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제자들조차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동시에 하나님이란 사실을 처음부터 확실히 믿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이적을 보여주셨으나(마 11:2-5), 바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의아스러워했습니다(막 4:41).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하나님으로서의 성품을 지녔고(요 10:30), 하나님의 아들이며(마 11:27), 부활할 것을 직접 말씀하셨으나(마 17:22), 제자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서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임을 믿지 못했습니다(요 20:9, 25).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모습을 지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빌 2:5-11)이 이성적 사고나 인간적 경험으로는 너무나 어렵고(고전 2:14), 오직 신앙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함을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히 11:6).  따라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것은 실로 성령의 감화로서만 가능한 일이며(고전 12:3), 오늘날 우리가 바로 이러한 신앙을 가진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롬 7: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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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교회가 생겨났고(마 16:18), 이천년 험난한 역사 가운데서도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행 16:4-5, 마 28:18-20).  그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제2위 성자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승천하신 후 제3위 하나님이신 보혜사 성령을 보낼 수 없었을 것이고(요 16:7), 그러면 성령에 감동을 받아 말씀을 널리 전하는 이 땅에 존재하게 될 교회도 생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비록 인위적인 방법으로 교회가 생겨났다고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순교자가 발생한 극심한 박해 가운데서 교회가 유지/발전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하나님이셔야만 했고(요 1:1, 14), 그분이 하나님이셨으므로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 속한 구원받은 자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벧전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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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씩 동물의 피로써 백성들의 죄를 위한 제사를 드렸습니다(레 4:1-5, 히 9:7).  그러나 그것으로 지나온 모든 시간 동안 지은 죄가 완전히 사함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죄의 형벌이 잠시 동안 유예될 뿐이었습니다(히 9:10, 10:1-4).  또한 제사장들 역시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라 이러한 제사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습니다(히 10:11).  따라서 이를 위해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새 언약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였습니다(히 8:3-6, 10:12).  따라서 속죄 제물 되신 그리스도는 자기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거룩하여 죄에서 떠나 있어야 하며 약점 투성이의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어야만 했습니다(히 7:26-28).  그러므로 우리가 완전한 제사장이시며(히 4:14), 동시에 완전한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 거룩하게 될 것이며(히 10:10), 우리의 죄 사함이 온전하고도 영원한 것이 될 것입니다(히 10:14, 요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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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인간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고난을 그리스도께서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친히 인간이 되셔서 인간이 겪는 슬픔(마 26:27)과 굶주림(눅 4:2)과 가난(눅 9:58)과 피로(요 4:6)를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에 굴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마지막에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며 죽으셨을 때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선포하심으로써 인간 죄로 인하여 생겨난 모든 고난도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셔서 고난당하신 사실은 사단이 왕 노릇하는 이 세상에서(요 16:11),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히 2:18).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을 당하나 장차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을 극복하여 영원히 고난이 없는(롬 8:17),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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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고(롬 5:12), 그 죄된 본성이 유전되어 그 후손인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이 되었습니다(롬 3:23).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을 사랑하사(요 3:16),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로 이미 작정하셨습니다(창 3:15).  그런데 문제는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려면 그가 범한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해야 할 죄인과 똑같은 성정(性情)을 지닌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를 범한 주체가 사람이었기 때문에 죄의 형벌도 죄가 조금도 없는 사람만이 담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히 4:15),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죄의 형벌을 담당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빌 2:7).  또 다른 의미에서 성경은 피 속에 생명이 있고(레 17:11),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고 말합니다(히 9:22).  이것은 속죄를 위해서는 피 흘림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피를 가진 사람이셔야만 했고 속죄를 위해 피 흘려 죽으셔야만 했습니다(히 9:12).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갈 4:4), 또한 속죄의 피를 흘려 주셨는바(히 9:22), 우리는 완전한 인간되신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대속의 피의 공로로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된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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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말하면 죄인으로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눅 19:10).  