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의지한다는 표현입니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예수님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은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바깥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랑과 순종에 대한 보상은

예수님이 당신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를 통해서

당신에게 한 표본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요 14:31).

예수님은 아버지의 모든 명령을 준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함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과 상반되게 일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의 표현 없이,

당신을 향한 자신의 뜻을

결코 당신의 인생에 나타내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에게서 차선의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본질상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죄에 빠져서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연단과 심판과 진노를 가져다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연단은 항상 사랑에 근거합니다(히 12:6).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든지

그것이 항상 최선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다음 성경구절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하고…’(요일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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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것이 훈련생의 기본자세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만큼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선뜻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살아 숨을 쉬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명하고 그 뜻을 분별할 수만 있다면, 이 보다 더 가슴 떨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말씀의 가르침대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의 삶은 매우 값진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받는 동안 성경을 읽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경우를 상상하면 앞이 깜깜해 집니다. 이런 이유로 이번 글에는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음에 제시된 방법들을 통해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1. 성경의 숲을 보고 나무를 보십시오.

성경의 숲을 보고 나무를 본다는 것은 성경을 구절이나 장별로 읽는 것이 아니라 책별로 읽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별로 읽는다는 것은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그리고 가능하면 단번에 처음부터 끝까지를 읽으면서 그 책의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읽으면서 저자가 이 성경을 기록하게 된 주된 동기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일까 집중해야 하며 명확히 파악될 때까지 몇 번이든 반복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자신이 파악한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십시오.  이렇게 요약한 문장들을 정리해 가다보면 어느새 성경 전체의 주제와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병행해서 읽으십시오.

대부분 경우 사람들은 성경을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읽어가거나 자신이 마음에 드는 책부터 읽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성경을 읽을 때 구약에서 약속되었던 내용이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그리고 신약에서는 어떤 새로운 약속이 주어졌는지를 확인하면서 읽으십시오.  구약과 신약을 함께 통독하는 습관을 통해 성경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 오경을 읽으면서 로마서와 목회서신을 함께 읽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성도들과의 삶을 비교하면서 당신은 새로운 관점에서 성경을 읽게 될 것입니다.

 

3. 성경의 상황과 당신의 상황을 병행하면서 읽으십시오.

성경은 지난 역사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그 말씀이 갖는 의미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 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오늘의 눈으로만 해석하다 보면 자칫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하게 될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부터는 성경을 읽을 때 최소한 2천 년의 역사적 간격과 문화적 간격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과거에 갇힌 책은 아닙니다.  성경은 시간과 문화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을 역사책 읽듯이 읽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성경 본문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있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몸으로 부딪치면서 바로 오늘 당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성경을 읽을 때 성경 본문의 상황과 지금 당신의 상황을 병행하면서 읽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어느새 지성뿐 아니라 당신의 감성과 생활까지도 변화시키는 말씀의 능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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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교재 2권에서는 구원의 진리를 복음과 교리, 생활이라는 삼중적 관계를 통해 연구하고 묵상하게 된다.  14주 동안 배우게 되는 내용들은 모두 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기독교의 진수에 속하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를 다루는 2권1과를 통해 훈련생들은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사실을 깨닫고 성경의 완전성과 유기적 영감설을 이해하며, 성경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삶을 결단하게 된다.  오늘날 사회 전반에서는 연장자, 상관, 가족, 학교, 국가 등의 권위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으며 교회 역시 이러한 도전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속에서 믿는 사람들은 무비판적인 묵종과 그에 비교되는 무비판적인 거부, 양자의 유혹으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말씀의 권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존 스토트의『성경의 권위』는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며 2권1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성경의 신적인 영감성과 그 권위를 받아들이는 주된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충성심에 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믿음과 성경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은 예수의 주되심에 대한 승낙의 필수적인 결과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해 규정되며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의 어떠한 부분도 배제시킬 자유를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성경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쳤는가?  예수님은 구약의 신적인 기원과 영원한 타당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여러 번 언급하였으며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마다 간접적 증거를 추가하셨다.  또한 성경에 대해 단지 말씀만 했던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의거하여 행동하셨다.  성경에 대한 예수님의 순종은 크게 세 가지 영역, 즉 개인적 의무와 공중사역, 그리고 공개논쟁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들 세 영역은 모두 한 결 같이 질문, 문제, 그리고 논쟁이 각각 있었는데 예수님은 성경에 의지해서 질문에 답하고 문제를 풀고 논쟁을 해결하셨다.  예수님은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다.

 

신약에 대해서는 구약과 병행되는 신약성경이 기록될 것임을 예견하셨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이 기록되기를 원하셨고 사도들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신중하게 신약성경의 기록에 대비하셨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친히 임명하셨고 자신과 함께하는 역사적인 경험과 더불어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 가지 방법으로 의도적으로 신약의 기록을 준비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구약의 권위를 인정하셨고 또한 신약성경의 기록을 예비하셨다.  따라서 주된 문제는 성경의 권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와 관련된 것이다.  그 분이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우리가 구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사도들을 임명하여 권위를 부여하여 너희를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가 어찌 사도들이 쓴 신약을 배척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구약의 권위와 신약의 권위 가운데 어느 한 쪽이라도 거부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궁극적인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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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정통!

분명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복음적인 사람들 각자에게도 

가장 큰 위험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죽은 정통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합니다.

 

신약 교회의 매우 중요한 특징은 

자발성, 생명력, 생생함, 활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과 그 감화력에서 멀어지게 되면 

모든 것이 형식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배의 형식들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침체기에 빠진 교회는 예배 의식에 있어서 더 형식적이 되고

예배 형식을 채용하여 

공기도서나 의식서로 돌아가는 경향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형식적 종교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여러분이 부흥을 만날 때마다

그러한 유의 모든 일들이 멈추게 됨을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의식이나 공기도서나 절차나 예복이나 옷을 차려 입는 그런 일은 전혀 없고

다만 성령께 속한 자유와 일들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부릅니다.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바로 이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을 맞지 않을 때에 성가대에 중점을 둡니다.

또 성가대와 성개대의 독창자들을 돈을 주고 사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회중들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합니다.

성가대가 그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릅니다.

이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여러분은 교회 생활을 프로그램화하려는

매우 무서운 성향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다 짜여져 있습니다.

모든 항목이 미리 정해져 있고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시작하여 

어느 시점에 마쳐야 하는지가 다 정해져 있습니다.

 

복음적인 교회에서마저 

강사 목사에게 순서가 적힌 종이를 준다는 것을 저는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순서지대로 행할 것을 종용합니다.

즉 11시에 시작합니다.

성경을 봉독하고 순서지에 적힌 모든 것을 다 진행하여 12시가 됩니다.

그런 다음 축도가 이어집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분초를 다투어 정확하고 기술적으로 질서 있게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는 묻습니다.

그런 경우에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하실 틈이 있습니까?

아니,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앙에 통제 당하는 대신

우리가 신앙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로그램에 너무 매여 있어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틈이 없지 않습니까?

어째서 이처럼 형식적이 되었습니까?

모든 것을 이처럼 묶여 놓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성령께서 갑자기 임하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저는 매우 심각하게 

이 문제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로이드 존스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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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자신을

당신에게 계시하심을 통한 경험으로만 가능합니다.

 

모세가 불붙는 떨기나무 앞에 있을 때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하나님이 대답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고 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은 “내가 영원한 자요,

미래에도 나는 그대로 있는 자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그 후 40년 동안 여호와 혹은 야훼,

스스로 계신 자로서의 위대한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 자신을 경험적으로 알도록

자신을 계시하시는 일을 주도하셨습니다.

