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3.12.17 웨슬리와 성경 1
  2. 2023.12.10 칼빈과 성경 1
  3. 2023.12.03 알미니안주의 2

John Wesley는 ‘값없이 주시는 은총’(Free Grace)이라는 설교에서 “결단코 사람에게 있는 여하한 능력이나 공로에 달린 것이 아니며 오로지 하나님께만,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값없이 내어 주시고,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롬 8:32) 그런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또한 ‘성서적 구원의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칭의의 공로가 되는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의다”  그는 구원이 인간의 선행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천명(闡明)했다.

이러한 메시지를 증거 한 Wesley는 Calvin 못지않게 성서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Calvin이 보여준 것처럼 성경의 거룩한 감동(벧후 1:21)과 신앙적 권위(Authority) 그리고 신뢰성(Reliability)을 굳게 믿었다.  그의 『설교집』 서문에서 Wesley는 성경의 중요성(Importance), 특히 구원에 있어 성경의 유익함을 말했다.  여기에서 그는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라는 표현을 자신에게 적용하였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알기 원한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낮아지셔서 그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분은 한 책(성경)에 이 일을 기록하셨다. 하나님의 책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떠한 대가도 지불할 것이다. 나는 그 책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한 책의 사람이 될 것이다”  그는 평생 성경 한 권만 읽고 살았던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메시지를 증거 하는데 있어 성경 말씀에는 생명을 걸었다.

Wesley는 신앙과 실천의 문제에서 성서의 권위에 우선성을 강조하는 개신교회의 입장에 반대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이백 년 후에 활동했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개신교회와 Roman Catholic Church과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Wesley는 『The character of a Methodist』에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과 실천의 유일하고 충분한 규율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Roman Catholic Church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고(벧후 1:21), 정경화(Canonization) 되고 전파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성령은 성경을 통하여 사람들을 인도하는 길(딤후 3:16)을 원칙적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믿었다.  『The Letters of the Rev John Wesley, A.M.  Vol. 2』 에서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성경은 가장 중요한 인도자이지만 모든 면에서 규율(規律) 대로 역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는 규율이 된다.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성령을 안내자로 부를 때 그것은 지적인 존재를 의미하고, 성경을 규율이라 부를 때 그것은 지적인 존재가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Wesley는 성경의 영감에 대하여 『A Clear and Concise Demonstration of the Divine Inspiration of the Holy Scriptures, Works』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만드셨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네 가지 크고 놀라운 증거가 있다. 바로 기적(miracles)과 예언(prophecies), 교리의 완전함(good of the doctrine) 그리고 성서 기자들의 도덕성(moral character of the penmen)이다”

Wesley는 성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 엄청난 독서의 사람이었다.  단순하게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교회론(Ecclesiology)과 신학의 발전을 포함하여 400여 종이나 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또한 교회사에 능통한 Oxford University 교수였다.  영어는 말할 필요도 없고,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 외에도 다른 외국어에 능통한 그는 많은 책들을 읽고 편집하고 집필하였다.  이미 16세기 개혁주의 사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서양의 고전으로 시작하여 논리학(logic)과 수사학(Rhetoric)을 성서와 함께 읽을 것을 권면했다.    

