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 이처럼 끔찍한 주제를 가지고 설교한 것은

회중 가운데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들은 설교는

여러분 중에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유황불이 활활 타오르는 처참한 지옥이 여러분 밑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꽃이 이글대는 무서운 웅덩이가 있습니다.

지옥문이 입을 활짝 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난 지옥에 떨어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가

오늘 아침 다시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잠자리에 일어난 지금까지 지내면서

아직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엄숙한 시간에

여러분의 악한 방식대로 예배드림으로써

정결하신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고 있는 지금 순간,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

지금까지 예배드리고 있는 동안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역시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이건 지금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 거듭나지 않은

모든 분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도덕적으로 품행이 얼마나 방정하며

종교적으로 얼마나 열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젊다구요?

여기서 나이 같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연세가 지긋하신 여러분,

여러분은 특히 위험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심히 많은 죄를 범했으며

마음 역시 극도로 강퍅합니다.

그리고 청년 여러분

여러분이 향유하고 있는 

소중한 시기를 등한히 여길 예정입니까?

이곳에 회심하지 않는 어린이 여러분

지금 매일 밤낮으로 여러분에게 분노하고 계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향해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까?

 

회중 가운데 그런 비참한 가운데 빠질 사람이

오직 사람뿐이라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사람이 누구인지까지 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요?

아마 사람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제외한 우리 모두는

그를 불쌍히 여기며 소리 높여 통곡할 것입니다.

그런데 맙소사!

그런 사람이 사람만 있는 압니다.

지옥에 가서 오늘 들은 설교를 기억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영혼을 등한히 여긴다면

은혜의 때에 우리 마음은 점점 강퍅해져

더욱더 죄를 짓게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완악한 대로 내버려 두사 깨닫지 못하게 하시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이 되는 것보다 위험한 일도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은 성령을 받을 것이요

나머지 사람들은 눈이 멀어 그것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은 틀림없이 세례 요한의 때처럼

도끼가 아주 특별하게 나무뿌리에 놓여 있는 때입니다.

그래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베여 불에 던지울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진노한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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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앉은뱅이를 고쳐주실 때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인들의 공회에 끌려가서

그들이 행한 일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담대하게 유대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증거 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의 반응을 살펴봅시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4:13).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역사하심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예수와 함께 있던 알았다는 구절이

당신의 눈에 띄었습니까?

시간을 투자해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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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삶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변화는 저절로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1년 동안 꾸준히 씨를 뿌리고 땀을 흘리며 가꾼 결과로 거둘 수 있는 훈련의 열매인 것입니다.  삶의 변화라는 열매를 기대하며 봄철에 뿌리는 씨앗이 바로 생각의 변화입니다.  생각의 변화가 없이는 어떠한 행동의 변화도 기대할 수 없고, 행동의 변화 없이는 어떠한 삶의 변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 훈련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생각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요소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잘못된 지식

우리의 생각은 대부분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과 인생에 대한 그릇된 이해는 결국 우리의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훈련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지식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지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바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부합하는지 다르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십시오.

 

2. 영적 교만

하지만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지만, 바른 지식과 정보에 대해 알았다고 해서 우리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옳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자신이 따라야 하는 기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지식으로만 성경을 받아들인다면 결코 우리의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지식이 아니라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영적인 교만이 없는지 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3. 염려

우리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또 하나의 장애요소는 염려입니다.  염려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살면 주어질 유익보다는 손해를 더 크게 보이게 합니다.  따라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결심을 하였지만, 우리 안에 염려가 가득하다면 결코 우리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염려가 자신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염려는 우리의 생각의 변화를 가로막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지식 없음을 인정함으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우리의 교만함을 인정함으로 주님의 음성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염려를 인정함으로 주님의 음성에 따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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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기적인 조정과 값비싼 순종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당신을 통해 나타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진실의 순간에

대가가 너무 크다고 결정합니다.

그들은 자주 순종을 하지 않는 것의 결과가

얼마나 값비싼지를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명으로 부르셨을 ,

순종은 당신과 당신 주위의 사람들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그러나 대가가 얼마가 되든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순종은 모든 종들에게 요구됩니다.

당신이 순종할 ,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실 것이고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는 감격을 만끽하게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위대한 지식을

경험으로 알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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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안에서 사는 삶을

완전히 알고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율법 안에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령의 자유롭게 하심을 통하여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를 얻는지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육신에 속하다’( 7:14, 18)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31-3절에서

말에 대해 설명한 것을 참고해야만 한다.

거기서 그는 비록 거듭나긴 했으나

아직도 자신을 성령께 완전히 맡기지 않음으로 인해

신령한 자가 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데

말을 사용한다.

 

그들은 성령을 가졌지만

육체의 주도권을 행사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과

신령한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그들 안에서 강한 힘을 행사하는 요소에 의한 차이가 있다.

그들이 성령을 가졌음에도 무슨 이유에선가

그분의 능하신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기 힘만 가지고 악전고투하는 ,

그들은 신령하게 행하지 않으며

신령하게 수도 없다.

 

바울이 여기서 설명하는 사람은

거듭났으면서도 자기 자아 속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성령으로 생명을 얻기는 했지만

갈라디아서 525절에 따르면

성령과 더불어 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육적인 사람이다.