종종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그 사람은 하나님께 새로운 이름을 붙이거나

색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표현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성경의 인물이 하나님을 경험한 사건 뒤에

하나님에게 새로운 이름이나 칭호를 붙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이 아말렉 족속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가까운 산꼭대기에서 이 싸움을 지켜보면서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있을 때는 이스라엘이 이겼고

그가 손을 내리면 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날 이스라엘을 통해서 아말렉 족속을 물리치셨고

모세는 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라고 이름하셨습니다.

깃발이란 보통 군대 앞에서

그 군대가 누구를 대표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들의 깃발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음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좀 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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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받아야 하는 제자훈련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 가는 길을 방황하지 않고 제대로 가기 위해 작은 약도라도 준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1. 두 가지 관점

제자훈련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자가 되기 위한 훈련’이라는 관점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들은 이미 그분의 제자이지만 제자다운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인식이 밖으로 드러날 때 보이는 모습 중 하나가 ‘나는 아직 부족한 사람이다’입니다.  이처럼 제자훈련에 임할 때는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부터 시작된 겸손과 훈련에 대한 열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한 훈련’이라는 관점입니다.  훈련생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 자칫 ‘이제 막 시작인데 좀 실수해도… 뭐’라는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을 마치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처럼 여기고 제자에게 주어지는 책임과 의무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오해로부터 시작된 미성숙함입니다.  제자훈련생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우리는 신앙의 첫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리더로서의 첫걸음을 내어딛는 사람들입니다.  비유하자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 사관학교에 입학한 셈입니다.


2.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세우셨는가?

이쯤에서 우리는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세우셨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훈련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점검할 수 있고 또한 앞으로 제자로서 우리 삶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열 두 제자를 부르시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가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를 삼으신 목적이 아주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라’(막3:15).

 

3.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

본문에서 보듯이 제자의 첫 번째 특징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들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분명 주님의 일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주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우선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의 일을 수행하는 가운데 주님과 교제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의 만남만을 가지고는 마음까지 나누는 교제는 불가능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침 햇살이 가득한 넓은 창 옆 작은 탁자에서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저녁노을 빛이 스며드는 응접실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4.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람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예수 제자의 두 번째 특징은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세상에서 행하셨던 일들을 이제는 우리 손에 맡기셨습니다.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도 악한 세력을 몰아내는 일도 주님은 바로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항구에 매어두기 위해 배를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첨단의 장비를 갖추고 있고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고 할지라도 항구에만 정박해 있는 배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구원의 능력이 되는 복음의 메시지가 가득하다고 할지라도 외쳐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속에 악의 세력을 제압할 권세가 넘쳐난다고 할지라도 표현되지 않고 발휘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4. 당신은 제자로 부름 받았다

우리는 지금 제자가 되기 위한 훈련에, 제자를 위한 훈련에 부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의 데이트에 초대 받았습니다.  분명 이 데이트는 예수님과의 매우 개인적이고 은밀한 만남이지만 세상 모두를 위한 만남이고 훈련입니다.  훈련에 임하는 우리 자신을 고성능 충전지에 비유해 보았으면 합니다.  각자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은 충전이 덜 되어 힘이 부족할지 모릅니다.  우선 충분히 힘을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결코 우리 속에 충전된 에너지를 그냥 품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의미 없는 곳에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어떻게 사용하고 무엇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배워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 모든 일에 능하고 강한 군사가 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주님의 강한 군사가 되기 위해, 제자다운 제자가 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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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가요 신학자이며 강해 설교가로 유명한 워런 위어스비 박사의 저서인 이 책은 1권6과의 좋은 참고도서일 뿐만 아니라 무엇이 바른 기도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있는 이들에게 권해 볼만한 책이다.  그리고 1권6과를 통해 훈련생들은 기도가 반드시 선하게 응답된다는 사실과 기도응답의 방해물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깨닫게 된다.  나아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지체되는 기도응답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책 『당신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아십니까?』는 성경에 나오는 응답 받지 못한 기도의 예들을 통해 무엇이 바른 기도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들이 응답 받지 못한 기도는 단순히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의 기도가 아니라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의 기도 중에도 있었기에 우리에게 더 큰 도전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참된 교훈은 응답 받지 못한 기도의 원인들이 아니라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응답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도의 응답을 다루는 1권6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써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럼에도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거나 혹은 응답하지 않으실 때가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시거나 그분이 무능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더 큰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특별한 기도에 대해 그 응답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하신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가 당신의 뜻을 벗어나거나 당신의 성품과 모순된 것이라면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성경은 응답 받는 기도를 방해하는 장벽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네 가지 심각한 장벽들이 있는데 첫째는 알고 있는 죄이다.  이는 인간의 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품고 있는 고의적인 죄를 말한다.  둘째는 이기심으로 우리가 이기심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을 것이라고 야고보는 말한다.  셋째는 가정불화로 베드로전서 3장7절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만일 서로 화목하지 않으면 그들의 기도가 막힐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기도생활의 장애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루시도록 구하는 것이지 주님과 변론하는 것이 아니다. 응답 받지 못한 모세의 기도는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허락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할 때 이미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모세가 이전에 지었던 죄의 결과로 하나님은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기도는 하나님과 논쟁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분의 팔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그분의 뜻을 이루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며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기도에 대해서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기도하면 하나님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발견하는데 진정한 목적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은 죄를 후회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내적 성품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징계를 피할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 안에서 용서해 주시지만 하나님의 통치하심 안에서 너는 네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서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기 보다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도록 내려진 징벌에만 관심을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고 대신 그가 길을 가는데 육신의 양식과 영적 용기를 주셨다. 엘리야가 죽기를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의 과거, 즉 그가 걸어온 과정과 그의 안, 즉 그의 영적인 상태를 살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구를 들이실 때 인간의 본성과 그 문제점을 헤아려 보신다.  그리고 우리가 구한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아닐 때, 때때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앞을 내다보시며 그분이 엘리야를 위해 계획하신 것을 보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실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이미 잘 알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가 걸어온 과거의 길과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미래에 대해 모두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구한 것보다도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을 계획해 놓으셨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분의 뜻이 나타나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에서 광인을 고치신 사건에는 세 가지 기도가 나타난다.  첫째는 자신들을 무저갱으로 보내시지 말고 대신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던 귀신들의 기도이고, 둘째는 예수님을 두려워하여 그 지역에서 떠나기를 간청했던 마을 사람들의 기도이고, 셋째는 귀신들로부터 놓여난 사람이 예수께 나와 그와 함께 가서 제자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해달라고 간청한 기도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첫 번째 귀신의 기도와 두 번째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에는 응답해 주셨지만 구원 받게 된 사람의 기도에는 응답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귀신나간 사람은 그 결박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깊은 감사와 행복에 넘치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더욱 많은 가르침을 받고 싶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고 이것은 극히 당연한 기도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가정으로 돌아가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의 기도를 거절하셨다.  그런데 그는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즉시 자기 길로 가서 예수께서 자기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을 온 성읍에 두루 퍼뜨렸다.

 

주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든 하지 않으시든 거기에 따른 주님의 목적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때때로 주께서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계획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궁극적인 주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응답하시지 아니하시는지도 모른다.  그가 거절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가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 이면에 숨겨진 목적을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의 거절하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탐욕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최고를 바라보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의 것을 붙잡으라고 말한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발생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기심으로 때로는 탐욕으로 기도할 때는 들어 주시지 않으신다.  진지하게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에 실망한다.  응답 받지 못한 기도의 문제로 고심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도 경우에 따라서 이런 경험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안 돼!’ 라고 말씀하실 때는 대개 우리가 삶 속에 기도를 방해하는 어떤 문제들을 갖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더욱 큰 목적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거나 우리가 기도에 대해 잘못된 태도를 갖고 있을 때이다.

