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의 봉화를 마틴 루터는

시시때때로 너무나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곤 했다.

사방이 막혀 개혁의 작은 불꽃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답답하고 암담해질 때마다

루터는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살아계시다!”  살아계시다!”

그때마다 루터는 힘을 얻곤 하였다. 

 

이것은 예수께서 무덤 속에 갇혀 버린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뜻이다.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를 생각할

사방을 막았던 모든 문이 열리고 전진할 용기를 얻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나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모신 자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루터처럼 큰소리로 외쳐보자. 

살아계시다!”  살아계시다!”

 

-찰스 카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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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 6월이었다.

영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이 워터루에서 대전을 치르고 있었다.

당시에는 무선 시설이 발명되기 이전이었다.

그래서 배에서 보내는 신호를 해안에서 육안으로 식별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영국 국민은 해전을 치르고 있는 웰링턴 제독으로부터

전쟁의 결과에 대한 소식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바다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드디어 멀리 배에서 신호가 오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신호 내용은 웰링턴이 패했다 비보였다. 

소식을 접한 영국 국민은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난 바다의 안개가 걷혔다.

배로부터 오는 신호의 내용을 좀더 분명히 읽을 있었다. 

그런데 신호의 내용은 뜻밖에도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웰링턴이 적을 패배시켰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적을이라는 단어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소식은 영국에 퍼졌다.

영국 구민이 기뻐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거리는 기쁨으로 날뛰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는 소식을 접한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예수가 패했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흘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예수가 죄악과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패배시켰다!”

기독교는 승리의 소식을 전파하는 종교이다. 

기쁜 소식이 전파되면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역사의 아침은

인류에게 활짝 열리게 것이다.

 

-알리스터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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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골 여인의 아들로 아주 작은 동네에서 태어났다.

이곳에서 그는 30세가 때까지 목공소의 목수로 일했다. 

그후 3 동안 그는 떠돌이 설교자였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권도 쓰지 않았으며 관직에 있은 적도 없었다.

그는 가족을 떠나서 가정을 소유한 적이 없었다. 

그는 결코 도시에 나가지도 았았다.

그는 그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2 마일 이상을 여행한 적도 없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위대하다고 할만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권력자의 신임장도 없었고

단지 자신 홀로일 뿐이었다.

 

이렇게 그는 세상적으로는 눈에 뛰지 않고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어느 위인이 이룩한 인간 역사보다도 

많은 역사를 이루어 놓았다. 

영국의 뛰어난 설교가 찰스 스펄젼 목사는

그리스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서 역사의 중심이다.

모든 것이 그를 기대하고 

그에게로 되돌아간다.

역사의 모든 회전은 그에게로 집중된다 하였다. 

또한 스펄젼 목사의 동향인인 수필가 찰스 램은 언제가 이런 말을 하였다. 

만약에 셰익스피어가 방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모두 일어설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방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모두 일어나 겸손히 무릎을 꿇고 

그분을 경배할 것이다 

진실로 하나니의 아들이신 그분과 비교될 만한 대상이 과연 있을까?

 

-필립스 브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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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그분의 모습은 성경 안에서 변화 무쌍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그중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창세기에서는 창조주로,

출애굽기에서는 스스로 있는 자로 나타나신다. 

민수기에는 별과 왕권이시며,

신명기에서는 바위이시다. 

 

여호수아에서는 만군의 주이시고 대장이시며,

욥기에서는 구속자이시다. 

시편에서는 다윗의 주이시고 목자이시다. 

이사야서에서는 놀라운 분이시며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평화의 왕이시다.

예레미야서에서는 정의의 주님이시며,

다니엘서에서는 메시야이시다.

스가랴서에서의 그분은 가지이시며,

학개에서는 모든 나라의 꿈이시다. 

말라기에서는 계약의 사자(使者)이시며 정의의 태양이시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알파와 오메가시요

아침 별로 기록되어 있다.

 

-찰스 카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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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제자훈련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간증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제자훈련에 지원하고자 하는 열망과 동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오랜 시간동안 신앙생활을 했으나 전혀 성장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으로 고민하거나, 나태함과 무기력함으로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를 간절히 소망해왔거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문제들로 인해 고민하던 사람이라면 제자훈련은 자신이 그렇게 찾던 새로운 돌파구와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제자훈련을 통해 무엇인가 변화를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훈련의 기간 동안 당연하게 여겨야 할 것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변화는 시간이 지난다고, 혹은 제자훈련시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해서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오늘은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훈련생들이 당연하게 여겨야 할 것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1. 훈련에 대한 도전을 당연하게 여겨라

“머피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자주 보던 버스가 자신이 타려면 죽어도 안 오는 경우, 학교에서 “쟤하고는 짝궁이 되지 않았으면...”하고 생각했던 아이가 꼭 짝궁이 되는 경우와 같이 자신이 계획한 일이 뭔가에 의해 꼭 꼬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훈련생들에게도 이 머피의 법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려는데 첫 모임부터 매우 중요한 약속과 겹치는 일이 발생한다든지, 훈련생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앉을 때마다 전화가 울려서 결국 기도시간을 놓치는 등의 일은 훈련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본 것들 입니다.  머피의 법칙과 같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훈련 시작과 동시에 가족 혹은 자신이 심하게 아플 수도 있습니다.  사업이 갑자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직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생기면 훈련에 새로운 각오를 다졌던 훈련생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뭔가를 시작하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순조롭게 일이 풀리지 않으면 누구나 마음이 상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이런 일을 경험하고 나면 훈련기간 내내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제자훈련은 하나님 나라의 정예 군사가 더 늘어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사탄의 편에서 보면, 제자훈련은 당연히 막아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사탄은 우리가 어떤 부분에 가장 약한 존재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사용하여 훈련을 방해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훈련 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어떠한 종류의 도전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음... 내가 훈련을 받는 것이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중요한 일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사탄이 훈련을 방해하려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각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제자훈련의 과정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사단의 방해도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길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 훈련의 과정을 당연하게 여겨라

