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볼만한 책'에 해당되는 글 54건

  1. 2016.08.18 산상수훈
  2. 2016.06.09 회개했는가?
  3. 2016.04.14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4. 2016.02.10 이것이 교회다
  5. 2015.12.30 놀라운 회심 이야기
  6. 2015.10.07 ‘죽은’ 정통
  7. 2015.07.22 성령을 소멸하는 방식
  8. 2015.05.20 오염된 교리
  9. 2015.02.25 기독교의 기본 진리
  10. 2015.01.07 토마토와 빨간 사과
  11. 2014.11.19 균형 잡힌 부흥론
  12. 2014.10.01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13. 2014.08.13 분쟁하는 목사와 교인들
  14. 2014.07.02 예배인가, 쇼인가!
  15. 2014.05.21 양과 목자
  16. 2014.04.03 영광의 문
  17. 2014.02.19 순전한 기독교
  18. 2014.01.08 구속사
  19. 2013.10.09 주기도문 해설
  20. 2013.08.28 직분론
  21. 2013.06.05 중보기도
  22. 2013.04.24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23. 2013.03.12 제자도
  24. 2013.02.05 파인애플 스토리

거짓된 율법관에 빠져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동시에 거짓된 은혜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은혜는 율법과 별개의 것이며

율법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도덕률 폐기론’이라 불러지는바

되는대로 태만하여 빈둥거리며,

죄 짓는 생활을 살기 위해

은혜론을 악용하는 사람들의 태도라 하겠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문제가 없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이것은 절대 그릇되고 거짓된 은혜관입니다.

은혜의 전 목적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로 율법을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말하는 소위 그 은혜가

(여러분이 받았다고 말하는 그 은혜),

여러분으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한다면

여러분은 은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리적 체험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여 그로 율법을 지킬 수 있게 하며,

그리스도가 의로웠던 것처럼 의롭게 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은사)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전히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그것인 것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계명을 지키기로 열망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


이 두 가지는 분리시켜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은혜는 감상적인(sentimental) 것이 아닙니다.

성결은 하나의 체험도 아닙니다.

우리로 율법을 사랑하며,

이 율법을 지키도록 의욕 하게 하는

이 새 마음과 성향(disposition)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능력으로 우리로 하여금 율법을 성취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이 말씀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까지 삼년의 짧은 세월 동안

그분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영원하고 영속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다시 마태복음 7장에서 강력히 주장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입니까?

십계명과 도덕법입니다.

이 법들은 폐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인은 하나님을 미워하며 그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율법에 굴복합니다.

기독교인 이렇게 되기를 원하며 이렇게 될 능력을 받았습니다.

성경 로마서 8장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이드 존스 『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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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성이 있다.

혹시 당신의 현재 모습이 회개하지 않은 사람과 닮아 있지는 않은가?

당신의 진정한 속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라.

 

첫째: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한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 안에서

영원히 사는 천국의 완벽한 성결의 삶이나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국의 축복을 소망하는 것보다

땅에서 안락함이나 돈이나 명예를 축적하는 것에 관심이 온통 쏠려 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공언하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보다는 세상과 육신의 즐거움에 고정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결코 느끼지도 맛보지도 못한다.

 

즉, 하늘보다 땅을 더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보다 육신의 즐거움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요,

아직 회개하지 못한 죄인이다.

 

반면 회개한 사람은 성령의 조명을 받아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분별한다.

장차 하나님과 누리게 될 영광을 확실히 믿고

세상 어떤 것보다 그 소망에 마음을 기울인다.

세상의 모든 물질이나 인간의 모든 쾌락을 준다고 유혹해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영원토록 그분을 사랑하고 찬양하며 사는 삶을 택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하나님 외에는 자기 영혼을 채워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하늘을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리겠다고 단호히 각오한다.

회개한 사람은 한마디로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 높이며

땅에서 잘되는 것보다 하늘에서 잘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긴다.

 

둘째: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육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여긴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도 물론 말씀을 듣고 읽으며,

외적으로 신앙적인 의무를 수행하고 추잡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영원한 영광을 얻는 것을

인생의 으뜸가는 일로 삼지 않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부수적인 것으로 끝나버린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세상의 쓰레기 옆에 갖다놓는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과 절교하면서까지 

하늘을 얻을 마음이 추호도 없기 때문에

육신의 즐거움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하나님을 버린다.

 

반면,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구원받는 것을 인생의 주된 목표와 관심으로 삼는다.

이생에서 받은 모든 은혜와 축복을

또 다른 삶으로 향하는 여정의 도구로 여기며

하나님 안에서만 피조물을 사용한다.

 

회개한 사람은 죄를 멀리하고,

자기 삶에서 죄를 제거하기를 갈망하며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간절히 기도한다.

