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그의 직무에 있어서

많은 사역을 행하시는데 거기에는 회심,

특별히 중생이 포함되고,

또한 그는 우리를 성화시키는 사역을 하십니다.

덧붙이면 성령은 확신과 보증,

그리고 그와 더불어 증거와 증언 및 봉사와

사역의 문제에 있어서 위대한 활동을 하십니다.

성령의 이러한 사역들을 분명한 구별이 있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는 끝없는 혼란이 있게 됩니다.

그의 사역은 이렇게 분류되어 질 수 있습니다.

즉 일반사역과 특수사역,

다른 말로 쉽게 표현하면 그의 간접사역과 직접사역입니다.

 

성령은 오늘날 교회에 임재해 계시며,

또한 그곳에서 일반사역을 하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역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의미하고 있는 것은 성령의 일반사역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독교의 부흥에 대해 살펴보는 그 순간,

그것들이 교회사에 현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그것들은 성령의 사역이며

성령이 동작주(operator)가 되시지만,

그는 이제 예외적이고 드문 방식으로 작용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이가 바로 성령이신데,

그의 일반사역, 즉 성령은 우리 마음에 그의 뜻을 밝히시며,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열어 보이시며,

우리를 가르치는 자나 전파자로 사용하십니다.

지금 성령의 사역이 다소 간접적이지만,

그러나 성령께서 직접적인 방식으로 작용하신다는 것이 분명하며 명백합니다.

 

실로 이것은 구약에 있는 성령의 사역과 신약의 성령의 사역과의

뚜렷하고도 가장 큰 차이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성령은 특별하고 직접적인 사역을 위하여 구약에서는 어떤 사람,

즉 선택된 사람, 예를 들면 선지자와 같은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고,

그들이 일종의 무아경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가 그들 가운데 조용히 역사하고,

또 그들의 능력을 조금 높여 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는데,

계시와 능력에 관한 의식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어떤 사역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은 그 특별한 목적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엘이 말했듯이 이와 같은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롭게 임하실 때를 우리가 보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큰 차이점은 성령을 받게 될 사람들이

아주 다양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풍성함과 부요함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사에서 특히 부흥기들에 있어서

아주 흔하게 입증되어 온 것입니다.

 

저는 300년 전의 청교도들 가운데 위대한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존 오웬 박사의 진술을 인용하려 합니다.

이것은 그의 글 “성령과 교제에 대한 논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들이나 그 자신의 사역들,

혹은 어떤 논리나 추론과 결론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직접 그 일을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부어 주시고 또 즉각적인 사역,

마치 성령께서 엘리사벳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라이의 방문을 받았을 때,

세례요한을 복중에서 기뻐 뛰어놀도록 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실 때,

그때에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또한 기쁨과 환희가 넘쳐 나게 됩니다“

 

이제 존 오웬과 같은 사람으로 그와 동시대 사람이며,

이 영적 창공에 밝게 비추고 있는,

또 다른 별인 토마스 굳인 박사의 글을 인용하려 합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에 임하시고 인간을 압도하시며,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되시고,

또 그는 하나님의 것임을 확신시켜 주며,

그리고 하나님이 영원부터 

그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빛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빛은 일반적이 신앙의 빛을 넘어선 빛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고 있는 요점인데 즉 일반적이 아니라 예외입니다.

토마스 굳윈에 따르면 이것은 어떤 다른 것이 할 수 있는 것보다,

여러분을 하늘나라에 더 가까이 인도하는 체험으로,

그것은 실로 하늘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제가 다시 엄중한 경고를 주어야 할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이것은 평상적인 아니라

바로 천국 문에 이르기 위한 비상하여 예외적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것을 넘어선 단 한 가지의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그 자체가 영원한 영광입니다.

 

저는 여러 면에서 여기 두 사람과는 아주 다른,

특별히 그의 신학에 있어서 다른 사람인 요한 웨슬리의 글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그는 18세기의 사람으로 청교도나 개혁주의나 칼빈주의자가 아니라,

알미니안 교리의 선생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확하게도 위의 두 사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반성이나 논쟁의 결과가 아니라 즉적적이고 직접적인 어떤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쁨과 평강과 사랑을 미리 맛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기만이 아니라

참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 증거를 가지기

오래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교회 역사상 세 분의 뛰어난 사람들에 의한

성경적 교훈에 대한 가르침과 해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세 분 모두는 체험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이고

또 압도적인 성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교회의 생활에서 이것과 성령의 일반작용과를 혼동하는 것은,

실제로 매우 중대한 면에서 성경을 오해하는 것이며,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짓는 데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제가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코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이란 이 구절을 설명해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여러분 가슴 깊이 간직해야 할 시금석입니다.

 

오늘날 제가 느끼는 우리의 가장 큰 위험은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억제를 옹호할 때가 아닙니다.

즉 오늘날 교회에서 자제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깨어 일어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대에서 교회가 약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이드 존스 『성령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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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동안 신앙생활을 해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지식과 체험을

갈망해 본적이 있습니까?

모세는 바로 그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고 인자하게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 주십니다.

 

이것은 모세에게만 해당하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사야도 한번은 하나님을 어렴풋이 적이 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5).

그는 너무나 놀라 비틀거릴 정도였습니다.

사도 요한도 영광을 언뜻 보게 되었을 ,

“발아래 엎드려져 죽은 같이 되매” 라고 말했습니다(:17).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과 똑같은 육신을 입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어째서 우리는 그러한 체험을 하지 못합니까?

어째서 우리는 이것들에 대해서 조금 밖에 알지 못합니까?

이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일부가 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17:3).

단지 하나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어떻게 말했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14 전에 하늘로 올리움을 받는 체험을 했습니다.

안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기이하여서 자기는 진실로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적나라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 사람들에게만 일어난 일이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러한 가능성들을 인식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또한 여러 세기에 걸쳐 하나님 자신을 추구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숲속에서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에

체험한 것을 기술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을 읽어 적이 있습니까?

또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위대한 선교사 데이비드 브레이드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이야기를 읽어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 세대와 보다 가까운 사람을 소개 한자면 무디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어렴풋이 보여주셨을 ,

그는 하나님께 그만 손을 거두어 달라고 구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죽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육체적 체질이 영광 아래서 부서지고 녹아지는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손을 거두어 달라고 요구해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것들을 자주 읽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광의 임재 속에서 또는 임재에  대해서 느끼고는

문자 그대로 땅에 엎드러져 기절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기절하거나 죽은 것처럼 되었다는

기록을 읽을 놀라서는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러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감당할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의 부분적인 특성입니다.

그러나 응답은 부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분명합니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보여 주소서”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그것을 구하십시오.

교회를 위해서,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로이드 존스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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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얼마나 변화를 경험하셨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 스스로 평가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약 자신의 변화를 막연하게 느끼고 있거나 미처 평가해 보지 못했다면 다음의 세 가지 원리들을 참고하셔서 여러분 자신을 진지하게 평가해보십시오.

 

1. 네 가지 영역을 점검하십시오.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측정해야 할 삶의 영역을 결정해야 합니다.  적어도 네 가지 영역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변화를 점검해보십시오.  첫째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말씀과 기도생활에서 얼마나 성장했습니까?  두 번째는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교제와 봉사생활에서 얼마나 성장했습니까?  세 번째는 가정입니다.  여러분은 부부관계와 자녀양육에서 얼마나 성장했습니까?  네 번째는 세상입니다.  여러분은 직장생활과 선교활동에서 얼마나 성장했습니까?

 

2. 네 가지 기준을 사용하십시오.

위의 영역을 놓고 변화를 측정할 때 적어도 네 가지 기준을 사용하십시오.  첫 번째는 지식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역에서 꼭 필요한 성경의 진리를 얼마나 이해하게 되었습니까?  두 번째는 관점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역에서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얻었습니까?  세 번째는 확신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역에서 여러분이 배운 지식과 소유한 관점에 따라 생활해야 하겠다는 분명한 결단을 하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기술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생활원리와 방법을 터득했습니까?