그런데 Wesley는 오직 성서만을 강조하는 개혁주의자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Minutes of Several Conversations』이라는 글에서 오직 성서연구만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감리교회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성서의 연구는 최고의 열정이다. 만일 성서 외에 다른 책이 하나도 필요하지 않다면 여러분은 사도 바울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바울도 다른 책들을 필요로 했다. 그는 ‘책들을 가져오라. 특별히 양피지에 기록된 두루마리를 가져오라’고 말했다(딤후 4:13). 그러나 나는 그 책들을 읽어도 마음속에 아무런 감동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책들도 읽어 그 맛을 보기 바란다. 그러나 곧 다시 돌려주도록 하라”  성경이 확실하게 좋고 유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뒤가 꽉 막힌 목사가 되지 않으려면 다른 책들도 보충자료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신학과 영성과 사역이 성경을 통하여 역사하는 성령의 위격과 역사를 넘어서는 방대한 자료들을 배제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Wesley는 평생 Church of England의 서품 받은 사제(Priests)로 살았으며, 흔들림 없이 그 전통에 신학적 뿌리를 두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이들은 영국의 개혁자(British Reformers)들이었다.  그들은 Roman Catholic Church과 대륙의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 ‘중도의 길’(middle way)을 모색하는 자들이었다. Anglicans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성을 주어 성서와 교회 전통 가운데 신앙적인 권위를  분별할 수 있게 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신앙적 권위의 우선성(Priority)과 함께 전통(Tradition)과 이성(Reason)에도 합리적으로 이차적인 권위를 부여할 것을 강조하면서 ‘오직 성서’만을 절대적인 ‘신조’(信條)로 내세운 대륙의 종교개혁자들과 차별성을 가졌다. 

Wesley는 성서와 신학, 그리고 사역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대륙의 종교개혁자들은 인문주의(Humanism)와 명목주의(nominalism)를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Luther와 Calvin의 교육과정에 깊이 퍼져 있던 일반적 사상의 흐름이었고, 그들의 신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달리 말하면 Luther와 Calvin이 오직 성서만 의지했다고 믿는 것은 착하고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믿고 있다면 잘못 배운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빈틈없이 세밀한 신학자로 이성의 능력을 신봉하는 당시의 흐름을 이미 숙지(熟知)하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말이 ‘오직 성경’이지, 이것저것 필요한 자료들을 충분히 이용했다는 것이다.  다른 자료 없이 ‘오직 성경’ 한 권 만을 연구하는 가운데 살았던 것처럼 믿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배경을 아는 것이 개신교회의 다양한 신학 전통들을 알아 가는데 절대적인 도움이 된다.

Wesley는 교회 전통과 비판적 사고를 자신의 신학과 사역에 유용한 도구로 받아들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서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Anglican Church의 중도의 길 방법론을 수용하였다.  그는 이 방법론(methodology)이 대륙의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성서’(Sola Scriptura)의 원칙과 대립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Wesley는 항상 성서의 권위(Authority)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신학과 사역에서 성서의 권위를 높게 부여하였다.  설교와 논문을 모은 『Works』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전집에서 나는 진지하고 솔직한 독자들에게 최종적으로 완성된 사상을 보여 주고자 한다. 나의 신학적 견해가 성서와 이성, 그리고 초기 기독교 전통에 부합하기를 바란다”  그의 생각은 초기 기독교가 가장 성경적이고 순수한 시대의 교회 가운데 초대교회의 신앙을 대표한다고 믿었다.

Aldersgate에서 성령을 체험한 Wesley는 하나님과 인간의 구원을 현실에서 멀어져 있는 추상적인 것이 아닌 생생한 실제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 실재를 구체적으로 느꼈고, 이는 성경의 약속을 비현실적으로 인정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신앙의 올바른 근거로서 체험을 확신하면서 감정의 변화와 체험을 분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A Farther Appeal to Men of Reason and Religion, Part 1』에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성경 본문들을 통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원하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이 본문들을 통하여 앞으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계시(고전 2:10)와 성령의 감동(벧후 2:21) 그리고 예수의 영(행 16:7)이 그들 안에서 강력하게 일하시는 것을 느끼는 신자들의 감정을 분명하고 이성적으로 발견할 것이다”

Wesley는 성령의 임재(계 1:17), 즉 성령의 증언(롬 8:15-16)을 느끼는 것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Calvin은 성경의 유효성이라는 관점에서 성령의 증언(요 14:16)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Wesley는 신자의 삶의 여러 차원들 속에서 성령의 역사와 임재의 경험적인 유효성 역시 중요하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유효한 확증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비록 이차적일지라도 사도 바울처럼 성령의 체험(행 9:1-19, 고후 12:1-10)이 성서의 우선적인 권위와 함께 전통과 이성의 차원에서 신앙의 근거가 된다고 믿었다. 