훈련에 대한 도전뿐만 아니라, 훈련생들이 가져야 할 또 다른 자세는 훈련의 과정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말은 훈련의 특수성을 인정하라는 말과도 같은 뜻입니다.  가령, 훈련생들이 훈련의 과정 중에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숙제’입니다.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일정 분량씩의 책을 읽게 하는 숙제는 속된 표현으로 “머리 터지는”일입니다.  정해놓고 기도하는 습관이 전혀 없던 사람에게 매일 30분씩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면 한동안 뭐를 기도해야 하는지 몰라 기도시간이 고역으로 다가옵니다.  평생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투른 사람에게 생활숙제로 배우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라는 숙제가 주어지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결국 출근할 때 툭 선물을 던져주고 나오는 것으로 숙제를 대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자신의 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강조하는 숙제가 계속될수록, 훈련생들의 마음에 부담감이 쌓여간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심적 부담감은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표출되곤 합니다.  너무 심한 부담감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숙제를 아예 안 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부작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훈련에 대한 마음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훈련생들은 훈련 초기부터 훈련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당연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수 십 년 동안 숙제란 것을 모르던 사람이기 때문에 숙제가 부담스럽다”고 말하기 보다는 “훈련받는 과정에서 숙제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훈련의 과정에서 당연하게 여겨야 할 것은 숙제만이 아닙니다.  다른 훈련생들과의 관계에서, 또한 교회 안에서 자신이 훈련생의 신분으로서 보여줘야 할 모습들을 지키는 것 또한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렇게 훈련의 과정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 자연스럽게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결국 훈련을 통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상황은 어떤 것들입니까?  그런 것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십시오.  “당연하지!  훈련에 대한 도전과 훈련 과정에서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세를 통해, 평생 한번밖에 없는 훈련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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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그룹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정직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지도자를 존경합니까?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이 나왔습니다.  1위 정직한 지도자,  2위 앞일을 생각하는 지도자,  3위 용기를 주는 지도자,  4위 능력 있는 지도자. 지도자와 관련한 거의 모든 설문조사에서 '정직'은 다른 어떤 리더십 특성 보다 더 많이 선택되고 있습니다.  정직은 지도자와 구성원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그룹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직이야말로 소그룹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2. 소그룹 지도자는 어떤 면에서 정직해야 합니까?

a)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는데 정직하십시오.

소그룹 구성원들은 지도자의 말과 행동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지도자의 정직성을 평가합니다. 지도자가 아무리 말로 자신의 성실성을 강조하더라도 구성원들은 지도자가 자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지를 관찰합니다.  만약 지도자가 자신의 말과 어긋한 행동을 한다면 구성원들로부터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말과 실천이 일치한다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마음을 바쳐서라도 지도자를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대해서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기도의 본을 보이심으로써 자신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입증하셨습니다.  이처럼 지도자는 자신의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는데 정직해야 합니다.

 

b)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데 정직하십시오.

완벽하게 언행일치를 하는 소그룹 지도자는 없습니다.  소그룹 지도자들도 때로는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 자체가 아니라 잘못 이후의 반응입니다.  소그룹 지도자가 만약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못한다면 지도자의 정직은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려고 한다면 그는 결코 구성원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 믿던 사람들을 핍박했을 뿐만 아니라 죽이기까지 한 살인자라고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22:4).  또한 자신이 다메섹 성에서 핍박을 피해 광주리를 타고 몰래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고후 12:30-33).  이처럼 지도자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데 정직해야 합니다.

 

c)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는데 정직하십시오.

성숙한 소그룹 지도자는 자신의 잘못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약점까지도 드러낼 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약점이 구성원들에게 불필요하거나 지도력을 행사하는데 치명적인 부분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과거의 불행했던 가정사라든가 현재의 아픈 고민들을 나누는데 정직하지 못한다면 그 지도자의 가르침은 구성원들을 결코 변화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도자가 자신에 대해 정직하지 않는 한 구성원들도 자신의 연약한 부분들을 결코 드러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기를 지시기 직전 자신이 심히 고민하게 죽게 되었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감정을 제자들에게 정직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함께 깨어 있기를 부탁하셨습니다( 14:34).  이처럼 소그룹 지도자는 자신의 아픔을 기꺼이 나누고 도움을 요청하는데 정직해야 합니다.

 

3. 정직으로 인격을 보여주는 소그룹 지도자가 되십시오.

소그룹 구성원들은 지도자를 먼저 받아들인 후, 그 후에 지도자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여러분이 인격을 보여줄 때까지 여러분이 가르치는 진리는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인격이 일차적인 메시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인격을 어떻게 보일 수 있겠습니까? 정직하십시오.  그러면 구성원들은 기꺼이 당신을 신뢰하고 당신의 말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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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훈련생들이 훈련을 시작한 후 시간이 좀 흐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데, 이것은 처음 가졌던 긴장도 어느 정도 해소되고 사람들도 상당히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매너리즘에 빠지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이 왜 제자훈련을 받는 것인지, 어떤 태도로 제자훈련을 받아야 할 것인지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9 24-27절은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권면한 신앙생활의 원리입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훈련에 임하는 여러분 자신을 한번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1. 제자훈련은 마라톤입니다

24절에서 바울은 신앙생활을 달음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달음질은 100미터 단거리 경주가 아니며 그리스의 마라톤 경기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신앙생활이란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마라톤과 같다고 말합니다.  훈련도 마찬가지이며 1년 동안 쉼 없이 달려야 합니다.  이 마라톤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것,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내하는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넘기는 것, 제자훈련에서 여러분이 다시 새겨야 할 각오입니다.

 

2. 제자훈련은 절제를 요구 합니다

25절에서 바울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말합니다.  경주를 하는 사람은 이기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은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신앙생활도, 제자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인격과 삶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반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반드시 실천하십시오.  그리고 도움이 되지 않은 것들이 우선순위가 되게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모든 일에 절제하는 것입니다.

 

3. 제자훈련의 목표를 기억 하십시오

26절에서 바울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음질을 하더라도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싸우려고 하더라도 허공만 치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제자훈련생들이 아무리 열심히 숙제하고 참석하고 교제한다고 해도 목표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따라서 늘 목표의식을 가지고 열심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자훈련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닮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늘 기억하십시오.  목표가 없으면 목표가 아닌 다른 것이 여러분을 지배할 것입니다.

 

4. 제자훈련은 복종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27절에서 자기도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가 항상 방해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몸은 우리의 몸이지만, 항상 복종시키기 어려운 것이 바로 우리 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몸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노력하십시오.  내 이기심, 내 자랑, 내 자존심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앞에 복종되도록 노력하십시오.  제자훈련은 성취의 훈련이라기보다는 복종의 훈련입니다.  바울 같은 깊은 영적 지도자도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했다면, 하물며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생각과 주권에 굴복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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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는 소그룹 지도자는 성실한 지도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도자라야 성숙한 지도자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소그룹 구성원들이 지도자의 탁월함은 인정하지만 성실함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성숙한 지도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탁월성(Excellence)이 아니라 성실함 (sincerity)이 성숙의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소그룹 지도자는 어떤 영역에서 자신의 성실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까요?