 

3. 네 부류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자기평가는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평가가 여러분의 느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스스로 평가하는 것 외에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적어도 네 부류의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으십시오.  첫 번째는 제자훈련 담당목회자입니다.  제자훈련을 담당했던 목회자로부터 여러분의 인격과 삶의 변화에 대한 평가를 받으십시오.  두 번째는 제자훈련을 받는 훈련생 동료들입니다.  이들로부터 제자훈련을 처음 시작할 때와 현재를 비교 받으십시오.  세 번째는 가족입니다.  여러분의 배우자와 자녀들로부터 얼마나 여러분의 인격과 삶이 달라졌는지를 물으십시오.  마지막으로 이웃입니다.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여러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변화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도 완성된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평가를 하실 때 평가결과가 나쁘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평가는 앞으로 남은 제자훈련을 잘 받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바울의 다음 구절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십시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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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이든 선택하실 수 있지만

대개 성경, 기도, 환경,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현대의 통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목적과 길을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성경, 기도, 환경,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일관성 있게 일치되어 갑니다.

그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자신 있게 따를 수 있습니다.

각 지체는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몸에 더해지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에서 제대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상호의존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른 지체들의 조언을 통해서

당신이 그리스도의 몸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지 않는 한,

당신은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지체는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다른 신자들을 통해서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기를

기대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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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전통이라는 떼어내기 힘든 짐이 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경험하려는 여정에

이것은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짐도 기도함으로,

팀 사역을 통하여,

진솔한 가르침과 오랜 인내로

드디어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복음주의 교회는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성경에만 초점을 맞추는 부류와

영적능력을 증시하는 부류가 그것이다.

말씀 중심의 교회는 가뭄에 콩 나듯 이따금씩 능력을 경험한다.

반대로 능력 중심의 교회는 말씀의 역사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둘 다 잘못된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은사들을

우리는 테러범 다루듯 했다.

하나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교회의 덕을 위해서

내 백성들에게 은사들을 허락했다면,

왜 너는 그것들에 대해 가르치지 않느냐

너는 지금 내 능력의 흐름을 막고 있지 않느냐

내 백성들이 도구들과 무기들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내 나라를 확장시킬 수 있겠느냐?

 

너무나 많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사역을 위해 충분히 무장하지 못했다.

지도자 된 우리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 중 삼분의 일이 땅 속에 묻혀있다.

성도들의 손과 발이 묶여 있다면

어떻게 교회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이룰 수 있겠는가?

만약 성경의 모든 은사들이 종합 선물세트로 

우리에게 주어졌는데도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분명 죄일 것이다.

 

빌 헐 『성령의 능력에 관한 솔직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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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셔서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상태가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길 원하신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보여주시기에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단순히 대화를 나누시기 위해서만

사람들에게 찾아와 말씀하시는 장면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무언가를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기도, 환경, 교회 혹은 다른 어떤 것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은 당신의 인생에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자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한 나라를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이면 그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그때 한 나라를 세우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려는지 알게 된 바로 그 순간에

아브라함은 자기 인생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조정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얼마 후에

그 아이 이삭이 태어났습니까?

25 후입니다( 12:4, 21:5).

왜 하나님은 25년을 기다리셨습니까?

하나님이 이삭에게 어울리는 아버지를 만드시는데 25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품성이 후대의 성향을 좌우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좋은 품성을 지닌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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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진솔하게 반성해보면 우리가 속해 있는 어떤 공간에서도 갈등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갈등 그 자체입니다.  제자/사역 훈련을 받는 소그룹에서도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갈등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사역 훈련을 받는 우리는 이 갈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성경은 갈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갈등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갈등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갈등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다르게 지으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존재의 특성입니다.  따라서 갈등 자체를 죄악시한다든지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훈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갈등이 생겼으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이해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처리되기를 소망하십시오.

 

2. 갈등은 사람의 약점을 드러냅니다.

갈등은 두 사람간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갈등이 생긴다는 것은 어떤 한 사람만의 잘못일 수 없습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상대방을 탓합니다.  상대방의 단점이나 문제 때문에 이 갈등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갈등은 두 사람 모두의 약점을 드러낸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원인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두 사람이 그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했느냐 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갈등을 통해서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도록 하십시오.

 

3. 문제보다 사람에 집중하십시오.

갈등을 일으킨 문제는 되 돌이키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엎질러진 물처럼 다시 담기가 어렵습니다.  쉽게 해결되는 문제도 있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따라서 갈등을 완벽하게 해결하기가 어려운 상황도 있음을 감안하십시오.  따라서 문제 자체보다는 사람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갈등의 당사자인 그 사람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에 집중하십시오.  그 사람을 정말 수용하고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용납할 수 있는지 돌이켜 보십시오.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기억하십시오.

 

4. 용서보다 용납이 먼저입니다.

갈등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용납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용서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용납이 용서보다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용납이란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기질이나 경험 그리고 가치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용납하지 않은 채 용서했다면, 그것은 사실 용서하지 않은 것입니다.  온전한 용서는 온전한 용납이 이루어졌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역훈련을 통해서 우리를 성숙시켜 가십니다.  그리고 훈련 중에 항상 갈등을 사용하십시오.  큰 갈등이든 작은 갈등이든, 표면적인 갈등이든 드러난 갈등이든 갈등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성숙한 대인관계를 계발시켜 나가십니다.  이 신비하고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갈등의 경험 없이 주어지는 리더십은 없습니다.  갈등의 고통이 리더십의 영광을 가져다줌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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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란 숨은 비밀

또는 신비 밝히는 것을 뜻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종류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나는 하나님께 관한 것으로

하나님의 덕과 삼위일체의 가르침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관한 것이다.


그중에 특히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인간의 몸을 입고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신 일들을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굳이

그러실 필요도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히 자신을 보이셨고, 자신을 알도록 하셨으며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던 것이다.

 

-윌리암 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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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32과에서는 봉사에 대해 배우게 된다.  훈련생들은 이 과를 통해 왜 봉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와 봉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 배우게 된다.  또한 봉사를 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장애물들과 봉사를 기피하게 되는 원인을 함께 찾아보고, 가이오와 같은 성경이 보여주는 봉사의 모델을 통해 봉사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깨닫고 봉사의 열망을 새롭게 다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소책자 『겸손』 (앤드류 머레이) 3 2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왜냐하면 겸손이야 말로 봉사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인 겸손은 인생의 첫째 되는 의무요, 또 가장 고상한 덕행이요, 동시에 모든 도덕의 기초가 된다.  모든 죄악의 근원은 바로 교만과 이 겸손을 잃어버리는 곳에서 시작된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오심도 겸손을 회복시키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겸손을 가지게 하는 동시에 그 겸손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함이었다.  겸손은 다른 여러 가지의 은혜나 미덕들 중의 하나라기 보다는, 오히려 모든 은혜와 미덕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겸손만이 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올바른 태도요, 또한 겸손만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행사를 우리에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식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겸손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의 우리 인간의 지위를 옳게 똑바로 인식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임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비참한 현실과 또 모든 전쟁과 민족간에 피 흘리는 일과 모든 이기심과 고통과 모든 야심과 질투와 아픈 마음과 고달픈 생활은 우리가 매일 만나는 모든 불행들과 더불어 그 근원이 저 저주받은 악마가 불어넣어준 교만, 즉 우리 자신의 교만과 또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교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만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계속해서 이겨낼 수 없고 청산해 버릴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능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면 구속주 그리스도의 특성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곧 그의 겸손이다.  그는 자신을 낮추어 사람이 되었고 죽기까지 순종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주 가르쳤던 교훈,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요라고 하셨던 말씀이 진리였음을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특히 자기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그는 언제나 자기를 부인하는 말씀을 하였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5:19) 그는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역사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의사와 능력은 물론 자기 자신을 온전히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전적인 자기 부인과 절대적인 복종, 그리고 아버지께 의지하는 생활이 온전한 평안과 기쁨의 근원임을 그리스도는 아셨던 것이다.  예수님는 우리에게 진정한 겸손이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이며, 또 그 힘은 어디에서 나는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는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아는 지식과 또 우리 자신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니요, 또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께만 의지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그 지식에서 진정한 겸손과 그 힘은 생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겸손하셨던 것과 같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겸손하셨다.

