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사역의 성격'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20.05.26 구약 희생 제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교리를 증거하는가?
  2. 2020.05.19 그리스도의 속죄로 구속함을 얻은 성도는 불신자에 비하여 더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3. 2020.05.12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성도는 구체적으로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4. 2020.05.05 그리스도의 속죄가 구속의 성격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5. 2020.04.21 구속(Redemption)의 의미는 무엇인가?
  6. 2020.04.14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적대감을 해소시키셨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거하는가?
  7. 2020.03.31 그리스도께서 속죄 사역을 통하여 해소하신 적대감은 누구에 대한 누구의 적대감인가?
  8. 2020.03.24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든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가?
  9. 2020.03.17 그리스도의 속죄가 화목의 성격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가?
  10. 2020.03.10 화목(和睦)이란 무엇인가?
  11. 2020.03.03 하나님의 진노와 그리스도의 유화는 삼위일체 하나님간의 어떤 알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12. 2020.02.25 그리스도의 속죄의 한 성격을 나타내는 ‘유화’(宥和)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13. 2020.02.08 제사로서의 그리스도의 속죄가 제사장의 자기 희생 제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14. 2020.01.30 그리스도의 속죄가 원형적 제사(原型的 祭祀)로서의 특징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15. 2020.01.24 그리스도의 속죄가 속상적 제사(贖償的 祭祀)로서의 특징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16. 2020.01.17 그리스도의 속죄가 제사(祭祀)로서 갖는 세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17. 2020.01.09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갖는 성격을 보여주는 네 가지 용어는 무엇인가?
  18. 2019.12.13 그리스도의 속죄에서 하나님,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관 관계에 있는가?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을 대신하는 동물의 희생 제사를 받으시고 그의 형벌을 면해주셨습니다.  즉 예물을 드리는 자가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 자신의 죄를 그 제물에 전가한 후 하나님께 드리면 그 제물을 받으시고 그 사람의 죄를 사해 주신 것입니다(1:4).  이러한 구약의 동물 희생 제사는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 피 속에 있으므로 피로 죄를 사하게 하셨습니다(17:11).  그러나 동물의 피로는 죄를 영원히 깨끗게 하지 못했기에 그리스도로 하여금 죄인을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인간의 죄를 속하게 하신 것입니다(10:4, 11, 14, 18).  실제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했습니다(1:29).  바울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 못한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담당 시키셨다고 말했습니다(고후 5:21).  참으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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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는 현재 죄의 종이 되어 있고, 그의 의지는 노예의 의지로서 죄의 권능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의 육신은 죄의 쾌락에 빠져 있고, 그 양심으로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거절할 힘이 없습니다.  따라서 죄가 이끄는 대로 끌려다닙니다.  반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한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의 영향력으로 부터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도와주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5:16, 22, 25).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에 비하여 훨씬 더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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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성도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났습니다(3:13).  물론 이것은 성도가 율법 자체에서 벗어났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도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22:34-40, 13:10).  다만 이것은 율법을 지키지 못할지라도 율법이 정한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의식(儀式)의 법에서 벗어났습니다(4:4-5).  즉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구약의 모든 제사는 종결(완성)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구약의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또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행위 언약에서 벗어났습니다.  인간이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행함으로 구원을 준다는 행위 언약 역시 올무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한에서만 복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속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1:17) 은혜의 새 언약을 세움으로써 우리는 공로적 율법 준수의 의무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또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죄책에서 벗어났습니다(3:24).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책에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끝으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죄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6:6-7).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존재로 사람들에게 역사허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요일 3:8).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죄의 권능에서 벗어났고 죄의 주관을 받지 않습니다(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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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지불하시고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하여 내셨기 때문입니다(53:10, 10:15, 4:25).  이는 다음의 성경구절로 확증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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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救贖)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폴뤼트로시스’(ajpoluvtrwsi")‘…..로부터의 뜻인 아포속량하다는 뜻의 뤼트로오’(lutrovw)의 합성어로서 값을 치루고 구원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이 성경에서는 넓게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사역 전과정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보다 좁게는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여 구금된 자리에서 해방시키는 것 곧 속량(贖良)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贖罪)가 구속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때의 구속은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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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적대감을 해소하여 우리가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셨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5:9-10).  여기서 진노하심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킵니다.  즉 죄인된 인간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돌이키신 이유가 그리스도의 속죄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의 사역은 하나님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습니다(고후 5:19).  인간이 죄를 범하여 적대감을 유발시켰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 적대감을 제거하시고 인간과 화해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불순종하는 자식을 향하여 화해를 청하는 사랑 많은 아버지의 모습과 같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벌을 받아 마땅함에도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으로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자녀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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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은 원수되었던 관계에서 벗어나 다시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해소시킨 적대감은 누구에 대한 누구의 적대감이냐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있습니다.  그 두 가지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적대감이라는 주장과 그 반대로 하나님께 대한 죄인들의 적대감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적대감은 죄지은 자를 멀리하려는 거룩한 적대감이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적대감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이질감에서 비롯된 죄악된 적대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다 어느 정도 성경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화목케 하는 길을 마련하신 것처럼 말하는 성경 구절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적대감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고후 5:18, 20, 2:16, 1:20).  반면에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적대감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으로보이는 구절들도 있습니다(5:8-11, 고후 5:18-21).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속죄를 통해 해소시킨 적대감이 하나님과 인간 모두의 적대감이라고 보는 것이 큰 무리가 없습니다.  