 

1. 하나님께 성실하십시오.

소그룹 지도자는 구성원들의 삶과 인격의 변화를 돕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소그룹 지도자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삶과 인격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과 인격의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은혜로 가능합니다.  따라서 소그룹 지도자는 하나님에게 먼저 성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은혜를 누리게 되고 그 은혜를 통하여 변화를 경험하고 그 변화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누가복음 1038-42절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를 기억하십시오.  먼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은혜 받는 마리아가 되십시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여러분은 사람들을 위해서 섬기는 마르다가 되실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는 예배자라야 사역을 하는 헌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가족에게 성실하십시오.

가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소그룹임을 잊지 마십시오.  따라서 소그룹 지도자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먼저 성실해야 합니다.  가족이라는 소그룹에 성실하지 못하면 결코 다락방이나 구역이라는 소그룹에도 성실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가족에게 성실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어떻게 자신이 돕는 구성원에게 성실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926절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죽기 직전의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분은 부모에 대한 성실함을 소그룹 구성원들인 12제자들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소그룹지도자가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3. 그룹 구성원들에게 성실하십시오.

성숙한 지도자는 소그룹 구성원들로부터그 분은 우리에게 성실한 분이야라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성실해야 합니다.  교재 준비를 하는데도 성실해야 합니다.  그들의 아픔과 고민을 나누는데도 성실해야 합니다.  이러한 성실함을 보여줄 때에 비로소 구성원들은 지도자를 신뢰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지도자의 가르침과 권면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잠언 2723절의 교훈을 기억하십시오.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소그룹지도자는 그 마음에 구성원들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구성원들의 형편을 살핍니다.  이러한 목자의 심령을 가진 소그룹 지도자를 주님은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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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받은 삶은 어떠한 원칙 위에서 구현될 있는가?

대략적으로 가지를 언급할 있다.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의무의 삶을 구현되어진다.

, 그분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부터 우러나오는 우리의 순종에 의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있다.

표현은 1549년에 발간된 크랜머의 기도서에 나오는 요리문답에서 유래되었다.

내용을 보면 이렇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의무는 

그분을 믿는 것이며,

그분을 경외하는 것이며,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분께 예배하는 것이며,

그분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며,

그분께 나의 전폭적인 신뢰를 맡기는 것이며, 

그분을 부르는 것이며,

그분의 거룩한 성호와 

그분의 말씀을 공경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생애의 모든 날들을 다해 

그분을 섬기는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구원받은 삶은 이웃 사랑의 삶으로 구현된다. 

크랜머는 자신의 기도서에 있는 요리문답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웃에 대한 나의 의무는 

자신처럼 그를 사랑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내가 모든 사람들에 해주는 것이다”

 

사랑은 그것이 있는 모든 방면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과 발전을 추구한다.

그것은 마음의 의지의 문제이며

감정을 초월하는 문제이고,

순간적인 충동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헌신의 문제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의무와 마찬가지로

이웃에 대한 사람의 의무는 

생활 속에서의 훈련을 요구한다.

 

셋째로, 구원받은 사람은 자유의 삶으로 구현된다. 

이것은 다시 가지 의미로 나누어 생각할 있다.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의 필요성으로부터의 자유,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율법의 전형적인 법령에 부여된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모든 피조물들을 사용하고 누릴 있는 자유(딤전 4:4-5, 6:17),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함으로 얻어지는 성취와 만족이라는 차원에서의 자유 등이다“

 

마지막으로, 구원받은 삶은 하나님에 대해 열려 있는 삶으로 구현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은사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분을 향해 마음을 여는 삶이다.

 

D. A. 카슨 『하나님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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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적은 없습니다. 

당신의 삶에 회개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떼어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은 어떤 사람이

땅에서 오랜 삶을 마치고 무서운 심판대 위에 섰는데,

자신이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보다 끔찍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엄중하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인들의 간증을 읽다 보면,

회개라는 요소가 빠지지 않고 나타납니다.

회개의 필요성이야말로

성경이 논쟁하지 않는 절대적인 하나입니다. 

성경은 회개를 자명한 일로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의 내용을 어렵게 생각합니다. 

성육신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사람들,

하나님의 아들이 땅에 오셨다는 사복음서의 이야기가 납득가지 않는 사람들,

기적과 초자연적인 사건을 이해할 없다는 사람들,

구속 사상과 의인이니 성화니 중생이니 하는 용어들이

낯설기만 하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사상들이 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현실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죄에 관한 진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임을 지적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은 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깨달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과 사뭇 다르게

시종 죄의 문제를 끈질기게 붙들고 씨름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인간은 털끝만치의 소망도 없는 존재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유일한 소망이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죄인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인간이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지 않는 ,

복음은 인간과 무관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은 회개하지 않은 인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까?

“당신은 과연 이러한 기쁨을 아십니까?

“영혼을 붙드시는 성령의 능력을 확신합니까?

 

이처럼 간단한 질문을 통해

당신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테스트 있습니다. 

당신이 만일 라고 대답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간단한 질문에 마음이 찔린다면

그리고 자신에게 그리스도인다운 면면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 하나님께 나아와 사실을 고백하십시오. 

지체하지 마십시오.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고 그분께 아뢰십시오.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고

성령의 빛을 비추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죄를 고백하고 죄과를 시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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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룹 지도자가 개발해야할 수많은 역량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소그룹 성경공부를 이끄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일 겁니다.  소그룹을 귀납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보조질문을 만드는 법, 아이스 브레이크, 큐티지도, 중보기도를 이끄는 기술 등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소그룹 지도자가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 보조질문을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해야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1. 각각의 질문의 유형을 분류하라.

모든 귀납적 성경공부 교재는 일정분량의 본문을 읽고 나서 그 본문에 대해 관찰질문, 해석질문, 느낌질문, 적용질문이라는 4가지 종류의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교재의 각 과에 10개 전후의 질문이 있지만 이 질문을 종류별로 나누면 4가지 종류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먼저 교재에 각 질문의 유형을 표시하십시오.

 

2. 관찰-해석-느낌-적용의 순서에서 빠진 연결고리를 찾아내어 보충하라.

이렇게 질문을 표시하다보면 4종류의 질문 사이에 빠진 고리들이 보이게 됩니다.  그 빠져있는 부분을 채우는 작업을 하십시오.  빠져있는 연결고리를 채우는 것이 보조질문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3. 귀납적 성경공부의 핵심은 적용에 있다. 적용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라.