혹 죄를 범했다면 

그것이 그의 마음과 삶의 방향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즉시 일어나 뉘우치고 회개하며

죄로 아는 것을 감히 고의로 저지르지 않는다.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과 영광의 소망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서

세상 그 무엇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셋째: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영혼의 의사이신 그리스도께 치료 받기를 거부한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겉으로 신앙생활을 할지라도

자기 영혼을 그리스도께 절대 내맡기지 않으며,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명령에도 

결코 고분고분하게 순종하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죄인들을 죄책감과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하고 온전히 치유하여,

하나님께 인도하는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께 다스림 받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회개한 사람은 자기가 전에 죄로 사망했던 자임을 알고 있다.

하나님과 불화하여 천국의 소망을 상실하고,

영원한 형벌에 처할 위험에 처했던 자임을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구속의 선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인생의 구세주로 믿고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을 얻기 위해

자신을 그리스도께 온전히 내맡긴다.

 

회개한 사람의 심령에는 한마디로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

회개한 사람의 삶은 그를 위해 친히 목숨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그렇다! 회개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리처드 백스터 『회개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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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느냐는 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네 가지 중요한 요소를 보게 됩니다.

출애굽기 3장,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경험한 것이 한 예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 대개는 그 개인에게 독특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 이것이 내가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구나.

나의 선조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들의 떨기나무 경험을 가졌고

이번 것은 내 떨기나무 경험이구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독특한 경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들은 사람은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알았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모세는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죠.

모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해서 간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그의 백성들에게 모세에게 말씀을 주신이가

그들 조상 하나님이 자신이셨음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말씀하셨을 때 말씀을 받은 사람은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았다.

모세는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어떻게 일하기를 원하시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그토록 많은 핑계를 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수께끼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메시지를 명확하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가 그분과의 만남이다.

모세가 이런 말을 했다면 얼마나 어리석게 들렸을까요?

“불붙은 떨기나무와의 아주 좋은 만남이었어.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게 나를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당신에게 진리를 보여주시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신 것은 

구약의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성경, 기도, 환경,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시면

당신은 그것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그분과의 만남입니다.

 

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 14).

 

빌립은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예수님은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 앞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것과 동일하게

제자들도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 

곧 하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듣는 것이 

곧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서를 지나 사도행전 그리고 현재로 넘어가면

우리는 종종 우리 마음의 모든 고정관념을 바꾸게 됩니다.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그의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기를

멈추신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성령님과의 만남이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부터 현재까지 

하나님은 성령으로 그의 사람들에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항상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든지

자신이 선택하신 방법으로 당신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당신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며.

아버지께 들은 말씀을 당신에게 해주시며,

무슨 일이 닥칠 것인지 알려주시고,

예수님을 증거 하심으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정말 그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까?

그렇지요!

하나님이 당신을 쓰시고자 하실 때,

하나님이 어디서 일하고 계신지를 가르쳐 주실까요?

물론입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어려움이 있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심장부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헨리 블랙가비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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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교회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은 ‘친교’이다.

그 외의 대답으로는 ‘훌륭한 설교’, ‘음악’, ‘프로그램’,

‘자녀들을 위한 청소년 활동’, ‘편안한 마음’ 등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교회를 찾아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맥처치’(MaChuech) 심리이다.

오늘은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먹고, 

내일은 웬디스에서 ‘샐러드’를 즐긴다.

 

이처럼 교회는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는 소매점이 되었고,

신앙은 일개 상품으로 전략해 버렸다.

현대인들은 교회와 목사를 자주 바꾼다.

심지어는 거래 은행이나 단골 식료품 가게를 갈아치우듯이

쉽게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종교 소비자들의 욕구는 여론 조사에 잘 나타나 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에서 시행한 조사에 의하면

전체 미국인 중 56퍼센트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그 중 45퍼센트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26퍼센트는 “마음의 평화와 정신적인 안정” 때문에

교회에 출석한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 결과 교리 문제는 그리 중요시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순수성을 

분별해 낼 수 있는 척도는 무엇인가?

이것은 중요하고 실제적이 질문이며,

기독교 신앙이 형성된 이래로 계속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에 대한 기준은 성경이 제공하고 있으며,

초기 교회의 신조들은 

그 성경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니케아 회의에서 결정된 니케아 신조에서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이야기 하고 있다.

 

교회는 우선 하나가 되어야 한다. 

곧 일치의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곧 모든 교인은 의로운 사람을 살아야 한다.

교회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곧 그 범위가 우주적이다.

교회는 사도적이어야 한다. 

곧 사도들의 가르침에 뿌림을 두며 그 가르침들을 선포해야 한다.

 

교회가 성경적인 믿음에 일치하며 

교회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증거는

바로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며, 

세례와 성찬을 수행하며,

제자훈련과 그 맡은 바 책임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를 위협하는 것은 

주일 아침마다 친숙한 얼굴로 눈에 띄지 않게

교회 문을 슬그머니 들어오는 

세상의 문화적 가치와 관행의 교묘하면서도 점진적인 수용이다.