먼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신 것은(마 1:21), 인간의 완전한 대표가 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롬 5:12-19).  그리고 인간이 되신 후 원래 가지고 계셨던 신성을 계속 지니신 것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단 한 번의 효력 있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히 9:12), 불완전한 인간 제사장이나 불완전한 동물 제물이 아니라(히 10:11), 온전히 거룩하고(히 7:26), 영원한 제사장이며(히 6:20), 완전한 제물이 필요하였기에(히 10:14),신성을 지니신 그리스도만이 이러한 역할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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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리스도께서 양성을 가졌다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증거에 의한 것입니다.  만일 성경이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신성과 온전한 인성을 가지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 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 사람인 동시에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고 증거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가문에서 출생한 인간이신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너무나 명시적으로 확실하게 증거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증거에 의하여 양성을 가진 그리스도는 사람이며 동시에 하나님이신 신인(神人)이심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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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갖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외에 한 인격 안에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지닌 존재를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가 너무도 많이 있고, 특히 영적으로 우둔한 사람에게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문제는 더욱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이 존재한다는 신비도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증언하는 바이므로 비록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이나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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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하나님이셨고(요일 5:20), 동시에 항상 인간이셨습니다(히 2:14). 예를 들자면 그리스도께서 신적 권능을 나타내어 이적을 행하실 때도 사람이셨고(마 12:13), 인간으로서 슬퍼하고 아파하며 고난당하실 때도 역시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히 5:7-10).  이처럼 그리스도는 항상 하나님이셨고(요 20:28), 항상 인간이란 사실은(눅 2:52),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한 인격체 안에 하나로 연합하여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딛 2:13, 갈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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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베들레헴에서 인간 마리아를 통하여(마 1:18-25), 인간으로 태어나셨던 그리스도(눅 2:7)는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사 9:6), 완전한 사람이 되셨음을 의미합니다(골 1;15).  이와 같이 하나님으로서 신성(神性)과 인간으로서 인성(人性), 즉 양성(兩性)을 지닌 존재(요 1:1, 롬 9:5, 행 13:23, 요일 4:2)는 오직 우리가 구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행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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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하여 죄의 형벌을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고(롬 5:8, 벧전 3:8),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갈 3:13, 벧후 2:1).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얻게 되었고(히 9:15),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그리스도 안에서 면하게 된 것입니다(롬 8:1).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하여 율법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 죄인 된 사람을 구하려고 율법 아래 나신 후 행위로 율법을 완수하심으로써 율법의 마침이 되셨고(갈 4:4-5, 롬 10:4), 율법에 대하여 어떤 죄도 없이 죽으심으로 과거의 우리 죄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율법을 완수한 자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롬 13:8-10).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하여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롬 6:6-7, 7:4).  율법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구속력을 갖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에 대하여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율법에서 해방된 것입니다(롬 7:6, 8:2).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분리되었으나(사 59:2),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결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엡 2:16),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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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사상과 행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당함으로써 예수님의 삶은 실패로 끝났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죽임을 당하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눅 24:26-2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강제로 빼앗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어준 것이었습니다(요 10:18).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고(요 19:30),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결코 실패가 아니라 믿는 자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한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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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하여는 각기 다른 몇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먼저 로마 가톨릭에서는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실 때 교회를 통해 세례를 받지 못한 구약시대 사람들의 영에게 구속의 복음을 전하시며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스스로 낮추시고 지옥까지 내려갔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루터파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심 후 복음 전파가 아니라 스스로 이루신 승리를 선포하시기 위해 지옥에 가셨으나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아지심의 첫 단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신 것처럼 묘사된 성경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먼저 에베소서 4장9절의 ‘땅 아래 곳으로 내리셨던’ 것은 지옥에 내려간 것이 아닌 하늘의 영광된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빌 2:7).  