 

응답 받는 기도는 하나님께 있어서나 우리에게 있어서나 결코 값싼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에 응답 받기를 원한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첫째는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적절한 관계를 갖기 위해 시간과 힘을 투자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어떤 규칙이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주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구한 후에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지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무엇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꺼운 마음으로 주문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가 요구할 것을 이루는 데 도구가 되도록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내어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병 고침을 위해 드린 기도는 앞서 살펴본 기도와 달리 주께서 왜 거절하셨는지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기도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이 있는데, 첫째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죄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며 이는 어떤 특별한 목적 때문이다.  그 목적은 때로는 우리를 바로 잡기 위함이요, 때로는 온전케 하기 원하시기 때문이고, 때로는 보호해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축복이 멍에와 함께 온다는 사실이다.  아무런 상처 없이 전쟁터를 빠져 나오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승리의 기쁨을 경험하려면 먼저 싸움터의 고통과 불안을 견뎌내야 한다.  셋째는 영적 축복이 육체적 축복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시기보다는 그 가시를 사용하셔서 그의 내적 성품을 다듬어 가셨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고통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난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다.

 

이 책 『당신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아십니까?』는 우리에게 바른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 주는 좋은 책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응답하시지 않지만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다듬어 가시고 축복해 가는지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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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평신도 훈련/묵상 2015. 8. 12. 13:56

우리는 사역자를 말할 때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갖가지 자기의 영역에 부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몇몇 영역들에 대한 재능,

즉, 그들이 가장 잘 성취할 수 있는

어떤 정신적 혹은 육체적 일에 대한 재능을 주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명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닐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자 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의 부름 받은 길을 놓치지 않게 될 것이다.

‘내가…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은 우리들 각각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재능의 종류와 그 크기를 알고 계신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를 아무데에나 던져 놓으시겠는가?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일이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그분의 뜻을 구할 때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는 올바른 적소에 놓이게 될 것이다.

 

-조셉 S. 엑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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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에 대한 가장 큰 오해 가운데 하나는 소그룹 성경공부 시간이 제자훈련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소그룹 성경공부 시간은 제자훈련이 일어나는 현장 가운데 하나이지 그것이 제자훈련의 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제자훈련은 소그룹 성경공부 시간에 배운 내용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나머지 6일에 의해 그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훈련 때 훈련생들에게 제시되는 과제물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과제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느냐가 그 훈련생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제자훈련 중 제시되는 각 과제물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 것이 옳을까요?

 

1. 과제물을 통해 신앙생활의 기초를 든든히 하십시오.

제자훈련 제1권에서는 말씀 묵상(암송)과 기도 그리고 큐티(경건의 시간)가 제자훈련과 신앙생활의 기초적인 습관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제자훈련 기간 중, 다른 과제물과는 달리, 이 과제물들만큼은 결코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제시되는 이유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여러분의 삶에서 습관화하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유익인지는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제물들이 부담된다는 말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만일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한다면 말씀 묵상(암송)이나 기도, 큐티와 같은 과제물이 부담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은혜와 기쁨을 맛보기 원하십니까?  날마다 내 삶 속에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제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세 과제물에 철저하십시오.  이 세 과제물이 숙제가 아니라 빼먹을 수 없는 기쁨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2. 과제물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을 습득 하십시오.

누군가 독서가 주는 유익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일들을 그들의 글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기회”라고 말한 것처럼 제자훈련 기간 중에 제시되는 독서 과제물들은 훈련생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와 비밀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기회입니다.  따라서 제자훈련 중 제시되는 독서 과제물들을 읽고 그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면 소화할수록 자신이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나는 책 읽는 것은 부담되지 않는데 독후감 쓰는 것은 못 하겠다”고 말하는 훈련생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펜을 드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 이상,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독후감은 자신이 그 책을 통하여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느낀 점과 내 상황에서 적용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적는 것입니다.  학창시절 독후감 경시대회에 제출할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진솔하게 쓰면 됩니다.  게다가 쓰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절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다시 주어 담을 수 없지만 글은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자신의 생각을 고쳐 쓰는 과정을 훈련하다보면 말하는 훈련까지 겸해서 할 수 있는 유익을 주는 것이 바로 독서 과제물입니다.

 

3. 과제물을 통하여 작은 예수처럼 살아가는 법을 몸에 익히십시오.

제자훈련이 다른 소그룹 성경공부와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날 배운 내용을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생활 숙제일 것입니다.  생활 숙제란 내가 배운 대로 살아가는 몸으로 실천하는 숙제입니다.  지식적인 부분 보다는 훈련생의 의지와 결단이 요구되는 과제인 것입니다.  문제는 생활 숙제를 하기 위해서는 훈련생들에게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과 행동이 일치된 자세에서 생활 숙제를 실천하려면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에게 매일 아침마다 “사랑 한다”는 말로 시작하라는 생활 숙제를 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늘 어긋나고 반항만하는 자녀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행동해보라는 생활 숙제는 부모 말을 안 듣는 자식에게 당장 손부터 올라가는 습관을 갖고 있던 부모에게는 엄청난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단을 통해 생활 숙제를 실천해보면 그리고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하여 그런 생활 숙제를 하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변화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작은 예수의 모습을 갖추기 원하십니까?  성숙하고 변화된 삶의 모습과 신앙 인격을 갖추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생활 숙제를 철저히 실천해보십시오.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십시오.  변화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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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통적인 사람들이면서도

어떤 면에서 결함이 있는 경우들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누구나 다 정통이라고 주장한 개인들과 교회들이

생명이 없어 보이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러한 복음적인 교회에 임재하시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전통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관한 교리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지적하는 잘못은 

우리가 인격에 관한 교리,

참된 교리를 인격의 자리에 둘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사람들,

정통적인 사람들이 흔히 걸려 넘어지는 매우 흔한 함정입니다.

정통적이면서도 죽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교리에만 어떤 정의를 하는 데만 머물고,

교리의 목적은 그 교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다만 그 인격을 알게 하고 이해하게 하며

그 인격과 교제하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실로 오늘날 교회와 교단에서는 정통적이면서도 

아주 죽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구원에 아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교리에 차원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교리 자체를

그 인격을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오인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실질상 죽은 정통은 이단만큼 나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죽은 정통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교리에 대해 

성경적인 부분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메마르고 쓸모없어지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고전 8:1).

무엇보다 교리에 있어 균형을 잃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즉 진리의 어떤 면을 너무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우리의 모든 관심을 거기에 쏟아 버리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읽어보십시오.

로마서 14장에서 사도가 다루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 아닙니까?

고기 먹는 문제 외에

다른 것은 전혀 문제를 삼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밤낮 그 문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그들은 그 문제를 대화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나누고 서로 정죄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여기에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요점이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살아 있고 영적으로 깨어 있으며

교리에 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

그러한 교활한 시험을 가져 옵니다.

 

저는 주저 없이 예언의 문제에 너무 지나친 관심을 보인 나머지

메마르고 쓸모없게 된 사람들이 매우 많음을 단언합니다.

사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저 온 시간을 예언에만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가지 실례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세례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또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회 질서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감독 정치만이 교회의 절대적인 진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로교만이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메마른 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무서운 시대에

교회 정치, 봉사의 양태,

이러한 문제들에 온통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언제나 성령을 소멸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을 만날 때 

처음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한 교리에 사로잡혀

그것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그들에게 주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알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사람들을 이끄는 하나님이 사랑,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듯이 그들도 하나님을 알고 싶게 만드는

그 사랑이 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까?