세상적인 타협적으로 수용하는 행위는 

언제나 복음의 날카로운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

 

교회는 문화와 세대에 예민해야 한다.

복음 전도의 방법은 

상대방의 배경과 연령과 이해 수준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구별해야 할 차이점이 있다.

교회가 전도의 테크닉과 진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대는 변해도 진리를 변하지 않는다.

 

교회는 언제나 성경과 그 역사적인 신앙고백 위에 서 있다.

성경과 신앙고백을 토대로 하는 교회는 

세상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언제나 세상의 반감을 샀다.

 

오늘날의 교회는 반감을 사는 대신,

거의 무의식중에 점차 세상적인 것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아주 작은 것, 

거의 의식할 수 없는 것부터 시작된다.

 

가령 죄와 회개에 대해 

본격적으로 가르쳐 본 일이 없는 목사라든지,

성경에 나오는 날카로운 말씀의 칼날을 변질시켜 

무디게 만들어 버리는 목사로부터,

‘풍성한 삶’이 곧 중상류층의 풍족한 생활을 의미하는 양, 

적당히 설교하는 목사들,

죄와 사악한 행동을 책망하기 꺼리는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그 타협은 시작된다.

 

찰스 콜슨 『이것이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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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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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심령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사람들은 먼저 자신들이 나면서부터 비참한 상태였다는 것과

자신들이 처해 있는 영원한 멸망의 위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에 사로잡게 되자

두 가지 결과가 생겼습니다.

하나는 즉각 자신들의 죄악 된 행실을 버리게 되었고,

더 방탕한 사람들은 이전의 악과 방종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결과는 사람들이 구원의 수단을

아주 진지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교회 예배와 사적 모임에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그들의 눈을 여셔서

마음으로 그분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의 충만함과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그분의 의지를 깨닫게 하실 때,

사람들의 감정이 때로 어떻게 움직이며 반응하는가 보는 것은

아주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전에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생각으로 좌절하고

죄책감 때문에 깊은 수렁에 잠겨

도무지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수 없는 자들이라 스스로 여겼었는데,

이제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심장이 방망이질 쳤습니다.

눈물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기쁨과 뒤범벅되었습니다.

때로 그들은 혼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성령의 회심시키시는 역사는

신앙의 위대한 일들이 확실히 실재한다는 것을

수시로 비상하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일들이 얼마나 신성하고 탁월한지를 맛보았습니다.

그것은 수백 권의 책에 담긴 논증을 읽는 것보다

그들에게 더 크게 확신시켜 줍니다.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니며 사악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낮추는 것은

그들이 받은 빛과 기쁨에 정비례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처럼 하나님에 대해 비상하게 깨닫게 됨으로써

구별되었던 사람들이 잘난 척하거나 

스스로 대단한 척하거나

혹은 광신자들처럼 자족하는 분위기를 풍긴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온유함과, 온건함, 

자신을 불신하고 낮추는 영이 충만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회심했다고 여겨지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재 속에 엎드리고 싶어 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집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놀라운 회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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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정통!

분명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복음적인 사람들 각자에게도 

가장 큰 위험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죽은 정통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합니다.

 

신약 교회의 매우 중요한 특징은 

자발성, 생명력, 생생함, 활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과 그 감화력에서 멀어지게 되면 

모든 것이 형식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배의 형식들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침체기에 빠진 교회는 예배 의식에 있어서 더 형식적이 되고

예배 형식을 채용하여 

공기도서나 의식서로 돌아가는 경향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형식적 종교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여러분이 부흥을 만날 때마다

그러한 유의 모든 일들이 멈추게 됨을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의식이나 공기도서나 절차나 예복이나 옷을 차려 입는 그런 일은 전혀 없고

다만 성령께 속한 자유와 일들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부릅니다.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바로 이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을 맞지 않을 때에 성가대에 중점을 둡니다.

또 성가대와 성개대의 독창자들을 돈을 주고 사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회중들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합니다.

성가대가 그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릅니다.

이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여러분은 교회 생활을 프로그램화하려는

매우 무서운 성향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다 짜여져 있습니다.

모든 항목이 미리 정해져 있고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시작하여 

어느 시점에 마쳐야 하는지가 다 정해져 있습니다.

 

복음적인 교회에서마저 

강사 목사에게 순서가 적힌 종이를 준다는 것을 저는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순서지대로 행할 것을 종용합니다.

즉 11시에 시작합니다.

성경을 봉독하고 순서지에 적힌 모든 것을 다 진행하여 12시가 됩니다.

그런 다음 축도가 이어집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분초를 다투어 정확하고 기술적으로 질서 있게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는 묻습니다.

그런 경우에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하실 틈이 있습니까?