그리고 베드로전서 3장19절에 나오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심’은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과거 구약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써 지금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씀을 전파했음을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4장6절의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는 죽음 후에 복음 전파가 이루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죽었으나 죽기 이전에 복음 전파가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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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적인 원인으로 죽음에서 부활까지의 기간이 짧았기 때문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셨으나 실제로 무덤에 머문 시간은 금요일 저녁부터 주일 새벽까지 35시간 전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신은 못에 박히고(마 27:35), 창에 찔려(요 19:34), 피를 흘리는 등 심하게 손상되었기 때문에 하루만 지나도 부패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매장 기간이 짧아 시신이 부패하지 않았다는 것은 적합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원인을 그리스도의 특성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여 죽임을 당했으나(마 20:28), 그 자신은 죄가 없었기 때문(히 4:15)에 썩어짐에 종속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행 2:31).  인간이 죽어 그 시신이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죄의 결과였습니다(창 3:19).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혼이 육체에서 떠남으로써 실제적으로 죽으셨으나 하나님은 죄 없는 예수님의 시신이 썩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행 13: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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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장사되어 무덤(마 28:57-61)에 삼 일간 계셨으나(눅 18:33), 다른 사람의 경우와 달리 시편 기자가 말한 것처럼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습니다(시 30:3).  즉 예수님의 시신은 전혀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은 그리스도보다 천년 이전에 살았던 다윗에 의해 이미 예언되었고(시 16:10), 부활 이후 그리스도를 만났던 사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행 2:31-32)와 바울에 의해서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된 바가 있습니다(행 13: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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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는 사람이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였고 빌라도는 그 요청을 들어 주었습니다(마 27:57-58).  요셉은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러 무덤 문을 막았습니다(마 27:59-60).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자고 제의하였고 빌라도는 그 요청을 수락했으며 그들은 무덤 입구의 돌을 인봉하고 굳게 지켰습니다(마 27:62-6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으며(눅 24:1-12), 그 후 사십 일간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행 1: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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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적대 세력에 의해 우연히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결코 이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약시대부터 이미 여러 차례 예언되어 왔습니다(창 3:15, 시 22:1, 16, 사 50:6, 53:7-9, 단 9:26, 미 5:1, 슥 11:12-13).  둘째, 구약시대부터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예표적으로 보여준 사건들이 많았습니다(창 22:6-10, 출 12:1-14, 레 1-5장, 16:29-34, 26:31-33).  셋째, 예수님께서도 미리부터 자신의 죽으심을 아시고 준비하며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마 16:21, 막 9:30-32, 눅 13:31-34).  이와 같은 여러 사실들로 볼 때 그리스도의 죽음은 결코 예기치 못하게 우연히 닥친 것이 아니라 인간 구원을 위해 이미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준비된 것입니다(갈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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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지극히 낮아지신 성자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성자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이었으나(마 11:27), 죄인들을 사랑하사 친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 2:6-11).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요 1:1)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스스로 버리시고(요 10:18), 가장 무능한 자로 세상 권세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으셨던 것입니다(마 16:21).  그리스도의 이러한 십자가의 죽음이 인간 구원의 계기가 되어(요일 2:2),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엡 2:3), 우리가 화해를 이루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길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엡 2:11-22).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영원한 승리의 사건이었습니다(골 2:15).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에 곧이어 부활은 이러한 사실을 실증해 보인 사건이었습니다(행 2: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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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율법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은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했습니다(요 10:30).  그런 반면 유대인들의 편협한 입장에서는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한 죄인이고(마 12:1-8), 장로의 유전을 무시했습니다(마 15:2).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불경스러운 자이기 때문에 처형되었습니다(마 26:57-68).  또한 정치와 관련하여 예수님은 국가 반란을 선동한 사람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완악한 유대인들이 몰아세운 누명이었지만 로마 당국자는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염려하여(마 27:24). 