추후에 다시 논의하겠지만 그는 성서(Scripture)와 전통(Tradition), 이성(Reason)과 체험(Experience)을 신앙의 권위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 네 가지를 가리켜 ‘Wesley의 사변형’, 혹은 ‘Wesley의 사중표준’(Quadrilateral)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감리교 신학자 Albert C. Outler가 처음 사용했던 용어로, Wesley의 신학방법론을 비유적으로 잘 설명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졌다.  물론 Wesley는 이러한 표현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마치 Calvin이 ‘오직 성서’(Sola Scripture)라는 신조를 직접 사용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명제는 Wesley와 결합된 용어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 유익하다고 생각한 관점들, 즉 ‘사변형’을 제시하였고, 이 네 가지는 오늘날까지 감리교회의 중요한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성경이 궁극적인 원천이며 모든 신학의 일차적인 것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이차적인 동시에 성경을 위한 보충 자료로 생각했다.

그런데 새로운 비판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Wesley의 사변형이 신화(myth)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만약 이렇게 따진다면 Calvin이 말한 적이 없는 ‘오직 성서’도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신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단 사냥꾼처럼 얼마든지 꼬투리 잡고 물고 늘어질 수 있지만 유익이 없기 때문(딤전 6:3-5, 딛 3:9)에 여기까지만 하겠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신화는 성서의 권위에 관한 탁월한 강조점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유익한 신화다.  ‘사중 표준’과 ‘오직 성서’라는 방법론은 두 사람의 신학적이고 방법론적인 관점 차이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Calvin과 Wesley모두 하나님의 궁극적인 권위를 굳게 믿었다.  또한 두 사람은 성경이 감동으로 기록되고(벧후 1:21), 권위가 있으며(시 119:33-34), 신뢰할 만(잠 3:3) 하다고 믿었다.  특별히 두 사람은 성서의 권위에 대한 탁월한 연구와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Calvin은 종교개혁의 구호가 된 ‘오직 성서’를 주장한 인물로 알려졌다.  반면 Wesley도 성서적 권위가 우선적이라는 사실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차적이라 할지라도 그는 신학적으로 다른 권위들도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강변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성경적 기독교와 성도의 삶 속에서 일하는 성령의 지속적인 역사를 확인하는 올바른 체험의 가치를 중시하였다.  그런데 Wesley는 ‘오직 성서’만을 강조하는 것이 목회적 관점에서 신자들의 매일 삶을 힘들게 하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궁금하다.  진리의 말씀을 증거 하는데 무엇이 부족하다는 것일까? 

성경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다(히 4:12).  왜냐하면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셨기때문이다(8:16).  신자가 병들었을 때, 혹은 자살의 충동을 느끼거나, 삶의 어려운 문제에 빠졌을 때, 목사가 ‘오직 성경’만을 강조하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결과가 무엇인가?  그것은 죽고 메마른 말씀을 전한 것이다.  비위가 상하겠지만 이것은 목사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사례비를 위해 강대상 위에서 원맨쇼를 보인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백부장의 하인을 고친 것이 ‘오직 말씀’(마 8:5-12)이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삼 년 동안 말씀으로 훈련받은 제자들에게 무엇이 부족해서 능력을 받으라고 명령하신 이유 말이다(눅 24:49).   그 당시 이미 기록된 성경이 있었다.  작금의 개혁주의자들처럼 주야장천 ‘오직 성경’만 강조하면 되지 않을까?  듣기 거북하겠지만, ‘오직 말씀’만을 강조하면서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닌 ‘개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롬 1:16).  