 

이와 반대로 성령 안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원하게 하시고

아울러 행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있느니라’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과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신자가 율법으로부터 확실하게 해방되지 못한 이상,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실로 귀착될 것이다.

그는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안에서 기뻐하기까지는 하지만

능력은 결여되어 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으므로

살아있는 자는 이것들을 행하게 것이라 하는

믿음의 법에 굴복할 때에만

그는 다른 , 성령을 통하여

그의 속에서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예수님께 연합할 있을 것이며,

하나님을 위하여

참으로 열매를 맺게 것이다( 7:4).

 

앤드류 머리 『성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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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데이빗 스티브 공군 중위는

그가 탔 훈련 제트기가 실종된지 54일만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시에라 산중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고장난 비행기에서 낙하한

눈이 덮힌 황야에서 살아나오는 믿기 어려운 얘기를 했다. 

스티브 중위가 살아나왔을

그는 공식적으로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사건에 대한 확대 조사가 이루어지고

비행기의 파손된 잔해를 찾아낼 없게 되자

스티브 중위는 사건 조작의 의혹을 사게 되어 강제로 예편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20 년의 지난 어느 소년단원들이

그가 탔던 비행기의 잔해를 발견했을

그의 이야기는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2천년 전에 있었던

다른 살아난 이야기 아직도 논쟁거리이다.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일을 했다. 

그후 그분은 사형을 당했고,

죽으셨다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후로 삼일 후에 살아나셨다고 했다. 

그때 이후로 사건에 대한 회의론자들이 계속 있어 왔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 죽음, 부활에 관한 기사들을 고찰해 보자. 

그에 대한 기록은 사실에 입각한 것이다. 

선지자들이 그의 오심을 예언했다. 

그의 행하신 기적들은 그의 신성을 입증했다. 

목격자들이 그의 부활을 증명했다. 

오늘날 성령께서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

예수의 살아계심을 확증해 주셨다.

우리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있다. 

당신도 의심없이 믿고 있는가?

 

-마틴 R. 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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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스에서 북동쪽으로 2백마일을 가면

죽음의 골짜기라고 불기는 곳이 있다.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해면보다 276피트마 낮은 곳에서 위치해 있다. 

이곳은 또한 미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으로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기온은 134도이다. 

 

죽음의 골짜기 연결된 강들은 사라져 갔고

일년에 오직 2.5인치의 강우량이 황량한 지역에 내릴 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지구의 속살까지 드러낸 이곳에

19 동안이나 비가 내린 것이다. 

갑자기 수년 동안 잠자고 있던 모든 종류의 씨가

제각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죽음의 골짜기에 생명에 탄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메시지이다.

사막이 초원으로 바뀌고 보기 흉하던 것이 아름답게 변하는 것이다.  

마침내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고,

결과 사람들은 증오를 몰아내었으며

생명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슬픔과 한숨이 부활의 아침에 십자가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로이드 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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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가장 부정(否定)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써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는 모든 것을 

쓸어 버리셨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상에서 가장 긍정은 부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영역 안에 있는 모든 것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활은 창조의 벽두(劈頭)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부정적인 옛것을 종결시키고,

부활이 긍정적인 새로운 일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개시(開始)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부활 이전에 시작된 모든 것은 

깨끗이 떨어져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어찌 하루를 힘차게 살지 않을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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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으로써 죽음을 이긴 일이었다.

죽음은 가장 추악한 형태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는 가장 선한 길로 이를 맞이하였다.

그리스도에게서 죽음은 성화되고 아름다운 것이 되었다. 

그리스도야말로 죽음을 멸하신 분이다. 

그리스도는 죽음으로써 사망이란 것을 없애 버렸다. 

 

죽음은 고통이요, 번민이요, 회한이요, 절망인데도,

여기에 고통을 잊고, 번민을 잊고, 회한을 느끼지 않고

절망을 모르는 죽음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랑의 절대적인 힘이 드러났다. 

사랑은 인생의 최대의 적인 죽음조차 이길 있는 힘이다. 

죽음을 죽여 없애 버리는 것이 사랑이다. 

그는 오직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죽음을 이겼다. 

사랑이 아니고는 죽음을 이겨낼 힘은 없다. 

결국 사랑이 부활을 가능케 것이다.

 

-우찌무라 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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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절기들에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미국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날로 매년 74일을 기념하고 있다. 

74일은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해 준다.

다른 특별 절기들도 마찬가지이다. 

Josh McDowell 정확히 지적한 대로

일요일은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하되 1년에 52 기념하는 유일한 날이다 

역사적인 사실이란

바로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강력한 증거들 가운데 하나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자기의 모든소유와

심지어는 자기의 목숨까지 내걸고서

새로운 일요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들이 최초의 회심자들이었다. 

기존의 길에서 나와 날로 바꾸는 필요했을

용기와 확신을 한번 상상 해보라. 

기존의 안식일을 수십 세기 동안 지켜 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피할 없는 손실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니라면

어느 것도 변화를 설명해 없다. 