소그룹 지도자가 범하기 쉬운 실수는 각각의 문제를 다루면서 동일한 시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관찰질문이나 적용질문이나 비슷한 시간을 사용하다보니 10문제 전후의 교재를 2시간이상 이끌어가면서 진을 빼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귀납적 성경공부는 성경지식을 쌓아 가는데 목적이 있기 보다는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무디는성경은 정보(information)를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transformation)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귀납적 성경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말씀에 자신을 비춰보고 결단하고 적용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용에서 마음을 열어놓고 편안하게 나누면서 결단하려면 관찰-해석 질문에서 시간을 절약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서론은 서론이다.

서론(序論)은 서론일 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소그룹 지도자들은 소그룹을 이끌어갈 때 서론에서 승부를 걸 것처럼 공을 들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서론에서는 오늘 교재를 공부해야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부각시켜주면 서론으로서의 기능이 끝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서론은 서론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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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일상생활 속에서 늘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듣는 것에 실패합니다.  잘 듣지 못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은 제대로 듣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단계 : 귀로 듣기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먼저 귀를 열어야 합니다.  귀를 막고 상대방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귀를 여는 것은 듣는 일에 있어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단지 귀를 열고 있다고 해서 타인의 말을 진심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귀가 열려 있다는 것은 단순히 음성으로 나오는 말이 귀로 전달되는 것뿐이지, 타인의 말하는 내용이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듣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듣는 이의 머릿속이 백지 상태여야 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말을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듣고 있는 것 같지만 머릿속은 전혀 딴 생각에 빠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잡념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으면 당연히 타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런 잡념 외에, “그건 옳아”, “그건 틀려”라며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판단하거나 “저 사람이 말하고 싶은 건 분명 이러이러한 것 일거야” 라는 선입견을 갖고 들으면 역시 음성만을 듣게 됩니다.  이런 잡념, 고정관념, 선입견은 모두 잡음이 되어 타인의 말이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타인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듣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런 잡동사니를 몰아내야만 합니다.

 

2단계 : 입으로 듣기

타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단지 수동적으로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반응을 보이면서 적극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귀뿐만 아니라 입을 사용하게 되면 “나는 당신의 말을 신중하게 듣고 있다”는 표현을 전하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해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귀뿐만 아니라 입도 열어서 상대방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더라도 그 질문이 상대방의 이야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면 상대방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질문을 던지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입으로 듣기 위해서는, 타인의 음성이 아닌,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의식의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는 게 중요합니다.

 

3단계 : 마음으로 듣기

타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자신의 귀와 입 외에 마음을 동원해야 합니다.  정말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쉽게 말하면 이것은 ‘상대방을 위해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다시 바꾸어 말하면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듣는 이가 자신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말하는 이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말하는 이의 사고방식이나 사물을 보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렇게 진정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단계에 이를 수 있을까요?  신체 특정 부위의 근육을 키우고자 마음을 먹으면 반복적으로 그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을 되풀이해야 합니다.  그저 단련하고자 하는 생각에만 그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근육은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3단계의 경청 방법을 알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격언이 우리에게 좋은 지침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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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죽이는 것은 전적인 성령의 사역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이 죄를 죽이는 일을 위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완악하고 교만하고 반항하며 불신적인 돌과 같은 마음을 제거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죄를 죽이는 사역에 속한다. 

성경은 이런 사역을 성령이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속에 신을 주며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11:19).

 

둘째, 우리가 죄를 죽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사로 가능하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은사를 베풀고 그것을 더욱 넘치도록 하며

효율적으로 적용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하는 일을 하신다.

그리스도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성도 안에 들어와 역사하신다.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은 바로 성령을 통해

자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리스도 때문이다.

 

이스라엘 회개케 하사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가 되게 하셨느니라’( 5:31).

 

한마디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죄를 이기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2:33).

 

여기서 우리는 다음 가지 질문들을 대답할 필요가 있다.

 

번째 질문: 성령이 어떻게 죄를 죽이는가?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은혜로 넘치게 하고

육체의 열매에 반하는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게 함으로 죄를 이기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서로 대조시켰다.

 

육체의 열매( 5:19-21) 성령의 열매( 5:22-23)

서로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열매가 우리 안에 넘치도록 함께 공존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과연 서로 다른 종류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함께 거할 있는가?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럴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박았느니라’( 5:24).

그러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있는가?

해답은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함으로써일어난다는 것이다( 5:25).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풍성한 은혜에 따라서

행할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야말로

죄를 이기는 가장 위대한 방법이다.

성령은 육체의 열매들과

우리 속에 거하는 죄의 활동을 무너뜨리고

그것들을 대적하게 하여 주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자라나고 성장하도록 역사하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성령을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이라고 말씀한다( 4:4).

 

번째: 성경은 인간인 우리에게 죄를 죽이라고 권면하는가?

성령만이 일을 있다면

전적으로 성령에게 맡기는 것이 옳지 않는가?

성령의 사역 방식은 우리 안에 은혜를 주고

은혜를 통해 우리로 선행을 하도록 역사하신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2:13).

그래서 성경은 성령이 우리의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다고 말씀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26:12).

 

성령은 우리 안에서 죄를 이기도록 역사하실

죄를 이기는 행위를 여전히 우리의 순종의 행동으로 간주하신다.

성령은 우리가 성령의 사역을 받기에 적합할 때만

간섭하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역사하신다.

순종을 위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의 지혜, , 양심, 그리고 감정을

우리의 인품에 따라 사용하신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우리와 협력해서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를 꺾지 않는다.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방식은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어

태만하지 않고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죽이는 일은 전적으로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영향을 받고

수행되며 완성되는 것이다.

 

오웬 『내 안에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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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에 살고 있는 개미에게 

이런 실험을 해보았다.

개미 집속에 촛불을 놓아보는 것이다. 

그러자 개미들 가운데 일부 개미들이

자기 집의 화재를 막고

동료들을 완전하게 돕기 위해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끄는 방법이 참으로 놀라웠다. 

자기 몸을 불에 던지는 것이다. 


그러면 몸에서 키츤스라는 불연성의 진액이 나오는데,

그것으로 불을 끄는 것이다. 

불이 꺼진 후에 개미들의 형체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살신의 도를 곤충의 세계에서 발견할 있다니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의 미세한 부분과

동물의 본능까지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요,

주권의 일부분일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예수님의 살신(殺身) ()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당연히 그래야 본능적인 어떤 행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생명을 구하시려 대신 희생하신

최고의 값진 죽음이었던 것이다.