'칼빈과 웨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편 속죄  (1) 2024.01.14
형벌 대속  (1) 2024.01.07
칼빈과 성경  (1) 2023.12.10
알미니안주의  (2) 2023.12.03
카더라 통신 먹사들  (1) 2023.11.26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Calvin은 『기독교강요』에서 신자들에게 통치하는 창조주(창 1:1)이며 구세주이신 하나님(사 43:3)을 가르치고 인도하기 위하여 성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성경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경’(眼鏡)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시력이 약한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내보이면, 어떤 종류의 책인지는 겨우 알 수 있겠지만 겨우 두 낱말도 해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경을 쓰면 똑똑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혼란한 지식을 우리 마음에서 바로잡고 우리의 우둔함을 쫓아 버리며 참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는 성경이 선지자(행 3:21)와 사도(행 1:2)와 그리스도(히 1:2) 통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고 보았다(벧후 1:21).  완전함(시 19:7)과 영원함(시 119:10) 그리고 능력 있는 권위(행 20:32)는 오직 성경 밖에 없고 다른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Calvin의 성경 이해는 Roman Catholic Church의 성경관과 확연하게 구별되었다.  Catholic Church는 정경화 과정(canonization process)을 포함하여 교회의 권위(authority)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성경을 포함하였다.  즉 하나님의 성령이 교회 지도자들과 공의회(councils) 그리고 교회의 결정을 통하여 역사하고 정경(canon)의 내용을 정했다는 입장이다.  초대교회가 성경을 성문화하였기 때문에 역사적(historically)으로나 신학적(theologically)으로 교회가 성경의 권위보다 우선하다고 믿었다.  이것은 교회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경이 교회에서 나온 것처럼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Calvin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성령을 통하여 성경의 감동과 권위만을 인정하고(벧후 1:21), Catholic Church의 입장에는 일절 동의하지 않았다.  『기독교강요』에 기록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입장을 고수하자.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진심으로 성경을 신뢰한다는 것, 그리고 성경은 자증(自證)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증거나 이성(理性)에 종속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성경이 마땅히 지녀야 할 확실성은 성령의 증거에 의해서 얻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 믿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교회의 모든 권위가 성경에서 나오기 때문에 교회는, 특별히 Catholic Church 은 제멋대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 권한이 일절 없다는 것이다.   Calvin에게 있어 성경의 단순성(simplicity)은 성령의 감동과 권위 그리고 신뢰성을 확증한다.   

Calvin은 요한계시록을 빼놓고 성경  대부분에 대한 주석서를 집필하였다.  그는 성경해석, 즉 전문적인 성서해석(biblical interpretation)의 이론(theory)과 실제(practice)를 연구하는 해석학적(hermeneutic) 접근에 서투르지 않고 노련했다.  당대의 최고의 학문과 인문주의 학문(humanistic studies)을 배운 그의 성경 해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기억할 것이 있다.  Calvin은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이 일어난 19세기 이전 사람이라는 것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그의 성경해석학을 후대의 발전된 차원과 비교하는 것은 낡고 뒤떨어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대와 중세 교회 성서해석의 실재적인 유산과 함께 당대의 뛰어난 해석가들, 즉 종교개혁가 Martin Luther와 인문주의자 Desiderius Erasmus, 그리고 Luther와 함께 종교개혁에 힘썼던 Philip Melanchthon과 1.5세대 종교개혁가라고 부르는 Martin Bucer 등의 해석학을 인지(認知) 하고 있었다.

그는 성경연구에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능숙했다.  성경을 해석하는 네 가지 방법, 즉 literal(historical) 역사적 문헌과 allegorical(symbolic) 상징적 비유 그리고 topological(moral) 윤리적 유형과 anagogical(metaphorical) 비유적 유추의 방식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Commentaries and Prefaces』에서 Raymond A. Blacketer는 Calvin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Calvin 당시의 다른 주석가들과 비교할 때 추상적인 주석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본문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영적 감각을 중보적으로 사용하는 ‘사두마차’(Quadriga) 즉, 네 가지 방법론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성서해석 방법론을 자주 비판하였다. 본문에 대한 본능적(Instinctive) 느낌과 문헌적(literary), 그리고 역사적(Historical)이며, 직설적인(Straightforward) 의미 파악에 중점을 두었다” 

