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일반적으로 죄를 죽이는 사람을 위한 지침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죄를 죽이기 위한 지침은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타락한 죄의 습관을 무력화시켜라

사람이 항상 한 가지 정욕만을 추구하지 않은 이유는 그 속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정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는 다양한 형태를 띤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자아 만족을 지향한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은 항상 악을 품고 있으며 그들의 정신은 악을 향해 기울여져 있고 육체에게 자양분을 제공한다(3:4).  타락한 죄의 습관은 다른 천성적 습관이나 도덕적인 습관과는 다르다.  특별히 천성적인 습관은 영혼으로 하여금 부드럽게 자신의 원하는 바를 행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죄의 습관은 폭력과 충동을 통해 영혼에게 강요한다는 데서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육체의 정욕은 영혼을 거스러 싸운다(벧전 2:11).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인간의 영혼을 포로로 잡는데 성공한다.  즉 폭력과 충동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한 가지 주의할 점을 이야기 하면 모든 정욕이 균등하게 그리고 보편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강요하고 유혹하지만 때로 특정 정욕이 다른 정욕보다 두드러지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그런 경우는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로 어떤 사람에게 있는 특정 정욕이 우연히 계속적으로 활력을 얻고 힘을 얻어 다른 정욕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또한 다른사람에게 발휘되는 것보다 훨씬 그 사람에게 더 큰 활력과 생기를 가지고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다.  어떤 정욕이 당사자의 기질과 삶의 방식과 잘 막거나 사탄이 그 정욕의 핸들을 쥐고 조종할 때 그 정욕은 다른 정욕들보다 더 훨씬 그에게 폭력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동일한 정욕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 이상으로 더 격렬하게 그에게 역사한다.  그 결과 정욕의 물줄기는 그 사람의 생각을 어둡게 하고 그가 이전에 가졌던 지식들은 그의 의지에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  대신 타락한 감정과 열정들이 죄로 인해 고삐가 풀린 채로 불출된다.  특별히 정욕은 유혹을 통해 힘을 얻는다.  그래서 적당한 유혹이 정욕과 합세하게 되면 정욕은 새로운 힘과 활력을 얻어 이전과 달리 더욱 폭력적으로 광포하게 날뛰게 된다. 

두 번째는 일반적인 견지에서 어떤 정욕이 다른 정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폭력적인 경우가 있다.  바울은 정결하지 못한 음행을 그 밖의 다른 죄들과 구별하여 따로 명시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  여기서 음행의 죄는 다른 어떤 죄보다 더 쉽게 분별될 수 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죄도 이것 못지 않게 위력적인 죄의 습관이지만 그런 것들은 음행처럼 사람에게 전인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  따라서 죄를 죽이기 위해 첫 번째 할 일은 이런 습관을 약화시키고 죄의 습관이 전처럼 우리에게 강요하거나 소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 우리를 유혹하고 마음 속에 평화를 빼앗지 못하도록 죄의 활력과 기운을 죽이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행위를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고 말합니다(5:24).  이것이 바로 죄에게 힘을 공급하는 피와 정신을 차단하는 행동이며 매일매일 우리가 우리의 죽을 몸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이다(고후 4:16).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면 그는 처음에는 고통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절규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의 피와 정신이 쇠하게 되면 그의 노력은 기운을 잃고 희미해진다.  그리고 그의 울부짖음도 잠잠해져 쉰 소리를 내고 거의 들리지 않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죄를 죽이려고 할 때 죄는 더욱 폭력을 휘두르며 발광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울부짖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죄를 계속 죽이게 되면 죄의 피와 정신은 소진되고 무기력하게 된다.  그래서 울부집음도 거의 들리지 않게 된다.  때때로 죄가 죽어가는 힘을 다해 발악하며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그 죄를 제지한다면 그것은 곧 소멸하게 된다(6:6).