 

우리는 예수가 선택한 열두 제자들에게서 겸손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는 가장 큰 은혜인 겸손이 부족하면서도 종교적 열심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모든 외부적 교훈과 모든 인간적인 노력으로서는 교만을 물리치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참 겸손이란 그 겸손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심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매일 매일의 우리의 사회생활이라는 현실적인 시험장에서 그 진실성이 증명되지 않는 한 그것은 거짓이다.  우리의 겸손 역시 그렇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자신을 낮춘다고 생각하기는 매우 쉽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생활만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도 겸손하다는 유일한 증거가 된다.  우리의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심정은 사람과의 관계에서와 서로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겸손을 이웃에게 나타내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겸손이란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겸손을 배워야 한다.

 

신앙과 겸손은 그 근본에 있어서 동일하며, 참된 겸손을 가지지 못하면 결코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마음속에 교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진리에 대한 강한 지적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적 확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산 신앙이 될 수는 없다.  신앙이란 나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요 전혀 무가치한 것임을 고백하고, 자기를 완전히 굴복시킨 후 하나님의 역사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겸손이란 바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도록 준비해 주는 것을 이름이다.  바울이 큰 은혜를 받으므로 스스로 교만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육체에 한 가시를 주어 겸손을 유지하도록 했다.  바울의 첫 번 간구는 이 가시를 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세 번씩이나 그것을 위하여 간구했다.  드디어 그 응답은 왔다.  즉 그 가시야말로 오히려 하나의 축복이라는 것과 또 연약하고 겸손한 중에서 오히려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더 잘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응답이었던 것이다.  겸비의 자리 바로 그 자체가 축복의 자리요, 능력과 기쁨의 자리인 것을 바울은 분명히 배웠던 것이었다.  교만을 이기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자기를 낮추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시겠노라고 하신 그 약속을 믿고 그를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즉 하나님께서 그대를 높이리라고 하신 그 말씀이다.  준비의 때가 있으면 성취의 때가 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  이 말씀이 진리임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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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큐티는 개인성경연구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훈련생의 영성 유지와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훈련 기간 중 꾸준한 큐티 습관을 익히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럼 큐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시간과 장소를 정하십시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위한 특별한 법칙은 없습니다.  다만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에 따라 집중하기 좋은 시간과 장소가 다르므로,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별히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방해 받기 쉬운 시간과 장소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큐티 시간과 장소가 정해지면, 가족에게 미리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큐티 중일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예를 들면 방문 앞에 큐티 중이라고 메모를 붙여 놓을 수도 있습니다.

 

2. 본문을 정하십시오.

큐티를 시작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본문을 어떻게 정할까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정하는 방법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훈련 받기 전부터 꾸준히 큐티를 해 온 훈련생이라면 자신이 해오던 본문을 꾸준히 하는 것도 좋지만 만약 이전에 큐티를 해 보신 경험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성경읽기 과제로 나가는 본문 중 한 본문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훈련이 시작되면 매주 제출해야 하는 과제물이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읽기와 매일 하는 큐티, 주별로 제출해야 하는 D형 큐티 본문이 다 다르다면 너무 분산되어 큐티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

 

3. 큐티의 방법을 명확히 하십시오.

훈련생이라면 제자훈련 13과에서 큐티의 4가지 영역과 4가지 종류의 큐티 법에 대해 배웠을 것입니다.  큐티의 방법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을 경우, 큐티가 느낌 위주로 흐를 가능성이 커, 큐티가 주는 유익은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 부분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면 다시 한 번 큐티의 4가지 영역과 종류가 어떻게 다른지 충분히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큐티의 4가지 영역은 개인 성경연구와 소그룹 성경연구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에 큐티의 방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 하는 큐티는 A형 큐티로 하고, D형 큐티는 한 주에 한 번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D형 큐티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매일 D형 큐티를 하는 것은 다른 훈련의 요소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자칫 하면 D형 큐티가 A형 큐티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4. 삶의 변화를 주목하십시오.

큐티를 하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는 큐티가 큐티로 끝나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묵상이 묵상에서만 멈추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진정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오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큐티가 삶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소감을 적어 보는 것입니다.  큐티를 통해 삶의 적용 점을 찾았다면 이를 실천한 후 소감을 적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소감을 적다 보면 왜 삶에 적용이 되지 않는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적용 자체가 구체적으로 될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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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현재 땅에

이토록 놀랍고도 은혜롭게 나타나고 계신데도

신중함이라는 원리 위에서 행한다는 구실로

역사의 결과가 어떠한지,

그리고 역사의 영향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보기 위해

기다린다는 구실로 스스로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그리스도를 인정하기를 오랫동안 망설이는

정당한 구실이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일 그들이 보기에 장애요소가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자 기다린다면

그것은 마치 바보들이 강가에서 물이 모두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장애물이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 됩니다( 18:7).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시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항상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육적이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상하게 보이고

모순으로 보이고 어렵게 보이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은 항상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었으며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에 어떤 장애물을 주는 것은

사람들의 성향과 영적인 감각을 시험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마련하신 것입니다. 

부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믿지 아니하고 성미가 비꼬이고,

트집 잡기를 좋아하는 영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보기는 보나 깨닫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마련한 것입니다( 13:13).

 

사람들의 영혼에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한 죄는

성령에 대해 짓는 죄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은혜롭게 역사하고 있는 성령을 대적해서 말하는 것보다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를 대적해서 말하는 편이 차라리 낫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이보다 우리의 영혼이

성령의 은택을 받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이러한 일들에 대해

경멸적으로 계속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을 훼방 놓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니

주의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령께서 평소와 같지 않게 많이 부어지고,

사람들의 세속적 욕망과 미적지근함과 위선이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책망되었을 때가

바로 성령훼방 죄가 나타나기 쉬운 때입니다.

악의를 가지고 이러한 역사를 대적하고 책망하며

역사를 마귀의 역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기 위해서는

다음 가지 요소만 갖추면 것입니다.

, 그것은 내적인 양심의 찔림과 상반되게 

그런 짓을 하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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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삶을 즐기고 만족해 하십니까?  스트레스와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삶의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신앙생활이나 제자/사역 훈련을 하다보면 때론 감정이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정서적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기 원하십니까?  아래 나와 있는 제안들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먹는다.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카페인, 초콜릿이나 당을 줄이고 영양가 있는 채소나 과일을 많이 섭취합니다.  여러분은 다이어트 하는 사람이 우울한 것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2.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

헬스나 에어로빅 아니면 간단한 운동이라도 정기적으로 합니다.  점심을 먹고 걷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3. 정신적 휴식을 취한다.

독서나 자주 가는 서점을 들려서 잡지나 책을 읽어 본다거나 감명 깊은 영화를 보면서 정신적으로 휴식을 취합니다.

 

4. 남을 용서한다.

용서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용서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과거의 실수를 바탕으로 배우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맘에 후회나 분노를 품고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작은 일에 땀을 흘리지 말라는 격언이 있듯이 주변의 이웃을 용서할 때 우리는 더욱 정서적으로 건강해 집니다.

 

5. 남을 섬긴다.

교회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나가서 이웃을 섬기도록 합니다.  양로원, 고아원, 복지센터에 조용히 자원합니다.  몸이 좀 고단해도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6. 유머를 찾아라.