Calvin은 Luther의 주장처럼 성경의 명료성(clarity)은 사람들이 스스로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난해하거나 숨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Catholic Church는 성경의 해석이 전적으로 교회의 권한에 두었다.  하지만 Calvin은 각 사람에게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보았다.  『기독교강요』에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생래적(生來的)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Calvin의 말을 들어보자.  “사실상 인간의 마음속에 타고난 본능에 의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각(知覺) 이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아무도 무지를 구실로 삼아 핑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 위엄을 어느 정도나마 깨달아 알 수 있는 이해력을 각자에게 심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신선한 물방울을 떨어뜨려 주신다”

더 나아가 그는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미신적으로, 때로는 광신적으로 수용하는 현상을 비판하였다.  예를 들면 현재에 대한 예언을 하나님께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우였다.  그의 비판은 하나님이 성경보다 교황(Pope)과 주교(Bishop)들에게 가르치는 권위가 주어진다고 주장하는 Catholic Church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Calvin은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Calvin은 성경의 가르침을 뛰어넘는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당대의 사람들의 주장도 배격하였다.  이것은 교회와 정부 간 관계의 고리를 끊고, 교회 모델을 회복하려고 노력한 Anabaptist 사람들을 지적한 것 같다.  Calvin은 아버지의 성령(마 10:20)이 성경을 초월하여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강요』에서 그는 말한다.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의 임무는 아직 들어 보지도 못한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새로운 교리 자체를 날조하여 ‘용인’(容認) 된 복음의 교리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복음이 말하는 바로 그 교리를 우리의 마음에 인쳐 주는 데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록된 말씀 밖에’(고전 4:6) 넘어서는 계시(啓示)라는 주장들로부터 지켜주는 확실한 안전장치다.

Luther는 그리스도의 믿음과 실천을 결정하는 성서의 권위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Calvin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종교개혁의 첫 번째 원리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차용(借用) 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Calvin은 이 짧은 어구를 『기독교강요』에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했다.  그러나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에 담긴 본질은 그의 저서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Luther는 1521년 Diet of Worms에서 열린 이단 재판에서 황제와 제국의 대표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자신의 주장이 성경에 의하여 오류라고 입증되지 않는 한 주장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면서 ‘이성적 판단’과 ‘양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들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성서’라는 명제 아래 성경 외에 다른 어떤 자료나 요소들은 기독교 안에서 절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나팔을 불어대는 벤뎅이 소갈딱지 같은 ‘고답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History of the Church, vol. 5』에 기록된 최종 변론 마지막 부분에서 나오는 Luther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성서의 증언이나 뚜렷한 이성적 판단에 근거하여….. 제 양심은 말씀 안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그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고 양심에 반하는 행동은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에….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의지했던 것은 오직 성경이었다.  Luther는 성경의 권위를 대체하려는 Catholic Church의 교황권과 교권의 권위에 강경하게 맞서는 입장을 견지했다.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은 Calvin의 저서 전체를 꿰뚫고 있었다.  또한 성경의 충분성(Sufficiency)을 강조하고(갈 1:8-9), 기독교의 최종적 표준(딤후 3:16)과 규범적인 기준(계 22:18-19)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그는 『기독교강요』 에서 이렇게 말했다.  “율법과 예언서에 다음에는 사도들의 글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거나 교회 내에서 자리를 내줘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 인정된 교수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지시와 표준을 따르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교회 안에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권위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다는 것이다.

