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란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5:24),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최대의 목표로 삼고 사는 자들이다(고전 10:31).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쁜 생활과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허탄한 길, 즉 육체의 소욕을 따라갈 가능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이 또한 성도들의 삶이기도 하다.  본고는 구약에 나타난 신앙 선배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여 세상을 쫓아간 실수를 범하고 난 후 어떻게 신앙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한 단계 높은 신앙으로 승화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신앙에 교훈과 도움을 얻고자 한다.

 

1. 개인적인 신앙 회복 운동

A. 아브라함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벧엘에서 단까지 쌓은 그는(2:8), 가나안에 닥친 기근을 피하여 이방 땅 애굽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였다.  왜냐하면 사래의 미모가 출중한 연고로 사래를 아내라고 하면 그녀의 미모를 탐낸 애굽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12:11).  결국 이런 사실은 탄로나게 되었고 이를 질책하는 바로 앞에서 그는 한 마디의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처럼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중하고 나갔던 그가(11:8), 자신에게 닥친 기근이라는 환경적 시련을 피하기 위해 이방 땅 애굽으로 가는 잘못(31:1)과 또한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거짓말을 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망각한 육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한 대가로 돌아온 것은 이방인의 가혹한 질책뿐이었다.  이러한 스스로의 반성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은 믿음으로 인해 그는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칭호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었고(17:5), 믿음의 조상으로 오늘날까지 칭송을 받게 되었다.

B. 다윗 : 통일 왕국의 2대 왕이기도 한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 뜻대로 살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불레셋 장수 골리앗을 이길 때도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등(삼상 17:47), 그는 언제나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다.  그런 그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보고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 간음죄를 저질러 그녀에게 불륜의 씨앗을 가지게 하는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우리아를 최전선에 내보내 죽여 버리는 극악한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가 이처럼 비열한 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숭고한 마음이 육체의 정욕에 굴복하였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그가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그는 결코 성군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한 데 있다. 즉 그는 그 상태에서 나단 선지자의 꾸짖음을 달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다(삼하 12:1-14).  이때에 그가 쓴 시가 구구절절이 회개의 자국으로 얼룩진 시편51편이다.  

 

2. 국가적인 신앙 회복 운동

A. 미스바 회개 운동 : 삼상 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로 모이는 사건이 나온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 상태에 있었지만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런 와중에서 사무엘은 미스바 소집령을 내렸다.  그 목적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 관계를 재수립하고 그 언약 관계를 가로 막고 있는 불레셋의 압제를 단호히 배격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미스바로 모이기 전에 사무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백성들에게 공포했다.  a.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 제하라.  b. 마음을 여호와께만 향하여 그만 섬기라.  이것은 곧 진정한 회개란 단순히 입술만의 회개가 아닌 생활 그 자체의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을 교훈한다.  이러한 명령을 백성들은 그대로 지켰고 이로 인해 미스바의 회개 운동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산 제자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건짐을 받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B. 요시아 왕의 종교 개혁 : 남유다 왕국의 제16대 왕인 요시아는 26, 즉 그의 통치 18(B.C.621) 되던 해부터 유다 역사사 가장 철저한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개혁의 목적은 성전을 중심으로 유다 전역에 팽배해 있던 우상 숭배를 일소함으로 인해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자는데 있었다.  이러한 그의 태도를 열왕기 저자는 요시아와 같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왕은 요시아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라고 극찬하였다.  이러한 개혁의 출발점은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그가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과 백성들이 걸어온 길을 그 말씀에 냉철히 비추어 보면서 모든 일을 주의 뜻대로 준행한 데 있다(왕하 22:11, 23:24). 

이와같이 개인이든 국가이든 간에 타락의 길에서 신앙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비추어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자비의 은총을 베푸실 것이다(요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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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식이 거행된  성전은(6:16), 성전 건축의 역사에 의거해 제 2차 성전이라고 불리우거나 또는 건축을 주도한 사람의 이름을 본따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불리운다.  이제 그 건축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바벨론에서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후 이스라엘인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바벨론에 의해 훼파되었던 솔로     몬의 성전 터 위에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다(3:1-6).  

2. 그 후 성전 건축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이에 성전의 기초가 놓여졌다.  전의 지대가 놓여지자 사람들은     기뻐하며 여호와께 찬양을 드렸다(3:7-13). 

3. 그런데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 같은 자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이(4:1-3), 성전 건축을 방해하였다     (스 4:1-5).  

4. 이후 성전 건축이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이는 방해자들 때문이 아니고 사람들     이 열심을 잃고 게으름(1:2-8)을 피웠기 때문이었다(4:24).  

5. 이 작업은 다리오(Darius) 2년까지 중단 되었으나, 선지자 학개와 스라랴의 격려 및 다리오 왕의 조     서로 말미암아 재개 되었으며 4년 후(B.C. 515)에 완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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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신앙은 유대인들에게서부터 비롯되어 온 인류에게까지 파급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 하나님께 대한 공중예배(公衆禮拜)를 드리지만 국가가 형성되지 않았던 시대의 유대인들은 개인적으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였다.  그러던 것이 출애굽 이후 성막이라는 공중예배 처소가 생겨났으며 그것이 발전하여 성전으로,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회당으로 변천되었다.  이러한 변천 과정을 따라 여러 형태의 예배 처소 및 그에 따른 예배 형태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제단(祭壇)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형성되지 못하였던 족장 시대에 있어서 유대인들의 예배 형태는 가족 예배였다.  물론 가족 예배는 그 이후 오늘날 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항상 행하여져 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공중 예배와 병행하여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족 단위로 생활하던 유대인들은 개인적으로나 족장 중심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예배 처소는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아니하였으나 어느 곳에서든 돌로 쌓는 제단이 바로 예배 처소가 되었다(8:20, 12:7, 25:25).

 

2. 성막(聖幕)

유대인 사회에 있어서 공중 예배의 체계가 세워진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와 더불어 비롯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제도에 관한 제반 규례를 주셨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였다(40).  성막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의 3대 절기인 유월절과 칠칠절, 수장절을 지키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절기 행사에 참석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16:16).  이와 같은 성막 예배를 통하여 유대인들은 족장 시대부터 행해져 온 희생제사(犧牲祭祀) 제도를 보다 조직화 하였으며(1), 안식을 규례를 엄격히 정비하였다(23:1-3).  한편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부분은 언약궤인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었다(37:1-9).