아니,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앙에 통제 당하는 대신

우리가 신앙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로그램에 너무 매여 있어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틈이 없지 않습니까?

어째서 이처럼 형식적이 되었습니까?

모든 것을 이처럼 묶여 놓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성령께서 갑자기 임하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저는 매우 심각하게 

이 문제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로이드 존스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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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통적인 사람들이면서도

어떤 면에서 결함이 있는 경우들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누구나 다 정통이라고 주장한 개인들과 교회들이

생명이 없어 보이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러한 복음적인 교회에 임재하시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전통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관한 교리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지적하는 잘못은 

우리가 인격에 관한 교리,

참된 교리를 인격의 자리에 둘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사람들,

정통적인 사람들이 흔히 걸려 넘어지는 매우 흔한 함정입니다.

정통적이면서도 죽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교리에만 어떤 정의를 하는 데만 머물고,

교리의 목적은 그 교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다만 그 인격을 알게 하고 이해하게 하며

그 인격과 교제하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실로 오늘날 교회와 교단에서는 정통적이면서도 

아주 죽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구원에 아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교리에 차원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교리 자체를

그 인격을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오인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실질상 죽은 정통은 이단만큼 나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죽은 정통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교리에 대해 

성경적인 부분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메마르고 쓸모없어지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고전 8:1).

무엇보다 교리에 있어 균형을 잃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즉 진리의 어떤 면을 너무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우리의 모든 관심을 거기에 쏟아 버리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읽어보십시오.

로마서 14장에서 사도가 다루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 아닙니까?

고기 먹는 문제 외에

다른 것은 전혀 문제를 삼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밤낮 그 문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그들은 그 문제를 대화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나누고 서로 정죄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여기에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요점이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살아 있고 영적으로 깨어 있으며

교리에 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

그러한 교활한 시험을 가져 옵니다.

 

저는 주저 없이 예언의 문제에 너무 지나친 관심을 보인 나머지

메마르고 쓸모없게 된 사람들이 매우 많음을 단언합니다.

사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저 온 시간을 예언에만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가지 실례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세례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또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회 질서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감독 정치만이 교회의 절대적인 진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로교만이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메마른 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무서운 시대에

교회 정치, 봉사의 양태,

이러한 문제들에 온통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언제나 성령을 소멸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을 만날 때 

처음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한 교리에 사로잡혀

그것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그들에게 주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알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사람들을 이끄는 하나님이 사랑,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듯이 그들도 하나님을 알고 싶게 만드는

그 사랑이 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까?

균형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어리석고 비극적인 일은 없습니다.

교회의 역사,

부흥의 역사는 사람들이 균형 감각을 잃고

어떤 한 가지에 사로잡혀 획일화되어 버리면

성령은 언제나 소멸되며

그 역사는 언제나 방해를 받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로이드 존스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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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소위 역사 속에 나타난 위대한 부흥은

대중 히스테리 발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성령을 슬프게 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를 심리적인 일이나

히스테리적인 발작 증상으로 돌려버리는

이 무서운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우리가 이러한 일에 대해서 말할 때,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히스테리로 돌리지 않으면서도

성령을 소멸하는 똑같은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논증합니다.

 

“성령세례는 체험적인 것이 아니다.

성령세례는 거듭날 때 곧 중생할 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은 누구나 성령세례를 받았다.

우리 모두는 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성령세례를 위해 기도하거나,

교회에 성령을 부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거나,

성령으로 교회를 새롭게 해주시고

능력의 세례를 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것은 비체험적인 일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오순절에 일어났던 일은 다시 반복될 수 없으므로

우리가 성령을 부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그릇되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오순절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교회에 부어주셨다.

성령께서는 그 이후 교회 안에 늘 계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이런 유의 설교가 주를 이룰 때,

사람들이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멈추거나

교회가 오늘날 이러한 모습을 띠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논박하고 무시하며 부인하는 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성령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역사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만 역사하신다고 말합니다.

또 말씀으로 인해 오는 것 외에는 성령으로부터 어떠한 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볼 때 그들은 성령을 소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2절에 보면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향해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졌으나

성령께서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을 읽게 됩니다.

그는 비두니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를 막아 더 이상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살아계신 성령의 강력한 역사입니다.

말하자면 성령께서 직접 역사하고 통제하며 인도하고 명령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제시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것이 사람들의 생각에서 완전히 떠난 것 같습니다.

성령께서 교회에 임하시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심지어 복음주의적인 작가들마저도 부흥을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 성령을 소멸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보편적인 사역뿐 아니라 

특별한 사역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리는 

성령을 교회 전체에 부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흥이요, 성령의 임재하심이요,

성령의 통상적이고 보편적인 사역을 넘어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일입니다.