모든 증거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논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 앞에 맞서도록 해준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겁많은 사람에서 순교자로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거짓을 위해 가정도 버리고,

직업도 버리고서 고난을 자초한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그들에게 과연 거짓 것을 전파하는 일에

고독과 굶주림과 추위와 고문과 죽음을 값으로 지불할 필요가 있겠는가?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길래

그들은 빼앗겨도 기뻐하고

죽음조차 기쁨으로 맞을 있었던 것일까?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되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거의 순교자로 죽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진리를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 이후에 여태까지 수도 없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를 위하여 순교를 당했다. 

 

사실은 이것이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고,

복음을 담대히 나가 뜨겁게 전파했던 것이다. 

그들은 의심이 전혀 없었고,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부끄러움을 당해도,

심지어 죽음을 당해도 기쁨으로 여겼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니라면

이들 삶의 극적인 급작스런 변화를 설명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은 주님을 보았고,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셨다.

 

-플로이드 C. 맥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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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 토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데 중에 하나만을 있다.

거기서 도망을 가든지 위에서 죽든가 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죽는 곳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나타내는 직설법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라는 명령법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분과 함께 죽으면서 동시에 그분의 부활의 권능으로 사는

긴장에서 결코 벗어날 없다.

신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연합함으로써

그것이 주는 유익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칭의를 받는다.

 

그들은 권능을 실감하며 더욱 성화된다.

그들은 수치를 지면서 최후에 옳다고 입증되기 위해

길을 가며 완전히 주님과 동일화 때까지 예수님을 본받는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승리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인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권능에 대해 말하지만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어느 것도 경험할 없다.

 

성금요일이 없다면 부활절도 오순절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도록 부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과 함께 죽도록 부름 받았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의 삶에서

십자가는 과거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실이기도 하다.

 

데렉 티드볼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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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그들의 고대 왕들을

미라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하다.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은

영국의 훌륭한 사람들이 안치되어 있기 때문에 유명하다. 

마호메트의 무덤은

그것을 덛고 있는 돌판과 유해로 유명하다. 

 

위성턴 D. C.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도

훌륭한 미국인들이 묻혀 있기 때문에 유명하고

많은 방문객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지금까지 언급한 무덤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리스도의 무덤은 비어 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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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진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진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그리스도의 부활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야말로

사망의 권세 아래 죽을 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소망을 가져다 주는 

놀라운 능력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지 않는다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쓸데없는 미련한 말만 늘어 놓는 것이다. 

부활을 전하지 않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요,

죄인의 헛된 꿈일 뿐이다.

 

-W. M. 베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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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미국의 타임지가 

감리교회 목사들에게 행한 설문 조사에서

참으로 놀라운 통계가 발표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목사의 수가

무려 46%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던 것이다. 

통계 옆에는 이런 조사 결과가 첨부되어 있었다. 

지난 4 동안 미국 감리교회는 교인 51 4 명이 줄었고,

교회학교 학생이 25% 줄었으며,

선교사 파송이 20% 줄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조차 믿지 않는 지도자의 신앙이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통계를 보면 무엇을 느끼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회가 올바른 신앙 안에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우선 부활 신앙을 깊이 심어야 것이다.

  

-Christianity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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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은 교회의 체질을 건강한 체질로 바꾸는 목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체질 변화는 결국 훈련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로부터 비롯됩니다.  따라서 결국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제자훈련을 통해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우리가 변화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의 시작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우리에게 마음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2).


그런데 성경에서 마음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전인격, 즉 지성, 감성, 의지를 다 포함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1. 지성(知性)의 변화

제자훈련은 지성의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더욱 분명하고 자세하게 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성경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성의 변화는 순간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성의 변화는 오랜 시간을 통해 축척되어야만 비로소 그 차이가 드러납니다.  큐티 한번 하고 나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큰 착각입니다.  매일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지성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성의 변화를 위해 우리는 꾸준하고도 일정한 시간을 투자해야만 합니다.

 

2. 감성(感性)의 변화

제자훈련은 감성의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나면 그분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을 향한 나의 마음을 수정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감성의 변화란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제 삶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삶을 살기로 작정하는 결단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감성의 변화는 단지 말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도 만나주지 않는다면 연인과 만나는 시간보다 다른 업무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는 진정 연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 사랑은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가 있느냐와 관련된 것입니다.

 

3. 의지(意志)의 변화

감성의 변화는 의지의 변화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던 옛 모습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의지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삶 가운데 온전히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과 관계와 문제들 속에서 내 의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지의 변화는 내 주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내 것을 포기하는 삶,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 위해 기꺼이 손해 보는 삶, 이런 삶을 살기 위해 내 의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22:42). 