 

-가가와 도요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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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훈련에 대한 가장 잘못된 오해는 바로 사역훈련이 성도들의 머리를 키워주는 훈련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오해는 성경공부와 사역훈련을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오해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오해가 생길까요?  그것은 사역훈련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는 교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전인격적인 훈련으로서의 사역훈련이 아니라 지식만 키워주는 훈련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전인격적인 사역훈련일까요?  오늘은 사역훈련이 전인격적인 훈련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1. 사역훈련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사역훈련은 귀납적 성경공부라는 방법을 통해 성경에서 말하는 제자의 모습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훈련생들은 교회와 세상과 가정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사역훈련 성경공부 시간에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공부를 통해 훈련생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훈련생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성경공부를 통해 배운 내용으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비춰봤을 때 과연 내 모습에 무엇이 문제인가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는가를 발견하는 시간이 바로 사역훈련입니다.  그래서 사역훈련은 결코 우리의 머리만 키우는 훈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의지가 약한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감정을 해결하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훈련생은 사역훈련 성경공부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사역훈련은 지식만 머리에 집어넣는 훈련이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2. 사역훈련은 서로의 모습을 통해 배우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일반 성경공부에서는 성경 본문이나 상황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의견을 나누면서 성경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쌓는 것이 목적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성경을 어떻게 보는가 그 다른 해석의 시각을 통해서도 배웁니다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성경입니다.  하지만 사역훈련 성경공부에서는 성경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을 통해 돌아본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그런 나눔을 통해 제자의 모습을 갖춰가기 위해 나에게 부족한 것이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실 사역훈련 과정에서 훈련생들은 성경공부를 통해 배우는 것 보다는 나와는 다른 환경에 있는 훈련생들이 성경을 통해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나누는 것을 들으면서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문제 속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훈련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3. 사역훈련은 배운 대로 사는 훈련입니다.

하지만 사역훈련을 진짜 제자훈련 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역훈련 성경공부가 끝난 다음부터 시작되는 훈련생들의 삶의 현장입니다.  일반 성경공부는 성경공부를 위해 모이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그 시간이 아니면 성경의 내용을 배울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역훈련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역훈련은 무언가를 배운데 만족하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자신의 모습에서 부족한 것 고쳐야 할 부분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을 실제로 고쳐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사역훈련입니다.  일주일 중 하루 3-4시간동안 진행되는 성경공부 모임을 제외한 그 나머지 시간이 바로 사역훈련의 시간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제자훈련은 결코 머리만 키우는 훈련이 아니라 삶의 전인격적인 훈련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전인격적인 사역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전인격적인 사역훈련을 하고 있는 당신을 통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더 많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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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지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종이 봉지를 위조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이유는 위조한 가치가 있는 것만

위조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그가 있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모조하려고 한다( 8:9-11, 7:22).

예를 들면 점쾌, 강신술, 운수, 점성학 등을 통해( 20:6, 19:26, 왕하 21:6),

가짜 인도하심을 나타낼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당신을 예수님께로 가까이 이끌고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하실 것이지만,

사탄의 인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당신을 멀어지게 하고

당신을 속박할 것이다.

 

진정한 인도하심인가를 시험해보는 가지는

당신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인도하심이

성경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성령님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도록 인도하시지 않는다.

 

로렌 커닝햄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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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3 4과에서는 말에 대해 배우게 된다.  훈련생들은 이 과를 통해 혀가 얼마나 부정적인 커다란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고, 혀를 제어하는 일이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임을 인정하고 의탁하게 된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성숙한 언어생활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 갈 수 있는지에 함께 나누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에 대해 다루고 있는 소책자 『은혜로운 말』 (캐롤 메이홀, 네비게이토 출판사) 3 4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공부시간이나 교제시간이 아닌 일상생활 중에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최근에 나누었던 대화를 세 가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에서 대화라 함은 인사와 같은 의례적인 말이 아니고, 마음을 나누는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나눈 그 대화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대화의 내용의 차이는 바로 마음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 12:34)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가 있을 때, 우리의 화제의 중심도 그런 것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깊이 거하는 삶을 살고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농담이나 가벼운 이야기들을 전혀 하지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내용의 전부일 때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귀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 때 가능합니다.  이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물론 하나님을 떠나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삶 가운데 모셔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당신 안에 거하기를 원하시며, 그것도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주님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하라”고 하시며 그렇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해 주십니다.

 

찬양

통화나 커피를 들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눌 때 보면,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주로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 문제들이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나 축복들이 아닙니다.  주님께 대한 찬양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말이 찬양으로 가득한 하루가 되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눔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시는 교훈을 깨닫게 하며, 진정한 격려를 주게 됩니다.

 

격려와 위로

참된 격려자로서 자질을 기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진정으로 격려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능력과 아이디어를 주셔서 격려하고 위로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게 해 주실 것입니다.

 

지혜와 공의

사랑과 진리는 언제나 병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말에는 진리를 간과하고 사랑만 강조하거나, 진리는 담겨 있지만 사랑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랑과 진리가 우리말을 걸러 주는 여과기 구실을 한다면, 입 밖에 나오지 못할 말들이 많을 것입니다.

 

온유함

온유한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온유함이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주님의 온유함을 나타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선을 위한 것이든 악을 위한 것이든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의 힘을 깨닫기 바랍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잠언 18:21).  혀는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혀를 잘 제어하면 우리의 입은 생명의 샘이 될 것이며, 우리의 말은 귀를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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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세계의 모든 종교와

뚜렷이 구별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구속의 원리를 간직하고 있을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만이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순간에도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대부분의 묘비에는 이곳에 OOO 잠들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지만

그리스도의 무덤에는 주님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요셉의 정원에는 역사상 유일한 무덤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찾아가 보아야 성소(聖所) 받들어 모실 유물과

예배드려야 무덤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유사 이래 많은 성인(聖人) 현인(賢人) 선인(善人)들이

저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았고

현재도 살아 있지만

저들은 죽음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구주를 믿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을 이기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만이 영원히 살아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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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사역훈련에 대해 갖는 오해 가운데 하나가 바로사역훈련을 하면 머리만 커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오해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훈련받은 대로 살지 못하는 훈련생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 공부와 훈련은 다르다

사역훈련은 머리에 성경지식만 키우는 공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훈련입니다.  공부와 훈련은 다릅니다.  공부는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훈련은 습득한 지식이 얼마나 몸에 배었는가를 통해 그 성패를 판가름 짓습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제자훈련 시간을 통해 제자란 누구이며 제자가 되는 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배우기만 한다면 그것은 성경공부가 맞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제자훈련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배운 대로 살았는가를 반드시 점검해야만 사역훈련의 마침표를 찍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것을 배우고도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 것보다 단 하나를 배우더라도 그대로 살아보고 그래서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더 나은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훈련은 측정 가능하다

가령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꿈인 사격 선수가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총을 쏘면 총알이 몇 미터를 어떤 식으로 날아가는지 혹은 총을 쏠 때에는 호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지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총을 잘 쏘지 못한다면 그는 절대로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사격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은 총을 잘 쏘는 선수입니다.  따라서 그가 꿈을 이루려 한다면 총 쏘는 법을 훈련해야 하고 실제로 과녁이 표적을 정확하게 맞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잘 훈련 되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그가 얼마나 정확하게 표적을 맞추는가를 통해 측정이 가능합니다.

