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정통!

분명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복음적인 사람들 각자에게도 

가장 큰 위험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죽은 정통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합니다.

 

신약 교회의 매우 중요한 특징은 

자발성, 생명력, 생생함, 활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과 그 감화력에서 멀어지게 되면 

모든 것이 형식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배의 형식들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침체기에 빠진 교회는 예배 의식에 있어서 더 형식적이 되고

예배 형식을 채용하여 

공기도서나 의식서로 돌아가는 경향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형식적 종교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여러분이 부흥을 만날 때마다

그러한 유의 모든 일들이 멈추게 됨을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의식이나 공기도서나 절차나 예복이나 옷을 차려 입는 그런 일은 전혀 없고

다만 성령께 속한 자유와 일들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부릅니다.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바로 이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을 맞지 않을 때에 성가대에 중점을 둡니다.

또 성가대와 성개대의 독창자들을 돈을 주고 사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회중들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합니다.

성가대가 그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릅니다.

이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여러분은 교회 생활을 프로그램화하려는

매우 무서운 성향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다 짜여져 있습니다.

모든 항목이 미리 정해져 있고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시작하여 

어느 시점에 마쳐야 하는지가 다 정해져 있습니다.

 

복음적인 교회에서마저 

강사 목사에게 순서가 적힌 종이를 준다는 것을 저는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순서지대로 행할 것을 종용합니다.

즉 11시에 시작합니다.

성경을 봉독하고 순서지에 적힌 모든 것을 다 진행하여 12시가 됩니다.

그런 다음 축도가 이어집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분초를 다투어 정확하고 기술적으로 질서 있게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는 묻습니다.

그런 경우에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하실 틈이 있습니까?

아니,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앙에 통제 당하는 대신

우리가 신앙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로그램에 너무 매여 있어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틈이 없지 않습니까?

어째서 이처럼 형식적이 되었습니까?

모든 것을 이처럼 묶여 놓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성령께서 갑자기 임하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저는 매우 심각하게 

이 문제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로이드 존스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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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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