 

제자훈련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변하면 여러분의 삶이 변하게 될 것이고,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를 통해 교회가 변화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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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제자훈련을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 개인에게 일어난 변화는 그가 속한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 영향을 미쳐 결국 그가 속한 공동체의 변화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런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을까요?  변화의 여부는 우리가 훈련을 받으면서 무엇에 초점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훈련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생각대로 자신의 삶에 변화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제자훈련을 받고 있는지 그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어떤 것들을 시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1. 모든 것을 "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3:17)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또는 그분을 대신해서 마치 예수님이 하시는 것처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전임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교회나 신앙생활과 관련된 일만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대하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모든 일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이 우리에게 결코 모든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기 때문에 상황의 필요에 따라 단호한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할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그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진지한 고민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통해 예수님께서 친히 하시는 일처럼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순간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공급해주실 것을 간구하고 믿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대단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육체적으로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만 가지고는 결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할 찌라도 주님이 공급하여 주시는 힘으로 하게 될 때 그 일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는 법을 배우십시오( 28:20)

분명,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컴퓨터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쇼핑의 적정선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그 원리였습니다.  우리가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구체적인 방법론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원리를 따라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가령 예수께서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19:24), 그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부자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딤전 6:10).  이처럼 예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지킨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보다 더 성경을 열심히 연구함으로써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인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우리는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는데 실패합니다.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 그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에만 그치면 안 됩니다.  지킨다는 말은 실제 행동에 옮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제자훈련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제자훈련을 하면 성도들 머리만 키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결단을 통한 실천이 부족한 제자훈련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생긴 오해로, 분명 그런 제자훈련은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데 실패한 훈련입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삶이 뒤따라야 합니다.  오늘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럴 때 세상이 여러분들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 것입니다(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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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하루 전날

아브라함이 그곳에 가서 가가호호 심방하고

전도할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렸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 교회에 장기 계획을 짜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그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기도 전에

심판을 내리신다면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 역사의 한 장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와

당신의 나라에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늦기 전에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곳에 합류시켜 주시도록

자신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개 처음부터

자세한 계획을 가르쳐 주시지는 않지만

당신과 당신의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응답해야 하는지

한 번에 한 걸음씩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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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를 믿는 ,

이것이야말로 영혼을 멸망시키는 일이다.

자기 의를 신뢰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를 거부한다.

 

사랑하는 자여,

당신은 모든 면에서 철저히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죄뿐만 아니라

당신의 종교적 행위도 당신을 멸망시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에 당신이 놀랐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악한 때문에 멸망할 있듯이

겉으로 드러난 의와 선행 때문에 멸망할 수도 있다.

 

자기 의와 선행이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되어

그분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진노를 풀어드리고,

그분께 은혜를 얻고 용서를 받는다고 믿는 사람은 멸망한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직무를 무효로 만들고

자기의 행위와 미덕을 구주로 만드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여,

죄를 조심하라.

당신이 많은 일을 하지만,

가지 죄에 걸리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된다.

최선을 다한 후에 당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인정하라.

당신의 의를 더러운 옷처럼 여겨라( 3:9).

“대저 우리는 부정한 같아서

우리의 의는 더러운 같으며

우리는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64:6)

 

세상을 사랑하는 ,

이것이야말로 거룩하게 되지 못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겉으로는 태연하게 신앙고백을 하면서

속으로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곳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이런 죄의 속이는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세속성과 탐욕을 아는데도 정작 자신들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갖가지 핑계와 가면으로 세상을 향한 사랑을 덮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눈이 멀어 자기 기만 가운데 멸망한다.

신앙고백을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보다는 세상에 애정을 갖기 때문에 땅의 것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육신을 좇아 결국 멸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저희의 신은 배요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3:19).

 

그러나 그들에게 당신은 그리스도를 가장 소중히 여깁니까?’라고 물으면

그들은 당연하죠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유는 그들이 마음속을 깊이 꼼꼼히 살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들이 세상을 얻기 위해 관심과 노력을 집중한다는 것을 알게 것이다.

이런 것은 회개하지 않은 죄인의 뚜렷한 특징 하나이다.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이런 은밀한 때문에 멸망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아주 불법적인 행위들 때문에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있지만,

합법적인 안락함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가 이미 안전하다는 뻔뻔한 착각에 빠져 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라고 외칠 ,

멸망이 갑자기 그들을 덮칠 것이다.

이런 착각 때문에 어리석은 처녀들은,

신랑이 때까지 자기들의 기름이 부족함을 알지 못했고,

기름을 사러갔을 때는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어리석은 처녀들과 같은 사람들이 지금 없는 지역이나 집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근거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근거에 의지하여 자기들의 상태가 안전하다고 믿으려고 한다.

결과, 변화를 위해 힘쓰지 않고 결국 그들의 가운데 멸망한다.

당신은 평안한가? 

그렇다면 무슨 근거에서 평안한지 내게 보이라.

그것이 성경에서 인정하는 평안인가?

 

당신이 진정한 신자라는 확실한 표지를 보여라.

당신은 세상에 살았던 위선자들보다 나은 어떤 것을 보일 있는가?

그럴 없다면,

당신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평안은 어떤 불안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육신적 평안이 영혼에게는 치명적인 원수라는 것을 알라.

그것은 미소 짓고 맞추고 좋은 말을 늘어놓지만,

결국에는 당신의 급소를 찔러서

당신을 죽게 만든다.

 

조셉 얼라인  『돌이켜 회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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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 생각 그리고 목적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항상 획기적인 조정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환경, 관계성, 헌신도, 행동

그리고 믿음에서 조정을 요구하실 있습니다.

일단 필요한 조정을 하고 나면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따를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을 부르신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룰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엘리사처럼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받아들이고 항복하기 원할 ,

조정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것입니다.

