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에 해당되는 글 49건

  1. 2019.04.03 부활을 믿지 않는 목사
  2. 2019.03.06 가장 중요한 일
  3. 2019.01.18 종교 중의 종교
  4. 2018.08.09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
  5. 2018.06.07 가장 적절한 방법
  6. 2018.03.30 자연 속에 계신 하나님
  7. 2018.01.05 미신과 신앙
  8. 2017.10.06 진짜와 가짜
  9. 2017.08.09 의심에 대한 대답
  10. 2017.07.05 믿음과 이성과의 관계
  11. 2017.04.13 불협화음
  12. 2017.02.09 신념이 강한 사람
  13. 2016.11.17 어제와 내일과 오늘
  14. 2016.08.04 진정한 승리
  15. 2016.02.17 즉각적인 순종
  16. 2015.11.25 구세주
  17. 2015.08.12 부르심
  18. 2015.06.03 슬픔
  19. 2015.03.25 양심

오래 미국의 타임지가 

감리교회 목사들에게 행한 설문 조사에서

참으로 놀라운 통계가 발표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목사의 수가

무려 46%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던 것이다. 

통계 옆에는 이런 조사 결과가 첨부되어 있었다. 

지난 4 동안 미국 감리교회는 교인 51 4 명이 줄었고,

교회학교 학생이 25% 줄었으며,

선교사 파송이 20% 줄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조차 믿지 않는 지도자의 신앙이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통계를 보면 무엇을 느끼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회가 올바른 신앙 안에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우선 부활 신앙을 깊이 심어야 것이다.

  

-Christianity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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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30분마다 1명씩 자살을 하고,

2분에 명씩 정신 이상자가 된다고 한다.

만약 그들이 종교와 기도의 위안과 평화를 가진다면

그런 비극은 막을 있을 것이다.

 

현대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카알 박사는

『영혼의 탐구에서 현대인』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과거 30년간 나는 세계 여러 문명국에서 상담하러

백명의 환자들을 접했다.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선 환자들의 문제는

한결같이 종교적 인생관을 찾는 일이었다.

종교의 의미를 찾지 않고는 아무도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다.”

윌리엄 제임스도 신앙은 인간을 살게 해주는 힘의 하나이며

종교가 전적으로 없다는 것은 파탄을 의미한다 했다.

또한 인도의 지도자로 널리 알려진 간디도

기도가 없었다면 나는 오래 전에 미치광이가 되었을 것이다 말했다.

 

오늘날 정신병원에서 울부짖고 있는 수천 명의 환자들이

삶의 특쟁을 홀로 겪으려 하지 않고

보다 위대한 능력에 의존한다면 이미 구원 받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힘의 한계에 도달하고 당황하면

누구나 절망 중에서 신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마 참호 속에서는 아무도 무신론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절망이 밀어닥치기 전에

신을 찾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닐까?”

더불어 자기를 구원해 있는 능력의 하나님을

찾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없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필요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데일 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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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의 본질은

다만 다음의 의문에 대한 해답 속에서만 성립된다.

나는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과연 무엇 때문에 나는 살아 있는가?

그리고 나의 주위에 있는 광대한  세계와

나와는 어떤 관계인가?”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 속에서만 성립될 것이다.

 

가장 높은 종교로부터 가장 원시적인 종교에 이르기까지

그 구성의 기초에

이렇게 인간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우주 만물의 기원과

그 존재 의미에 대한 문제를 포함하지 않은

그 어떤 종교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종교라고 해서 다 종교는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가 그에 대한 바른 해답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드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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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란 숨은 비밀

또는 신비 밝히는 것을 뜻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종류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나는 하나님께 관한 것으로

하나님의 덕과 삼위일체의 가르침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관한 것이다.


그중에 특히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인간의 몸을 입고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신 일들을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굳이

그러실 필요도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히 자신을 보이셨고, 자신을 알도록 하셨으며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던 것이다.