국사범을 처형하는 십자가형에 예수님을 정치적 죄목으로 처형한 것입니다(마 27:35).  더 나아가 하나님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백성들의 죄를 지고 죽임을 당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하는 고통을 경험하신 것입니다(마 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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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숨이 완전히 끊긴 것이 아니고 잠시 기절했다가 살아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영혼이 떠났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완전히 죽으신 것을 의미합니다(요 19:30).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십자가형을 집행했던 로마 군병들에 의하여 확인된 확실한 사실일 뿐 아니라(요 19:33), 부활 후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몸을 지니셨다는 것도 예수님께서 분명히 죽으셨음을 보여줍니다(요 20:17, 20).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들 수 있는데, 만약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면 구속사역은 아무런 효과도 없으며(갈 1:4), 사단은 예수님의 이름 앞에 굴복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눅 10:17-20).  그러나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굴복합니다(요일 3:8).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확실히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깨뜨렸기 때문입니다(골 1:13, 히 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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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히 12:2).  일반적으로 십자가형은 국가 반란자나 흉악한 범죄자들에게 시행되던 로마의 형벌이었고 히브리인들도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의 결과로 보았습니다(신 21:22).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사 53:4).  그것은 백성들의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벧전 3:18).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놓았고(막 10:20), 빌라도와 백부장의 고백처럼 죄 없는 의인이었으나 법정에서 십자가형이 선언되었습니다(눅 23:13-25).  빌라도나 유대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형벌을 받는 것은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여 받으신 것이었습니다(사 53:4-5, 벧전 2:24).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갈 4:4).  이미 구약시대부터 여러 차례 증거 되어 왔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으로 그분의 뜻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시 22:1, 마 26:47),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는 죽음이었습니다(시 22:6-8, 막 15: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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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예수님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났다고 증거하고 있는데(마 27:50), 이것은 육체적인 사망이었습니다(막 15:37, 계 1:18).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마 27:46), 지옥의 고통과 같은 극심한 고통을 맛보았다고 말하는데(히 5:7), 이것은 영원한 사망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셨기 때문에(히 4:15),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 사망은 전혀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육체적 사망과, 영적 사망, 그리고 영원한 사망 이 세 가지의 죽음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죽음은 육체적 사망과 영원한 사망이었습니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경우 영원한 죽음은 신성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거나 아버지의 신적 사랑과 중보자의 위격으로부터 거두어 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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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입장에서 죽음은 세 가지 종류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육체가 영혼과 분리되는 육체적 사망으로(약 2:26), 인간이 육체적 사망을 당하게 된 이유는 인류의 시조 아담 이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지은 결과였습니다(창 2:17, 3:19).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이 육체적 죽음을 당합니다(롬 6:23, 히 9:27).  둘째는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적 사망으로(요 3:3, 6), 모든 사람은 이 영적 사망의 상태로 출생합니다(시 51:5).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된 상태로 출생함을 가리킵니다(골 2:13).  이렇게 영적으로 죽은 인간은 영적인 무지의 상태 가운데 있으므로 성경과 하나님에 대하여 바로 깨닫지 못하지만(엡 4:18),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때 영적인 생명을 얻게 됩니다(요 3:16).  셋째는 육체와 영혼이 모두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영원한 사망입니다(계 20:14).  이 영적 사망의 상태로 태어난 사람이 생전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불신자의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면 그의 육체는 물론 영혼 역시 영원한 죽음, 즉 영원토록 지옥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눅 16: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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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법은 일정한 범주에 속한 사람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특별법과 일정한 시기에만 효력을 지니는 한시법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율법은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한시법이었던 할례, 제사 등과 같은 의식을 제외하고는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지닌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율법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절대적인 법인만큼 성도들은 이를 자신의 신앙이나 여건에 따라 지키고 지키지 않는 방자함을 범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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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율법을 폐하지 않고(마 5:17), 도리어 율법을 더욱 굳게 세웁니다.  즉 은혜는 죄인의 마음속에 되어지는 하나님의 사역으로서(엡 1:6), 새로운 능력과 의에 대한 소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에(고전 15:10), 그 결과는 회심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으로 율법을 지키게 해주는 것입니다(롬 6:22, 8:4, 갈 5:22-25, 엡 5:9).