 

다시 여러분이 믿고 있는 성령의 교리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리지만,

세련되고 그럴듯한 교리를 다시 한 번 검토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때때로 성령을 통해서 행하시는

가장 주목받을만한 일을 배제시키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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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죄 사함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 다음,

점진적으로 자기중심이라는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화목함을 얻었으나

성령을 통해서 자기중심성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나무에 맺히는 열매의 질은

그 나무의 질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가르치셨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7-18).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들의 연속이 아니라,

타락하고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행위를 고치려면 

먼저 본성을 고쳐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무를 좋게 하라 

그러면 그 열매가 좋을 것이다”라고

하셨다(마 12:33, NIV 직역).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이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

심술궂은 사람을 상냥하게,

교만한 사람을 겸손하게,

이기적인 사람을 비이기적이게 하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성경은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선포한다.

이것은 복음의 영광이 하는 일이다.

니고데모를 당황하게 하였던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3,7).

 

이 엄청난 내적 변화를 이루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이 새로운 출생(신생, 중생, 거듭남이라고도 한다)은 

위로부터의 출생이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나야 한다.

예수님은 죽기 직전 다락방에서 열 두 제자와 모였을 때,

자신을 대신하여 세상에 오실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실제로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보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더 유리했다.

유리한 점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with)있을 뿐이지만,

“저(성령)는 … 너희 속에(in)”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요 14:17).

 

성령의 내주하심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득권이다.

만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롬 8:9).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은

우리가 이제부터는 죄 지을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갈등이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승리의 길이 열린 것이기도 하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싸움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하고 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갈 5:17).

 

이는 무미건조한 신학 이론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매일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끌어내리는 죄의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거룩으로 끌어올리는 반대 세력도 의식한다.

만일 육체의 고삐가 풀어지면,

우리는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악의 정글 속에 빠질 것이다.

반면에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게 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인격은 성령께서 가꾸시는 과수원으로 비유된다.

성령께서 나무를 좋게 하시게 하라.

그러면 그 열매도 좋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삶을 사는 비결이다.

 

존 스토트 『기독교의 기본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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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 텐 붐, 

나는 살인자입니다.

저는 포로수용소에 있으면서 

한 명의 간수가 아침이면 들어와서

저녁이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 간수는 우리가 옷을 벗고 샤워장으로 갈 때면 

놀리고 모욕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경멸의 의미로 침을 뱉었고 

나는 그를 미워했습니다.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살인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석방된 이후, 

다시는 독일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그 땅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강연 요청이 들어왔어요.

저는 정말 가기 싫었습니다.

조용히 등을 떠미는 주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강연 주제는 ‘용서’였습니다.

강연 도중, 

바로 그 간수가 청중들 틈에 섞여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가 나를 알아볼 리는 만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간수는 내 앞으로 나와서 맑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코리 자매님, 하나님의 용서가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게 드는 감정은 환멸,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주님께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이 사람을 사랑할 그 무엇도 제 안에 있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저와 가족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이 사람을 증오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 손을 그에게 주어라, 코리”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제 생애에서 행해 본 가장 힘든 일을 

미적미적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순종했습니다.

그 간단한 순종의 행동을 한 직후, 

마치 뜨뜻하고 미끈한 기름 같은 것이

제게 부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귓전을 생생히 울리는 듯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잘했다. 코리. 

내 자녀들은 그렇게 하는 거란다”

제 마음속에 미움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한 살인자가 다른 살인자를 포옹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말입니다.

 

레베카 피펏『토마토와 빨간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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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가짜 감정들이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높이 고조되었으나

겉만 번지르르한 감정들이 있지만 

참되고 거룩하며 견실한 감정들도 있습니다.

신앙 감정이 너무나 강력해서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격렬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일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됩니다.

그들은 그것이 과연 성령의 역사일 수 있는가 의심합니다.

그 격렬함이 오히려 악령이 역사한다는 표시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오류를 범합니다.

첫째, 만일 이 일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어떤 새롭고 비상한 점이 있으면

그들은 그것을 기준으로 

이 일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거부해 버립니다.

이 점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주시지 않은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하나님이 스스로를 제한하시지 않으신 곳에서 

그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둘째, 어떤 사람들이 성경 대신 역사나 과거의 관점을 가지고

이 일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오류를 범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일의 어떤 외적이고 부수적인 상황들을

때때로 광신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난 것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서 어떤 일치점을 발견하면

그들은 이 일 전부, 

혹은 최소한 그것의 본질을 거부하면서

그것이 ‘광신주의’라고 단정합니다.

 

대부분의 인류의 커다란 약점은 

새롭고 흔치 않은 어떤 일을 구분하데 있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을 도매금으로 인정하거나 정죄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전체 속에 있는 잘못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것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자들은

그 전체를 단번에 거부해 버립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상한 마비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루시는 성령의 역사를 거의 느끼지 못했으며

영적인 것들에 대해 거의 배우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이런 역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한 번도 가르침을 받지 못한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부흥에서 나타나는 최악의 질병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균형 잡힌 부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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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가장 격렬한 전쟁터 중의 하나는

각 사람의 ‘내면세계’라고 믿는다.