만일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항복하지 않는다면

오늘 그렇게 결정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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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숙제입니다.  이렇게 숙제를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때문입니다.

 

1. 기록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록을 위해서 요약을 해야 하는데, 그런 훈련이나 습관이 안 된 분들이 많기 때문에 숙제를 어려워합니다.

 

2. 숙제의 양이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암송, 큐티, 성경통독, 독서과제물, 생활숙제 등 한 주에 감당해야 할 분량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제를 부담스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삶 속에서 실천할 과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매주 내어주는 생활숙제는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천해야 하는 것은 과거에 살아왔던 행동 습관과는 대립되기 때문에 숙제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숙제가 어렵고 힘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자훈련과 숙제는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제자훈련이 훈련인 까닭은 숙제가 있기 때문에 숙제가 없다면 제자훈련은 더 이상 훈련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숙제를 할 때 다음과 같은 분명한 관점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a. 왜 숙제가 필요한가?

제자훈련은 성경의 교훈을 깨닫고 그 교훈을 삶에 실천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제자훈련이 효과적이 되려면, 성경의 교훈을 바르게 그리고 많이 깨닫도록 돕고 그 교훈을 삶 속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실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해서 숙제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숙제가 정말 숙제다운가는 이 숙제를 통해서 얼마만큼 성경의 교훈을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게 되느냐에 의해 결정되어야 합니다.

 

b. 숙제를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가?

제자훈련을 인도하는 목회자는 효과적인 숙제를 내어줄 책임이 있습니다.  반면 훈련생은 효과적으로 숙제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효과적으로 숙제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벼락치기 숙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벼락치기로 암송을 해서 외우면 무엇 합니까?  암송을 통해서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외우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말씀의 내면화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통독을 벼락치기로 하면, 결국 묵상이 없는 읽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경읽기는 아무런 효과가 없겠지요?  따라서 벼락치기 숙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c. 숙제를 통해서 얻는 유익은 무엇인가?

숙제를 통해서 얻는 첫 번째 유익은 여러분의 신앙지식의 양이 늘고 수준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유익은 여러분의 인격과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인격과 삶의 변화야말로 최고의 보상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익이 당장에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늘 유념해 두십시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는 것처럼 우리는 당장에 축적과 변화의 효과를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콩나물시루에 붓는 물이 어느새 콩나물을 훌쩍 성장시켜놓는 것처럼 어느 새인가 놀랍게 변화되어 있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변화입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변화를 원하십니까?  진정한 변화에는 진통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진통과 시간을 대체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숙제를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 마십시오.  결코 숙제 없이는 변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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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30분마다 1명씩 자살을 하고,

2분에 명씩 정신 이상자가 된다고 한다.

만약 그들이 종교와 기도의 위안과 평화를 가진다면

그런 비극은 막을 있을 것이다.

 

현대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카알 박사는

『영혼의 탐구에서 현대인』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과거 30년간 나는 세계 여러 문명국에서 상담하러

백명의 환자들을 접했다.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선 환자들의 문제는

한결같이 종교적 인생관을 찾는 일이었다.

종교의 의미를 찾지 않고는 아무도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다.”

윌리엄 제임스도 신앙은 인간을 살게 해주는 힘의 하나이며

종교가 전적으로 없다는 것은 파탄을 의미한다 했다.

또한 인도의 지도자로 널리 알려진 간디도

기도가 없었다면 나는 오래 전에 미치광이가 되었을 것이다 말했다.

 

오늘날 정신병원에서 울부짖고 있는 수천 명의 환자들이

삶의 특쟁을 홀로 겪으려 하지 않고

보다 위대한 능력에 의존한다면 이미 구원 받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힘의 한계에 도달하고 당황하면

누구나 절망 중에서 신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마 참호 속에서는 아무도 무신론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절망이 밀어닥치기 전에

신을 찾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닐까?”

더불어 자기를 구원해 있는 능력의 하나님을

찾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없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필요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데일 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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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제자들의 유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 중 한 가지는 보내사 전도하게 하려하심이었습니다( 3:14).  예수님의 첫 부르심이 오라였다면( 4:18-22), 그분의 두 번째 부르심은 가라입니다( 28:18-20, 17:18, 1:8).  하지만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조차도 이 사실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들은 항상 무엇을 얻을까 그리고 자기들 가운데 누가 제일 위대한가에 대해 신경 썼습니다( 22:24).  그들은 아직 남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부터 그들을 전도의 현장으로 내보내셨습니다( 5:7-13).

 

제자들에게 있어서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훈련이 마무리 되고 나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훈련의 과정 속에 녹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결코 하루 밤 사이에 능력 있고 효과적인 복음 전도자로 거듭난 것은 아니지만 훈련의 과정 속에서 실패하고 경험하면서 하나씩 전도자로 거듭났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특별히 제자가 되고자 헌신하신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으로 확실히 준비되어야합니다.  오늘은 데이빗 왓슨이 지은『제자도』에서 증인의 특징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증인은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경험주의에만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체험이 말씀을 통해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식적으로만 아는 단계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말씀이 경험되어야 합니다.  내가 경험한 것이라야 힘이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이라야 능력이 있습니다.

 

2. 증인은 그것을 말로 표현할 있어야 한다.