 

-윌리암 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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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옛날 그의 백성에게 

그러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의 백성에게 그의 마음을 전달하실 있으며,

실제로 전달하시고 계신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 구름의 움직임이나 나팔소리로

그의 마음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과 성경을 통해 그의 마음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신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감각으로 느끼도록 하는 그런 방법도 사용하시지만,

항상 그런 방법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시지는 않는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해와 양심과 마음을 통하여 작용하는 그런 일로써

우리들을 인도하신다.

언제나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당신의 모습을 보이시고

당신의 뜻을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가?

 

-C. H. 맥킨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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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은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천둥과 번개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있으며,

햇빛과 미풍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있다.

무르익은 곡식 가운데서

하나님의 풍부하고도 

세밀한 은혜를 있다.


산봉우리와 계곡을 바라볼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있으며,

아름답게 꽃을 때에 

하나님의 기쁨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통해

무한하신 선과 지혜,

그리고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C. H. 스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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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들은 미신을 믿는다고 한다.

그들은 경기를 잘 하려는 뜻에서

온갖 이상한 행위를 다 한다고 한다.

어떤 선수는 외야에서 뛰어들어 올 때

행운을 빈다는 뜻에서 2루를 꼭 밟고 들어온다고 한다.


또 어떤 감독은 팀이 연속적으로 패배를 당하고 있을 때엔

이를 막는다는 뜻에서 팀의 버스 뒤좌석에 앉는다고 한다.

이밖에도 야구계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미신적인 행위는

스트라이크를 두 번째로 받은 다음엔 야구 방망이를 바꾸지 않기,

승리를 연속적으로 하고 있을 때엔 

야구복을 새것으로 바꾸어 입지 않기,

홈루를 야구 방망이로 세 번 두들리기,

그리고 파울 선을 밟지 않는다는 것 등이 있다.

 

1920년 대의 뉴용 양키팀의 투수 레프티 오도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파울 선을 밟았다고 반드시 경기에 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그 선을 밟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

알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힘이 어디엔가 있다면

그는 이 힘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자기 심중 깊이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과연 이러한 미신들은 해가 되지 않는 의식일까?

어떤 사람은 해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알 수 없는 힘을

믿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재수나 행운을 바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참 신앙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의 생활 중에 나타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이빗 C. 에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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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장군과 타냐의 대화 장면이다.

장군은 타냐에게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기 때문에

타냐는혁명의 와중이고 거리는 불이 나고 복잡해서

그저 도망치는 중에…”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그때 장군이헤어진 정말 이유는 무엇이지?”하고 다그치자

타냐는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던 말을 실토한다.

사실은 아버지가 손을 놓아 버렸어요."

 

이때 장군은 타냐에게 말한다.

내가 사실을 가르쳐 주마.

코마로프는 네 친 아버지가 아니었다.

너의 아버지는 바로 닥터 지바고야.

만일 그가 네 친아버지였다면

아무리 거리에 불이 나고 혁명의 와중이라도

절대 네 손을 놓지 않았을거야.”

 

진짜 아버지와 가짜 아버지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짜 아버지는 결코 딸의 손을 놓지 않는다.

진짜 신과 가짜 신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좇고 있는 세상 명예의 신이나 물질의 신은

조만감에 우리의 손을 놓을 것이다.

 

평생이라는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다 기울였던

그 안개 같은 우리의 우상들은

코마로프가 불붙는 거리에서 어린 타냐를 떼어놓았듯이

얼마 뒤에 우리를 배반할 것이다.

그리고 허무한 우상들을 좇던 우리는 외로운 패배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그 가짜 신의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 스탠리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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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비이성적이면서도 단순한 일인가?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극히 합당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매 모두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서지 않았던가?

그러나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라는 질문을 연발할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지 못하다.

이성만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답은

너무나 간단명료하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11:3).

 

-C. H. 맥킨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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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이성과의 관계는

마치 한 개의 끈으로 연결된

두 개의 두레박의 관계와 같다.

그래서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은 내려온다.

즉 믿음이 보다 더 높이 올라가면

이성은 보다 더 낮게 내려온다.

 

또한 이성이 보다 더 높이 올라가면

믿음은 보다 더 낮게 내려온다.

이성이 믿음을 앞서가면

그 이성은 믿음을 약화시키고 감소시킨다.

