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88:1-2).

우리가 죄를 죽이는 삶을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죄를 죽이는 삶은 은혜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결정적 원인은 신분상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죄를 죽이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결과

첫째, 죄는 영혼을 약하게 만들고 그 힘을 빼앗는다.  다윗이 잠시 마음속의 욕정을 이기지 못했을 때 그의 욕정은 그의 뼈를 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영적 힘을 앗아가 버렸다.  그 결과 그는 병들고, 약하고, 상처 입은 나약한 자가 되었음을 고백했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38:3).  내가 피곤하여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38:8).  정욕을 죽이지 못할 때, 그 정욕은 영혼을 삼키고 영혼의 기운을 빼앗아 약하게 만든다.

둘째, 죄는 우리의 마음을 희미하게 하고 무력화시킨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필요한 영적 틀에서 마음을 떼어놓는다.  죄는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사랑을 내쫓고 죄를 짓도록 부추키고(요일 2:15, 3:17), 영혼에게 다른 것을 사모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 영혼은 하나님께 똑바로 진실하게 주님은 나의 기업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셋째, 죄는 영혼의 생각을 죄에 대한 나쁜 생각으로 채운다.  보통 영혼은 생각이라는 통로를 통해 자양분을 얻는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죄를 죽이지 않게 되면 우리의 생각들이 오히려 육체를 위한 공급원이 되어 육체의 정욕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들이 육체를 윤택하게 하고 육체를 만족시킨다.  실로 죄로 인해 우리의 생각들이 더러운 추한 상상력을 위해 사용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죄는 우리로 하여금 경건한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순간에 다른 것을 연구하며 일하거나 이니면 허황된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

넷째, 죄는 영혼을 어둡게 만든다.  죄는 영혼 위에 드리워져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의 광채를 차단하는 빽빽한 구름이다.  그것은 우리의 양자됨의 특권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영혼들이 위로의 생각들로 자양분을 받으려는 순간 죄는 재빨리 그 생각들을 흩어뜨린다.

 

죄를 죽이기 위해 필요한 희생과 경계

죄를 죽이는 삶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서 더욱 번성할 수 있도록 때때로 은혜의 가지를 자른다.  영적인 삶의 생명과 기운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은혜의 나무가 얼마나 활력을 갖고 번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이 정원에 귀중한 화초를 심고 땅을 일구었지만 주위에 있는 잡초를 방치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화초는 여전히 살아 있었도 시들어져서 쓸모었게 된다.  그래서 화초를 감상하려면 그것을 찾기 위해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때때로 그것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을 찾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화초는 아닐 것이다.  이에 반해 같은 종류의 또 다른 화초가 비슷한 토양에 심겨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당신이 주위에 해로운 것들과 잡초를 제거해 주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 화초는 확실히 번성하며 자랄 것이다. 

우리 마음에 심겨진 성령의 은혜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실 성령의 은혜는 죄를 죽이는 의무를 태만히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속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은혜들은 거의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3:2).  그래서 그것들은 시들어 썩어간다.  그러한 마음 밭은 게으른 농부의 밭처럼 잡초로 무성해서 그 곳에서 좋은 알곡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이런 사람은 믿음, 사랑, 그리고 열심을 자기 속에서 찾아보려고 하지만 그것들을 거의 발견하지 못한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진배없는 은혜들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죄를 죽임으로써 마음 밭을 정결하게 하고 장욕의 잡초들이 생겨날 때마다 계속해서 뿌리를 뽑았다고 하자.  그리고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자라나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되면 속의 은혜들은 각자의 역활을 수행하여 유용한 목적으로 사용받게 된다.  죄를 죽이지 않는다면 신실할 수가 없다.  죄를 죽이는 사람만이 가장 확실한 신실함의 증거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신실함은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커다란 기초가 된다.  죄를 죽이기 위해서는 영혼이 자아와 격렬하게 싸워야 한다.  그런 싸움에서 신실함이 나오는 것이다.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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