비록 우리가 삶, , 관계, 자세, 고난, 심지어 죽음을 통해서 증거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우리 마음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해야합니다.  말로 증거 할 때 우리는 부드러움과 존경심을 잃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말하는 것을 증명하는 우리의 삶을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3. 증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해야 한다.

증인은 복음의 능력,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장벽을 깨뜨릴 수 있으며 어떠한 사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확신은 교만이 되면 안 되고 기도에 의하여 형성된 겸손과 예민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증인은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과 함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증인은 영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

증인은 영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사람을 깊이 돌봐야 합니다.  그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데이빗 왓슨이 제시하는 증인의 특징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보면서 제자훈련이 마무리되기 전에, 희어져 추수하게된 이 세상에서 전도자로 준비되시는 한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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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전체를 통틀어 볼 때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오시면

하나님은 그에게 항상 자신과

자신이 하시는 일을 계시하십니다.

 

이것은 언제나 그 사람에게 그의 삶을

하나님께로 조정하라는 초정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절대로 그가 살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들의 인생에 획기적인 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의 인생이 하나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하시고자 하는 일에 주도권을 잡으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중심일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하나님의 주장하심으로 인해

당신 안에 생깁니다( 2:13).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종종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곧 바로 하나님 중심적이기보다는 나 중심적이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향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안목으로 모든 것을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인격을

우리 안에 심어서 자라게 하시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에게 계시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만 우리 인생이 삶에 대한 올바른 안목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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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기독교 신앙은 철저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고통당하는 마음에 향유를 바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신실한 해석과

양심에 강요하는 율법의 요구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보존되는 곳에서만 유지될 있다. 

 

율법의 요구를 제외한 율법의 해석이 우위를 차지하는 곳에서는

독선적인 바리새주의가 조장되고,

복음의 선포가 율법의 요구를 배제하는 하는 곳에서는

신앙 지상주의의 방종이 발생케 된다.

 

지난 100 동안 아마 기독교 사회는 복음 설교를 50 들었다면

율법에 관한 설교는 정도 들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실로 결과는 비참하고 가련하게 되었다. 

, 느슨하고 부주의한 걸음과

동시에 경박하고 뼈가 없는 종교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성경의 어떤 부분을 연속해서 해석하고,

과정에 있어서 율법에 관한 구절에 이르면

그것에 머물러 그의 청중들에게

율법의 요구를 강요하는 것이

오늘날(이전보다 ) 그에게 요구되어지고 있는 본분이다.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5:19). 

 

여기에 말의 순서를 주목해 보면 ‘행하며 가르치는’이라고 되어 있다. 

바울이 믿음 안에서 그의 아들에게

“네가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라”고 권고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종들에게

생활의 고결함과 교리의 건전함을 요구하고 계신다. 

 

행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서로 다른 사역자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심히 모욕하는 것이 된다.

만일 우리의 생활이 우리의 설교와 반대가 된다면,

복음 전파하는 일을 전적으로 그만두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길과

자신의 말이 조화되지 않는 사람의 설교에는 

능력이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은 그의 청중들의 마음에 

확신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사역자는 먼저 자기가 설교할 것을 실천하지 아니하고는

양심의 깨끗함과 마음의 기쁨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가르칠 없다.

 

아더 핑크 『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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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참여하라고 당신을 부르실 ,

그분은 당신과 주시하고 있는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 크기의 사명에 동참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사명 앞에 서면

당신은 반드시 믿음의 갈등에 부딪치게 됩니다.

당신을 부르신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상관없이

당신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당신의 믿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일은 믿음과 행동을 요구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없습니다.

당신이 믿음에 의거한 행동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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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의 목표 중 하나는 탁월한 사역자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지도자로서 부여받은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 분명 제자훈련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 목표보다도 훨씬 궁극적인 목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거룩입니다.  제자훈련은 훈련생으로 하여금 참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도록 이끄는 과정입니다.  특별히 제자훈련은 다음의 세 가지 단계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로의 거룩

우리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거룩의 단계는 하나님으로 구별된다는 의미의 거룩입니다.  구약 시대의 나실인처럼 하나님께로 구별하여 자신을 드린다는 의미에서 훈련생에게 거룩이 요구됩니다.  제자훈련은 그 첫 단계에서부터 기도와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훈련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의 거룩이 빠져 버린 훈련은 생명 없는 육체와 같이 그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2. 세상으로부터의 거룩

두 번째 요구되는 거룩의 단계는 세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별해 낸다는 의미에서의 거룩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세상의 부정적 영향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해 내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문화가 중심에 된 환경에서는 세상 문화의 영향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해 내는 것이 요구되는 첫 번째 행동 규칙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처럼 생각하고 세상 사람처럼 말하고 세상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우리는 실질적인 영역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세상 사람일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이러저러한 세상의 쓰레기를 걷어내는 작업입니다. 과거 혹은 현재 진행 중은 우리의 세상적 습관들을 걷어내고 우리 안에 새로운 습관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실제적인 의미에서 우리 삶을 하나님께로 구별하는 거룩이요 세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별하는 거룩입니다.