Augustine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했던 것처럼 Calvin은 성서의 권위를 이해하면서 다른 한편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무비판적인 문자주의(Literalism)에 빠지지 않았다.  더 나아가 Calvin 역시 치밀하게 교회사에 나타난 교부들의 문헌들과 신학적 판단에 필요한 자료와 요소, 그리고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성경을 보충하는 2차 자료(Secondary Sources)로 사용하였다.  그가 보여준 정교한 논리와 사고방식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Protestant 전통에서 제외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성경 외에 다른 권위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종교개혁자들에게 심한 냉대를 받았던 Anabaptist를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해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Luther는 Anabaptist를 ‘광신자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Calvin은 한걸음 더 나아가 ‘미친개들’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였다.  그들을 혐오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Calvin은 자신의 기독교 처녀작 『Psychopannychia』에서 Anabaptist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일어날 일도 모른 채 비판 정신만 살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Calvin이 하이델베르크 논쟁(Heidelberg Disputation)에 참석해 Luther의 영향을 받은 Martin Bucer의 중매로 Anabaptist 출신이며, 아이 둘 있는 과부 Idelette de Bure와 결혼을 했다.  주례는 Geneva에 종교개혁 운동을 정착시킨 William Farel이다.  Calvin은 아내를 무척 사랑했다.  그런데 첫째 아기가 태어난 지 2주 만에 죽었다.  그에게는 너무나 큰 아픔이었다.  그리고 3년 후 딸이 태어났지만 둘째 역시 죽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세 번째 아기가 태어났지만 이 아이도 죽었다.  사랑하던 아내 역시 결혼생활 9년 만에 병으로 죽었다.  신학적 논쟁에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지만 삶은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다.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같다(약 4:14).  왜 그렇게 하셨는지 하나님도 침묵하셨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몰라서 침묵하셨는가?  공중에 나는 새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성경구절을 생각하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마 10:29).  François Baudouin은 Calvin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후손을 남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비참한 이야기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적이 많으면 삶이 평탄하지 않다는 것이다.  복음을 증거 하기보다는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에 혈안에 되어 있는 자, 기도 하기보다는 비판 정신만이 살아 있어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자들 말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목사들이 꼭 있다.  나는 이런 자들이 목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요지가 무엇인가?  “귀는 길어야 하고 혀는 짧아야 한다”(전 5:2).        

Calvin의 저작들 곳곳에서 Jerome과 Augustine, Chrysostom과 같은 교부들을 인용하고, 자신의 신학과 사역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기초라고 주장하였다.  Calvin의 사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Augustine이다.  그의 책을 가장 많이 인용하였다.  특히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과 인간의 자유 (Free Will) 관계를 논하면서 그랬다.  추후에 논의하겠지만 Calvin은 예정론에 관한 교리를 해설할 때, Augustine 외에도 Melanchthon과 Bernard의 글도 자주 인용하였다.  이러한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예정을 주장하고 강조한 부분들을 인용해서 그는 예정론을 체계화시켰다.  Calvin은 개신교회의 규범(規範)과 신조(信條)들을 만드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고, 성서와 그의 책들은 후대 칼빈주의 추종자들의 토대가 되었다.

'칼빈과 웨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벌 대속  (1) 2024.01.07
웨슬리와 성경  (1) 2023.12.17
알미니안주의  (2) 2023.12.03
카더라 통신 먹사들  (1) 2023.11.26
웨슬리는 누구인가?  (0) 2023.11.19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

Netherlands에서 Protestant 개혁교회 전통에 함께 속해 있던 Calvin과 Arminius의 후예들이 크고 살벌한 논쟁을 벌였다. Netherlands 국회가 소집한 이 회의는 여러 지방 교회에서 선출된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United Kingdom, Scotland, Germany의 Calvinism 교회의 대표들이었다.  France는 초정을 받았으나 Louis XII가 금지하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교회 회의는 ‘항론파’(Remonstrant) 견해가 Calvinism 신앙고백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소집되었다.  국회는 자문위원으로 신학 교수 5명과 위원 18명을 선출하였다.  정규 대표 수는 56명이었다.  Arminian파에 속하는 ‘항론파’ 그룹은 The Synod of Dort 당시 지배적인 세력을 점하고 있던 Calvin파와 정당한 토론을 기대했다.