특별히 자신을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이라 믿는 사람들은

이 싸움을 해야만 한다.

그들 중에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에서

무거운 책임들을 지고 

수고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우리는 공적으로 많은 활동을 하는 사람이

내면적으로도 아주 영적인 사람이라고 

고지식하게 믿는 경향이 있다.

또한 교회가 크면 클수록 

하늘로부터 오는 축복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과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내면세계를 희생해서라도

불균형하게 외적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유혹이 있는 것이다.

 

더 많은 프로그램,

더 많은 모임들,

더 좋은 학력,

더 많은 대인 관계,

더 많은 사업과 같은 모든 활동이 과중해서

더 이상 우리 삶을 지탱할 수 없게 되면

모든 것이 붕괴되어 무너져 버린다.

 

고든 맥도날드『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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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한 세상에서는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큰 의견 차이와 논쟁이 생기기도 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다른 어떤 인간관계에서보다

더욱 평화롭게 지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어떤 다툼보다

여러 면에서 가장 불행하고 끔찍한 결과를 가져 오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자주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 

이런 분쟁이 생깁니까?

교인들은 목회자와 때로는 교리적인 문제로,

때로는 교회 행정적인 문제로,

때로는 사례비 문제로 다툽니다.

때로 이런 다툼은 아주 오래 지속됩니다.

 

그러나 심판 날 충분하고 완전하며 

영원한 결정이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무한한 빛과 진리와 공의의 원천이신

오류가 없는 재판관께서 논쟁하는 양편을 심판해 주실 것이며

진리가 무엇이며, 누가 옳은지,

누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는지를 선언해 주실 것입니다.

그 날은 이 인간 세상에 있었던 모든 분쟁을 결론짓고

모든 실수를 바로 잡으며

모든 불의한 재판관 오류와 혼란을 종식시키는 

위대한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과 심판은 

완전한 진리와 공의에 따라 시행될 것입니다.

신실한 목회자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단 12:3).

또한 목회자를 잘 영접하고 잘 대접하여 준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마 10:40-41).

신실한 교인들과 신실한 목회자들은 

서로 기쁨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살전 2:19-20).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실한 목회자들을 악하게 대했던 사람들은

심각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 10:14-15).

한편 신실하지 못한 목회자는 

가장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겔 33:6, 마 23:1-33).

 

그러므로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분쟁이 영원히 해결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 선고 받고 보상받을 것입니다.

영원한 기쁨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영원한 부끄러움과 고통을 당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심판 날 다시 만날, 분쟁하는 목사와 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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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예배를 지겨워한다면

당신은 아직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잠깐이라도 천국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거기에서는 누구나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일꾼을 갖기보다 예배자를 갖기 원하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이 일손이 달리는 공사장의 현장 주임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분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타락했다.

 

우리는 그분이 길가에 서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내 일을 위해 수고할까?”라고

고민하시리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전혀 없다고 해도

얼마든지 자신의 일을 이루실 분이시다.

 

하나님이 먼저 원하시는 것은 예배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성령충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예배는 

전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다.

 

A. W. 토저『예배인가, 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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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양 다리를 걸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분께 속하든지 속하지 않든지 

두 길 중에 어느 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친히 경고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이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이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동기들을 

주님에 대한 개인적 관계로 살펴보게 하는

가장 심각하고 진지한 말씀이다.

 

나는 실제로 그분께 속해 있는가?

나는 내게 대한 그분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가?

나는 그분의 권세에 순복하고 그분의 소유권을 인정하는가?

나는 이 관계에서 자유와 온전한 성취를 발견하고 있는가?

나는 그분의 감독 하에 있는 일로 인해 어떤 목적과 깊은 만족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그분께 속함에 있어서 흥미진진한 모험을 분명히 깨닫는 것 이외에도

안식과 평안을 얻고 있는가?

 

그렇다면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미로 

자랑스럽게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선언할 수 있다.

 

필립 켈러『양과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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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남자들은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아낌없이 자신을 바쳤다.

자신들이 아는 한 그들은 평범한 선교사였다.

로저는 앗슈아리족에게,

짐과 에드와 피트는 키추아족에게,

네이트는 비행기로 정글 전 지부를 섬기는 일에

보냄을 받은 보통 선교사였다.

 

그러나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네이트가 와오라니 부족이 살고 있는 집 몇 채를 발견했다.

작은 결정이 내려지고 그것은 더 큰 결정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와오라니 부족에 들어가는 문제를 놓고

새로이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한 남자의 개인적 선택은 중대한 고비에 이른다.