작은 웃음은 길을 간다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잠언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머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가족들과 함께 웃음을 나누십시오.

 

7. 충분히 취침하라.

충분한 취침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데 필수 조건입니다.  시간과 일들을 미리 잘 계획하면 잠을 줄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8. 실제적으로 행동하라.

사소하고 불필요한 걱정을 버립니다.  예를 들어 내가 완벽하지 못해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불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을 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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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수하다고 평가하는 기준과

사람의 평가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지 마십시오.

세례 요한이 사람들 앞에서 사역한 기간은 얼마 동안이었습니까?

아마도 6개월 정도였겠지요.

세례 요한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어떠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 7:28).

6개월을 온전히 하나님께 받친 요한의 삶에

하나님의 아들이 승인도장을 쾅! 찍어 주셨습니다.

 

당신의 삶을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많은 교회와 목사님들과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개인이나 교회가 세상적으로는 괜찮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 있습니다.

시골 한 구석 작은 마을에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목사님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보내셨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은 책임의 경중을 막론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6-31절에서

하나님은 세상에서 약하고 멸시받는 것을 일부러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믿게 됩니다.

당신이 약하다고,

제한된 존재라고,

평범하다고 느낀다면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합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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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옛날 그의 백성에게 

그러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의 백성에게 그의 마음을 전달하실 있으며,

실제로 전달하시고 계신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 구름의 움직임이나 나팔소리로

그의 마음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과 성경을 통해 그의 마음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신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감각으로 느끼도록 하는 그런 방법도 사용하시지만,

항상 그런 방법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시지는 않는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해와 양심과 마음을 통하여 작용하는 그런 일로써

우리들을 인도하신다.

언제나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당신의 모습을 보이시고

당신의 뜻을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가?

 

-C. H. 맥킨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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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환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환경을 보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어느 곳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도 

그분이 인도하시는 방향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환경을 사용하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경과 기도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에 비추어

이것을 평가해야 합니다.

영적인 표징들을 살펴보는 것도

환경을 통해 지시를 주시는 것을 있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발을 걸음 내딛게 하시는 것은

지금까지 그분이 이미 당신의 삶에서 하고 계시던

역사의 연장 선상에 있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혼동스럽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할 있습니다.

나쁘거나 어려운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대로 환경을 보고 

상황에서의 진리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듣기 전까지는

환경 가운데의 진리가 무엇인지 결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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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31과에서는 순종에 대해 배우게 된다.  훈련생들은 이 과를 통해 순종이 성도의 마땅히 행해야 할 바임을 배우게 되며, 순종의 원천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며, 순종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순종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순종하지 못했던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고 순종에의 열망을 새롭게 다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소책자 『헌신』 (네비게이토 출판사) 31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이 책은 헌신이란 무엇이며, 왜 헌신해야 하는지, 무엇에 헌신해야 하는지, 그리고 순종에 이르는 단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현대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대량생산에 대한 우리의 능력과 욕망이다.  제자 삼는 사역에까지 “대량 생산 방식”을 도입하려는 생각을 갖기가 쉽다.  그러나 제자를 삼는 일은 대량 생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제자들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선 것에 대해 칭찬하였듯이(살전 1:9 참조), 참된 헌신은 어떤 것으로 돌아설 뿐만 아니라, 어떤 것으로부터 돌아서는 것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헌신이란 자신을 섬기는 것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는가?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돌아보면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것을 권면하고 있다.  또 다른 헌신의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인류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던 위인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들은 무엇엔가 헌신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헌신해야 하는가?  첫째는 하나님 말씀에 헌신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에 헌신해야 한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해야 한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그 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 분의 일로 부르신 분을 사랑해야 한다.

 

참된 순종에 이르는 단계는 크게 네 가지로, 우리 자신은 어디에 와 있는지 늘 점검해 보아야 한다.  첫째 단계: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  하나님께서 내게 뭘 원하시는지는 신경 쓰지 않겠다.  둘째 단계: 하나님께서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면, 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드리겠다.  셋째 단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드리겠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리라 믿는다.  넷째 단계: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든 안 주시든 관계없이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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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과 “쥐와 고양이 게임”을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넌 절대 모를 거야”라고 약 올리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을 좀 더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친구처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당신을 지으셨기 때문에, 그분이 당신에게 말씀하기도 하시고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기도 하시는 것은 처음부터 하늘 아버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지으시되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1:27).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고, 실제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서 자신의 창조 세계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께서 지금도 당신과 교제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 교제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맏형님 되시는 예수님께서도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해할 때까지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발표하시기 전 밤을 세워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했습니다( 6:12-13).  예수님께서는 새벽미명마다 한적한 곳으로 나가사 하루의 인도를 구하며 기도하셨습니다( 1:35).  여기서 “기도하시더니”라는 동사는 습관을 나타내는 미완료과거시제입니다.

 

2.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일거야”라며 추측하지 마십시오.  

한 방에는 엄마들로 꽉 차있고 마당에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을 때 만일 어떤 엄마가 자기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과연 몇 명의 아이들이 쳐다볼까요?  단 한 명만이 대답할 것입니다.  만일 그 아이의 이름이 '소망'이었고, 그 뜰에 세 명의 '소망'이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오직 한명의 '소망'이만 반응했을 것입니다.  그 '소망'이만이 자기 엄마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추측하지 않으셨으며,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확신을 갖고 사역과 삶의 현장으로 나가셨습니다.  하나님과 일치되어 온전히 모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에게 좌절이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하실 때 권위를 갖고 행하셨는데, 그것은 그 모든 일이 다 하나님 아버지의 승인을 받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하고 선명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나도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3. 조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마음에 평안을 주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조건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성령께서 주시는 깊은 평강이 없다면 절대로 행동하지 마십시오.  그 결정과 관련한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을 주장하기 전까지는 주 앞에서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에 그분의 방법대로 응답하십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늦추시지만 그분의 시간에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응답을 주실 분만 아니라 늦어진 이유까지도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다니엘도 하나님이 그의 요청에 응답하시기 까지 21일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것을 막는 두 가지 장애물은 자신의 생각과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사탄도 우리 마음 가운데 어떤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탄의 목소리는 강하고 급하며 강요합니다.  사탄은 늘 어떤 위기 상황으로 우리를 몰고 가서는 우리로 어떤 행동을 급히 하도록 만듭니다.  반면 하나님의 음성은 조용하지만 일관성이 있고, 우리에게 잠시 물러나 조용히 기다리며 듣도록 권면합니다.

 

4. 사소한 일부터 먼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만 한다면 내가 귀 기울여 들을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도 순종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 계속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큰 사역의 문을 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좌우하는 위기 상황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즉각적으로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만을 행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8:29).  큰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하나님의 음성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순종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고 따라서 그분의 음성을 더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기억 하십시오.  많은 경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진리가 아니라 이미 밝혀진 진리에 대한 순종입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 들으셨습니까?  이제 당신은 평범하게 살기에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주님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한 주간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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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진실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장하고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외형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우리의 품성 자체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훈련은 우리의 품성에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품성 중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철학자 키케로는감사는 가장 위대한 품성일 뿐 아니라 다른 모든 품성의 어머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만큼 감사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다른 품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 속에 내적 평안을 경험하게 하고 인내심을 갖게 하고 긍휼한 마음을 갖게 하며 이외에도 여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훈련을 통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배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감사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을까요?  마이클 지가렐리는 『예수의 품성을 가진 크리스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사물을 균형 있게 보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자신이 소유한 것보다 아직 소유하지 못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즉 사물을 균형 있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늘만약 무엇을 했더라면 더 나은 인생이 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갈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미 허락하신 것을 순간순간 기억하고 분명하게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무엇을 필요로 하든지 간에 이미 우리의 삶은 윤택하다는 사실을 부단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궁핍함 못지않게 풍요로움을 볼 줄 아는 사물을 균형 있게 보는 습관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2. 구체적인 감사의 습관을 기르십시오.