 

3. 제자훈련은 삶의 현장에서 측정 된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제자/사역훈련에 대해 몇 점을 줄 수 있습니까?  당신은 과연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 훈련한 만큼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것을 측정하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처해 있는 삶의 현장에서 당신과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에게 지난 훈련의 기간 동안 당신에게 일어난 변화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당신에 대해 몇 가지의 변화된 부분을 말해준다면, 그리고 그 변화가 긍정적인 것이라면 당신의 제자/사역훈련은 아마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별로 변한 것이 없는데?”, 또는....... 글쎄,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없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린다면 당신의 사역훈련은 훈련이 아니라 공부에 가까웠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사역훈련 과정에서 배운 것을 단 한 가지라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보십시오.  그 실천을 통해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변화의 흔적을 발견할 때까지, 그리고 당신에게! 당신 완전히 달라졌어!”라고 말할 때까지 노력하십시오.

 

사역훈련을 통해 당신이 얻은 유익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새롭게 알았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훈련 과정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당신의 삶의 현장에서 제자훈련을 통해 배운 대로 실천함으로써 일어난 변화의 열매를 소유하십시오.  그 열매를 얻기 위해 오늘 당장 내가 실천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그것을 미루지 마십시오.  처음은 열매가 작을지 모르지만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은 사역훈련 때문에 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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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 언덕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에게 최후의 도전을 걸어왔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라고 외쳤다.

확실히 잘못된 도전이었다.

 

구세군의 창설자 Booth 오래 전에 말하기를

예수께서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믿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수의 죽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 오셨다.

나아가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체였다.

만일 예수가 십자가를 거부했거나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사람들을 위한 고통을 예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도 넘을 없는 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의 길을 모두 갔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가 십자가를 쳐다볼 때에 예수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너희를 한없는 사랑을 가지고

세상에서 너희에게 임하는

모든 고통을 담당할 있는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신다

만일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우리는 그를 믿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것을 참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소유할 있는 것이며,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편히 있는 것이다.

 

-윌리엄 바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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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을 구별 짓는 주된 표지는 무엇인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증해 주는 검증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각자 서로 다른 대답을 있을 것이다.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구분해 주는 것은 진리’,

정통적이고 올바른 신조,

개혁주의의 신앙고백들에 대한 충성이라고 대답한다.

옳다!

진리는 신성한 것이고,

건전한 교리는 교회의 안전에 지극히 중요하다.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계시된 종교의 ‘부탁한 것을 지키고 굳게 서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지키고’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명령을 받는다.

우리는 이러한 엄숙한 권고들을 결코 잊어서는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다’

게다가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

그러므로 사랑은 지식보다 위대하다.

 

그리고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진정한 제자의 표지가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인정하노라‘

루터가 말했듯이 이신칭의

“참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모든 기독교 교리 중에 1 조항이다”

그리고 Granmer 이것에 같은 뜻의 부정적인 말을 덧붙였다.

“누구든지 이것(교리) 부인하는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될 없다” 

현대 복음주의자들의 진술을 인용하면,

이신칭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라는 전체 섭리의 핵심이요

중추이며 모범이고 진수이다”

나는 말에 동의한다.

종교개혁의 슬로건이었던 ‘Solo Fide’,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은

또한 우리의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도가

사랑이 믿음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로서 종교적 체험 강조한다.

체험은 보통 특별하고 생생한 것으로서,

그들은 체험이 모든 사람들에게 재현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것 역시 어느 정도 옳다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성령의 능력과 기름부으심은 실재하는 것이다.

‘말할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에 비하면

다른 것들에 마음이 쏠리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체험보다 위대하다.

 

마지막 범주의 사람들은

실제적인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하는 표지로 섬김’,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강조한다.

역시 옳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을 옹호하셨으므로

그분의 제자들 역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궁핍한 사람을 보고

그의 필요를 채워줄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우리 안에 있다고 주장할 있단 말인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특혜적 선택

또는 우선적 관심이 새로이 강조되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

그러므로 사랑은 봉사보다 위대하다.

 

요약하면,

지식은 매우 중요하고,

믿음은 필수 불가결하며,

종교적 체험은 필요하고,

봉사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사도 바울은 사랑의 우월성을 인정한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자신을 주시는 완벽한 사랑으로 서로 영원히 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랑이시고

우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보이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답으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일가는,

중요하고 탁월한 특성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구분 짓는 특성이다.

어느 것도 그것을 몰아내거나 대체할 없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스토트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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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훈련을 하면서 한 가지 자신을 점검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굶주려 있습니까?  사실 굶주림은 이상한 상태입니다.  굶주림이 채워지면 언제나 얼마 후에 더 큰 굶주림이 찾아옵니다.  특히 인간 영혼의 유일한 참 중독이요, 우리가 갈망하도록 지어진 유일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굶주림은 더합니다.  시편기자가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34:8), 말한 것도 그래서 일 것입니다.  이 구절은 거룩한 중독과 하나님께 대한 강박으로 가는 신성한 관문입니다.  그분을 향한 열정에 불을 지필수록 우리의 열정과 굶주림은 더 커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대한 굶주림을 채울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임재에 초점을 두십시오.

굶주림을 채우는 비결은 많지만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능력보다 하나님의 임재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모세의 삶과 사역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던 최고의 강대국을 낮추셨고 자기 백성을 구원해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그 이상에 굶주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손의 선물과 공급 그 이상을 원했습니다.  그는 능력보다 친밀함을 택했습니다.  한마디로 모세는감추지 않은 하나님 모습, 막히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3:18-20).

 

2. 쉽게 만족하지 마십시오.