 

3. 성전(聖殿)

솔로몬 시대에 이르자 성막은 성전으로 대치되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곳으로 옮기었다(왕상 8).  이로써 성전은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 있어서 예배의 본산지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각 지방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야 했다.  이로 인해 희생제사 제도는 더욱더 조직화되었으며 제사장 직분을 부여 받은 사독(Zadok) 자손들과 레위인들이 이 사역을 담당하였다.  한 편 성전 예배로 인해 파생된 것들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곧 음악적 측면이다.  성전 예배에 있어 찬양을 맡을 찬양대가 조직됨(대상 25)과 아울러 찬송가로 사용될 시편집이 만들어졌으니(113-118, 120-134, 136) 이제 찬양은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한 요소가 되었다.

 

4. 회당(會堂)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은 불가피하게 예배 처소의 변모를 가져왔다.  바벨론 포로 이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 예배를 회복시킬수 있었지만(6:13-22), 바벨론에 그대로 정착했거나 다른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새롭게 생겨난 예배 처소가 곧 회당인데, 회당(Synagogue)이란 말 자체는 회중(Congregation)이란 뜻이다.  이러한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마다 건립되어 그 수효가 급증하였는데, A.D. 1세기에는 예루살렘에도 480여개나 되는 회당이 설립되었다.  그런데 회당에서는 예배만 거행되었으며 예배를 주관하는 것도 제사장이 아닌 회당장이 맡아 하였다.  회당 예배는 기도에의 부름(6:4-9, 11:13-21 등을 낭독함)과 대표기도, 그리고 성경 낭독 및 말씀에 대한 해석과 축복 기도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세 번째 순서다.  한편 이같은 회당은 예배 처소였을 뿐만 아니라 교육 장소이기도 하였는데 어린 아이들에 대한 초등 과정으로서의 율법 교육이 이곳에서 항하여졌다.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러한 회당에서 종종 사람들을 가르치셨던 것을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13:54, 1:21).

 

5. 교회(敎會)

초대 교회의 예배 처소는 오늘날과 같은 외형을 지닌 건물이 아니었다.  다만 유대적 정통주의에 대립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로 모임을 가졌던 곳이 바로 교회이니 처음에 그러한 예배 처소로서 다락방(1:13, 20:8)이나 개인의 집(1:2)이 사용되었다.  한편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구원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로서 장소가 아닌 모임 그 자체를 가리킨다(18:20).  근대식 교회의 건립은 기독교가 온 세계로 확산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는데 349년에 완공된후 17세기에 이르러 개축이 끝난 성 베드로 대성당은 웅장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한편 초대 교회는 말씀을 상고하며 성만찬 및 세례 예식을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예전으로 받들어 행하였으니 이러한 예전(禮典)은 오늘날까지도 지켜 행해지고 있다(2:3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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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로 〈카르크미스〉라 불리우는 이 지명의 뜻은 그미스의 신전이다.  이곳은 고대 헷 제국의 수도 중 하나로서 주요한 전략 지대인 동시에 B.C. 18세기경의 무역 중심지였다.  이곳은 Aleppo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의 서편에 위치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Jerablus (이 말은 그리스어 Hieropolis가 와전된 것임)로 불리운다.  갈그미스는 무엇보다도 격전지로 유명하였는데, 성경은 물론 일반 역사서들도 이곳을 전쟁터로 기록하고 있으며, 고고학적 사료(史料)들은 특별히 갈그미스 전투’(the battle of Carchemish, B.C. 605)의 기록을 입증하고 있다.  본래 갈그미스는 ShakhurunuwaTalmi Teshub 같은 헷 족속의 왕들에 의해 다스려졌었는데, Pisiris 왕 때에 이르러 앗시리아의 지배하에 예속되어 버렸다(B.C. 717/ 참조 사 10:19).  그러나 앗시리아는 베벨로니아의 침략을 받고 이때 앗시리아를 도우러 왔던 이집트의 바로느고 2세는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전하므로써 갈그미스는 새로이 바벨로니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참조/ 대하 35:20).  그후 이 도시는 급격히 쇠퇴해 버리고 말았으니 1912년 영국의 고고학 탐사반에 의해 이곳의 발국 작업이 시작됨으로써야 비로소 유적으로나마 당시의 영화를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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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인 솔로몬이 기브온의 회막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날 밤에 여호와께서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가 원하는 대로 지혜와 지식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대하 1:12).  또한 여호와께서는 그의 정직하고 겸손한 소원 이외에도 부와 재물과 존영(尊榮)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솔로몬은 지혜와 지식을 얻었으며 슬기로운 통치를 하였고 부와 존영도 얻게 되었다.  그의 지식은 모든 식물과 동물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였으며(왕상 4:33), 이러한 지식을 잘 활용하여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였으며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지혜였다.  백성들 간의 여러 사적이고 공적인 일들을 공정하게 재판하고 처리하는 그의 지혜는(왕상 3:9, 28), 다른 여러 나라까지 소문이 났다(왕상 4:34).  그러나 그는 훗날 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으며(비교/ 7:3, 23:12), 이방 아내들이 가져온 우상들을 섬겼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지혜를 의심케 하는 사건었다(왕상 11:4-6).  솔로몬의 우상숭배는 결국 이스라엘 분열의 주요 원이이 되었다(왕상 11:9-13). 그리스도께서도 인정하실 만큼의 놀라운 부귀영화를 누렸던( 6:29), 솔로몬이지었지만 그의 지혜는 하나님의 축복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신앙적 불성실 앞에서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즉 솔로문의 생애는 인간의 지혜와 물질적인 부요함보다는 신앙적인 지조가 더욱 중요함을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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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의 성전과 신약시대의 교회는 모두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하셔서 함께 하신다는 점은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  즉 구약시대에 있어선 성전 내의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그리고 성소에는 제사장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으며 일반백성들은 성전 바깥 뜰에 서 있어야만 했다( 9:6-7).  따라서 백성들은 제사장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고 제사장은 중재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르러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27:52), 더 이상 건물이나 장소적인 의미에서의 성전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4:22-24, 12:1-2).  즉 성도들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4:14), 더구나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거하시므로(고전 3:16), 성도들 자신이 성전이 되었다(고전 6:19).  교회라는 말의 헬라어는 에클레시아로서 이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을 뜻한다.  한편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신자들이 예배당성전이라고 하거나 예배하는 행위제단을 쌓는다라고 칭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는 일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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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자와 선지자