 

루터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만약 믿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왜’라는 의문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무엇 때문에’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이성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신기하게도 믿음 안에서는 해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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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란 맞아도 좋고 맞지 않아도 재미있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위자인 카라얀의 말이다.


오케스트라일 경우,

다른 음과 맞지 않거나 시간을 맞추지 못해

화음이 안 되게 연주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그러나 이럴 때 성급하게 다른 음과 맞추게 하려고 한다면,

그는 유능한 지휘자가 아니다.


때로는 그 사람이 연주한 음이 다른 음보다 뛰어나 있어

고쳐야 할 것은 오히려 다른 대부분의 연주자일 경우도 있다.

음이 맞지 않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재미있는 결과를 가져올 경우까지 있다.

요즘 유행하는 음악인 모던 재즈가 그중에 하나다.


처음부터 모든 음이 완전히 맞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경계해야할 일이다.

한바탕 부딪혀 봐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모든 연주가

그 문제에 주의하고 더욱 생각하게 되어

조금씩 발전해 갈 수 있다.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온전치 못한 이 세상에는

언제, 어디서나 불협화음이 있게 마련이며,

오히려 그것이 이 세상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

그러나 모든 음이 완전히 맞게 되면,

더 이상의 진보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실수를 전혀 하지 않게 되면,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실수를 자극제로 삼아 자기 진보의 디딤돌로 만들어라.

사람은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리차드 W. 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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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희망은 있어도 

실제 사업이나 일에 손을 뻗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실패 공포증에 걸려있다.


왜 실패를 두려워하는가 하면

그 일을 달성하기까지의 곤란이나 난관을 미리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실패 공포증이나 난관 기피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왜 가능한 적극적인 면은 추호도 생각하지 않고

어려운 점만 생각하는 거요.”


어떠한 일이든지 난관이 없는 것은 없다.

그러나 돌파할 수 없는 난관도 없다.

난관 앞에 걸음을 멈추지 말라.

어려운 점만을 헤아리고 있어서는

개인이나 사회나 아무런 발전도 진전도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은 흔히 이렇게 반문한다.

“그 곤란한 경우를 무슨 재주로 극복할 것입니까”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기 일쑤다.

“신념으로서 극복할 수 있소”


곤란을 돌파하는 데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 바로 무기이다.

사람들은 특별한 재주나 수단을 찾는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재주와 수단이

바로 신념이라는 것을 모른다.

신념이 강하면 어떤 일이든지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노만 빈센트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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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

다시 말해 온갖 두려움과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은

한 주간 가운데 겨우 이틀뿐이다.


그 이틀 중에서 하루는 ‘어제’다.

비록 실수와 근심, 통증과 고통, 과실과 실책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어제는 영원히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세상에 있는 돈 전부를 주고도 어제를 다시 살 수는 없다.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하루는 ‘내일’이다.

비록 수많은 역경과 짐 덩어리가 기다릴지라도

다른 한편으로 희망찬 약속과 성취가 있다.

그러나 내일도 또한 어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곳에 있다.

내일의 태양은 휘황찬란한 광채를 발하며 떠오르든,

구름이 가려서 떠오르든 반드시 떠오른다.

그렇지만 내일이 오기 전에

우리는 내일에 관해서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일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단 하루가 남는다.

그것은 바로 ‘오늘’이다.

결국 모든 사람은 오늘의 싸움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오늘의 싸움에서 어떠한 경우에는 쓰러지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제와 내일이라는 장엄한 영원의 시간에

우리가 갖는 모든 마음의 짐을 갖다 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제라는 시간이나 내일이란 시간에 모든 걱정과 근심을 두어

오늘이란 시간을 소홀히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는 단지 오늘만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오늘’이라는 현실에만 충실하자.


-윌리엄 바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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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것이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지는 것이 반드시 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것,

이것이 이기는 것이다.

미워하는 것,

이것이 지는 것이다.

사랑으로써 이기는 것,

그것만이 영원한 승리이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

자랑하지 않는다.

교만하지 않는다.

오래 참는다.

 

그리하여 영원히 승리하여

영원한 평화를 가져온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싸움이 그치는 때는

사랑이 승리를 차지했을 때뿐이다.