 

2. 죄의 힘을 억제하라

죄가 강력하고 원기왕성하면 우리의 영혼은 죄와 대항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다윗처럼 한숨을 쉬고 신음하게 된다.  그리고 죄를 추적해서 물리치려는 의지를 상실하게 된다.  다윗은 시편 4012절에서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불 소도 없다고 고백했다.  실로 그는 죄 앞에서 정말로 무력했다.  이제 죄의 힘과 싸우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먼저 사람은 자신이 싸워야 하는 적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실로 무엇보다 적을 주목하고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 적을 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사람은 격렬하며 위험한 투쟁이다.  참으로 이것은 영원과 관련된 싸움이다.  사람이 자신의 정욕을 일단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자체는 정욕을 죽이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행위이다.  이와 같은 행위가 없다면 결코 죄를 죽일 수 없다.  하지만 두렵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적을 잘 알지 못한다.  그 결과 쉽게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자신들이 처해 있는 위험을 모른 채 타인의 충고나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대하 16:10).

둘째, 죄와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 죄가 취하는 방법과 계책을 알고 죄에게 유리한 상황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 적과 싸울때에도 마찬가지다.  전쟁터에서 장수는 먼저 싸우기 전에 적군의 전술과 전략을 파악하고 적군이 전에 어떤 방식으로 싸움에서 이겼는지를 연구한다.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만약 이런 행동이 없다면 싸움은 엉망이 될 것이다.  정욕과 싸워서 그것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행동이 필요하다. 

셋째, 그 다음으로 죄를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죄를 향해 필살의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무기들로 자신을 항상 무장해야 한다.  이것이 죄와의 싸움에서 가장 큰 핵심이다.  이렇게 무장한 사람은 죄가 잠잠할 때에도 죄가 죽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죄에 대해 새로운 일격을 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예였다(3:5).  만약 당신의 영혼이 이와 같은 자세로 죄와 싸우고 있다면 확실히 당신은 이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셈이다.  그래서 결국 죄는 공격을 받고 죽어가게 될 것이다.

 

3. 죄의 정욕과 싸워 승리하라

정욕과 번번히 싸워 승리하는 모습은 죄를 죽이는 삶의 증거이다.  여기서 승리라는 말은 단순히 죄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패퇴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도망가는 죄를 추적해서 완전히 쳐부순다는 뜻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죄가 활동해서 우리를 유혹하고 육체의 정욕을 채우도록 육신적인 생각을 부추길 때, 즉시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깨닫고 그 죄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 앞으로끌어내어 정죄한 다음 끝까지 따라가 멸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이른 사람은 정욕을 그 원리와 뿌리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  이상의 것을 종합하면 우리의 타락한 품성을 부추기는 죄를 죽이는 일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죄를 죽이는 사람의 핵심은 우리를 유혹해서 죄를 짓도록 강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만든 죄성을 무력화시키는데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죄와 직접 대항해서 그것을 파괴시키는 은혜의 원리들을 마음의 습관으로 간직하고 그것을 통해 죄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을 겸손의 마음으로 물리치고, 흥분을 인내로, 불결함을 청결한 마음과 양심으로 누그러뜨려야 한다.  또한 세상에 대한 욕구를 천국에 대한 생각으로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은혜의 원리들은 성령의 은혜로서 성령을 통해 역사하는 습관적 은혜이다.

둘째, 성령 또는 우리 속에 새 사람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기미함과 활력을 가지고 죄와 대항해서 기쁘게 싸운다.  그러므로 죄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에게 제공된 이러한 자원들을 계속해서 활용하는 일이 두 번째로 중요하다.

셋째는 바로 앞에서 말한 그 두 가지 사실로 인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타락한 성품은 난공불락처럼 극복될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니며 보편적인 의미에서 이미 정복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영혼은 죄의 저항을 어느 때보다 더 잘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비록 죄가 나타날지라도 적어도 은혜 언약으로 인해 그 죄는 우리의 양심에 있는 평화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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