연구자료 2017. 12. 16. 13:48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삼상 9:9)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선견자(先見者)와 선지자(先知者)는 별개의 사역을 하는 자로 구분될 필요가 없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었다.  성경에는 이들을 일컫는 여러 개의 명칭이 나오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선견자(seer)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로는 〈호제〉와 〈로에〉가 있다.  한글개역 성경에는 〈호제〉라는 말이 선견자’(삼하 24:11, 왕하 17:13, 대상 2:9, 7:12)살피는 자’( 47:13)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로에〉라는 말은 성경에서 단 한 차례 나오는데 선견자로 번역되어 있다(삼상 9:9).  둘째, 선지자(prophet)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로는 〈나비〉, 〈나타프〉, 〈느비아〉가 있다. 이중 〈느비아〉는 여자 선지자를 가리키는 여성 명사이다.  한글개역 성경에는 여선지자’( 15:20, 4:4, 왕하 22:14, 6:14)로 번역되어 있다.  〈나타프〉라는 단어는 미가서 2 11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나비〉라는 단어와 의미상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한편 〈나비〉라는 단어는 한글개역 성경에서 다양한 용어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가 창세기 207, 민수기 1129, 신명기 131, 열왕기상 134, 예레미야 281절 등에서는 선지자, 출애굽기 71절에서는 대언자, 그리고 에스겔서 132절에서는 예언하는 자로 번역되었다.  이상의 예언자들은 왕이나 제사장들과는 달리 그 직분이 세습되지 않았으며 대개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인 부르심을 받고 비로소 선지자적 사명을 수행하였다(참조/ 1:4-19, 1:1-2).  이들은 장차 일어날 일을 예견하거나 예언하는 것에 주력하였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그 뜻을 좇아 살도록 사람들을 계도(啓導)하는 일에 주력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예언 활동도 실제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을 때에 어떠한 결과가 따를 것인지를 보여주는 계도적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참조 렘 4: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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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에서는 보통 정치적인 이유로 인하여 한 집단이나 한 민족과 같은 공동체를 국외로 추방하는 일이 있었는데이를 일명 유수 정책’(幽囚 政策)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책은 흔히 적대시 하는 민족의 세력을 분쇄하거나 또는 어느 한 지역을 식민지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 일례 중의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곧 유대인들의 베벨론 유수 사건이다(대하 36:20).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그 살아남은 자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 긍극적인 원인은 백성들의 죄악 때문이었다(대하 36:11-2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찍부터 이스라엘을 보존하시며 여호와 신앙을 지속시키려고 계획하셨으니(참조/ 44:24-28), 때가 이르자 그 경륜을 따라 유대인들은 포로로 억류되어 있던 바벨론에서 팔레스틴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다(대하 36:22-23). 역대하 36장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바 이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1. 바벨론 유수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최초의 경우는 애굽과의 갈그미스 전투를 끝낸 느부갓네살 2, (B.C. 605-562)가 예루살렘으로 진격했던 B.C. 605년의 일이다.  이때 느부갓네살은 자기를 배신한 여호야김(B.C. 608-597) 왕의 목숨을 살려주었지만 유다의 방백 중 몇 사람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등이 있다(왕하 24:1-16).  두 번째의 경우는 B.C. 597년에 발생하였는데(왕하 24:1-16), 여호야김을 징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쳐들어왔던 느부갓네살은 죽은 여호야김의 뒤를 이은 여호야긴(B.C. 597) 왕과 그의 어머니 및 유다의 고위 관리들을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세 번째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유수된 사건은 B.C. 586년에 일어났다.  이때 예루살렘은 황폐화되고 빈민들을 제외한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 갔다(왕하 25).  이로써 북이스라엘의 멸망(B.C. 722). 이후 그나마 국권을 수호해 오던 남유다마저도 멸망하게 되었으며 유대인들은 1948년에 이스라엘 공화국을 수립하기까지 식민지인으로 서러움을 겪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연유로 인해 바벨론에 잡혀간 유대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남쪽지방에 정착하게 되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동남쪽 Nippur 근처에 있던 그발 강가의 Tel-Abib에 유대인들이 정착하고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기도 하다( 3:15).  그런데 유대인들은 일반 전쟁포로와 달리 바벨론 왕실의 보호를 받았으며 자유롭게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종교적인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예배와 친교를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모임에 의해서였는데 저들은 이러한 집회를 통하여 더욱더 믿음을 굳게 하며 고국 땅으로 돌아갈 소망을 날로 불태웠다(참조/ 137).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토지를 일구어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29:5), 사업에 종사할 수도 있었으므로(참조/ 17:4), 어느 정도 물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생활을 통하여 일부 일부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관습에 동화되기도 하였는데, 그들은 이람어를 사용하고 우상을 용납하며 이교 의식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에스겔과 같은 인물을 중심하여 단합한 유대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조국을 재건할 날만을 소망하였으니 그 같은 희망이 성취할 전조(前兆)로 옥에 갇혀 있던 여호야긴 왕의 석방이 이루어졌다(B.C. 560, 왕하 25:27).  그리고 마침내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된 날이 왔으니 그것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 2세가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이다.

 

2. 귀환

B.C. 539년에 바벨론을 명망시킨 고레스는 같은 해에 유대인들의 본국 귀환을 허용하는 칙령을 공포하였다( 1:1-4).  이에 스룹바벨이 이끄는 최초의 유대인 귀환자들과 예수아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건축을 위한 지대(地臺)를 놓았다( 3:8-13).  그 후 계속되는 성전 건축 공사는 방해자들의 책동에 의해 일시 중단되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다가 B.C. 517년에야 겨우 완공을 보게 된다( 6:15).  한편 에스라가 이끄는 두 번째 귀환자들은 B.C. 457년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 하였다( 7:7-8).  예루살렘에 돌아온 에스라는 당시 그곳에 만연해 있던 죄악의 요소를 제거하는 부흥 운동을 일으켰는데 그 일환으로 백성들이 이방인과 결호하는 것을 금하며 안식일 준수를 꾀하였다( 8-10).  이뿐 아니라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1, B.C. 464-423) 밑에서 관리로 있던 느헤미야도 B.C. 444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 3).  이처럼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당시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베발론 유수 이후의 유대인 사회를 재정립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한편 이스라엘인이 유다(Judah)의 단축형인 유대인’(Jew)으로 불려지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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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은 하나님, 인간, , 그리스도의 구속 등과 더불어 성경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구약성경에 나타난 찬양은 고난을 통해서 생겨난 것이 많다.  시편 63편도 다윗이 유다 광야에서 고생하면서(1) 지은 것으로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를 찬양하고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3-5).  이처럼 찬양은 신앙을 가진 자들 누구나가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마땅히 해야 할 의무 중에 하나인 것이다.  