 

-우찌무라 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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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적인 순종만이 올바른 순종이다.

머뭇거리며 순종하는 것은 불순종과 같다.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브라함이 행한 것처럼 ‘이 날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창 17:23).

 

그러나 우리는 임무를 자주 연기하며 즉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전혀 행치 않는 것보다는 행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것은 반쪽짜리이며 불충분한 임무수행이다.

따라서 연기 되었던 임무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축복을 가져오지 못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 행하는 모습 속에 그분의 완전한 축복이 깃들 것이다.

‘이 날에’는 창세기의 가르침이다.

 

-찰스 카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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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평신도 훈련/묵상 2015. 11. 25. 15:26

훼방과 간음과 살인이 끔찍한 죄악들이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거절하는 죄보다는 가볍다.

 

우리 모두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잃어버려야 할 경우에도

그리스도만은 간직하자.

그리고 친구들을 배반해야 될 경우에도

자기 목숨을 아까지 아니하시고

죄악을 구원하시려고 피와 땀을 흘리셨던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인 구세주만은 소중히 지키자.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의 구주를 모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찰스 H. 스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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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평신도 훈련/묵상 2015. 8. 12. 13:56

우리는 사역자를 말할 때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갖가지 자기의 영역에 부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몇몇 영역들에 대한 재능,

즉, 그들이 가장 잘 성취할 수 있는

어떤 정신적 혹은 육체적 일에 대한 재능을 주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명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닐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자 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의 부름 받은 길을 놓치지 않게 될 것이다.

‘내가…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은 우리들 각각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재능의 종류와 그 크기를 알고 계신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를 아무데에나 던져 놓으시겠는가?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일이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그분의 뜻을 구할 때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는 올바른 적소에 놓이게 될 것이다.

 

-조셉 S. 엑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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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평신도 훈련/묵상 2015. 6. 3. 12:41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겪게 되는 슬픔은

때로 우리 생명에 유익이 있다.

슬픔은 우리의 마음을 더 깊게 만든다.

 

성경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전 7:3).

하루 종일 희희낙락하는 사람은 흔히 경박한 사람이 경우가 많다.

슬픔은 하나님의 쟁기이다.

그것은 흙의 깊은 곳을 파서 땅이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한다.

 

만일 우리가 지금껏 한 번도 타락해 보지 않았다면

우리는 슬픔이 필요치 않다.

그때는 하늘에 속한 기쁨이

우리를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격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타락했기에 슬픔이 우리를 회개하게 하며

결국 우리 자신을 알도록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슬픔은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감정이 된다.

요셉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아

이스라엘 나라와 그의 민족을 구원하게 되기까지

그는 다른 어떤 아들들 보다 슬픔을 많이 겪었다.

다윗과 바울도 역시 적잖은 슬픔을 체험하였다.

더욱이 우리 예수님도 우리의 죄로 인해 슬픔을 맛보았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주 슬픔을 통해 그분의 뜻을 전달하신다.

 

-찰스 카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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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평신도 훈련/묵상 2015. 3. 25. 11:59

일본의 신학자 하천풍언은 그의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이러한 질문을 언제까지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실물을 보여주시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하나님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청년도 있다.

하지만 이 청년은 하나님을 찾는 마음은 간절한지 몰라도

발견하는 방법이 어그러져 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는 직접 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은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이다.

예수님이 믿은 하나님은 우주의 다 한 분밖에 없는 영의 하나님이시다.

그러한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는 것은

이 육안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종교적 진실이다.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마음에 느껴온다.

 

전선에 전기가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를 알려면

소켓에 손을 대어 보면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소켓에서 하나님을 전기처럼 느낄 수가 있는데,

이는 양심이다.

양심에 하나님의 능력이 짜릿하게 통해온다.

 

어떤 이는 “나는 조금도 양심에 하나님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퓨즈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양심 소켓에 하나님의 음성이 통하는 퓨즈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의 퓨즈가 끊어지지 않은 양심 소켓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알만한 충분한 근거를 이미 보이셨다(롬 1:19).

 

-우찌무라 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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