C. S. 루이스는 『The Weight of Glory』에서우리는 터무니없이 쉽게 만족 한다. 말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의 손의 선물과 공급에만 만족합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심의 바다에서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거품일 뿐입니다.  일리노어 루스벨트는 성경 속에 기도문을 하나 꽂고 다녔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주는 우리에게 없는 마음을 주셨고 절대 찾을 없는 것을 구하게 하셨나이다........ 무리한 일이지만 그만두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부득이 주께 달려가 힘을 얻게 하소서.”

 

3. 하나님 자신을 담을 있을 만큼 마음을 넓혀달라고 기도하십시오.

Mother Teresa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를 사랑하라. 하루 동안 기도의 필요성을 자주 느끼라. 기도는 하나님의 선물인 그분 자신을 담을 수 있을 만큼 우리 마음을 넓혀 준다. 구하고 찾으라. 그분을 받아들여 당신 것으로 지킬 수 있을 만큼 당신 마음이 커질 것이다.”  

 

훈련의 마무리가 끝이 아니라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자들로서 하나님께 더 굶주려가는 영적부요의 출발점이 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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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習慣) 만큼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도 없습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불릴 만큼 그 위력이 대단합니다.  제자훈련 제1권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습관을 바꾸지 못하면, 우리가 목표하는 삶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훈련은 실패한 훈련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1. 습관의 정의

습관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같은 상황에서 반복된 행동의 안정화/자동화된 수행’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습관은 좁은 의미로는 반복에 의한 근육 운동이나 건() 운동이 정형화(定型化)되는 것을 말하지만,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식사나 수면 습관, 풍속, 문화 등 넓은 관습에 대해서도 습관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습관이란 정형적이며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반응이라는 점에서 자유로이 변화하는 의도적(意圖的) 반응과 구별됩니다.  또한 습관은 습득(習得)된 결과라는 점에서 선천적 반응과 구별됩니다.  술과 담배 또는 특정 약물의 상용(常用)이나, 열대나 한대에서의 장기 생활, 우주비행에서의 기압이나 무중력상태에 대한 적응 등 특수한 외적인 상황에 대한 반응의 정형화는 ‘순화’(馴化)라고 하여 습관과 구별합니다.

 

2. 습관형성의 조건

습관형성은 조기(早期)에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일반적인 인생에 적용해 보면, 유아기가 바로 습관형성의 적기입니다.  그런데 습관은 모범에 의해 형성되는 성격이 있습니다.  어떤 본을 보느냐에 따라 습관의 내용이 정해집니다.  아이들의 경우 기본적인 생활습관, 사회적인 습관은 부모의 좋은 모범으로 형성됩니다.  이처럼 습관은 넓은 의미에서 볼 때 학습의 결과이며, 경험의 반복과 생활체의 욕구충족이 그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습관형성과 조건형성은 흔히 동의어(同義語)로 사용됩니다.  어떤 환경, 어떤 조건을 만나느냐가 습관형성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3. 거룩한 습관의 형성의 걸림돌

습관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와 형성 조건에 관한 설명에서 보았듯이, 새로운 습관을 형성한다는 것은 힘이 들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지속적인 자극과 노력, 그리고 좋은 환경이 조성되면 새로운 습관은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훈련을 통한 습관형성은 절호의 기회이고 할 수 있습니다.  훈련 과정을 통해 거룩한 습관을 형성할 수 없다면, 그 이후에는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만 합니다.  훈련생이나 인도자로 모두 이 점을 기억하고 훈련에 임해야 합니다.  혹 ‘훈련이니까 천천히 대강하지 뭐하지’라는 생각을 한다면 기회를 잃고 큰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4.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 습관

훈련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새로운 습관은, 우선 우리의 일상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시간을 관리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을 규모 있게 사용하지 못하면 늘 바삐 움직이기만 하고 소중한 일에 자신의 삶을 투자하지 못합니다.  시간을 규모 있게 사용하기 위한 습관을 길어야 합니다.  우선 자신의 일과 중에 낭비되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고 계획에 따라 일과를 진행하는 훈련을 거듭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계발해야 할 부분은 영적 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기도와 경건의 시간, 성경읽기 등과 같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영적 습관들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상황이나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심하고 흔들리는 상태라면 그것은 아직 제대로 자기 훈련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이자 습관으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훈련의 첫 순간 서약하고 각오한 것처럼 거룩과 성결을 향한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습관의 연장일 수도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었던 급박한 상황이나 위기의 순간에는 자기에게 익숙한 쪽으로 즉 습관을 따라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즉 평소에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었느냐가 중요합니다.  훈련 과정을 통해 거룩한 습관을 계발한 사람만이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습관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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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본래 사람이시던 분이

새로이 하나님의 아들까지 것이 아니었다.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시던 성자께서

인성까지 취하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

성자 하나님께서 인성까지 취하신 긍극적 목적은

물론 구속 사역의 성취를 통한 우리의 구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의 가장 직접적 결과는

한마디로 임마누엘 요약할 있다.

임마누엘(Immanuel)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히브리어를 그대로 음역한 것이다.

 

육신을 가진 우리는 보고 듣고 만지는 것과

더욱 친근하게 교감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히말라야의 산맥이나 푸르고 드넓은 초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는 더욱 간절히 다가온다. 

하물며 하나님이 직접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고

임마누엘로서 역사에 직접 뛰어 들어오사

우리 눈에 보이시게 되었음이랴! 

하나님은 모든 존재와 역사의 기반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장엄과 신비의 원천이시요

은혜와 축복의 근원이시다.

따라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는 사실은

결국 우리가 진리와 사랑과 신비의 실체를

직접 보고 듣는 감격을 자아내는 것이다.

 

또한 육신에 얽매인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 눈에 보이신 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실상이요 증거로서 활력을 준다( 11:1).

사실 대부분 그리스도의 성육신 초림을

직접 목격한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신약성경은

어떤 면으로는 임마누엘 사건의 감격으로 가득한 증언이라 있다. 

예수님도 나를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 선언하셨다( 14:9).

그렇다면 지금 순간

나는 임마누엘 사건의 감격을 얼마나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가?

 

-헨리 G. 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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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당신이 인생을 보는 방식을 하나님은 바꾸실 있다.

증거가 필요한가?

엘리사와 사환의 예가 어떨까?

사람이 도단에 있었을 ,

성난 왕은 군사를 보내 그들을 멸하려 했다.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 드는 자가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5-17)

 

사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천사를 보았다.

당신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없다고

누가 말할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없애 주겠다고 약속하시지 않는다.

문제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꿔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시각을 교정해 주실 있다.