1. 찬양의 원어 

찬양이라는 말은 예배, 경배, 감사 등의 개념과 떨어져 생각할 수는 없다.  찬양은 그 자체로서 경배이고 감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어 ‘Shir’찬양하는 것혹은찬미하는 것을 의미한다( 92, 108).  즉 노래뿐만 아니라 언어 행동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또 다른 언어로는 ‘tehillah’가 있는데(대하 7:6), 이는 찬양하는 시를 가리키는데 쓰였던 말이다( 96:2).  신약에 와서 찬양이라는 말은 헬라어 ‘aineo’로 일컬어졌는데( 2:13), 원래 이 단어는가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찬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에게 찬양을 드리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18:43).  이러한 원어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찬양이 노래만이 아니고 예배 및 생활 전체를 포함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또 찬양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2. 찬양할 이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피조물로서 우리에게 생명과 활동을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당연히 찬양하고 경배해야 한다( 43:21, 102:18).  물론 하늘에 천군 천사들과( 103:20-21, 148:2), 하늘( 89:5), ( 98:4), , 안개, 광풍, , , 짐승, 과목, 가축, , 세상의 왕들, 어린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148:8-13), 모든 자연계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한다.  ② 죄로 인하여 영원한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는 것은 성도로서 당연한 것이다( 19:5).  또한 이러한 사역을 담당하셨던 그리스도 자신께서도 하나님께 찬미를 드렸다( 14:26).  


3. 찬양과 그리스도인 

하나님께서는 제물보다 찬양을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69:30-31).  즉 형식이나 물질로 표시되는 경배 행위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영혼으로 주를 찬양하고 영혼으로부터 우러나는 진실되고 체험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입에서 나오는 몇 마디 말과 물질적인 풍성과 안락에서 비롯된 자기만족적이며 즉홍적, 그리고 일시적인 찬송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찬양이 될 수 없다.  찬양은 오히려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 잉태되어 고난이 지나간 후에 빛을 발하는 것이다.  즉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움과 은혜를 기뻐하면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것이 찬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성도는 그만큼 성장한 신앙을 가진 자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찬양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즉 예배할 때뿐만 아니라 침상에서나( 63:5-6, 149:5), 산꼭대기( 42:11),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서( 57:9), 심지어 행군하는 군대 앞에서도(대하 20:21-22), 찬양이 계속되어져야 한다.  이렇게 찬양이 계속될 때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되고 신앙은 더욱 성장하며 생활에는 즐거움이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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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의 대상

연구자료 2017. 7. 14. 11:04

성경에는 ‘찬송’이라는 용어가 약 400회 (구약 351회, 신약 48회) 나타나는데, 이 단어가 쓰인 문맥을 살펴보면 그 대상이 ‘하나님’으로 일관하고 있다.  즉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430)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을 찬양하는 것은 진정한 찬송이 아니라고 했으며, 633년의 톨레도 교회 회의(Councils of Toledo)에서는 “찬송은 노래(Can‘ticum)와 높임(Caudem) 그리고 하나님(Deity)의 세요소가 포함된 것”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하나님을 찬양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노래는 찬송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에서 하나님과는 무관한 노래를 예배 도중에 부르는 것은 실로 불경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준비 찬송이라는 말도 합당치 못하다.  왜냐하면 찬송은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 결코 예배를 준비하는 어떤 보조적인 성격을 지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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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용 음악

연구자료 2017. 6. 29. 12:26

‘예배용 음악’이란 교회 음악을 용도에 따라 분류한 것 가운데 한 부분이다.  예배용 음악은 주악과 찬양(성가)대의 찬양과 회중 찬송으로 구분된다.  1. 주악 : 예배의 처음과 끝 또는 필요한 때에 악기로 연주되는데 보통 전주, 간주, 후주로 나뉜다.  ① 전주(Prelude) : 예배를 시작하기 약 10분 전쁨의 시간에 교인들의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를 분비하도록 엄숙하고 신앙적인 곡을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② 간주(Interlude) : 성찬식이나 헌금할 때 등의 예배 중간에 연주하는 것이다.  ③ 후주(Postlude) : 예배가 끝난 후 회중이 나갈 때에 기쁨과 승리의 느낌을 주는 장엄한 곡을 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2. 찬양(성가)대의 찬양 : ① 입례송(Introit) :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사랑을 찬양하며 회중들의 마음을 영적인 것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첫 송영이라고도 한다.  ② 기도송(Response to Prayer) : 대표기도에 대한 응답송으로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내용이다.  ③ 찬양(Anthem) : 찬양/성가대의 음악 가운데 제일 중요한 부분으로서 보통 오르간이나 피아노로 반주한다.  ④ 축도송(Benediction) : 축도가 끝난 후 이에 화답하는 음악으로서 보통은 아멘송이 사용되지만 상삼위를 찬양하거나 아니면 성도들에게 복이 있기를 간구하는 내용의 곡도 쓰인다.  3. 회중 찬송 : 회중 찬송은 종교 개혁 이후부터 대두되었는데 이는 예배하러 모인 회중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가리킨다.  이상과 같은 예배용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이므로 기쁨 마음과 정확한 곡조로, 알맞은 속도와 크기로 그리고 반주에 잘 맞추어서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불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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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의 종류