사랑하는 처자식을 둔 평범한 보통 선교사들이

생사가 달린 결단에 직면했다.

그들은 명성은 고사하고 

무슨 큰일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와오라니 부족의 영적 필요가 

단순히 절대명령이 됐던 것이다.

 

하나님을 방패와 방벽으로 믿었던 그들이

왜 창에 찔려 죽도록 방치돼야 했을까?

우리 미망인들에게 그것은 매끄럽게

또는 최종적으로 답해질 수 없는 문제였다.

1956년도에도 그랬고 지금도 잠잠해 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욥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으셨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적 뜻이라는 신비 속에서 살고 있었고

그 깊은 신비에서 생겨난 질문들에 주어진 답은 더 깊은 신비,

곧 하나님 자신의 신비일 뿐이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영광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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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장 핵심적인 악, 가장 궁극적인 악은 교만입니다.

성적 부정, 분노, 탐욕, 술 취함 같은 것들도 

이 악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사탄은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습니다.

교만은 온갖 다른 악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맞서는 마음 상태입니다.

 

제 말이 과장처럼 들립니까?

실제로 여러분이 얼마나 교만한지 알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스스로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알아주지 않거나,

쓸데없이 내 일에 참견하거나 

은인 행세를 할 때,

얼마만큼 싫은 마음이 드는가?”

요점은 각 사람의 교만은 

다른 이들의 교만과 경쟁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연회장에서 거물급 인사처럼 행세하는 사람을 볼 때,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내가 바로 그런 거물급 인사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은 남과의 비교입니다.

즉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경쟁이라는 요소가 없으면 교만도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눈을 내리깔고 

사물과 사람을 봅니다.

그렇게 내리깔고 보는 한 자기보다 높이 있는 존재는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는

특히나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낫게 느껴질 때는

확실히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를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는 진짜 시금석은

‘나 자신을 하찮고 더러운 존재로 여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겸손해지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제가 그 첫걸음을 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첫 걸음이란 

바로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간 보폭이 큰 걸음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이 한 걸음을 내딛기 전에는 

아무 진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C. S. 루이스『순전한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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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세상에서 혹독한 반대에 항상 직면해 온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속 역사에 의해서도 증명이 되고

그 이전의 성경 역사도 

동일한 사실을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교회와 그 신앙 그리고 그 예배는

가인과 아벨 시대에 반대를 받기 시작했고,

노아 시대에는 땅이 온통 그 죄악으로 관영했습니다.

이후로 교회는 애굽에서 반대를 받았고

예레미야 12장9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이스라엘 교회는 항상 주변 민족에게 미움을 샀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고난 받는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섭리 속에서 

그의 교회가 오랫동안, 아니 거의 모든 세월을 고난 속에

때로는 극단적인 고난 속에 있도록 역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참된 교회의 정신은 

고난 받는 정신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교회에 

그토록 큰 고난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것이

필수적이라고 심각하게 말씀하신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신은

교회가 그 고난 속에서 보여주고 실천한 정신으로서

고난 받는 정신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이에 대한 무수한 사례들을 제공하고 

구름 같은 증인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런 정신을 갖고 있는지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시험적으로 어떻게 증명이 될까요?

슬프게도 우리가 해보는 시험은 얼마나 적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순교자의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구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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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하는 사단의 부지런함을 곰곰이 생각하라.

그는 아무 때든지 소홀히 하지 않는다.

우리가 게으르기를 바라는 

그 자신은 항상 바쁜 것이다.

이 우는 사자는 항상 그의 먹이를 찾아 구하며 

그는 변절자를 만들려고 땅과 바다를 일주한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순례자가 아닌 정탐군으로 돌아다닌다.

그는 휴식이 없는 영이며 ‘두루 다니며’라고 하였다(벧전 5:8).

 

만일 그가 시험에 의해 조금이라도 이득을 본다면 

그는 극력 이것을 추구한다.

만일 그의 죄의 제안이 먹혀들기 시작하면,

그는 이것을 바짝 뒤따라서 죄의 행동으로까지 밀어 붙인다.

그가 유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팔아넘기도록 유혹하였을 때

그리고 그가 호의적이라는 것과 

그래서 은 삼십의 미끼를 물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는 그를 서두르게 해서 

그의 주를 팔아넘기기까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시험하는데 있어 사단의 부지런함은 

그가 사용하는 시험의 다양성에서 보여진다.

그는 한 가지 종류의 시험에만 자기 자신을 국한 시키지 않으며

그는 하나 이상의 책략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가 한 가지 시험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는 또 다른 것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육욕이 타오르도록 유혹하여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는 교만하도록 유혹할 것이다.

만일 탐욕에의 시험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는 낭비벽에로 유혹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시험하는데 있어 사단의 부지런함은 대단하다.

