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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1.13 죄를 죽이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11:19).

실제로 죄를 죽이는 일은 오직 성령만이 하실 수 있다.  성령을 배제한 모든 방법과 수단들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성령만이 이 사역을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원천이다.  성령은 자신의 기뻐하는 뜻대로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죄를 죽이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다.

죄를 죽이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이 죄를 죽이는 일을 위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완악하고 교만하고 반항하며 불신적인 돌과 같은 마음을 제거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죄를 죽이는 사역에 속한다.  실로 이런 일은 성령에 이해서만 가능하며 다른 방법은 실패한다(11:19, 57:17-18).

둘째, 우리가 죄를 죽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사로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15:5).  또한 성령은 그리스도의 은사를 베풀고 그것을 더욱 넘치도록 하며 효율적으로 적용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일을 하신다.  그리스도는 오직 이 성령을 통해서만 성도 안에 들어와 역사하신다.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은 바로 성령을 통해 자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리스도 때문이다( 5:31).

그러면 성도는 죄를 어떻게 이기는가?  한마디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죄를 이기도록 우리에게 그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2:33).  Tertullian의 말처럼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들은 성취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여러 군데에서 약속하셨다. 

 

성령이 죄를 어떻게 죽이는가?

첫째,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은혜로 넘치게 하고 육체의 열매에 반하는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게 함으로써 죄를 이기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멸매를 서로 대조시켰다.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는 서로 다른 차원이다(5:19-23).  그런데 이 두 열매가 우리 안에 넘치도록 함께 공존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과연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함께 거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그러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함으로써일어난다는 것이다(5:25).  즉 우리 안에 내주하는 성령의 풍성한 은혜에 따라서 행할 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똑같은 강도로 함께 공존할 수 없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야말로 죄를 이기는 가장 위대한 방법이다.  성령은 육체의 열매들과 우리 속에 거하는 죄의 활동을 무너뜨리고 그것들을 대적하게 하여 주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자라나고 성장하도록 역사하신다. 

둘째, 성령은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하여 죄의 뿌리와 습관을 무력화시키고 파괴하고 제거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성령을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이라고 말씀한다(4:4).  성령은 돌 같은 우리 마음을 전능한 능력으로 없애주신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을 하실 때 강도를 점점 높여 실행하신다.  실로 성령은 정욕의 근원을 소멸시키는 불이다.

셋째, 성령은 믿음으로 성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져다 주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분의 고난에 동참케 한다(8:17).

 

죄를 죽이는 것이 오직 성령의 사역이라면 왜 성경은 인간인 우리에게 죄를 죽이라고 권면하는가?  하나님의 성령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전적으로 성령에게 맡기는 것이 옳지 않는가?

첫째, 성령의 사역 방식은 우리 안에 은혜를 주고 그 은혜를 통해 우리로 선행을 하도록 역사하신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는 분이다(2:13).  그래서 성경은 성령이 우리의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다고 말씀한다(26:12).  또한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시는 분이시다(살후 1:11, 2:12).  이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는 간구의 영이기도 하다(8:26, 12:10).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에게 그 모든 일을 하라고 권면하신다.

둘째, 성령은 우리 안에서 죄를 이기도록 역사하실 때 죄를 이기는 행위를 여전히 우리의 순종의 행동으로 간주하신다.  성령은 우리가 성령의 사역을 받기에 적합할 때만 우리에게 간섭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역사하신다.  순종을 위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의 지혜, 의지 , 양심, 그리고 감정을 우리의 인품에 따라 사용하신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우리와 협력해서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를 꺽지 않는다.  성령이 우리를 도아주시는 방식은 우리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어 태만하지 않고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죄를 이길 수 없다.

실로 여기서 가련한 영혼들이 끊임없이 어리석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싶다.  죄를 자각하지만 그 죄를 대항할 힘이 없는 이 가련한 영혼들은 죄를 죽이기 위해서 수많은 방법들(맹세, 계율, 금식, 고행)과 의무(전통)들을 지어내어 자신들을 속박으로 얽어맨다.  하지만 그 결과는 헛된 것이기에 결국 하나님의 영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된다.  그들의 싸움은 승리 없는 싸움이며, 평화 없는 전쟁이다.  실로 이들의 삶은 항상 노예와 같다.

율법에 이끌려 살아가는 이들은 결국 죄의 세력에 굴복하고 만다.  때때로 이들은 죄를 이겼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죄의 실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실상 이들은 단순히 죄의 겉 먼지만 털어낼 뿐이다.  두려움, 슬픔, 그리고 고뇌들을 일부러 외면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죄를 죽였다고 믿는다.  하지만 결국 죄를 죽이겠다는 그들의 열기는 곧 식어지고 다시 죄와 대면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이 이미 죽였다고 생각했던 육체의 욕심은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은 채 다시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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