연구자료 2017. 6. 1. 12:24

성경에서 찬송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분류했다(엡 5:19, 골 3:19).  이러한 노래들은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그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시’(Psalm): 이는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부른 노래로서 주로 시편 9편을 가리킨다.  이 노래를 부르는 방식은 두 가지로서 응답송과 교성(交聲)이 있다.  ‘응답송’은 찬양대와 회중이 서로 응답하듯 번갈아 부르는 것이며, ‘교성’은 찬양대가 둘로 나뉘어 부르는 것을 말한다.  ② ‘찬미’(Hymn): 이 노래는 보통 찬양이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훈계의 내용이 들어간 것을 가리킨다.  즉 시편 9편을 제외한 성경의 여러 노래들을 기초로 하여 교리나 예배에 필요하게끔 창작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뜻한다.  ③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 이것은 보통 신앙적인 노래를 세속적인 노래와 구분하기 위하여 붙인 이름으로서 성도의 신앙적 체험에서 우러난 찬송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 시대와 지방에 따라 독특한 신앙의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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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기초를 놓았으며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절정에 이룬 이스라엘의 찬양대 및 찬양 예배 제도(대상 25:1-31)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B. C. 586)까지 지속되었다.  이러한 예배의 찬양은 물론이고 이외의 일상적이고도 개인적인 여호와 찬양과 관련하여 히브리인들은 여러 악기를 사용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악기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비파 : 히브리어로〈네벨〉이라고 하는 이 현악기는 역사서(삼상 10:5, 왕상 10:12, 대하 9:11)와 시편 (시 33:2, 57:8, 92:1-3)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일종의 ‘하아프’이다.  ② 수금 : 히브리어로는〈킨노르〉라고 하며 역사서(삼상 16:23, 삼하 6:5)과 시편(시 43:4, 71:22, 137:2), 이사야서(사 5:12, 23:36, 30:32) 등에 많이 언급되어 있는데 대개는 6개 줄로 이루어져 있다.  ③ 제금 : 히브리어로〈무칠타임〉또는〈첼출림〉으로 불리는 이 악기는 심벌즈의 일종으로 역대상 13장8절, 15장16절, 16장5절에 많이 나온다.  ④ 양금 : 히브리어로〈무나아느임〉이라고 하는 이 악기(삼하 6:5)는 오늘날의 탬버린과 같은 것이다.  이 외에도 자주 사용된 악기로는 작은 북(출 15:20, 삼상 18:6, 시 81:2)이 있으며 신호용으로 쓰이던 나팔도 때때로 악기로 사용되곤 하였다(시 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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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성

연구자료 2017. 3. 2. 12:14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왕이 된 다윗이 여부스족으로부터 빼앗은 ‘시온산성’에 붙인 명칭이 바로 이 ‘다윗 성’이다(대상 11:5, 삼하 5:6-9).  이 성은 본래 이스라엘 족장시대 때부터 있었는데(창 14:18), 동쪽의 기드론 시내와 서쪽의 두로베온 계곡의 능선, 그리고 북쪽의 힌놈 골짜기에까지 닿아 있는 큰 성읍이었다.  훗날 다윗은 이곳에 왕궁(대상 15:1)을 건축하였으며 솔로몬은 ‘밀로’를 재건하였는데, 밀로는 방축(防築)이자 거대한 보루(堡壘)로서 옛 부터 있던 가나안의 능선을 보강한 것이다(왕상 9:15).  이처럼 왕궁을 건축한 다윗은 또한 이곳에 장막을 치고 레위인들을 오벧에돔의 집에 보내어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와 장막 안에 두었다(대상 11:1-25). 여호와의 언약궤는 B. C. 959년까지 이곳에 안치(安置)되었으나 솔로몬이 모리아 산 북쪽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후에 궤를 그곳으로 옮겨갔다(왕상 8:1, 대하 5:2).  한편 성경에 의하면 다윗 성에는 장지(葬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다윗(왕상 2:10), 및 솔로몬(왕상 11:43)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유다 왕들(대하 12:16, 16:14, 24:25)과 제사장 여호야다 같은 사람들(대하 24:15-16)이 이곳에 묻혔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이 같은 자취를 볼 수 있는데, 다윗 성 남단부에 일부 남아 있는 반원통 모양의 지하 납골당이 바로 그곳이다.  B. C. 702년경 앗수르의 침략이 있기 전 히스기야 왕은 다윗 성을 중건하고 실로암 못을 파기도 하였으나(대하 3장), 결국 이 성은 B. C. 586년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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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을 읽다보면 ‘성신에 감동 된 자’(대상 12:18), ‘여호와의 신’, 또는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출 35:31, 삿 3:10)와 같은 말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는 성령께서 구약시대에도 활동하시면서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시는 것을 일컫는 표현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기에 바로의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창 41:1-39).  하나님께서는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자신의 신을 그에게 부어 주시어 성막 건축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다(출 31:1-5).  이러한 성령은 사사(士師)나 선지자들에게도 임하셨는데, 옷니엘은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여 사사가 되었으며(삿 3:10), 삼손은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어 사자를 마치 염소 새끼를 찌는 것처럼 찢었다(삿 14:6).  그리고 엘리사나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들은 성령을 힘입어 권능을 행하거나 예언을 하였다(왕하 2:12-15, 겔 11:24).  한편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았던 역대 이스라엘의 선왕(善王)들 역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었다(삼상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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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하고 잔인한 사람 산헤립(Sennacherib)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왕(B.C. 705-681)으로서 그 이름은 “신이 형제들을 강하고 번창하게 하였다.”라는 뜻이다.  그는 사르곤 2세(SaragnⅡ)의 아들인데 장자는 아니었으나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는 용맹하였으며 또한 정의를 실현하는 강인한 기상이 있었다고 한다.  사르곤 2세가 죽고 그가 왕위에 오르던 해에 강력한 갈대아족 비트 야킨(Bit Takin)의 족장 무로닥발라단(Merodach Baladan / 본명은 말둑 아발 아디나)이 사르곤 2세에 패하여 망명해 있던 엘람(Elarm)에서 돌아와 엘람의 도움을 얻어 바벨론의 왕이 되었다.  그리하여 산헤립은 반란자 무로닥발라단을 정벌하려고 출정하였다.  한편 무로닥발라단은 앗수르와 적대관계에 있던 갈대아족과 아람족들, 그리고 아랍 족속들을 규합하여 연합전선을 구축했으나 기스(Kish)근처에서 패하고 말았다.  산헤립은 바벨론을 약탈한 후 약 208,000명의 죄수를 추방하였으며 니느웨에서 훈련받은 원주민 벨 이브니(Bel Ibni)를 왕위에 앉혔다.  이러한 와중에서 유다 왕 히스기야는 반(反)앗수르 동맹에 가입하라는 므로닥발라단의 선동을 받아(왕하 20:12-13), 에그론의 친(親)앗수르 통치자 파디(Padi)를 체포하였다.  이러한 연고로 앗수르의 서방 정벌이 감행되었고 이때 예루살렘이 포위당하였으므로 유명한 실로암 못이 건설되었다.  서방의 정벌을 끝내고 돌아간 산헤립은 그들의 신 니스록의 묘에 경배하다가 두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 의해 살해당하였다(왕하 19: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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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메소포타미아 왕국들 중의 하나인 앗수르는 시리아 사막과 아르메니아, 페르시아 산을 접경으로 하는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앗수르의 역사는 B. C. 5000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하나의 왕국으로서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때는 B. C. 900-600년의 약 300년간이다.  이 당시에 활약했던 왕으로서 구약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자들로는 디글랏 빌레셋 3세(왕하 16:7), 살만에셀 5세(왕하 17:3) 등이 있다.  한편 앗수르는 문화적, 종교적인 면에서 바벨론의 여러 신들과 함께 그들 고유의 신인 Assyria를 숭배하였었다.  그리고 유프라데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지역을 영토로 삼았던 바벨론 제국의 역사는 선사 시대의 역사를 제외하고는 크게 고(古) 바벨론 시대(B. C. 1830-1530), 중기 바벨론 시대(B. C. 1530-630), 신 바벨론 시대(B. C. 630-539)로 나눌 수 있다.  바벨론 왕국의 창시자는 수무아붐(Sumuabum)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오늘날의 ‘델 엘 우케이미르’(Tell-el-Ukheimir)인 기스(Kish)에 최초로 바벨론 도시를 세웠다.  바벨론은 함무라비(B. C. 1866-1728) 시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가 중기 바벨론 시대에 이르러 앗수르에 의해 거의 멸국(滅國)되었으며, 그 후 나보폴라샬(Nabopolassar, B. C. 625-605)에 의해 다시 재건되어 페르샤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기까지 일시적 영화를 누리었다.  한편 이때와 관련된 성경역사로는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 및 이스라엘 멸망, 바벨론의 유수(왕하 24-25장) 등을 들 수 있는데, 당시 바벨론 왕은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B. C. 605-562)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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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전쟁관