 

3. 다시 세상으로의 거룩

세 번째 요구되는 거룩의 단계는 거룩한 우리의 정체성을 세상 속으로 가져가 세상을 변혁하는 거룩입니다.  하나님께로의 거룩과 세상으로부터의 거룩을 통해 거룩해진 우리의 거룩한 정체를 세상으로 가져가 세상을 거룩하게 변혁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거룩의 최종 단계입니다.  제자훈련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훈련을 통해 새로워진 우리를 통해 세상을 변혁하길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이러한 거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저 “나 한 사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면 되지 뭐”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로 훈련에 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인격과 삶을 통해 거룩의 열매를 풍성히 그리고 확실히 맺기 위해 최선의 경주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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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의 본질은

다만 다음의 의문에 대한 해답 속에서만 성립된다.

나는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과연 무엇 때문에 나는 살아 있는가?

그리고 나의 주위에 있는 광대한  세계와

나와는 어떤 관계인가?”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 속에서만 성립될 것이다.

 

가장 높은 종교로부터 가장 원시적인 종교에 이르기까지

그 구성의 기초에

이렇게 인간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우주 만물의 기원과

그 존재 의미에 대한 문제를 포함하지 않은

그 어떤 종교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종교라고 해서 다 종교는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가 그에 대한 바른 해답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드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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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훈련은 변화라는 열매를 맺는 과정입니다.  사역훈련 목회를 통해 건강한 교회로의 변화를 기대할 때에도 우선 훈련생 각자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처럼 사역 훈련의 열매는 변화가 그 성패를 좌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훈련생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훈련생들이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아직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다음의 네 가지 질문은 아직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사역훈련을 통해 삶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무엇인가?

사역훈련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한 나쁜 습관은 무엇인지를 확인하십시오.  "일상적인 삶의 행동들 가운데 90%는 습관을 따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삶이 변화되기 원한다면 우선 내가 갖고 있는 습관들 중 나쁜 습관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가령 여유로운 시간이 있을 때마다 쇼핑을 가는 습관이라든지 귀가 후 무의식적으로 TV를 오랫동안 시청하는 습관이라든지 혹은 무엇이든 우선 부정적으로 말하는 습관 등 사역훈련을 받으면서 변해야 하는 나쁜 습관들이 무엇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많다는 것입니다.

 

2. 나쁜 습관 대신 갖고 싶은 좋은 습관은 무엇인가?

두 번째로 던질 질문은나쁜 습관 대신 갖고 싶은 좋은 습관은 무엇인가?”입니다.  왜냐하면 습관은 바꿀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어떤 습관을 길들일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습관을 버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쁜 습관은 좋은 습관으로 대체될 때에야 비로소 없어집니다.  가령 늦게까지 TV를 보는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하고 고치려 한다면, 그 시간에 책을 얼마씩 읽겠다거나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는 새로운 습관을 들여야만 비로소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습니다.  TV를 꺼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TV는 언제든 다시 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는 좋은 습관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3. 당장 실천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위의 두 질문에 스스로 대답을 하다 보면 버려야 할 습관과 갖고 싶은 습관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 시도해 봅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야말로 작심삼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습니다.  단지 몇 개의 습관만을 바꾸어도 삶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희망적인 사실은, 한번 변화에 성공하고 나면 그 다음 변화는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가령 마라톤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처음부터 마라톤 풀코스를 뛰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400m를 일정한 속도에 달리는 훈련을 합니다.  그런 다음 1km, 2km, 4km, 5km, 10km, 21km의 순서로 서서히 적응력을 높여 갑니다.  그래야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4.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실천할 있는가?

모든 종류의 변화에 꼭 필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끈기입니다.  괴테는 "위대한 일이나 중요한 목표를 가능하게 하는 두 가지는 바로 힘과 끈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헬스장이나 수영장 같은 스포츠회원권을 끊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다닙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운동을 빠지는 날이 점차 늘어납니다.  결국 회원권의 기간이 다 지날 때 까지 한 번도 운동하러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위로합니다.  이 운동은 나하고는 안 맞아!”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기보다, 자신이 선택한 것을 끈기 있게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당신은 과연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혹시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이 네 가지 질문을 한번 해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결정한 것을 실천에 옮기십시오.  그것만이 당신에게 변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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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히브리서 24절과 갈라디아서 35절에서 볼 수 있듯이

신약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였으며

기사와 표적들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신약교회들이 그와 동일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모든 신약교회의 현상이

우리에게는 전혀 적용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주장은 자가당착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신약교회의 현상들을 취급하고 있으며,

우리 모든 교회들도 동일한 문제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은 우리에게 적용되고 저것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고등 비평가들의 주장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라도 독단적으로 이렇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은사들이 여러 세기동안 지속되었다는

분명한 역사적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사와 이적과 은사들이

틀림없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기록들이

터툴리안을 비롯하여 많은 교부들의 생활과 

저술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존 낙스의 사위인 위대한 학자,

존 웰쉬의 전기를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많은 뛰어난 역사가들이 존 웰쉬가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피신하고 있을 때에

실제로 죽은 사람을 일으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단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점은

이런 기사와 이적들이 사도시대와 함께 끝나버렸고

결코 그러한 이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은 성령을 소멸하는 일이며

성령의 능력에 제한을 가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중국의 호시 목사님의 전기를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그 전기에 나오는 기적들,

초대교회에 분명히 나타난 동일한 은사들이

표현과 같은 것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 세기들을 통하여 이런 주제들에 대하여 쓴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기적적인 은사들이

사도시대와 함께 끝났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그 이후에 교회사의 기록도 결단코 그렇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거니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단지 성령을 소멸할 뿐입니다.