균형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어리석고 비극적인 일은 없습니다.

교회의 역사,

부흥의 역사는 사람들이 균형 감각을 잃고

어떤 한 가지에 사로잡혀 획일화되어 버리면

성령은 언제나 소멸되며

그 역사는 언제나 방해를 받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로이드 존스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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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사람이 진짜로 하나님과 사실적이고 개인적이며 실제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어딘가 멀리 계시고

우리의 매일매일 생활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사실적이고 개인적이며

실제적인 관계를 갖고 계셨던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와 날이 서늘할 때 함께 걸으시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가장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들의 벗은 몸을 가리는 옷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열두 제자들도 예수님과 사실적이고 개인적이며 실제적인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려고 그분은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사실적이고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어떤 대상이 없이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는

두 명의 사실적인 인격과 인격이 만날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관계는 사실적이고 개인적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나님과 당신과 관계가

사실적, 개인적, 실제적이었던 경험을 생각해 낼 수 없다면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를 시간을 두고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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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1권5과에서는 무엇이 바른 기도인지에 대해 배우게 된다.  기도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의식과 바른 기도의 방법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배우게 된다.  훈련생들은 이를 통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무엇이며 그 내용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주기도문을 통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와 우리의 기도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기도를 어떻게 고쳐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강해하고 있는 『무엇을 기도할까』는 1권5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비록 기도하는 방법을 절대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그 동안 방법론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우리들의 기도생활에 대해 어떻게 보다는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도전하고 있다.  기도의 생명은 그 내용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느냐의 여부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기도의 내용을 보여주는 주기도문을 통해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에 대해 밝히고 있는 이 책은 1권 전체에서 반드시 읽어볼만한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할 만큼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며 이 책을 통해 훈련생들은 바른 기도에 대해 이해함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를 나누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을 총 9개로 나누어 강해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 중 몇 가지를 발췌해 보았다.

 

기도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조용히 기도하고 일어나시는 모습 속에서 제자 중 한 사람이 ‘주여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님은 이 간청을 들으시고 주기도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간청하는 제자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우리 모두는 기도의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서 어떤 사람을 통해서 기도의 자극을 받느냐에 따라 우리의 기도 생활이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보다 앞서서 자극을 받아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둘째는 우리는 기도의 자극을 받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고 바른 기도가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주기도문은 그 자체가 완전한 기도로 동시에 모든 기도의 기초가 되고 지침이 되는 완전한 모형이다.  주기도문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지에 대해 배우게 된다.  셋째는 주기도문을 통해 무엇이 올바른 기도인가를 배운 사람은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도는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믿는 사람이 무시로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 이름은 그분 자신입니다

주기도문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핀다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평소에 드리는 기도와 순서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기도는 순서상 우리 자신이 우선되어 있으나 주님이 가르치는 기도의 최우선은 하나님 자신이다.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하신다.  사실 자기중심적인 기도는 전부 이 범주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한 기도에만 몰입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기도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점이 많다.  그렇다고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기도의 잘못된 우선순위와 편협한 강조점을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기도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이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전 인격을 나타내는 귀중한 상징이며 하나님의 이름은 바로 그분의 인격 자체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거룩해질 필요성이 전혀 없는 완전한 거룩 그 자체이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원한다는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해달라는 소극적인 의미도 있지만 이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먼저 그 기도 안에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겠다는 약속과 결단이 들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어떤 약속과 결단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는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과 결단이다.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이름에 합당한 영광 역시 돌릴 수 없다.  둘째는 하나님을 항상 마음에 모시고 살겠다는 약속과 결단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할 첫 자리는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약속과 결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은 그에게 영광을 돌릴 수 없다.  넷째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생활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약속과 결단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전도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게 하겠다는 약속과 결단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려면 위의 약속과 결단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일은 우리의 책임이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필요한 은혜를 구하는 간청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에 들어 있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핵심,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주기도문에서만 아니라 사복음서를 위시한 신약 전체에 있어서도 중요한 테마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이었으며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있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서 영토를 소유한 세상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통치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다스림의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세계가 다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하나님나라를 세상적인 나라로 착각하는 것이다.  첫째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세상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는 현대 교회 신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치관이나 관심사 등이 철저하게 세속적이다.  둘째는 하나님 나라를 지상천국으로 해석하는 극단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통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갈 수 있을까?  첫째는 하나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나라의 임하기를 기도하는 자이면 그 나라가 먼저 우리 마음에서 꽃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의 뜻에 기쁘게 순종해야 하며 이런 태도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천국은 교회를 통해서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자의 마음에서 시작된 이 천국은 교회를 통하여 온 세계에 확장된다.  하나님께서 지상교회를 세우신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전 세계에 확장하는 데에 있다.  끝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주님은 이제 오실 것이며 이 세상 왕국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그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은 이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를 소망한다면 당신의 마음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나라를 계속 확장하기 위해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한다.  당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용할 양식

주기도문의 전반부에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후반부에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가 들어 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우리 자신을 위한 네 가지 기도 중 첫 번째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이다.  예수님은 사람을 위한 기도의 첫 자리에 먹고 마시는 ‘일용할 양식’을 갖다 놓았다.  인간에게는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한 것임을 주님께서 솔직히 시인하셨다.  이런 점에서 그는 매우 솔직한 기도를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는 잘못하면 이 기도를 우리와 아무 관련 없는 기도, 즉 1세기 당시의 빈자들에게 어울리는 기도라고 냉소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첫째는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하루 생활이 전적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변함이 없기 때문에 이 기도는 꼭 필요하다.  둘째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용할 양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도를 해야 한다.  셋째는 이 기도에는 우리의 생의 목적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기도를 해야 한다.  넷째는 내일의 염려를 하지 않겠다는 신앙고백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도를 해야 한다.  끝으로 중요한 사실 하나는 이 기도에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강한 능력이 들어 있다.

 

우리는 다 여유 있는 생활을 원한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에는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만 살 수 있는 여유가 많이 들어 있지 않다.  그저 하나님의 자녀답게 경건하게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생활에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에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이 가진 일용할 양식이 세상 사람의 소유물에 비해 초라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시고 허락하시는 그 일용할 양식만 있다면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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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평신도 훈련/묵상 2015. 6. 3. 12:41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겪게 되는 슬픔은

때로 우리 생명에 유익이 있다.

슬픔은 우리의 마음을 더 깊게 만든다.

 

성경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전 7:3).

하루 종일 희희낙락하는 사람은 흔히 경박한 사람이 경우가 많다.

슬픔은 하나님의 쟁기이다.

그것은 흙의 깊은 곳을 파서 땅이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한다.

 

만일 우리가 지금껏 한 번도 타락해 보지 않았다면

우리는 슬픔이 필요치 않다.

그때는 하늘에 속한 기쁨이

우리를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격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타락했기에 슬픔이 우리를 회개하게 하며

결국 우리 자신을 알도록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슬픔은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감정이 된다.

요셉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아

이스라엘 나라와 그의 민족을 구원하게 되기까지

그는 다른 어떤 아들들 보다 슬픔을 많이 겪었다.

다윗과 바울도 역시 적잖은 슬픔을 체험하였다.

더욱이 우리 예수님도 우리의 죄로 인해 슬픔을 맛보았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주 슬픔을 통해 그분의 뜻을 전달하신다.

 

-찰스 카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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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소위 역사 속에 나타난 위대한 부흥은

대중 히스테리 발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성령을 슬프게 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를 심리적인 일이나

히스테리적인 발작 증상으로 돌려버리는

이 무서운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우리가 이러한 일에 대해서 말할 때,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히스테리로 돌리지 않으면서도

성령을 소멸하는 똑같은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논증합니다.