연구자료 2016. 3. 15. 14:26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수많은 전쟁은 성전(聖戰)의 성격을 지닌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참가하셔서 싸우시는 전쟁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전쟁을 수행하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용사이신 여호와’(출 15:3)를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또한 이스라엘이 숱하게 치루었던 전쟁은 하나님을 버리고 그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이방의 우상들을 섬긴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라는 특면과 함께 지나친 악을 자행하고 인간의 도리를 넘어선 오만을 가진 이방 국가들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성격을 지녔다(암 1:1-2:3).  성경에 기록된 전쟁은 영토 확장이라는 일반적인 전쟁의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종교적인 것이며 언약적인 것이었다.  여기에서 언약적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택한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가르치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이다(출 19:5-6).  종교적인 전쟁을 치루는 이스라엘은 항상 승리를 여호와의 관계에서 파악했으며(삿 3:28, 삼상 7:8), 전쟁은 하나님과 상의한 후에 시작되었다.  이때의 신탁(神託) 도구로는 여호와의 궤(삿 20:27), 에봇(삼상 30:7-8), 우림(삼상 14:41:, 28:6), 그리고 꿈과 선지자 들이 사용되었다(삼상 28:6).  결국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방 여러 나라들과 전쟁을 치루며 싸운 사실은 그 자체가 신앙의 실천적 행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쟁은 ‘여호와의 싸움’이었으며(삼상 18:17, 25:28), 여호와께서는 전쟁을 수행하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신 9:3, 20:4, 삿 4:14).  신약 시대에 이르러 전쟁의 개념은 영적인 범위로 확대되고 재해석되었다(고전 14:8, 고후 10:3, 딤전 1:18-19).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는 죄와 악의 세계를 지배하는 사단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전쟁을 치루는 것이다(엡 6:10-12).  이 싸움은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영적인 무장을 하고 싸움에 임해야 한다(엡 6:10-17).  물론 여기서의 싸움은 성도들이 육신의 정욕과 악의 유혹, 죄와 싸워 나가는 하루하루의 신앙생활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싸움도 구약시대의 성전(聖戰)처럼 하나님께서 같이 하셔야만 승리할 수 있다.  결국 성도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후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골 2:12-15), 성도들은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힘을 빌면 이 영적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신앙의 확신을 갖는 것이다(골 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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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어 만든 우상

연구자료 2016. 1. 13. 15:04

히브리어로 <마셰카>라고 하는 ‘부어 만든 우상’은 용해된 금이나 은, 혹은 철이나 청동 등을 미리 만들어 둔 틀에 부어 제작하였다(신 27:15, 사 40:18-20).  팔레스타인에서 출토된 상(像)들에는 청동으로 주조한 동물의 모습을 가진 것과 금이나 은을 입힌 사람의 형상을 지닌 입상(立像)들이 있다.  또한 히브리인들에게는 ‘드라빔’이라는 가정의 수호신이 있었다(창 31:19, 34-35).  드라빔은 점을 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겔 21:21, 슥 10:2).  그러나 역시 가신(家神)이기 때문에 새긴 신상이나 부어 만든 우상, 혹은 입체 신상(왕하 23:24)과 마찬가지로 우상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었다.  그 형상에 관한 성경 상의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를 보면 드라빔은 보통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인간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조그만한 가족 수호신은 진흙을 가지고 주형(鑄型)을 떠 만들거나 손으로 모양을 빚어 제작되기도 하였다.  작은 바알 상은 대부분 주조로 떠 만든 후에 금으로 도금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부어 만든 우상은 새겨 만든 우상(graven image)과 마찬가지로 섬기는 것이 금지 되었으며(왕상 14:9, 출 32:4, 34-37), 도리어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파괴할 사명이 이스라엘에게 있었다(신 7:5, 12: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들과 이방 족속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받아들였으며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출 32:23, 삿 17:3).  따라서 이러한 사악한 우상숭배는 선지자들로부터 계속적인 비난을 받게 되었다(사 30:22, 40:19, 호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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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국가관