사실 어느 한편의 적대감은 다른 한편의 적대감을 일으키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굳이 그리스도가 해소시킨 적대감의 본질을 따지자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적대감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거리가 생긴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며, 그 죄는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를 유발시켜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갖게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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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습니다(딤전 2:5-6).  그러나 교제는 어느 한쪽이 좋다고 성사되지 않습니다.  상대의 초청에 응답이 있어야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1:20), 하나님의 사랑(5:8)의 초청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다시 화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2:16).  만일 누구든지 원수 관계를 청산하고 구원으로 초청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면 그는 여전히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로 남아있게 되고 마지막 심판의 날에 원수가 받는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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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화목 제물이 되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생겨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헐고 하나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엡 2:16).  오늘날 인간이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원수 되었던 관계를 청산하고 다시금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화목하며 그로부터 영원한 생명과 온갖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된 것은 오로지 우리 주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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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Reconciliation)이란 일반적인 의미에서 볼 때는 사람 상호간이나 집단간에 어느 일방이나 쌍방이 잘못을 범하여 서로 소원(疏遠)하게 되고, 적대 관계를 갖게 되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하여 다시금 서로 교통하며 친밀한 교제를 갖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신학적 혹은 교리적으로는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발생한 소원과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다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어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된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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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와 유화(宥和)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성부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달래어 무마시키는 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그리스도간에 어떤 알력이나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그리스도의 유화는 다같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진노는 하나님의 공의의 표현이며, 유화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사실상 공의에 의한 거룩한 진노의 대상은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그 죄인이 형벌을 받고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순간에도 그가 죄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고 복을 누리기 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유화로 나타났습니다.  즉 하나님은 죄인을 영벌에 처하시는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시어 죄인이 할 수 없는 공의를 충족시킴으로써 진노를 가라 앉히고 인간과 다시 화해하신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유화가 아니었다면 모든 인간은 여전히 형벌 아래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진노는 일면 유화와 상반된 개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보다 넓은 개념에서 하나로 통합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도 그분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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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덮는다는 뜻인 <카파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덮어 깨끗하게 용서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글 개혁 성경에서 이 단어는 속죄하다’, ‘보상하다는 뜻으로 번역되었습니다(4:35, 10:17, 16:30).  또 유화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힐라스모스>(요일 2:2), 또는 <힐라스테리온>(3:25)인데, <힐라스모스>화해’, ‘속죄’, ‘보상의 뜻이고, <힐라스테리온>속죄하는 것’, ‘화해케 하는 것’, ‘속죄의 방편등의 뜻입니다.  이것들은 한글 개혁 성경에서 대부분 화목제물로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종합하면 유화란 말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인간의 죄를 덮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화를 무마시킨 그의 속죄행위를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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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시대의 제사에서는 제사장과 희생 제물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사로서의 그리스도의 속죄에서는 제사장과 희생 제물이 완전히 일치된 제사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흠없는 자기 몸을 하나님께 다른 사람의 죄를 속하는 희생 제물로 드리되 다른 제사장에 의해 드려지지 않고 친히 자신이 제사장으로서 스스로 드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 제사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실로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한 필연적 귀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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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그 죄를 속함 받기 위해서는 무죄한 인간의 대속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인간의 죄를 대속할만한 무죄한 인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임시 방편적으로 동물 희생으로 대신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구약의 제사는 불안전 했고, 인간의 죄를 능히 없이 하지 못했습니다(10:4).  이에 비해 그리스도께서는 무죄한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죄를 온전히 속할 수 있는 희생 제물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 제물로 하여 단번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인간의 죄를 온전하고도 영원히 속한 것입니다(9:12-15).  그러한 의미에서 구약의 동물 희생 제사는 장차 있게 될 완전한 제사의 모형과 그림자라면 그리스도의 속죄는 원형적/영원적 제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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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죄를 속하고 죄값을 보상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희생의 제사를 드리게 하신 목적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가 가리워지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을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구약 시대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희생의 동물에 전가시킨 후 그 동물을 잡아 피를 단에 뿌렸습니다.  곧 희생 동물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고 그 대신 죄인은 형벌을 면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속죄 제물처럼 죄를 담당하여 형벌을 받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백성의 죄를 속하고 잘못된 행위를 보상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53:5-6,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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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속상적 제사(贖償的 祭祀)

둘째, 원형적 제사(原型的 祭祀)

셋째, 제사장의 자기 희생 제사 (自己 犧牲 祭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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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제사(祭祀)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인간의 죄를 속한 것을 말합니다.  둘째, 유화(宥和)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범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 앉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 화목(和睦)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원수되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적대 관계를 해소시키고 화해케 한 것을 말합니다.  넷째, 구속(救贖)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인간의 죄를 속하여 자유케 한 것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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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간을 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속죄를 계획하고 그 희생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죄인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사랑의 하나님은 인간을 처벌하는 대신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에게 형벌을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죽음에 내주시는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시어 죄인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하여 단번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인간의 죄를 영원히 속죄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을 대리(代理)하여 받은 형벌인 동시에 하나님께 드린 영원한 속죄 제사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써 인간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에서 인간은 최대의 수혜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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