1609년에 Arminius가 죽자 1610년에 Arminian파들은 ‘항변서’를 발행하여 무조건적 예정을 주장하는 정통파를 반박하였다.  논쟁에는 예정 외에도 다른 쟁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정치 쟁점들이 신학적 열기와 맞물림으로써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에 대해 1611년 Calvinist들은 반항변서(Counter  Remonstrance)를 발행하여 격렬한 논쟁을 벌이면서 정통파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그 결과 1619년 The Synod of Dort에서 Arminian파의 신앙이 정통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항론파 목사들은 강단에서, 항론파 지도자들은 나라에서 추방당하였다.   

‘Arminianism의 5대 강령’에 답변한다는 점에서 공식화된 ‘Calvinism의 5대 강령’, 즉 영어 표현에서 다섯 항목의 첫 글자를 따서 ‘TULIP’으로 불린다.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다.  사실 ‘The Five Points of Calvinism’라는 명칭은 오해를 낳기 쉽다.  왜냐하면 Calvinism은 다섯 가지 교리만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Calvin이 5대 교리의 제창자도 아니다.  추후에 논의하겠지만 TULIP이 Calvin의 입장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The Synod of Dort에서 논의된 중요한 내용들은 Calvin의 저작들을 살피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금의 Calvinist들은 다른 교단에 소속된 그리스도인들과 구분하는 기본적인 기준으로 ‘The Five Points of Calvinism’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입만 열면 Calvin 신학을 신앙의 잣대로 사용하여 비판하고 논쟁하는 무기로 쓴다.  더 웃긴 것은 서철원이가 무슨 대단한 개혁주의 신학자인 것처럼 Calvin 신학과 같은 레벨에 놓고 용을 쓰며 떠들어 댄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겠지만 이들의 공개 토론과 수많은 글들을 읽어 보았다.  솔직하게 말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하나님 나라에 아무런 보탬이 없는 조잡한 토론과 유치한 강의, 이런 것을 듣고 은혜를 받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을까?  정이철의 입장에서 보면 Calvin과 서철원을 빼놓고 나머지는 거의 이단 아니면 사이비들이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개나 소나 신학자가 되거나 대통령이 되는 시대다.  이 말의 의미를 잘 알았으면 한다.  나의 솔직한 심정은 이단 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이 진짜 이단(異端)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고난의 삶은 그분을 따르는 신자들을 위한 본이다(벧전 2:21).  조류과에 속한 것처럼 주둥이만 나불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마 7:21).  예수님처럼 이단 소리를 들어야 한다(행 24:5).  다른 것은 다 입으로 나팔을 불어 대면서 왜 이단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Reformism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TULIP에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신학적 얘기만 하면 Calvin을 들먹이지만 한 마디로 속 빈 강정이다.  간혹 간덩이가 부은 사람 중에 자신은 Arminian들과 다르게 TULIP을 따라 사는 것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고 떠들어 대는 자들도 있다.  솔직히 말해 Calvin 추종자들이 ‘Calvin의 5대 강령’을 실제로 지키지 않으면서 여전히 자신을 Reformist로 자처하는 것은 망상 장애를 가진 조현병 환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이것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눅 6:44)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Lip Service 즉, ‘입에 발린 말’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는 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Calvin의 신학적 관점과 신앙체계에 대한 신학적 진술의 논리적 연결성을 근거로 삼아 주제를 풀어나갈 것이다.    

Wesley는 어떠한가?  그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Calvinism의 5대 강령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 같으면 두 개나 세 개 정도는 인정했을 덴데, 그는 Calvin 신학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Calvinism의 5대 강령을 Wesley 신학과 비교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먼저  Wesleyan Arminian이 아닌 Calvinistic Arminian 신앙이 유럽의 개혁교회 전통 안에서 시작된 논쟁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Wesley를 신학적으로 Arminian 전통에 있다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만약 이렇게 믿고 있다면 잘못 배워도 한참을 잘못 배운 것이다.  ‘바이든’이 ‘날리면’으로 들리지 않는 것처럼 ‘카더라’ 통신을 가지고 가짜 뉴스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들린다면 청각처리장애(APD)를 가진 자폐증 환자다.