연구자료 2015. 10. 21. 13:27

이 세상을 다스릴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또한 그 주권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양되었고(마 28:18), 따라서 세상의 모든 국가는 그리스도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고 국민들을 다스리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국민들은 국가의 통치권에 굴복해야 한다(롬 13:1-7, 딛 3:1-2).  그리고 국가가 갖는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공의(公儀)의 실현이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악하고 탐욕스러운 이기심을 제어하여 하나님의 의(義)를 실현하는 도구로 쓰여지는 것이 곧 국가이다.  또한 국가는 국민의 복리(福利)를 도모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하여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사상을 외치거나 소수의 집권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을 착취하거나 탄압하는 일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  아무리 악한 국가와 정부라 할지라도 일단 그 주권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 악한 지도자를 세우셔서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삿 9장).  그러므로 국민들은 어떤 경우에도 국가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며 위정자가 잘못을 행할 경우 국민들은 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딤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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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범죄에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보면 먼저 밧세바는 그 정조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상대가 아무리 왕이라도 자기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허락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레 20:10).  또 피해자인 헷 사람 우리아는 다윗의 삼십 명 용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삼하 23:39), 죽기까지 충성한 참된 신하이다. 다윗의 간접 살인을 실행한 장군 요압은 지도자의 잘못된 명령을 수행한 잘못된 신하이며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충성된 부하가 아니다.  선지자 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왕도 꾸짖을 수 있었던 참된 사역자로서의 모범을 보여준다.  누구보다도 이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다윗은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솔직하고도 빠른 회개를 하여(삼하 12:13, 시 51편), 사하심을 얻었을 뿐 아니라 밧세바 사이에서 난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조상까지 되는 영광을 얻었다(마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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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비보셋’이란 이름의 뜻은 ‘부끄러움을 없애버리는 자’이며, ‘이스보셋’이란 이름의 뜻은 ‘수치의 사람’, 혹은 ‘부끄러움의 사람’이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로서(삼하 4:4),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손자이다.  그리고 이스보셋은 사울 왕의 네 아들 중 막내 아들이다(대상 8:33).  그러므로 므비보셋의 아버지인 요나단과 이스보셋은 형제간이며, 이스보셋과 므비보셋은 삼촌과 조카 사이가 된다.  므비보셋은 그의 나이 다섯 살 되던 해에 불행하기도 절뚝발이가 되었는데, 이는 사울과 요나단의 전사(戰死) 소식을 들은 유모가 므비보셋을 안고 급히 도망치다가 그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삼하 4:4).  이후 그의 삶은 불우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다행히도 그는 다윗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삼하 9장).  그러나 이스보셋은 다윗의 등극(登極)을 마땅히 여기지 않은 아브넬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됨으로써 타의이기는 하지만 다윗의 대적자가 되었다(삼하 2:8-9).  여기서 우리는 다윗과 이스보셋 중 누가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왕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스보셋은 사울의 동생이었으므로 정당한 왕위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울의 망령된 행실로 인해 사울 왕가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며, 대신 다윗 가문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으니(삼상 13:13-15, 16:1-13), 그 누구도 다윗의 왕권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와 같은 하나님의 경륜 앞에 인간은 굴복할 수밖에 없고, 이스보셋의 죽음으로 인해 결국 사울 왕가는 몰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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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 그날 오후 이후로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으며 왕이었던 사울은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서 떠나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하였던 것이다(삼상 16:13-15).  여기서 ‘여호와의 신’이란 성령을 말하는데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성령의 임재를 상징한다.  구약시대에는 왕이나 선지자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성령께서 임하셨으며(단 4:8, 5:11-14), 그들의 사역이 끝나면 성령은 떠나가셨다(시 51:11).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임재 하셨고 그 후에는 결코 성도들로부터 떠나지 않으셔서 성도들이 바른 길로 살아가게끔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요 16:12-15, 롬 8:14).  반면 사울을 번뇌케 했다고 기록된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은 사단을 가리킨다.  문자적으로만 보자면 하나님께서 사단을 조종하시는 분이 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친히 누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약 1:14).  여기에서 악신을 여호와께서 부리셨다는 표현은 단지 사단이 활동하도록 허락하셨다는 뜻이다(욥 1:6-7, 벧전 5:8).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사단의 활동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사무엘상 16장14절을 보면 여호와의 신이 떠난 후에야 악신이 사울의 마음을 번뇌시켰으며 여호와께서 동행하시는 다윗이 수금을 타자 악신은 사울에게서 떠나갔다고 했는데(삼상 16:23), 이는 여호와의 신 앞에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사단의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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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지만(삼상 16:13), 사울의 핍박을 받았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이후로(삼상 17:41-49), 시작된 사울의 핍박은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로 길보아 산에서 사망하기까지 계속되었다(삼상 31:3-6).  사울의 아들 요나단(삼상 20장)과 그의 딸 미갈까지도(삼상 19:11-17), 아버지 사울의 부당한 시기를 못마땅하게 여겨 다윗을 도왔다.  이렇게 자기 가족까지 자신의 행동을 따르지 않음에 대해 사울은 더욱 악해졌으며 급기야는 다윗을 숨겨주고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까지 죽이고 말았다. 그러나 사울의 신하들은 제사장들을 죽이기를 꺼렸으며 결국 에돔 사람 도엑이 그 임무를 수행했다(삼상 22:17-19).  이렇게 온 백성들과 신하들, 그리고 여호와의 제사장들,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동조하지 않는 일을 사울은 막무가내로 주장하여 끝까지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죽이려고 애썼다.  반면에 다윗은 한 번도 저항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계속 도망 다니면서도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을 해치지 않으려고 애썼다(삼상 24:6).  이때의 고충이 시편 33편과 62편에 절실하게 나타나 있다.  다윗이 피난시절에 경험한 핍박은 그에게 인내와 신앙을 깊게 했으며 또한 백성들에게는 나쁜 지도자와 신실한 지도자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심어주었다.  결론적으로 다윗이 받은 핍박은 사울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깊은 의미에서 선한 교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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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왕

연구자료 2014. 10. 29. 14:37

이스라엘은 원래 왕이 필요 없는 국가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다른 국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 국가’였기 때문이다(출 19:5-6).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왕을 요구했는데(삼상 8:5),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간적인 통치자를 세움으로써 더 이상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이다(삼상 8:7).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인간이 왕이 되는 것은 불행을 초래하게 되므로 선지자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왕을 세우지 말라고 경고했지만(삼상 8:10-18), 백성들은 충고를 듣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수락하시어 사울이라는 사람을 왕으로 세우셨다.  그러나 사울은 모범적인 왕이 아니었으며 백성들은 그로 말미암아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다.  바로 그러한 점이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목적이었다. 즉 인간인 왕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며 그를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보여주신 것이다.  사울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애썼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축복의 언약의 맺으셨다(삼하 7:12-16).  이 언약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으로써(눅 1:31-33), 그는 그리스도의 육신적 조상이 되는 큰 은혜를 입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았으나(왕상 10:14-29), 우상을 섬김으로써 그 때문에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갈라진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은 각각 여러 왕들을 거친 다음에 결국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이 같은 역사를 가진 왕국으로서의 이스라엘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고 그 발단은 인간을 왕으로 섬기게 해달라고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택한 백성들이 믿고 의지해야 할 왕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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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혼 제도