단순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결심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익힐 수는 없습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습관을 통해 감사가 몸에 베이도록 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성품을 성장시키고 유지하기 위한 실제적인 습관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감사 일기를 사용해 보십시오.  이것은 오로지 당신의 인생 가운데 내려진 축복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다시 집중하게 만들 것입니다.  당신이 잊고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렸던 수많은 축복들을 기억나게 것입니다.  둘째, 정기적으로 금식하고 죄를 고백하십시오.  금식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육의 음식과 더불어 영의 양식을 선물로 주심에 대해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정기적으로 고백하는 일은 우리의 허물과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켜 주는 좋은 수단입니다.  셋째, 연약한 자들을 위한 기도를 습관화하십시오.  주변의 연약한 자들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를 떠올리게 되고 이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감사할 이유를 발견하게 만들 것입니다.  연약한 자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그분의 눈부신 섭리의 가운데 우리 자신의 존재를 조명해 보는 연습이 것입니다.

 

3. 개인적인 감사의 습관을 기르십시오.

여러분에게 감사를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최근에 가장 감사하다고 느꼈던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감사의 감각을 발동시키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능한 한 여러 순간들을 회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순간들을 통하여 감사의 단서들을 찾아보십시오.  이런 과정을 통해 여러분들은 여러분만의 감사의 통로가 무엇인지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통로를 통해 개인적인 감사의 습관을 기르십시오.  자신만의 감사의 습관은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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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노르웨이의 오슬로가 그랬다.

그녀는 내가 그곳의 교회에서 설교한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오슬로에 그녀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즉시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방문 약속을 잡았다.

친구들이 그녀를 집회 장소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테레시아는 돈을 모아서 왕복 비행기 표를 샀다. 

떠나기 전에 나이로비의 모든 친구들이 그녀와 함께 기도했고,

그녀가 갈망하는 성령의 불을 받아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오슬로의 교회가 문을 열자마자 테레시아가 먼저 들어갔다.

교회에 사람들이 가득 때까지 테레시아는 앉아서 기다렸다.

그때 지역에 사는 자매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했다.

“당신이 하나님께 받기 원하는 어떤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당신에게 주시겠다고 제게 말씀하셨어요”

그것은 놀라운 확증이었다.

테레시아는 자매에게 감사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어 강대상에 올라간 나는 테레시아의 존재를 금세 알아챘다.

노르웨이 교회에서 아프리카 여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입은 그녀는 눈에 띄었다.

내가 병자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하면

그녀는 기도를 받으러 쏜살같이 달려 나갈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미 8년이란 시간을 기다렸지만 다음 초청까지 20분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내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앞으로 달려 나와 앞에 서서 기대감에 떨고 있었다.

 

다음에 일어난 일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고

테레시아는 결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내가 그녀의 머리에 안수했는지 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그것을 인식할 겨를이 없었다.

하나님의 불은 손의 안수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여하간 나는 그녀의 머리에 안수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강력한 힘에 의해 아래로 밀려 넘어져 공중으로…

힘이 너무나 강력해서 그녀의 신발이 양쪽 벗겨졌다.

한쪽 신발은 노르웨이 청중들 한가운데 떨어졌는데 다시 찾을 없었다.

 

오슬로의 집회가 끝났고 나는 독일로 돌아갔다.

그때 테레시아는 교회 바닥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의식을 되찾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서 친구들이 그녀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그리고 그날 신었던 신발 짝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밤에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기 위해

신발 짝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테레시아에게 부으신 기름부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녀는 축복을 헛되이 받지 않았다.

테레시아는 사역의 능력을 받으려고 왔기에 사역을 것이었다.

1988 우후루 공원에서 울던 여자 테레시아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었다.

“오 하나님, 본케 목사님에게 10 명의 영혼들을 주실 있으시다면

제게 100명을 100명이라도 주세요.

주여, 그러면 저는 행복한 여자가 되겠습니다”

 

테레시아는 오늘날 매우 행복한 여자가 되었다.

아프리카 사람들 입에 그녀의 이름이 회자된다.

나는 그녀의 승리를 전해 듣고 주님께 물었다.

“왜 주님께서는 위대한 사역에 이혼녀를 선택하셨습니까?

우리 성경학교에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많은 훌륭한 남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대신 테레시아를 선택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말씀을 내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테리시아를 선택한 것은 내가 깨어진 그릇을 취하여

영광의 그릇으로 만들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말씀이 나를 얼마나 겸손케 했는지 모른다.

 

오슬로 집회 2 그리고 내가 우후루 공원에서 설교한지 정확히 10 후인 1998

나는 아내 아니와 나이로비를 방문했다.

우리는 공원 옆의 호텔에 묵었다.

나는 일부러 첫째 주일에 그곳에 찾았다.

그날 우후루 공원에는 20 명이 모였다.

테레시아는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설교했고,

수천 명이 주님께로 돌아왔다.

마치 사도행전이 계속되고 있는 같았다.

 

라인하르트 본케 『부흥, 성령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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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하루에 한 번, 혹은 하루에 세 번 식사 전에 해야 하는

어떤 종교의식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한 인격체와의 관계입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상호교제입니다. 

당신이 기도할 때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온 것입니다. 

당신은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이 중보기도를 해주십니다. 

성령님은 당신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좇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기 원하시는지

혹은 하기 원하시는지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분의 임무는 

당신이 그 방향으로 기도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종종 성경말씀을 사용하여 진리를 계시하십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저 어떤 개념이 아닙니다. 

진리는 인격체입니다.

성령님이 계시하시면

당신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조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라는 관계성이 아마도 당신과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척도일 것입니다.

기도생활이 침체되었다면

아마도 사랑의 관계가 냉담해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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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에게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영국을 뒤흔드는

영적 부흥을 준비하고 계셨고,

그 부흥은 영국을 불란서와 같은

피의 혁명에서 구원할 것이었습니다.

조지 휫필드와 몇몇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영국을 완전히 뒤엎어 놓는

거대한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속해 있는 지역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어떤 일이

막 일어나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들을 구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당신을 통해서 하시고자 한다고 가정합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훈련이 되어 있어요.

저는 못 할 같아요. 그리고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에 들어오시는 것을 느끼는 순간,

당신은 왜 당신이 적격자가 아닌지

왜 시간이 안 맞는지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3:11, 4:1).

저는 당신이 하나님의 관점을 찾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용하셔서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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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은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천둥과 번개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있으며,

햇빛과 미풍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있다.

무르익은 곡식 가운데서

하나님의 풍부하고도 

세밀한 은혜를 있다.


산봉우리와 계곡을 바라볼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있으며,

아름답게 꽃을 때에 

하나님의 기쁨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통해

무한하신 선과 지혜,

그리고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C. H. 스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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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2 9과에서는 중생에 대해 배우게 된다.  훈련생들은 이 과를 통해 중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중생 받을 수 있는가를 이해하게 되며, 믿음과 중생의 관계, 중생의 확실성에 대해 배우게 된다.  나아가 중생 받은 증거와 함께 삶의 열매로서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각자의 삶 속에 지금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믿음의 향해』2 9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이 책을 통해 훈련생들은 복음의 핵심적인 메시지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다.  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하나님이 빚으신 공백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알도록 지음 받았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이 갈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알도록 네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첫째는 만물로, 모든 사람이 이것을 본다.  둘째는 인간의 양심으로, 모든 사람이 이것을 가지고 있다.  셋째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사람이 이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다른 모든 것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모른다면 다른 어떤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문제는 죄로,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다.  죄란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에 반하는 것으로, 우리의 말이나 행동, 생각이나 상상, 계획,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완전한 기분에 미달하는 것은 다 죄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단 한사람의 의인도 없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모두 썩어 있다죄는 우리를 무력하게 하고, 노예 되게 하였으며,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무능하게 만들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삶은 절대 진정으로 변할 수 없다.  죄가 영혼의 암이라면 복음은 하나님의 신적인 치료법이며 유일한 치료법이다. 분명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먼저 나쁜 소식이 얼마나 나쁜지 깨닫기 전에는 그 좋은 소식이 왜 그처럼 좋은 것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은혜란 우리가 완전하고도 절대적으로 우리 죄로 인해 죽게 되었음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기로 결정하셨다는 의미다.  은혜란 우리가 받기에 마땅하지 않은 것(구원)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은혜는 공로나 종교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오며, 은혜는 믿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한다.  은혜는 원천이고, 믿음은 수단이며, 구원은 결과인 것이다.  은혜는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소식의 중심에 있다.


