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8:13).

로마서 8장 서두(1-3)에서 사도 바울은 이신칭의의 교리와 그 은혜에 참여한 자들의 축복을 재요약해서 말한 후, 같은 장에서 그것을 더욱 확대 설명하면서 성도들이 갖는 거룩과 위로에 초점을 맞춘다.  거룩을 위한 바른 동기들을 주장할 때, 바울은 죄의 반대편 관점에서 그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여기서 육신대로 살면이라는 말과 죽는다라는 말은 확실히 성도가 추구해서는 안되는 삶을 가리킨다.  죽음은 육적인 동시에 영적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13절 하반절의 말씀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

13절의 후반부를 분석하면 첫째, 우리가 행해야 할 의무에 대해 먼저 말한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이다.  그리고 둘째로 그러한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자격 조건을 언급한다.  구체적으로 여기서는 너희들이다.  셋째로 이 구절은 그 의무를 수행할 때 어떤 약속이 따르는지를 보여준다.  한 마디로 그렇게 되면 산다는 약속이다.  넷째로 이 의무 수행의 원천과 수단은 성령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영으로써라는 말을 언급한다.  다섯째로 이 하반절에서 제시되는 명제는 모두 조건부라는 점이다.

 

그러나 만약

13절 하반절에서 조건부로 제시된 명제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말은 그러나 만약이라는 문구이다.  일반적으로 조건부 명제에서 나오는 조건들은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약속의 조건으로 제시된 의무를 수행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의무를 수행하여 약속을 받는 일은 매우 불확실하다.  그가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의무 조항을 절대적으로 충족시키야 하는데, 실상 그에게는 그런 의무를 충족을 확실히 보장해 줄 수 있는 원천이나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서 813절에서 제시된 조건적 표현은 다르다.  이미 81절에서 바울은 13절의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더 이상 정죄함이 없는사람들로 묘사했다.  그러므로 이들은 확실히 그 의무를 충족시켜 약속을 성취한 자들이다.

둘째, 일반적으로 조건으로 제시된 의무와 약속 사이에는 논리적 응집력이 있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몸의 행실을 죽이는의무와 산다는 약속 사이에 확실한 관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죄를 죽이는 것과 사는 것 사이의 관계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하면서(6:23), 영생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말하고 있다.  결국 여기서의 관계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이다. 하나님은 자유롭게 약속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미리 정하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13절 하반적의 조건적 명제에서 제시하는 바는 죄를 죽이는 것과 영생 사이에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연관 관계가 있다.”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런 수단을 사용한다면 그 목적을 선물로 얻게 된다.  다시 말해 죄를 죽이면당신은 살게 된다는 논리이다.  13절에서 제시된 의무에는 바로 이런 동기가 효력이 있다.

 

너희가

그 다음으로 이 조건적 명제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점은 그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당사자들이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당사자들은 너희가 죽이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성도들을 가리킨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더 이상 정죄함이 없는’(1) 사람들로서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는(5),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살려진자들이다(10-11).  바울은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의무를 규정했다.  이 의무를 성도가 아닌 사람들이 억지로 수행한다면 그 결과는 이 세상에서 만연된 미신과 자기 의로 귀착될 것이다.  즉 복음을 외면하고 경건하려는 사람들의 인간적 업적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10:3-4, 15:5).  결국 죄의 지배에서 자신이 해방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아무리 훌륭한 성도일지라도 그는 마음 속에 거하는 죄의 힘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으로써

이 의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원천은 성령이다.  영으로써  여기서 영은 바로 11절에 언급한 영인 그리스도의 영’,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다(9).  이 영을 통해 우리가 다시 사는 것이다(11).  또한 이 영은 양자의 영으로(15)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는 영이다(26).  성령 외에 다른 방법으로 죄를 죽이는 것은 헛된 일이다.  다른 모든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그 의무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스스로 고안한 방법을 가지고 자신의  힘으로 죄를 죽이고자 하는 노력은 세상의 모든 거짓된 종교의 본질이며 그것의 결국은 자기의 의이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여기서 세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몸의 행실이라는 뜻은 무엇인가?  또한 그 행실들을 죽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첫째, 13절 하반적에서 나오는 이라는 단어는 상반적에 있는 육신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따라서 몸은 우리의 타락한 품성과 관련해서 우리 속에 그것이 자리 잡고 있는 좌소이며 도구를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몸의 지체는 불의를 섬기는 종들이라고 할 수 있다(6:19).  결국 몸이 의미하는 바는 타락한 육체 또는 정욕으로서 우리 속에 거하는 죄의 속성이다.

둘째, 몸의 행실, 여기서 행실은 외적인 행동으로 갈라디아서 519절에서 현저하다고 명명한 육체의 일이다.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이 행실은 또한 인간 속에 거하는 내적인 원인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로마서 7장과 8장의 초두에서 인간 속에 거하는 죄의 정욕을 모든 죄의 행동의 토대이자 원리라고 지적한 후, 813절에 와서 죄로 인한 결과라는 측면에서 그 파괴력을 언급했다.  여기서 몸의 행실은 육신의 생각(8:6)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행실은 육체의 열매와 행동의 원천이 되는 ‘’육체의 정과 욕심과 동일한 의미이다(5:24).  이 몸에 대해 로마서 810절은 그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셋째, ‘죽인다  이 비유적 표현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음의 상태로 놓는다는 뜻을 함축한다.  사람이나 생물체를 죽인다는 것은 그 힘과 활력의 원리들을 제거해서 더 이상 행동하거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죽인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바울은 우리 속에 거하는 죄를 살아 있는 인격체인 옛 사람으로 비유한다.  그 옛 사람은 자신만의 기능, 자질, 지혜, 통찰력, 힘을 가지고 있다.  바울에 의하면 우리는 이 옛 사람을 죽여서, 즉 죽음의 상태로 놓아서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옛 사람을 완전히 죽이고 극복한 모범적인 예이다. 

그 결과 비록 우리 마음속에 부활에 반대하는 파괴적인 소욕들이 여전히 공존하지만(5:17), 성도인 우리는 이제 주님의 부활에 처음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6:3-5).  이 부활의 완성은 점진적으로 우리의 일생을 통해 성취되어 간다.

 

살리니

이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약속이 주어진다.  이 약속된 생명은 앞의 상반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라는 말에서 언급된 죽음의 위협과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이 죽음의 위협을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것을 거두고’(6:8).  여기서 썩어진 것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멸망의 심판을 뜻한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38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 살리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우리는 삶 속에서 기쁨과 위안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너희가 살리니라는 말은 여전히 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선하고 활력 있는 안락한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저 세상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육신의 행실을 죽일 때 우리는 영적 삶의 활력, , 그리고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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