그는 있는 수단을 다 쓸 것이며

그는 가지고 일할 여러 개의 연장을 가지고 있으며,

만일 한 가지 시험이 통과하지 않으면 

또 다른 시험을 사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토마스 왓슨『주기도문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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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장로/감독”의 위치를 매우 중요한 역할로 보았다.

또한 누구든지 이 위치에서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치 있고 정직하며

책임 있는 사역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바울은 이 직분으로 섬기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반영하는 자질을 

드러내야 함을 분명히 했다(딤전 3:1-7).

 

이미 장로/감독이 된 어떤 사람들

(아마 바울이 밀레도에서 권면했던 사람들 중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은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행 20:30)을 하였다

그리고 영적인 리더가 되기를 원하지만 ‘선한 성품’을 보여주지 못해서

이 ‘선한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딤전 3:1).

 

어느 때에는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든 받지 않든

스스로 장로/감독의 기능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스스로 임명된” 자들이다.

때때로 이런 사람들이 순수한 동기와 자격을 갖추었다면 

일이 잘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 사례가 바로 그레데에서 생겨났다.

바울이 디도를 그 섬에 남겨두어 장로들을 임명하고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딛 1:11), 자들을 잠잠케 하려고 한 

주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스스로 임명된 리더들은 유익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쳤다.

 

진 게츠『직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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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필요했다.

먼저 인간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하여

자신을 하나님과 화목 시켜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또한 자신과 사단 “사이에 중재”하여 

자신을 사단과 단절시켜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하나는 연합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리시키는 것이다.

하나는 머리의 권위(headship)를 회복시켜 준 것이요.

다른 하나는 머리의 권위를 깨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이중적인 중보사역이었다.

 

우리에게 그 두 가지가 모두 필요했고,

예수님께서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행하셨다.

중보자요 중재자로서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아버지와 화목하게 하셨으며 인간과 사단 사이에 들어오셔서

사단의 결박을 깨뜨리셨다.

이것이 바로 구속적인 중보의 사역이었으며 

그것은 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구속이라는 법적 차원에서 

그리스도는 단 하나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다(딤전 2:5).

이 구절은 간단히 ‘한 중보자’라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계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중보기도(prayers)가 

언제나 그분의 중보사역(work)의 연장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중보 외에 

어떤 중보도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중보기도를 훨씬 더

능력 있는 기도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Dutch Sheets 『Intercessory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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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된 생각이 우리 마음에 떠오를 때

그것이 사단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우리 자신의 생각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을 보고 알 수 있다.

 

즉, 그런 생각이 들 때 즉각적으로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절대로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생각은 우리의 사고 속에서 활동하는 사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에게 비판적인 생각,

악한 생각, 용서치 않으려는 생각, 정욕적인 생각,

불신앙적 사고가 들어올 때

이에 대하여 미워하는 마음이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한 숙제가 남아 있음을 알고

죄를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꿔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 순결한 만큼 우리도 순결한 것이다.

 

조이 도우슨『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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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 즉 영생에 입문하는 것에는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포함된다.

제자도 안에서 성장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존 칼빈은 교회에서 지적으로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그의 짧은 논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제자도의 바른 주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복음서는 입술의 교리가 아니라 삶의 교리이다.

이것은 이성이나 기억에 의해서는 파악할 수 없다.

그것이 영혼 전체를 소유하고 마음속에 깊은 곳까지 꿰뚫고 들어와야만

그것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자랑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중지하며

그들이 주이신 그리스도에게 합당치 않은 제자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종교에 대한 지식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구원의 출발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종교가 

우리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며

우리들의 태도 전반에 나타나지 못하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익한 것이 된다.

 

우리가 제자도를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지적할 때

우리는 인격 전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됨을 나타내야 한다.

칼빈이 주장처럼 우리는 지식이나 기억을 발달시키는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균형 잡힌 인간으로서 발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전 생애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가는 과정으로서 보아야 한다.

 

마이클 윌킨스『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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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제단에

당신의 모든 권리를 내어 놓는 당신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그리고 머리 숙여 당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다고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드린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더 이상 자신의 계획이나 의지, 재산, 친국, 주장,

그리고 명성을 가질 권리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나님께 드린 권리 중 어떤 것들은

당신의 영적성장에 오히려 방해가 됨을 아십니다.

그분은 그러한 요소를 당신에게 제해 버리실 것이며

당신은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권리들을 당신에게 되돌려 주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인해 역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것들은 더 이상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우리가 쓰임 받게 되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우리의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는 온유하게 됩니다.

온유란 우리의 권리를 하나님께 순복시키는 것입니다.

온유의 반대는 분노입니다.

분노는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때 일어납니다.

사실 화를 낸다는 것은 하나님께 아직도 드리지 않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화가 나면 아직도 주님께 드리지 않는 권리를 찾아내서

하나님께 모두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단계를 따르고 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IBLP 『파인애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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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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