성경 속에 계시된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유일하게 구원하실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예수님에 대해 좋은 감정을 느낀다고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엄청난 한 가지 진리를 고백하는 남녀들로 구성된 공동체로 이 진리는 바로 나사렛 예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 바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은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했는지 의아해한다.  전지하고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해 어떻게 자기 아들을 십자가 위에서 살해당하도록 허용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처벌하지 않고 내버려두실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죄에 합당한 처벌을 요구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죄인들을 위해 죽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에 대한 공정한 처벌이 이루어졌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죄인들은 자유로이 용서받을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 이런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

 

우리의 노력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신뢰다.  그것이 전부다.  신약성경에서 믿음과 신뢰와 신앙은 모두 잠잘 때 체중 전체를 침대에 싣는 것처럼 완전히 기대다는 의미를 지닌 동일한 단어의 어근에서 파생한 단어다.  세상의 종교들을 비교해 보면 기독교의 단순성을 볼 수 있다.  세상의 종교는 두 글자로 설명된다.  하라’.  세상의 종교란 하나님께 용납 받기 위해서 해야만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들의 목록인 것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네 글자로 설명할 수 있다.  이루었다’  기독교는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이루신 일에 근거한다.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하라이루었다’.  당신 스스로 불가능한 것을 헛되게 열심히 하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해 이미 이루셨음을 믿든지 둘 중 하나다.  구원 얻은 참 믿음은 지성과 감성, 의지를 포함한다.  믿음은 지식에서 출발하여 확신으로 옮겨가서 의탁으로 끝마친다.  지식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기초를 가리킨다.  확신은 어떤 사실을 알고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납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탁은 믿음의 적극적인 부분으로, 완전히 의지함이라는 의미로 신뢰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예수님이 공적 사역에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였다.  회개는 문자적으로 마음을 바꾸다는 뜻이다.  진정한 회개와 구원 얻는 믿음은 붙어 다닌다.  회개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마음 상태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분을 당신의 구주와 주로 삼기 위해 전심을 다해 믿음으로 그분께 손 내미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일곱 개의 간단한 진술로 복음의 메시지 전체를 요약할 수 있다.

나의 필요함 :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임 : 유죄 선고

진실을 직면함 : 스스로 구원하기에 무력함

하나님의 해결책을 인정함 :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함 : 십자가와 빈 무덤

당신의 신뢰를 이전함 : 나에게서 그리스도께로

영원한 구원을 받아들임 : 나의 죄를 위한 그분의 의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만 거기에는 자기 신뢰와 자기 확신에서 돌이켜 온전하고 철저하게 그리스도만을 신뢰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리스도를 구세주요 주인으로 신뢰해야만 한다.  요한복음 1 12-13절은 구원을 바라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술하고 있다.  첫째는 간단한 첫 걸음으로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 놀라운 결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신비한 진리로 하나님께로 난 자라는, 이 모든 것, 즉 구원이 주님께 속한다는 것이다.  마침내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각자 개인적으로 예수를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만 한다.  당신은 복음에 대해 말할 수도 있고, 토론할 수도 있고, 논쟁할 수도 있고, 비평할 수도 있지만, 마지막에는 그것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초청이자 명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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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시 해야 하는 숙제들 가운데 또 가장 힘들어하는 숙제는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생활숙제를 꼽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독후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큐티역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숙제 중 하나입니다.  큐티가 사람들에게 힘든 이유는 적용과 결단을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흔히 ‘D형 큐티라고 하는 사역 훈련 큐티는 기존에 성경을 읽고 그 본문에 대한 자신의 간단한 느낌을 적는 방식에서 자신의 느낀 점을 토대로 하여 그 날 혹은 그 주간에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할 부분을 결단하도록 요구합니다.  문제는 이런 식의 큐티 방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1. 큐티가 어려운 이유

큐티를 통해 이런 맛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인도자가 D형 큐티를 계속 강조하면 훈련생이 큐티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큐티에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은 큐티를 하면서 결단과 적용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모든 큐티를 한 가지 적용점(예를 들면 전도)으로 결론 짓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가지 결단과 적용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적용할 거리가 없다며 큐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훈련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훈련생들은 날마다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며 말씀이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훈련생들이 이렇게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결단하는데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2. 큐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라

큐티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시작하면 큐티를 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사역 훈련의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하루 속히 큐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만이 큐티를 통해 사역 훈련의 은혜를 체험하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큐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다음의 방법들을 따라해 보면 여러분 안에 있는 큐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큐티를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큐티를 위한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라

제자훈련 12과에는 하나님과 교제하기(경건의 시간을 갖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 큐티를 하는 것은 대충 읽어 보겠다라고 작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라

올바른 결단과 적용은 올바른 연구와 묵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성경의 내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지 않고,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본문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본문을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문의 내용과 연관된 자신의 삶을 생각하라

사실 훈련생들이 큐티를 하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본문의 내용과 연관된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을 정확하게만 이해하면 반드시 내 삶에서 그 말씀의 내용과 연관된 일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일어난 본문과 연관된 사건들을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큐티를 하면서오늘(혹은 이번 주에) 내게 일어난 사건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혹은오늘(혹은 이번 주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꼼꼼히 적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에 대하여 오늘 본문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행동을 결단하라

삶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당신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결단하십시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가령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요구를 깨달았다면 당신은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오늘(혹은 이번 주에) 내가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에게 형제 사랑을 실천하려면 어떤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형제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결단으로 끝나는 큐티는매우 좋아 보이지만 변화를 이끌지 못하는큐티입니다.

 

반복을 조심하라

구체적인 행동을 결단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반복적으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물론 태도의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결단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결단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훈련생들의 큐티를 살펴보면 언제나 적용과 결단을 “000에게 복음을 증거 하겠다로 끝내는 큐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큐티하는 사람들은 결단만 하고 실제로는 그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복적인 결단으로 인해 마치 자신이 그것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큐티를 나누라

큐티는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삶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 큐티를 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큐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sharing) 더 큰 효과가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과 큐티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삶의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을 간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삶을 나누다보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 나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고 옆에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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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에 대해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몇 가지 힌트를 얻어 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획일화시키지 마십시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인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모두가 기근을 만나 하나님께 간구했을 때 각각 다른 응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애굽으로 내려가도록 내버려두시며 침묵하셨습니다( 12:9-10).  이삭에게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6:1-2).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 해에 농사해 백배나 얻었습니다( 26:12).  야곱에게는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6:3-4).  그러므로 예전에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획일화시키지 마시고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반응을 원하시는지 확인하십시오.  다른 사람이 비슷한 상황에서 인도하심을 경험했더라도 나에게는 어떤 반응을 원하시는지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십시오.