 

그리고 확실히 성경에서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초대교회를 출발시키기 위하여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이런 은사들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침체될 때마다

그리고 세상이 요란하며 강력하며 막강할 때에 

더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이런 시대야말로 

그러한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은 기대해야 할 때입니다.

 

로이드 존스 『성령의 주권적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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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훈련받는 성도들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 있다면 교재를 예습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훈련받는 많은 분들이 이미 오래전에 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를 해보지 않은 분들이라 다시 생각의 톱니바퀴를 굴리며 연구하고 준비해가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역훈련을 받는 여러분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내용으로 교재예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고자합니다.

 

1. 서론을 통해 동기부여를 받으라.

사역훈련 교재는 서론의 간략한 이야기나 정리된 진술을 통해서 이 과에서 공부해야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왜 이 내용을 공부해야하는지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론을 읽으면서 왜 내가 이 과를 공부해야하는지 이유를 찾는데 초점을 맞추십시오.  내가 이 과를 공부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을 때 예습은 물로 그 과에 대해 기대감을 갖고 훈련에 임할 수 있습니다.

 

2. 질문의 유형을 분류하라.

사역훈련 교재는 관찰질문, 해석질문, 느낌질문, 적용질문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예습을 통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질문이 어떤 유형의 질문이며 어떤 답을 요구하는지를 알아야 적절하게 예습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관찰질문은 본문을 읽으면 답이 나오는 유형의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곳은 어디입니까?”와 같은 질문들입니다. 해석질문은 참고자료들을 연구하거나 깊은 생각의 톱니바퀴를 굴리는 묵상이 필요한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행동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은 본문을 읽어서 단순히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 그 시대의 배경이나 그 사건의 전후 문맥 등을 살펴보고 예수님의 동기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아야 답할 수 있는 유형의 질문입니다.  느낌질문은 그야말로 우리의 느낌을 묻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 무엇을 느끼십니까?”와 같은 유형의 질문입니다.  적용질문은 오늘 다룬 본문의 내용을 우리들의 삶으로 가져오는 질문입니다.  당신은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 어떤 부분이 변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유형의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재를 예습할 때는 곧바로 각각의 질문에 대답해가는 보다는 먼저 각각의 질문을 읽으면서 어떤 유형의 질문인지를 분류해두는 것이 어떤 내용의 답을 찾아야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예습의 시간을 줄이는 지름길이 됩니다.

 

3. 관찰질문은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라.

질문의 유형이 분류되고 나면 질문유형에 따라 답을 찾아가면 됩니다.  관찰질문은 성경을 읽으면 곧바로 답이 나오는 질문이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을 많이 투자할 이유가 없는 질문입니다.

 

4. 해석질문은 묵상해보거나 참고자료를 활용하라.

해석질문은 시간을 두고 묵상해보거나 주석 성경, 성경사전, 예전에 들었던 설교의 내용, 성경지식 등을 동원해 연구해야하는 유형의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유형의 질문들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연필로 예습해두었다가 제자/사역훈련 모임 시간에 지도자에게 질문하거나 지도자의 설명을 통해 해답을 발견하도록 해야 합니다.

 

5. 느낌질문은 마음에 닿는 데로 느낌을 기록하라.

느낌질문은 적용으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와 같은 질문입니다.  본문에서 관찰-해석을 통해 나누게 된 의미들을 통해 어떤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를 질문하는 내용입니다.  내 느낌에 따라 내 삶에 적용할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느낌질문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느낌질문에서도 성경적인 지식을 나열하거나 주석 성경에서 발견한 내용을 옮겨 적지 말고 나 자신의 느낌을 솔직히 기록하는 것이 훈련에 큰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6. 적용질문은 4P 적용원칙을 이용해 예습하라.

적용질문은 내가 오늘의 말씀을 통해 어떤 변화가 있어야할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적용은 개인적이고(Personal), 구체적이고(Practical)이고, 가능하고(Possible), 점진적(Progressive)어야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가지고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적용하려고 한다든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고 한다든지 실천불가능한 적용을 한다든지 한 번에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려고 한다든지 하기 보다는 4P의 원칙을 따라 적용하는 것들이 쌓여갈 때 우리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성큼 성숙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위의 원리를 따라 예습하실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훈련날짜가 임박해서 예습을 하기보다는 며칠 여유를 두고 예습할 경우 훨씬 더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시간을 한 번에 몽땅 투자해 예습하는 것보다는 30분씩 두 번에, 20분씩 세 번에 나눠서 예습하는 편이 더 유익합니다.  처음 20분은 서론을 읽고 관찰질문을 예습하고, 두 번째 20분은 연구와 묵상을 통해 해석질문을 예습하고, 세 번째 20분은 느낌과 적용질문을 예습하면, 그날 훈련받을 내용을 통해 훨씬 더 깊이 있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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