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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14 주권적 작정과 절대적 거룩함

칼빈주의자들이 믿는 대로 만약 하나님이 모든 것을 미리 정하셨다면(죄까지도/사 45:7), 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그분에게 하나도 없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되는데 인간이 악에 대하여 인과율적으로 책임이 있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지만(요일 3:4), 하나님이 자신의 주권에 의해(시 115:3), 인간의 죄에 대하여(잠 16:4), 도덕적으로 책임이 없다는 것은 왠지 불공평해 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선하신 하나님께서(시 25:8), 악을 작정해 놓으신 이유가 무엇이며 왜 그분만이 면제가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난해한 것으로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 야고보서 1장13-15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죄의 시험을 받지 않으시고 더욱이 그분은 누구라도 죄를 짓도록 시험하거나 죄를 짓게 만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즉 죄는 피조물에게서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요 8:44),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 죄에 연루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롬 9:14).  반면에 에베소서 1장11절은 하나님이 부득이 하게 모든 것, 심지어 죄까지라도 미리 정하신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칼빈주의자들은 이러한 딜레마는 역설이라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출 15:18), 그분의 절대적 거룩함(시 47:8), 모두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이어야 한다고 강력히 말하지만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실, 즉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함”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역설이라는 것과 그리스도인은 답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자주 사용하는 구절인 로마서 9장18-21절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라니…’  그러나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19절에서는 지적 궁금증을 제시하고 20-21절에서는 바울이 이에 대하여 답하고 있지만 19절에서 제기된 질문은 지적 문제뿐만 아니라 질문자의 태도에 대한 문제 모두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20-21절에서 바울은 태도의 문제를 다루었지만 이것을 통하여 지적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이 문제에 대하여 답할 수 없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구절에 의해 역설이라는 견해가 실제로 입증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성경 기록에 따르면 하나님의 뜻 안에는 각기 다른 세 개의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규범적 뜻”과 “하나님의 허용적 뜻”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적 뜻”으로 이 세 개의 뜻 모두는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에 속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창 12:1-9),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에 거주하며 그 땅이 그들의 기업이 되도록 명하셨습니다(창 17:8).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 땅에 거주하라고 말씀하셨는데(창 26:2),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으로 이 규범적 뜻 안에는 오직 ‘선’만 포함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악을 차마 보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합 1:13).  반면에 하나님의 허용적 뜻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기근을 당할 때 하나님을 저버리고 약속의 땅을 출발하여 애굽을 향해 떠난 것처럼(창 12;10), 이 일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아니지만 허락하신 것으로 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잠시 동안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행 14:16-17).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이상적인 뜻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완악한 뜻에 맞추신 것입니다(마 19:8).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소유하여 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은 좌절되지 않았는데 먼저 하나님의 규범적 뜻은 그들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허용적 뜻은 그들이 애굽으로 내려가도록 허락하는 것이지만 결국 하나님의 섭리적 뜻은 호세아 11장1절에서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규범적 뜻은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지만(벧전 1:15-16), 하나님의 허용적 뜻은 악에 대하여 용인하듯이 죄를 허용하는데(요일 1:10), 이는 하나님의 섭리적 뜻 안에서 우리의 죄에서조차 선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롬 8:28).  마치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날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창 50:20).  사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쳐나기는 하지만(롬 5:2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고(창 2:17), 결과적으로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뜻 안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분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렘 33:2).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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