 

“성령세례는 체험적인 것이 아니다.

성령세례는 거듭날 때 곧 중생할 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은 누구나 성령세례를 받았다.

우리 모두는 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성령세례를 위해 기도하거나,

교회에 성령을 부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거나,

성령으로 교회를 새롭게 해주시고

능력의 세례를 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것은 비체험적인 일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오순절에 일어났던 일은 다시 반복될 수 없으므로

우리가 성령을 부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그릇되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오순절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교회에 부어주셨다.

성령께서는 그 이후 교회 안에 늘 계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이런 유의 설교가 주를 이룰 때,

사람들이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멈추거나

교회가 오늘날 이러한 모습을 띠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논박하고 무시하며 부인하는 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성령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역사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만 역사하신다고 말합니다.

또 말씀으로 인해 오는 것 외에는 성령으로부터 어떠한 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볼 때 그들은 성령을 소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2절에 보면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향해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졌으나

성령께서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을 읽게 됩니다.

그는 비두니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를 막아 더 이상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살아계신 성령의 강력한 역사입니다.

말하자면 성령께서 직접 역사하고 통제하며 인도하고 명령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제시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것이 사람들의 생각에서 완전히 떠난 것 같습니다.

성령께서 교회에 임하시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심지어 복음주의적인 작가들마저도 부흥을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 성령을 소멸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보편적인 사역뿐 아니라 

특별한 사역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리는 

성령을 교회 전체에 부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흥이요, 성령의 임재하심이요,

성령의 통상적이고 보편적인 사역을 넘어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일입니다.

 

다시 여러분이 믿고 있는 성령의 교리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리지만,

세련되고 그럴듯한 교리를 다시 한 번 검토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때때로 성령을 통해서 행하시는

가장 주목받을만한 일을 배제시키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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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몇 번 왔다고 바위는 결코 깨지지 않습니다.  교회에 몇 번 참석만 했다고 해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적 가치관은 깨어지지 않습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습기'를 줘야 합니다.  바위는 소나기에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촉촉이 적셔 주는 습기에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가치관이 조금씩, 조금씩 깨어져서 내 삶의 목적이 달라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제자훈련을 통해 성경말씀의 깊은 단맛을 느껴야 합니다.

 

1. 자신의 삶을 오픈하는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제자훈련을 통하여 매일의 삶에 구체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요?  제자훈련을 통해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이 내 삶에 세밀하게 적용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 같은 삶의 비결이 자신의 삶을 나눌 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을 나눌 때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기도에 집중 하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변명은 시간과 장소가 없다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 웨슬리에겐 열아홉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기도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잔나는 매일 한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수잔나가 머리에 수건을 매겨 아이들은 어머니가 기도 중에 있음을 알고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중에는 그 누구도 그녀보다 바쁘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기도할 수 있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그 사실만으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훈련생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며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기도하십시오.

 

3. 서로간의 덕을 세우십시오.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지체입니다.  지체는 일부분이 아픔도 같이 느낄 수 있죠.  우리 각자는 한 몸을 구성하는 지체처럼 서로에게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린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을 시작하면서 서로의 모습 속에 보이는 약점들 때문에 더 이상 아파하지 마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그들을 받아주시고 서로를 아껴주십시오.

 

훈련 기간 동안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향하는데 방해하는 그 어떤 것에 시선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훈련 시간은 단 한번뿐이고 더 이상 오지 않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러하기에 효과적인 훈련을 받기 위해 내 자신의 삶을 나누며 기도에 집중하시고 서로의 덕을 세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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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항상 사랑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우리에게 오셔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가 증거 하는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찾아 동산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다른 선지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구약에 나오는 각 사람과 개인적인 사랑의 교제를 통해

그분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선택하시고,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메섹 도상으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한 사람도,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죄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아무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혹은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를 가지려면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이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6, 19).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기를 선택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선택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초청에 응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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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평신도 훈련/묵상 2015. 3. 25. 11:59

일본의 신학자 하천풍언은 그의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이러한 질문을 언제까지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실물을 보여주시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하나님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청년도 있다.

하지만 이 청년은 하나님을 찾는 마음은 간절한지 몰라도

발견하는 방법이 어그러져 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는 직접 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은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이다.

예수님이 믿은 하나님은 우주의 다 한 분밖에 없는 영의 하나님이시다.

그러한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는 것은

이 육안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종교적 진실이다.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마음에 느껴온다.

 

전선에 전기가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를 알려면

소켓에 손을 대어 보면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소켓에서 하나님을 전기처럼 느낄 수가 있는데,

이는 양심이다.

양심에 하나님의 능력이 짜릿하게 통해온다.

 

어떤 이는 “나는 조금도 양심에 하나님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퓨즈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양심 소켓에 하나님의 음성이 통하는 퓨즈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의 퓨즈가 끊어지지 않은 양심 소켓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알만한 충분한 근거를 이미 보이셨다(롬 1:19).

 

-우찌무라 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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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격과 삶의 변화를 목표로 삼으십시오.

제자훈련의 목표는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도구일 뿐입니다.  제자훈련의 목표는 여러분의 인격과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정보(Information)를 위해서가 아니라 변화(Transformation)를 위해서 받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의 제자훈련이 단지 머리 속의 지식만(Head knowledge)을 위한 것이라면, 그 지식은 머지않아 죽은 지식(Dead knowledge)이 되고 말 것입니다.

 

2. 말씀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가능할까요?  먼저 변화되어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 깨달아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삶의 원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즉 그 원리를 삶 속에서 실천하려는 분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에 순종해야만 변화가 가능합니다.  여러분의 인격과 삶은 깨닫고 순종한 만큼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3. 반드시 시험을 받게 되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제자훈련은 결코 순탄한 과정이 아닙니다.  항해를 하다보면 좋은 날씨와 궂은 날씨가 있듯이 제자훈련도중에도 여러 가지 역경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육체적인 문제로, 훈련생들 간의 관계적인 문제로, 가정의 문제로 여러분은 도전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는 바로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될 것임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이 배우는 진리가 증명되고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되는 기회임을 기억하십시오.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험을 뛰어넘는 믿음을 키우십시오.

 

4. 건강한 소그룹리더십을 계발하십시오.

여러분은 단지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서 제자훈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평신도 지도자로 세움 받기 위한 제자훈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제자훈련 소그룹은 여러분에게 소그룹을 이끌어가는 원리와 방법을 가르쳐주게 될 것입니다.  단지 훈련생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고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지도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그룹을 인도하는 리더십을 계발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여러분이 구원 받았던 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후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필요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제자훈련이 얼마만큼 성공하느냐 역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있음을 기억하시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보좌를 향한 여러분의 손을 결코 내리지 마십시오.  제자훈련의 축복은 여러분의 최선과 하나님의 은혜가 만났을 때 일어난다는 사실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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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1권4과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에서 훈련생들은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과 성경의 기능에 대해 자세히 배우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시고, 우리의 신앙 인격과 삶을 온전케 한다는 사실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러한 배움과 깨달음은 당연히 말씀과 동행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말씀의 손 예화』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는 법에 대해 간략하지만 중요한 몇 가지 가르침을 준다는 점에서 1권 4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말씀의 손 예화에서는 손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네 손가락은 네 가지의 기본적인 방법, 즉 듣기, 읽기, 공부, 암송을 보여 주며, 성경의 가르침들을 일상생활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는 묵상은 엄지손가락에 해당된다.  이 예화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하면 균형 있게 섭취할 수 있는가를 확대하여 보여주고 있는데 성경 말씀을 섭취하는 이 다섯 가지 방법은 하나하나가 모두 다 중요하다.