 

2. 하나님의 뜻을 확정론적인 것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이곳이냐저곳이냐이것이냐저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 이곳이냐, 왜 저 곳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있게 하시느냐?  아니면 저곳으로 옮기라 하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그가 애굽으로 내려가야 하느냐?  가나안에 남아 있어야 하느냐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으로 간다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며, 동행하시느냐?  가나안에 머문다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며, 동행하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된 니느웨가 하나님을 향해 회개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은 유보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원한다면 일단 속도를 늦추십시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어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때, 추측하면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놓으면 사고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차를 운전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안개지역으로 들어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차의 방향을 정하는 것보다 속도를 늦추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높은 사다리 하나가 벽에 세워져 있는 모습을 마음에 그려보십시오.  그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이 여러분의 인생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다리 꼭대기에 다 올라간 뒤 실수로 사다리를 다른 벽에 기대놓았음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비극일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할 상황에 이르면 일단은 속도를 늦추십시오.  아브라함도 기근을 만난 상황에서 속도를 내지 않고 여호와의 뜻을 구하며(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점점 남방으로 내려갔습니다( 12:8-9).

 

4.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요구하지 마십시오.

속도를 늦추었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어이끌어주시도록 간구해야합니다.  안개등(내 발의 등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켜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옮겨놓다 보면 안개 지역을 벗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즉각적인 필요)에 등이요 내 길(장래)에 빛이십니다( 119:105).

 

5. 실수하면 어떻게 할까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은 기근(안개 지역)을 만난 상황에서 속도를 늦추고 점점 남방으로 내려갔습니다( 12:9).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셨지만 기근이라는 상황을 만나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서 점점 남방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 결과 애굽으로 내려가 아내를 잃어버릴 위기를 겪게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오히려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어 애굽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12:16).  아직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험으로 알아가야 할 단계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지 못해 생기는 여러 가지 실수들을 너무 염려하다보면 한 걸음도 옮겨놓지 못하고 꼼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8:29)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에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리는 결정도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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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 들인

나는 그분께 마음의 집을 보여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지저분한 마음의 서재를 깨끗이 치워 주셨고,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했던 주방을

하나님의 양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아늑한 거실은 그리스도와 대화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의 재능과 기술,

작업실에는 그분의 손길이 드러나게 되었고,

모임, 교재 활동과 여흥들인 오락실과

언약 관계에 들어간 사람들만이 즐길 있는 침실에는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나는 나의 존재와 모든 소유인 집문서를 그분께 맡겼습니다.

그날. 그분은 삶을 받으시고 나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데

이보다 좋은 방도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릴 있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아름답게 하시고,

삶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다.

이제 영원토록 나는 그분의 것이요,

그분은 나의 것입니다.

 

로버트 멍어 『내 마음은 그리스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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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교재 28과에서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성령세례의 바른 의미에 대해, 성령 받은 사람의 인격과 삶에서 맺어지는 열매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한 개인적인 결단과 적용의 시간을 갖는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성령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이러한 이해가 가져다주는 실천적인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존 스토트 목사의  『성령세례와 충만』은 28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저자는 성령 세례와 충만, 성령의 열매와 은사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사역과 관련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해는 무엇인지, 그리고 성령의 사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리의 삶 속에서 갖는 실천적인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해 보다 자세히 이해 하고픈 훈련생이나 성령의 사역에 대한 여러 오해들을 불식시키고 바른 이해를 돕기를 원하는 인도자들에게 좋은 참고도서가 될 것이다.

 

이 연구를 시작하면서 먼저 네 가지 서론적인 요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공통된 소원과 의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온전한 목적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성경에서 이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  셋째,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목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보다 교훈하는 부분에서 우선적으로 찾아야 한다.  이는 성경에서 설명하는 부분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부분은 교훈하는 부분에 근거해서 해석될 때에만 유익하다는 것이다.  넷째,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하나님의 목적을 배우려고 하는 우리의 동기는 학문적이거나 논쟁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적이며 개인적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성령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거듭남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거듭남은 성령으로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성령은 직접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다 이 내주하시는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그 후에 성령을 주시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아들의 영을 주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바울의 경우 양쪽을 다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마서 8장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과 성령 안에 거하는 것, 그리고 우리 안에 성령을 모시는 것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 바울의 생각으로는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령이라는 이 약속된 선물은 성령의 세례와 동일한 것인가? 

바로 이 부분에서 사람들의 확신이 나뉜다.  성령의 선물과 세례는 다르다고 말하는 자들은 세례를 두 번째요 나중 경험이라고 가르친다.  반면에 두 가지가 같다고 보며 따라서 성령으로 세례 받은 것은 성령을 받은 것을 나타내는 생생한 수사학적 표현이라고 보는 자들은 이 세례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은 것으로 여긴다.  사도행전 2장에 의하면 오순절에 서로 다른 두 그룹의 사람들이 성령의 세례또는 선물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두 그룹은 2장의 초두에 나오는 120명과 말미에 나오는 3000명이다.  이 두 그룹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120명은 이미 중생한 사람들로서 열흘 동안 하나님을 기다린 끝에 성령의 세례를 받은 반면, 3000명은 불신자들이었다가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동시에 받았다.  이렇게 120명과 3000명의 두 그룹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령의 세례가 단회적인 선물을 말한다면, 성령의 충만은 이 선물이 지속적이며 갈수록 더 많이 충당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성령의 충만은 성령 세례의 결과였다.  세례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고, 충만은 그들이 받은 것이었다.  세례는 독특한 입문적인 경험이었고, 충만은 계속되는 영구적인 결과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준이 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입문의 경험으로서 세례는 반복될 수도, 잃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지만, 충만은 반복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든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 518절에서는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다 살펴보면, 첫째, 이 동사는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성령의 충만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이다.  둘째, 이 동사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성령 충만은 일부 사람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이 동사는 수동태로 되어 있다.  그 분의 충만함을 누리는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은 그 분에게 무조건 맡기는 것이다.  넷째, 이 동사는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  헬라어에서 부정과거형으로 된 명령은 단회적인 행동을 가리키고, 현재형의 명령은 계속적인 행동을 가리킨다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령충만의 증거는 무엇인가? 

성령충만의 증거는 성령의 은사들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익어 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737-39절에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주 예수님께로 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나오는 동사들(목마르다, 오다, 마시다, 믿다)은 모두 현재형으로, 우리는 예수님께 회개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한 번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해서 와야 하고 계속해서 마셔야 한다.  성령 충만에 관한 신약성경의 두 번째 본문은 충만에 대한 명령도 담고 있지만 무엇 보다고 성령 충만의 증거를 강조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표지는 무엇인가?  의심할 여지없이 그 가장 주된 증거는 기적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며, 성령의 은사에 있지 않고 성령의 열매에 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들에서 성령 충만의 결과들을 묘사한 유일한 본문은 에베소서 518-21절인데, 여기에 나타나는 것은 모두 도덕적인 자질들이다. 

 