연구자료 2014. 9. 10. 08:05

룻기에 보면 룻이 자기 남편이 죽은 후에 가까운 친척과 결혼하여 집안의 대(代)를 잇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본래의 수혼(嫂婚) 제도와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즉 신명기 25장5-10절 말씀에 의하면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 남은 여자는 죽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자손을 낳아 죽은 자의 이름으로 대를 잇게 해야 하는데 룻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한 것이 아니고 가까운 친척 보아스와 결혼하였던 것이다.  또한 룻기에서는 죽은 자의 부인과 결혼할 경우 죽은 자의 기업을 물러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는데(룻 4:5), 신명기에는 그러한 내용의 기록이 없다.  하지만 룻기에 나오는 룻과 보아스와의 결혼은 유다와 다말과의 사건과(창 38장), 더불어 명백하게 이스라엘의 수혼 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다말은 원래 유다의 며느리였는데 그녀의 남편 엘이 죽자 유다는 엘의 동생 오난으로 하여금 다말과 동침케 하여 형의 대를 잇게 하려고 하나 오난은 자신의 임무를 회피하였다(창 38:8-9).  또 다른 동생도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자 다말은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와 성관계를 맺어 아이를 갖었다.  이 사건은 그 윤리성보다는 수혼 제도의 엄격성을 강조하는 데에 더 중점을 두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룻기의 기록에 의하면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더구나 기업을 무르게 되는데 이는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수혼 제도와는 많이 다르다.  기업 ‘무를 자’의(히/고엘), 의무가 첨가된 것이다.  이는 수혼 제도의 범위가 가족 간에 씨족 간으로 확대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며 동족간의 혈통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의 융통적인 운용(運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제도는 이스라엘 여자가 다른 이방 민족의 남자와 혼인하는 것을 방지하고 죽은 남자의 이름을 이스라엘에서 지키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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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실인

연구자료 2014. 7. 30. 09:44

나실인은 히브리어로〈나지르〉인데 종교 계급의 일원으로 특별히 하나님께 헌신한 자를 가리킨다.  나실인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민수기 6장1-21절에 나와 있는데 이것은 B.C. 1445년경 이스라엘백성이 시내 산을 출발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계시하신 것이다.  나실인에 대한 개념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서원과 연관시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남자든 여자든 간에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면 그 사람은 나실인의 규례를 지키고 자기 몸을 구별하는 날을 채움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나실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시대 이후에는 예외적인 양상(樣相)이 나타났으니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식을 나실인으로 받치라고 지시하기도 하였으며(삿 13:7), 부모 자신이 그 같은 서원을 하기도 하였다(삼상 1:11).  이들 나실인들은 자기 몸을 구별하는 날 동안 몇 가지 규례를 반드시 지키도록 되어 있는데 그 규례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아야 했다( 민 6:6).  둘째, 그들은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여야 했다(민 6:3). 마지막으로 그들은 삭도를 머리에 대어서는 아니 되었다((민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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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

연구자료 2014. 6. 18. 11:29

‘사사’라는 말은 히브리어로〈쇼페팀〉이다.  그런데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재판관’으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사사란 말은 재판관이란 말이 지니고 있는 의미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사사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점령에서부터 왕국 설립 때까지 백성들을 다스리며 그들에게 공의를 베풀고 재판을 시행한 그리고 이방 군대의 침입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한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를 가리킨다.  가나안을 정복하기 까지 백성들의 지도자가 활약하였던 여호수아가 죽고 나자 다시금 백성의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우셔서 그 직무를 감당케 하셨다(삿 2:6-23).  사사기에는 12명의 사사들이 나와 있는데 옷니엘이 제일 처음으로 등장한다(삿 3:9).  아무튼 여호수아의 사후(死後) 사사들의 임무는 백성들의 소송 사건을 해결해 주는 것 외에도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를 멀리하도록 교훈하며 그 죄악으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이방인과의 싸움에 있어서 백성들을 인도하여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것 등이었다(삿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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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연구자료 2014. 5. 7. 11:12

성경에서 ‘증거’(히/에드)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다.  ① 증거는 ‘표’를 뜻하였다.  여호수아에서 나오는 것처럼 단을 쌓아 자신들이 하나님의 유업을 받았다는 표시를 나타낸 일이 있고(수 22:21-28), 돌무더기나(창 31:44), 모세의 노래(신 31:26), 욥의 병(욥 16:8), 여호수아가 세겜에 세운 돌(수 24:27), 등이 증거물이 된 일도 있다.  ② 증거는 ‘증인’을 뜻하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라반 사이의 증인이셨으며(창 31:50), 욥도 자신의 증인은 하늘에 계시다고 하였다(욥 16:19).  또한 사도 바울도 자신의 참되고 깨끗함을 하나님께서 증거 하신다고 주장하였다(롬 1:9, 고후 1:23).  ③ 증거는 ‘법적인 증인’을 뜻하기도 했다.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심과 고난,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증인이었으며(눅 24:48, 행 1:8, 2:32, 3:15), 그리스도 자신께서도 진리에 대한 참된 증인이 되신다(계 1:5, 3:14).  이러한 경우 외에 다른 뜻으로 쓰인 증거(히/에두트, 에다, 트우다)라는 말은 십계명(출 25:16, 21), 언약궤(출 16:34), 하나님의 말씀(사 8:16, 20), 복음(계 9:12, 12:17), 등의 하나님의 계시를 의미할 때에 사용되었다(시 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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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에 이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언약하신 사실로부터(창 15:18), 가나안은 이미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고쳐주면서 이 언약은 보다 확실하게 되었다(창 17:1-9).  그리고 모세와 맺어지면서 그 내용이 더욱 심화되고 구체화되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킬 경우에 받을 축복과 그 언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받게 되는 저주가 나란히 등장하게 된다(수 1:5-9, 신 28-30장).  이러한 언약의 측면에서 볼 때 가나안은 이미 주어진 것이었으며(수 1:3),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은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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