 

듣기 -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듣는 일에 있어서 한 가지 문제점은 보통 설교자가 분당 약 125단어를 말할 수 있는 반면, 우리 머리는 분당 약 1,000단어 이상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듣는 일에 집중해야 할 정신적 에너지의 90%는 사용하지 못하고 남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단순히 듣기만 해서는 안 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으로는 기록을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설교자보다 한 걸음 앞서 생각하고 다음에는 설교자가 실제로 하는 말을 들어 보는 것이다.  계속해서 생각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듣는 방법이다.

 

읽기 - 효과적이고 즐거운 성경읽기를 위한 지침

성경을 읽는 것과 공부를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자세가 요구된다.  성경 읽기의 목표는 즐거움과 새로운 힘을 얻는데 있는 반면, 성경 공부는 확신을 높이고 구체적인 적용을 하는데 있다.  성경 읽기를 위한 도움이 될 만한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성경을 한 장 한 장 읽고 대화하는 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장점은 주님과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대화를 갖게 하며, 이를 통해 삶의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개인의 경건 생활뿐만 아니라, 소그룹에서의 나눔에도 큰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  둘째는 집중적으로 읽는 것으로, 이러한 읽기의 목적은 성경의 어떤 장이나 책의 내용에 흠뻑 젖어 드는 데 있다.  성경의 한 권이나 한 장을 택하여 작정한 횟수만큼 되풀이 하여 직접 읽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 읽기를 통해 개인 성경 공부를 위한 보다 깊은 준비를 할 수 있다.

 

공부 - 스스로의 탐구 : 효과적인 성경공부의 열쇠

성경공부를 할 때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주어진 구절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분석해야 한다.  첫째는 이 구절의 내용은 무엇인가, 둘째는 이 구절의 뜻은 무엇인가, 셋째는 이 구절을 내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이 세 질문은 관찰, 해석, 적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성경공부를 위한 실제적인 방법으로는 먼저 공부할 책을 전체적으로 통독하면서 저자의 목적과 해당 장이 전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찾는다. 둘째, 그 장의 성경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분석하면서 명령이나 약속, 교훈이 없는지 찾는다.  셋째, 다시 전체를 다시 살펴보면서 짧은 요약 혹은 개요를 작성한다.  넷째,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와 "이 말을 하는 속뜻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면서 해석한다.  다섯째,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적고, 그 가르침과 연관하여 나의 삶은 어떤 상태인가,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적으면서 적용한다.

 

암송 - 성경 암송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 중 하나는 그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지속적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선포되는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을 암송함으로써 균형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는 일을 계발시켜 나가야 한다.  성경 암송은 우리 자신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데도 유용한 도구로 사용된다.

 

묵상 - 성서적인 묵상을 위한 실제적인 방법

말씀을 섭취하는 네 가지 기본적인 방법인 듣기, 읽기, 공부, 암송이 있지만, 이 방법들이 묵상과 연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견고하게 붙잡을 수가 없다.  묵상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묵상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분석하며, 단어들을 생각으로, 생각을 행동으로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는 우선 기도한 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주의를 기울인다.  중요한 것은 섭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섭취한 그것을 소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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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죄 사함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 다음,

점진적으로 자기중심이라는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화목함을 얻었으나

성령을 통해서 자기중심성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나무에 맺히는 열매의 질은

그 나무의 질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가르치셨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7-18).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들의 연속이 아니라,

타락하고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행위를 고치려면 

먼저 본성을 고쳐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무를 좋게 하라 

그러면 그 열매가 좋을 것이다”라고

하셨다(마 12:33, NIV 직역).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이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

심술궂은 사람을 상냥하게,

교만한 사람을 겸손하게,

이기적인 사람을 비이기적이게 하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성경은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선포한다.

이것은 복음의 영광이 하는 일이다.

니고데모를 당황하게 하였던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3,7).

 

이 엄청난 내적 변화를 이루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이 새로운 출생(신생, 중생, 거듭남이라고도 한다)은 

위로부터의 출생이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나야 한다.

예수님은 죽기 직전 다락방에서 열 두 제자와 모였을 때,

자신을 대신하여 세상에 오실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실제로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보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더 유리했다.

유리한 점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with)있을 뿐이지만,

“저(성령)는 … 너희 속에(in)”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요 14:17).

 

성령의 내주하심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득권이다.

만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롬 8:9).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은

우리가 이제부터는 죄 지을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갈등이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승리의 길이 열린 것이기도 하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싸움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하고 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갈 5:17).

 

이는 무미건조한 신학 이론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매일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끌어내리는 죄의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거룩으로 끌어올리는 반대 세력도 의식한다.

만일 육체의 고삐가 풀어지면,

우리는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악의 정글 속에 빠질 것이다.

반면에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게 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인격은 성령께서 가꾸시는 과수원으로 비유된다.

성령께서 나무를 좋게 하시게 하라.

그러면 그 열매도 좋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삶을 사는 비결이다.

 

존 스토트 『기독교의 기본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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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첫 남자와 첫 여자인 아담과 하와를

자신과의 사랑의 관계를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은 뒤,

날이 서늘할 때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두렵고 창피해서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사랑에 가득 찬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람들과의 사랑의 관계에 이상이 생겼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

당신은 항상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기대하면서 그분의 임재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렇지 못할 때 이상이 생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주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문제라면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전심을 다해 주님 사랑하는 것을 당신 인생의 최우선으로 놓으십시오.

그것이 경건의 시간을 갖는데 겪는 어려움의 대부분을 해결해 줄 것입니다.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은 그분에 대해서 배우려는 이유뿐만 아니라

그분을 알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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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 텐 붐, 

나는 살인자입니다.

저는 포로수용소에 있으면서 

한 명의 간수가 아침이면 들어와서

저녁이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 간수는 우리가 옷을 벗고 샤워장으로 갈 때면 

놀리고 모욕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경멸의 의미로 침을 뱉었고 

나는 그를 미워했습니다.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살인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석방된 이후, 

다시는 독일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그 땅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강연 요청이 들어왔어요.

저는 정말 가기 싫었습니다.

조용히 등을 떠미는 주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강연 주제는 ‘용서’였습니다.

강연 도중, 

바로 그 간수가 청중들 틈에 섞여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가 나를 알아볼 리는 만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간수는 내 앞으로 나와서 맑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코리 자매님, 하나님의 용서가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게 드는 감정은 환멸,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주님께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이 사람을 사랑할 그 무엇도 제 안에 있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저와 가족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이 사람을 증오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 손을 그에게 주어라, 코리”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제 생애에서 행해 본 가장 힘든 일을 

미적미적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순종했습니다.

그 간단한 순종의 행동을 한 직후, 

마치 뜨뜻하고 미끈한 기름 같은 것이

제게 부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귓전을 생생히 울리는 듯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잘했다. 코리. 

내 자녀들은 그렇게 하는 거란다”

제 마음속에 미움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한 살인자가 다른 살인자를 포옹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말입니다.