 

그분은 물으신다.

“누가…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그리고 답하신다.

“나 여호와가 아니뇨”( 4:11)

 

하나님은 발람으로 천사를 보게 하셨고,

엘리사로 군대를 보게 하셨고,

야곱으로 사다리를 보게 하셨고,

사울로 구주를 보게 하셨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10:51)

 

많은 사람이 소경의 간구를 올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분명한 시력을 얻어 돌아갔다.

하나님이 당신에게도 똑같은 일을 해주시지 않으리라

누가 말할 있겠는가?

 

맥스 루카도 『예수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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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잃어버린 세상을

자신에게 이끌기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셔서

당신을 그분께 동참하도록 초청하십니다. 

당신이 순종할 ,

하나님은 당신은 물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알도록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당신을 통해서 일하심을 경험할 ,

당신은 하나님을 보다 충만하게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것을 염두해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7:3).

당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을 경험함에 따라

당신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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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

지위도 필요없다.

훈장도 필요 없다.

명사인 친구도 필요 없다.

또 선교사, 목사, 전도사의 동정도 필요 없다.

다만 그리스도를 알고 싶다. 

 

또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만 알면 모든 선한 일은 내게로 온다.

마음의 평화가 온다. 

한없는 생명이 온다.

희망과 기쁨과 만족이 온다.

나는 다른 무엇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를 바란다.

 

그가 와서 내 마음에 계시기를 바란다. 

나의 이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심을 감사한다.

이 소원은 우리가 먼저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로 이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셨다. 

소원을 주시고 또 이루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오직 내가 그 안에 저가 내 안에 영원히 거하게 되기를 소망하자.

 

-우찌무라 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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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닮은 인간은

영원한 구원에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영적인 존재만은 아니다.

먹고 입히고 치유하는 데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육체적인 존재만도 아니다.

또한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복지에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회적 존재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사회 내에 있는 영적-육체적 존재이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성경적으로 올바른 정의이다.

 

그리스도인은 비기독교적 세상과는

구별되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별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남들과 똑같아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나머지 인류와 구별되어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이 된다는 뜻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다르게 되라고 부르신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다.

그의 헌신은 부분적이지 않고 전체적이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주일에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평일에는 이방인인 그런 사람이 아니다.

집에서는 그리스도인이고,

직장에서는 비그리스도인인 그런 사람도 아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태도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의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기쁨과 평안은 없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

, 우리의 인격적 성숙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예수님의 주권적인 사랑의 통치,

주되심 아래 종속시키는 것이다.

 

스토트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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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본인의 영적 은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고 그것을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더욱 열매 맺는 사역훈련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다음 몇 가지 지침을 통해 본인은 과연 어떤 영적 은사가 있는지 발견해 보시길 바랍니다.

 

1. 신앙의 공동체에 속에서 활동하라

나의 은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믿음으로 섬기도록 합니다.  여러 사역과 주변 사람들로 인해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의 은사를 조금씩 알도록 인도해 주실 겁니다.

 

2. 성령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영적 은사는 여러분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님의 외적 표현입니다(고전 12:7, 11).  성령 충만함을 받음으로써 영적 은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8절에서 바울은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3. 물으라

먼저 하나님께 영적은사에 대한 지혜와 이해를 달라고 구하십시오(1:5).  여러분이 영적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 응답과 인도를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반드시 깨닫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4. 영적 리더로부터 기도와 분별, 그리고 축복을 구하라

영적 리더의 기도를 통해 우리의 영적 은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역을 시작할 때 반드시 영적 리더를 찾아가 성령의 붙들림이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받거나 부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이미 여러분의 사역에 함께 봉사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5. 열매

성령께서 영적 은사를 강권적으로 사용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은사를 통해 그분의 임재, 능력, 그리고 역사를 체험할 것입니다(고전 2:4-5).  이것을 소위 은사 테스트라고도 합니다.  만약 내가 전도하는 은사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를 통해 사람들이 전도를 받고 있는지, 긍휼의 은사가 있으면 나를 통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안함을 느끼는지 보는 것입니다.

 

6. 영적 은사 테스트를 사용하라.

물론 이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불신자도 이것을 사용해 본인의 은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테스트는 실제적인 경험과 주변의 피드백을 통해 더욱 명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강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함께 어떤 일을 통해 가장 많은 만족감을 얻는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는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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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훈련을 하면서 한 가지 자신을 점검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굶주려 있습니까?  사실 굶주림은 이상한 상태입니다.  굶주림이 채워지면 언제나 얼마 후에 더 큰 굶주림이 찾아옵니다.  특히 인간 영혼의 유일한 참 중독이요 우리가 갈망하도록 지어진 유일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굶주림은 더합니다.  시편기자가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34:8), 말한 것도 그래서 일 것입니다.  이 구절은 거룩한 중독과 하나님께 대한 강박으로 가는 신성한 관문입니다.  그분을 향한 열정에 불을 지필수록 우리의 열정과 굶주림은 더 커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대한 굶주림을 채울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임재에 초점을 두십시오.

굶주림을 채우는 비결은 많지만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능력보다 하나님의 임재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모세의 삶과 사역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던 최고의 강대국을 낮추셨고 자기 백성을 구원해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그 이상에 굶주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손의 선물과 공급 그 이상을 원했습니다.  그는 능력보다 친밀함을 택했습니다.  한마디로 모세는감추지 않은 하나님 모습, 막히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습니다하나님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3:18-20).

 

2. 쉽게 만족하지 마십시오.

C. S. 루이스는 『The Weight of Glory』에서우리는 터무니없이 쉽게 만족 한다 말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의 손의 선물과 공급에만 만족합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심의 바다에서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거품일 뿐입니다.  일리노어 루스벨트는 성경 속에 기도문을 하나 꽂고 다녔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주는 우리에게 없는 마음을 주셨고 절대 찾을 없는 것을 구하게 하셨나이다........ 무리한 일이지만 그만두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부득이 주께 달려가 힘을 얻게 하소서.”

 

3. 하나님 자신을 담을 있을 만큼 마음을 넓혀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테레사 수녀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를 사랑하라. 하루 동안 기도의 필요성을 자주 느끼라. 기도는 하나님의 선물인 그분 자신을 담을 수 있을 만큼 우리 마음을 넓혀 준다. 구하고 찾으라. 그분을 받아들여 당신 것으로 지킬 수 있을 만큼 당신 마음이 커질 것이다.”

훈련의 마무리가 끝이 아니라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자들로서 하나님께 더 굶주려가는 영적부요의 출발점이 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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