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도리어 율법이 없는 자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인 것입니다(고전 9:21).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딛 3:5), 성도들은 더욱 율법의 순종해야 합니다(롬 6: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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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죄를 용납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의 속성에서 비롯한 반면 ‘은혜’는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속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율법과 은혜는 성격상 정반대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율법과 은혜는 다같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유기적인 속성에서 기인했다는 점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사실 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엡 2:8)는 율법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에 대한 완전하고 영구적인 순종(롬 10:4)과 율법이 규정하는 죄인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갈 3:13),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율법의 성취가 없는 은혜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과 은혜는 서로 다른 무엇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뗄 수 없는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율법을 통해 우리의 죄악을 깨닫고(롬 3:20),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게 됩니다(갈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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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성도에게 뿐만 아니라(롬 3:28),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에게도 효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딤전 1:9-11).  특별히 불신자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효용성을 나타내는데, 먼저 율법은 불신자의 양심을 깨우쳐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합니다(갈 3:24).  그러나 불신자들이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상태와 길에 머물러 있을 경우에는 그들로 하여금 장차 임할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에 대하여 핑계할 수 없는 근거가 됩니다(신 28장).  이처럼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의 기능에 대하여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지극히 유익한 것으로 때로는 매우 두려운 것으로 작용하게 됩니다(신 11:27-28).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은 우리는 죄를 멀리하여 율법의 요구에 부합하는 선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롬 1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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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율법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거룩한 삶을 유지하도록 그 기준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효용성을 지니고 있고(출 20:1-17), 이 율법은 성도들에게 유일무오(惟一無誤)한 규칙이 되지만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자에게 있어서 더 이상 그를 구속(拘束)하는 법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는 법이 됩니다(롬 7:22, 약 1:25).  또한 율법은 성도들의 죄를 깨닫게 해주고(롬 7:7), 죄로 인한 그들의 ‘전적부패’와 ‘전적무능’을 인식시켜 줌으로써 온전한 구원의 길을 보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몽학선생’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효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갈 3:24).  뿐만 아니라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가를 보여줌(롬 5:17-19)과 동시에 예수님이 율법의 엄격한 요구를 온전히 이행하심으로써(마 5:17),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사실을 성도들로 하여금 깨닫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점에서 효용성을 지닙니다.  한편 율법은 이처럼 많은 효용성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구원으로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갈 2:16).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완전한 순종의 모범을 통해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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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하나님의 거룩에 기인한 하나님 의지의 표현으로(롬 7:7-9), 거룩하고 완전하며(시 19:7), 절대적으로 선한 것입니다(딤전 1:8).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10절에서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율법 자체(사 33:34)가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율법이 정죄하고 있는 죄의 결과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롬 6:23).  이것은 오늘날의 형법이 형사 범죄의 원인이 아닌 것처럼 율법은 죄를 죄 되게 할 뿐이지(롬 7:13), 그 자체가 죄이거나 죄의 원인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라는 말씀처럼(롬 7:12), 우리는 율법을 반대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귀하고 선한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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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 인간 전존재를 총망라하는 포괄적이고도 완전한 수행을 요구하나(왕상 2:3), 죄에 오염되어 부패함으로써 연약하게 된 인간은 그 요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히 10:1).  물론 범죄 하여 타락하기 이전의 최초의 인간에게는 율법이 구원의 방법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은 율법을 온전히 수행함으로써 능히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인간은 변질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함으로(창 1:27), 하나님의 거룩한 성질에 온전히 부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초 인간의 타락은 그가 가진 하나님의 형상을 변질 왜곡시켰고(롬 5:12), 그 결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질에 온전히 부응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전 7:29).  따라서 율법은 더 이상 구원의 방편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갈 5:4), 본래 생명에 이르게 할 그것이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롬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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