 

레베카 피펏『토마토와 빨간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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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1권3과에서는 경건의 시간에 대해 다룬다.  경건의 시간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그리고 경건의 시간을 어떻게 가질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배우게 된다.  특히 경건의 시간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게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건의 시간을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개인적인 결단을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경건의 시간을 가질 때는 막막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큐티를 실천하는 데는 어떻게 할지 몰라 헤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영성이 깊어지는 큐티』는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이 책은 어떻게 경건의 시간을 가질 지에 대해 구체적인 예와 함께 방법론을 보여준다.  처음 큐티를 시작하는 사람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구절 큐티부터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원리를 발견해 내는 원리 중심 큐티까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큐티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각 단원마다 풍부하게 제공되는 실제 큐티의 예를 통해 구체적인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저자는 우리의 신앙을 유지하고 성장하게 하는 핵심적인 도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큐티라고 대답한다.  큐티란 말씀으로 샤워를 하는 것으로 큐티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큐티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마치 샤워를 안 하는 사람처럼 악취가 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큐티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큐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경공부가 성경의 지식을 추구한다면 큐티는 성경 속 하나님의 음성을 추구한다.  성경공부가 내용을 중시한다면 큐티는 감동을 중시하며 성경공부가 ‘앎’을 강조한다면 큐티는 ‘깨달음’을 강조한다.  물론 두 경우 모두, 결국은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강조점이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큐티가 어렵지 않은 이유는 큐티 속에서 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저자는 큐티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공한다.

 

1. 큐티를 위한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라.

이는 가장 기초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2. 3개월이든 6개월이든 꾸준히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서로를 끊임없이 자극해 줄 수 있는 함께 큐티하는 동료들이 필요하다.

4. 묵상을 기록하라.

어설픈 묵상이라도 일단 글로 쓰기 시작하면 묵상능력이 증폭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5. 큐티 안내 책자를 읽기 전에 먼저 스스로 묵상하라.

6. 본문이 어렵다고 주석이나 참고 서적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7. 일찍 자라.

8. 한 번 정도는 큐티하는 방법과 과정에 대한 공부를 해 보라.

 

저자는 처음 큐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큐티 방법으로 구절 큐티를 권한다.  구절 큐티란 이미 주제가 정해져 있는 한두 구절을 중심으로 묵상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구절 큐티에서는 그 구절을 포함하고 맥락을 모른다 하더라도 명확하게 구절이 말하는 주제를 알 수 있는 구절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보통은 성경암송구절을 이용한다).

 

구절 큐티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선정된 구절(보통 한두 구절)을 몇 차례 읽는다.

2. 읽으면서 마음속에 갖게 되는 느낌이 무엇인지 잘 살핀다.

3. 그 느낌과 감상을 담대하게 적어 나간다.

4. 기록하다 보면 나의 삶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지 깨닫게 되며 그것을 기록한다.

 

구절 큐티의 이점은 성경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을 묵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절 큐티의 단점은 본문의 전체 맥락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 좀 더 깊은 말씀 묵상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방법으로 본문 큐티를 저자는 제시하고 있다.

 

본문 큐티를 하는 일반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선정된 본문을 두세 번 읽는다.

2. 본문의 내용과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안경을 쓰고서 본문을 다시 읽는다.

3. 묵상의 내용을 기록한다.

4. 말씀에 따른 적용을 기록한다.

5. 기도함으로 마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2항으로 본문 큐티를 위한 묵상의 도구인 “7가지 묵상을 위한 안경”이 있으며 이중 한 가지를 가지고 본문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1. 하나님(예수님,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2. 내가 버려야 할 죄는 무엇인가?

3. 내가 주장해야 할 약속은 무엇인가?

4. 내가 순종해야 할 명령은 무엇인가?

5. 내가 피해야 할 오류는 무엇인가?

6. 내가 따라야 할 모범은 무엇인가?

7. 내가 새롭게 발견한 진리는 무엇인가?

 

나아가 이러한 묵상의 깊이를 더해 줄 두 가지 방법으로는 첫째, 묵상할 때 질문을 사용하는 것과 둘째, 묵상한 후 기도로 하나님께 묵상의 내용을 돌려 드리는 것이다.  다음으로 저자가 권하는 큐티 방법은 원리 중심의 큐티이다.  구절 큐티는 즉각적인 적용이 가능하며 본문 큐티는 삶의 표면에 나타나 있는 행동을 고치는 적용을 많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본문 큐티를 오래하다 보면 거의 같은 영역에서 적용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삶의 표면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삶의 원리와 태도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리 중심의 큐티이다.  원리 중심 큐티는 성경을 정확히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해 관찰과 해석이라는 성경 연구 방법이 도입되어야 한다.

 

원리 중심의 큐티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내용을 관찰하기.

순수하게 본문 내용을 통해 객관적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관찰 할 때 어떤 관 점에서 관찰할 것 인 가를 사전에 결정해야 한다.

2. 일반적인 원리를 끌어내기.

이는 묵상에 의한 내용의 재해석으로 관찰된 사실에서 일반적인 성경의 원리를 끄집어내 는 과정이다.

3. 일반적인 진리를 나의 삶 속에 특별한 진리로 가져오기.

지금 자신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묵상하며 이 과정에서 새로 운 깨달음과 기도, 결단, 적용 등이 이루어진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원리 중심 큐티가 어떻게 말씀사역에 이어질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실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무엇보다 큰 강점은 각각의 설명하다 실제 본문을 가지고 어떻게 큐티가 이루어지는 실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실례는 내용이 보다 풍부한 이해뿐 만 아니라 실제 큐티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이 책은 경건의 시간을 배우고 가르치는 훈련생들과 인도자에게 좋은 참고도서가 될 것이며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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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관계가 당신 소유의 전부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완전한 만족을 누리시겠습니까?

많은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글쎄요, 그런 관계를 가지고는 싶지만 그 외에 뭔가 다른 것도 하고 싶습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제게 뭔가 사역이나 다른 할 일을 주시면 좋겠는데요”

우리는 실로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느라고 바쁘지 않으면 무가치하고 쓸데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기를 원한다.

네가 나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관계’이며,

가장 고귀한 ‘성취’이며,

가장 고귀한 ‘지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아무 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분께 순종하고

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행하도록 당신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의 성취감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과의 관계만으로도 완전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으로 사로 잡혀 있다면

당신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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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가짜 감정들이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높이 고조되었으나

겉만 번지르르한 감정들이 있지만 

참되고 거룩하며 견실한 감정들도 있습니다.

신앙 감정이 너무나 강력해서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격렬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일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됩니다.

그들은 그것이 과연 성령의 역사일 수 있는가 의심합니다.

그 격렬함이 오히려 악령이 역사한다는 표시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오류를 범합니다.

첫째, 만일 이 일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어떤 새롭고 비상한 점이 있으면

그들은 그것을 기준으로 

이 일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거부해 버립니다.

이 점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주시지 않은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하나님이 스스로를 제한하시지 않으신 곳에서 

그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둘째, 어떤 사람들이 성경 대신 역사나 과거의 관점을 가지고

이 일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오류를 범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일의 어떤 외적이고 부수적인 상황들을

때때로 광신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난 것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서 어떤 일치점을 발견하면

그들은 이 일 전부, 

혹은 최소한 그것의 본질을 거부하면서

그것이 ‘광신주의’라고 단정합니다.

 

대부분의 인류의 커다란 약점은 

새롭고 흔치 않은 어떤 일을 구분하데 있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을 도매금으로 인정하거나 정죄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전체 속에 있는 잘못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것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자들은

그 전체를 단번에 거부해 버립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상한 마비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루시는 성령의 역사를 거의 느끼지 못했으며

영적인 것들에 대해 거의 배우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이런 역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한 번도 가르침을 받지 못한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부흥에서 나타나는 최악의 질병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균형 잡힌 부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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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1권2과는 하나님과 매일 만나는 생활에 관한 내용으로 경건의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고 경건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결단을 내리고 실천하도록 훈련생을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훈련생들은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시간을 결단하지만 쉽게 실천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늘 급한 일에 쫓기는 삶』은 1권2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 급한 일에 얽매여 사는지에 대해 말하며 이의 극복을 위한 필요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훈련생들에게 그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 어떻게 경건의 시간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아래는 그 대략의 내용이다.