이러한 성령의 세례와 충만의 구별에 대한 반론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실패와 보잘것없는 성과는 그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들이 죄나 불신으로 인해 고린도 교인들처럼 비영적인또는 육에 속한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던 성령의 충만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증거다.  두 번째 반론은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상의 독특한 성령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사실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과 관련해서 잊어서는 안 될 세 가지는 첫째, 이런 경험의 일부는 의심할 여지없이 마귀적이며, 진정한 영적 경험인 양 위장한 사단의 끔찍한 계략이다.  둘째, 그러한 경험 중 좀 더 많은 부분은 심리적인 것들이다.  우리가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경험들이 실상은 심리적인 것이다.  심리적인 것은 도덕적이나 영적으로 중립적일 수 있다.  셋째, 어떤 또 다른 경험들은 실제로는 회심의 경험인 듯하다.  그러나 마귀적이지도 않고 순전히 심리적인 것도 아닌, 그리고 회심의 경험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경험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참되고도 깊은 경험들이다.  이러한 경험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우리가 성령의 사역을 제한할 수 없고, 성령은 때로는 그리고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일하시기도 하신다는 점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말한다.  바울이 열거하는 이 아홉 가지 특질들은 세 개씩 묶어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둘째,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셋째,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우리가 자신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특질 중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거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함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진리는 성령의 열매는 그 기원이 초자연적이라는 것이다.  육체의 일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원에만 의지해서 자연적으로 행하는 일들을 가리키고,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성령께 반응할 때 그분이 우리 안에서 초자연적으로 만들어 내시는 특질들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충만한 내주하심의 가장 훌륭한 증거이다.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의 영이 깊이 역사하시는 진정한 증거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이나 굉장한 표적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적 특질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다음 진리는 이러한 특질들이 성령의 열매라고 묘사된다는 점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름으로써 그것의 초자연적인 기원과 자연적인 성장을 둘 다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연적 성화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된 수확을 거두기 원한다면 제대로 된 밭에 제대로 된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거둔다는 말인가?  육체를 위해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되고, 성령을 위해 심으면 영생을 거두게 된다.  사도가 사용하는 이 열매의 비유로부터 배워야 할 세 번째 교훈이 있다.  성령은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의 영혼에 즉각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심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많은 시간을, 아주 오랜 시간을 사용하셔서 이 생명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키우신다.  하나님의 사역의 점진성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열매 맺는 일에서 더 적극적으로 성령과 협력하게 되고, 좋은 결실을 수확하기 위해 우리가 심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며, 공적, 개인적 경건의 삶의 습관을 위해 자신을 더 훈련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와 관련 적용할 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그 기원이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과 믿음이 모두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 스스로는 육체의 토양에서 이러한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이 성령의 열매를 자라게 하실 수 있음을 믿는 믿음이 둘 다 필요하다.  둘째,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그 성장이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며, 생각하는 것과 사는 것 둘 다를 위한 훈련된 습관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그 성숙의 과정이 점진적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성령의 은사들도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사용되도록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주어진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교회에 대해서 쓸 때, 종종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대조시킨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성령의 사역의 결과다.  교회는 하나인데, 그 이유는 한 성령이 모든 신자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다양한데 그 이유는 한 성령이 모든 신자에게 각각 다른 은사들을 나누어 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의 선물은 교회의 통일성을 이루고, 성령의 은사들은 교회의 사역을 다양하게 만든다.

 

영적은사와 타고난 재능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창조와 섭리의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주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새 창조, 즉 교회의 하나님은 그분의 구속 받은 자녀들에게만 영적은사들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을 구별하는 것은 영적은사이며, 몸의 각 지체는 서로 다른 은사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사실로부터 영적 은사와 타고난 재능 사이에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을 쉽게 내려서는 안 된다.  어떤 은사들은 기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며, 무척 평범하고 심지어는 단조롭게 보인다는 것들도 있다.  가르치는 은사나 권위 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나 긍휼을 베푸는 은사는 기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또는 믿음등도 그 용어만 보아서는 그것들이 기적적이거나 기적을 포함한다고 보아야 할 명백한 이유가 없다.  기적이란 그 정의상 비범함 사건으로서 하나님이 정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일하시는 방법에서 창의적으로 이탈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모두는 초자연이 아니라 자연 안에서 그리고 기적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우선적으로 일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계시를 바로 인식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제한하며 그분에게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은사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그 분배 역시 다양하며, 은사는 선택된 소수의 특권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은사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어떤 그리스도인이든지 아무런 은사도 받지 못하고 간과되거나 뒤로 처지는 일이 없다는 사실은 교회에 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에서 근본적인 것이다.  많은 지역 교회들은 회중이 평신도 지도력이 은사를 갖추지 못했다고 불평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아무것도 시도하려 하지 않고 또 그나마 겨우 시도되는 것들을 목회자가 손에 꼭 움켜쥐고 통제하려고 하는데 대한 전형적인 변명이다. 

 

영적은사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신약성경은 이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한다. 첫째 영적은사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카리스마타카리스를 부여하는 것인데, 카리스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호의다.  둘째 영적은사들은 하나님의 영의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은사들을 전적으로 성령께만 돌려서는 안 되고, 삼위의 세 위격이 모두 참여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영적은사들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나누어 주시는 선물이다.  은사들을 나누어 주시는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주권적인 성령의 뜻에 달려 있다.  영적은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선물은 사용되기 위해 주어진다.  인간의 몸의 기관은 기능을 담당한다.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도 그들의 은사를 활용해야 한다.  영적 은사들은 우리 자신들(수혜자)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고, 위로하고, 강건하게 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세우는 것의 의미이다.  모든카리스마타가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전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세우는 역할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그 가치는 더욱 커진다.  모든 카리스마타는 공동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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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두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가질 때,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미 많은 메시지와 명령을 당신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이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과 길을

당신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그분이 명확하게 말씀하시면

당신은 진리에 따라

당신을 조정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께 순종할 때,

당신은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당신을 통해서 성취시키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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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들은 미신을 믿는다고 한다.

그들은 경기를 잘 하려는 뜻에서

온갖 이상한 행위를 다 한다고 한다.

어떤 선수는 외야에서 뛰어들어 올 때

행운을 빈다는 뜻에서 2루를 꼭 밟고 들어온다고 한다.


또 어떤 감독은 팀이 연속적으로 패배를 당하고 있을 때엔

이를 막는다는 뜻에서 팀의 버스 뒤좌석에 앉는다고 한다.

이밖에도 야구계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미신적인 행위는

스트라이크를 두 번째로 받은 다음엔 야구 방망이를 바꾸지 않기,

승리를 연속적으로 하고 있을 때엔 

야구복을 새것으로 바꾸어 입지 않기,

홈루를 야구 방망이로 세 번 두들리기,

그리고 파울 선을 밟지 않는다는 것 등이 있다.

 

1920년 대의 뉴용 양키팀의 투수 레프티 오도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파울 선을 밟았다고 반드시 경기에 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그 선을 밟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

알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힘이 어디엔가 있다면

그는 이 힘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자기 심중 깊이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과연 이러한 미신들은 해가 되지 않는 의식일까?

어떤 사람은 해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알 수 없는 힘을

믿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재수나 행운을 바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참 신앙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의 생활 중에 나타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이빗 C. 에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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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L. 무디는 학벌도 없고,

목사 안수도 받지 못한 신발 외판원이었는데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그와 몇몇 친구들은 기도와 회개와 성화의 모임을 갖기 위해서

어느 풀밭에 모였습니다.

헨리 바알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은 아직 온전히 헌신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온전히 헌신된 사람 한 사람이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그와 함께 그를 위해

그 안에서 얼마나 큰일을 하실지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무디는 그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훌륭한 설교자인 찰스 스펄전 목사의 설교를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후세의 전기 작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래, 세상은 아직 사람을 보지 못했어!

그를 통해서, 그와 함께, 그를 위해, 그 안에서 얼마나 큰일을 하는지를,

바알리는 누구든 가능하다고 했어,

바알리는 그 사람의 교육수준이 높아야 한다든지,

뛰어나야 한다듣지 하는 그 어떤 조건도 말하지 않았어!

단지한 사람이라고만 했지.

성령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면 나 무디도 그런 사람이 되는 거야

 

갑자기 무디는 지금까지 한 번도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를

그 교회당에서 보았습니다.

그것은 스펄전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하고 계신 분,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펄전 목사를 쓰신다면

그 외의 사람들을 안 쓰실 리 없다.

주님의 발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나를 보내주세요. 나를 써주세요라고 말씀드리자.”

 

무디는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되기를 원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평범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특별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무디는 근대의 가장 훌륭한 복음 전도자 중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미국과 영국에서 복음전도 집회를 열고 설교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당신은글쎄, 나는 무디가 아닌데…”라고 말하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무디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무디가 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자신이길 원하시고

당신을 통해서 그분이 선택하신 것을 하기 원하십니다.

당신이 그 어떤 중요한 일도 당신을 통해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얘기할 때,

그것은 당신 자신에 대한 얘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 중요한 일을 하실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평범한 한 사람이 헌신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어떤 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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