 

우리는 늘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  문제는 중요한 일은 꼭 오늘이나 금주 안에 끝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반면 긴급한 일들은 그것이 덜 중요하다 할지라도 즉각적으로 처리하도록 압박을 가해온다는 사실이다.  시간의 사용은 궁극적으로 각자가 세운 목표에 의해 좌우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예상치 않았던 기회나 요구에 충동적으로 많은 시간을 소모하여 정작 중요한 일을 미처 끝내지 못하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그래서 늘 긴급한 일에 쫓겨서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생산적인 시간 사용을 위해서는 우선 중요한 것을 정해야 한다.  시간을 통제하는 첫 번째 단계는 어떤 활동이 가장 중요한지를 정하여 하루 혹은 한 주 혹은 한 달 동안 그 일에 적절한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둘째는 시간을 현재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당신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현재 당신의 생활방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조정해야 한다면 현실에 직면함으로써 출발해야 한다.  실제 시간 사용 표를 만들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는 시간 예산을 세우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높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해야 할 활동을 위해 어느 활동을 줄여야 할지를 신중하게 결정해라.  그러나 처음부터 너무 많은 변동을 계획하지는 말라.  끝으로 실천이 필요하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웠다 하더라도 확고한 실천의지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  하루를 시작할 때 그 날의 일정을 생각하면서 주님께 자신을 의탁하며 우선순위에 따라 해야 할 일을 나열해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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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가장 격렬한 전쟁터 중의 하나는

각 사람의 ‘내면세계’라고 믿는다.

특별히 자신을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이라 믿는 사람들은

이 싸움을 해야만 한다.

그들 중에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에서

무거운 책임들을 지고 

수고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우리는 공적으로 많은 활동을 하는 사람이

내면적으로도 아주 영적인 사람이라고 

고지식하게 믿는 경향이 있다.

또한 교회가 크면 클수록 

하늘로부터 오는 축복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과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내면세계를 희생해서라도

불균형하게 외적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유혹이 있는 것이다.

 

더 많은 프로그램,

더 많은 모임들,

더 좋은 학력,

더 많은 대인 관계,

더 많은 사업과 같은 모든 활동이 과중해서

더 이상 우리 삶을 지탱할 수 없게 되면

모든 것이 붕괴되어 무너져 버린다.

 

고든 맥도날드『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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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사님이 큰 교회에서 그를 담임목사로 초빙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어떤 작은 교회에서 그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 오셔서 담임목사님으로 사역해 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글쎄요, 안 되겠는데요”라고 그 목사님이 즉시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여기서 하나님이 주실 임무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너무나 많은 교육을 받았어.

나는 그것보다는 좀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해”

 

그 목사님의 응답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보셨습니까?

당신이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큰 임무를 맡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과 성품을 작은 임무에게 맞게 조정하신 후

나중에 그것을 통해서 큰 임무를 맡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시는 지점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자신을 조정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을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당신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당신의 삶에서

당신을 통하여 일하시는 경험을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께로 맞추고

하나님이 당신을 어디로 인도하시든 따라가는 그런 관계를 맺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임무가 작든, 중요치 않든 간에

당신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마 25:21),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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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1권1과에서 개인의 간증을 다루는 것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오픈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끄셨는가를 발견하고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제자훈련을 통해서 더욱 당당한 간증자가 되어야겠다는 기대와 결심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목적이 있다.  데이브 도슨의 『효과적인 간증: 간증문 작성법』은 이점에서 제자훈련 1권1과의 좋은 참고도서라고 할 수 있다.  간증의 필요성과 효과적인 간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간증문을 작성할 때의 유의점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실제 간증문을 어떻게 써야 될지에 대한 좋은 가이드와 구체적인 실례를 제공하고 있다.  소책자라 분량도 부담이 없는 만큼 한 번쯤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래는 대략의 내용이다.

 

간증은 하나님께로 향한 당신의 순례 기록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당신의 믿음을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효과적인 도구의 하나이다.  간증이 효과적인 증거가 되는 이유는 첫째,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경험한 바를 듣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고, 둘째는 아무도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반박할 수 없으며, 셋째는 개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나눌 수 있고, 넷째는 다른 사람도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도록 할 수 있고, 다섯째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버리게 할 수 있다.  효과적인 간증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민감한 필요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삶 가운데 건드리거나 자극을 받으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영역이나 필요가 존재한다.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간증을 나눌 때 자신의 민감한 필요를 중심으로 간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이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당신을 진실하며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게 되어 자신의 민감한 필요를 당신에게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를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도와주셨는가에 대해 나누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삶, 믿게 된 경위, 믿음 후의 삶의 변화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했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삶에서는 자신을 청중들과 동일시하면서 그들의 민감한 필요를 드러냈고, 믿게 된 경위에서는 왜 제자가 되었으며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끝으로 믿음 후의 삶의 변화에서는 자신의 민감한 필요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해결되었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간증을 나눌 때 주의해야 할 점으로는 첫째, 자신의 지난날을 다 이야기하지는 말 것, 둘째, 바울의 간증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 민감한 필요를 상세히 설명할 것, 넷째, 복음을 명확하게 소개할 것, 넷째, 민감한 필요의 해결책을 설명할 것, 다섯째, 신중하게 나눌 것, 여섯째, 1인칭을 사용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설교를 하려 들지 말 것, 일곱째, 자신의 간증의 가치를 인식할 것, 여덟째, 사실을 말할 것, 아홉째 기도할 것 등이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당신의 간증에는 주님을 만나기 전 당신의 삶 가운데 있었던 민감한 필요를 사실적, 구체적, 그리고 개인적으로 간결하게 써야 한다.  믿게 된 경위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영접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믿은 후 변화에서는 당신의 민감한 필요와 관련지어 예수 안에서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를 설명하되 설교로 발전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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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한 세상에서는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큰 의견 차이와 논쟁이 생기기도 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다른 어떤 인간관계에서보다

더욱 평화롭게 지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어떤 다툼보다

여러 면에서 가장 불행하고 끔찍한 결과를 가져 오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자주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 

이런 분쟁이 생깁니까?

교인들은 목회자와 때로는 교리적인 문제로,

때로는 교회 행정적인 문제로,

때로는 사례비 문제로 다툽니다.

때로 이런 다툼은 아주 오래 지속됩니다.

 

그러나 심판 날 충분하고 완전하며 

영원한 결정이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무한한 빛과 진리와 공의의 원천이신

오류가 없는 재판관께서 논쟁하는 양편을 심판해 주실 것이며

진리가 무엇이며, 누가 옳은지,

누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는지를 선언해 주실 것입니다.

그 날은 이 인간 세상에 있었던 모든 분쟁을 결론짓고

모든 실수를 바로 잡으며

모든 불의한 재판관 오류와 혼란을 종식시키는 

위대한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과 심판은 

완전한 진리와 공의에 따라 시행될 것입니다.

신실한 목회자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단 12:3).

또한 목회자를 잘 영접하고 잘 대접하여 준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마 10:40-41).

신실한 교인들과 신실한 목회자들은 

서로 기쁨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살전 2:19-20).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실한 목회자들을 악하게 대했던 사람들은

심각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 10:14-15).

한편 신실하지 못한 목회자는 

가장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겔 33:6, 마 23:1-33).

 

그러므로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분쟁이 영원히 해결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 선고 받고 보상받을 것입니다.

영원한 기쁨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영원한 부끄러움과 고통을 당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심판 날 다시 만날, 분쟁하는 목사와 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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