Wesley 신학 배경은 Luther와 Calvin의 종교 개혁이 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유럽 대륙의 신학에 영향을 일절 받지 않았다.  Calvin 신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들의 신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Wesley에게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Wesley의 사역을 형성한 신학과 신앙은 오히려 사제 서품을 받은 Church of England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Church of England(성공회)는 Catholic Church와 Orthodox Church, 그리고 Protestant를 포괄하는 기독교의 Catholicity(보편적) 전통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신학을 유럽의 종교개혁보다 초대교회(Early Church) 전통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아 형성된 ‘Anglican Catholicism’(성공회적 가톨릭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역사 속에서 ‘Catholic’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한 지류를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전 세계적인 교회를 의미한다.  이 용어가 특별히 개신교 정통교회를 Catholic Church와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Catholic(보편성)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대표적인 경우가 4세기에 작성된 최초의 기독교 신조인 니케아 신조(Nicene Creed)이다.  이 단어는 교회에 대한 속성인 단일성(unity)과 거룩성(holiness), 그리고 사도성(Apostolicity)과 함께 제시되었다.  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하겠다.      

간혹 목사들 중에 ‘Catholic’ 용어만 나오면 무식하리만큼 무조건 이단이라고 떠들어대는 몰상식한 자들이 있다.  목사가 무식하면 양들이 힘들고 피곤해진다.  입 다물면 중간이라도 가는데 너무 설치거나 무식한 주장으로 떠들어 대는 것은 꼰대질이다.  외식(外飾) 하지 않는 목사의 특징이 무엇인가?  교인들 앞에서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거나 알지 못한 것을 우겨 가면서 절대로 다투거나 논쟁을 하지 않는다(딤후 2:23-24).       

내가 Wesley 신학을 공부한 것은 학위를 쌓기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니라 그가 끼친 영향력과 신학을 조금 더 광범위하게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Reformed church이나 심지어 Arminian 기독교의 대표적인 신학용어와 교리들을 Wesley에게 무식하리만큼 억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Calvin과 Wesley가 살았던 시대는 이백 년이라는 시간 공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몰상식하게 빗나간 시도들은 Wesley의 신앙적 가치와 실천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낳고 말 같지 않은 부정확한 설명, ‘카더라’ 통신이 된다.  이것은 서철원이가 “Wesley는 이신칭의 교리를 전적으로 부정했고….  그의 교리와 신학에 있어 Pelagius와 완전히 동일하며…..   Wesley 신학은 이단으로 단정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라고 주장한 것과 같다.  이것은 정말 ‘개소리’다.  관상이 과학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을수록 품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持論)이다.

Wesley는 인생의 마지막 무렵 자신의 신학적 관심이 Arminian 전통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Wesley 신학이 Arminian 신학과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신학적 용어 하나를 가지고 서로 머리 터지게 싸우는 Calvinist들과의 논쟁에서 그러한 입장을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옳고 그른 것을 성질 더러운 동물도 아닌데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개신교회 신학을 종교개혁 전통(Reformed), 특히 Calvin 신학으로 재단할 수 없다.  이 말의 의미는 기독교 안에서 누구든지 다른 의견이나 다른 신학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꼭 기억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은사적(고전 12:12-27), 구성원적(골 3:11), 인종적(계 5:9), 다양성을 좋아하신다는 것 말이다.

무엇보다도 Calvin은 하나님의 마지막 대변인(spokesman)이 아니다.  그저 삼시세끼 배고프면 밥 먹고, 병들면 골골하고, 피곤하면 자빠져 자는 인간에 불과하다.  오죽했으면 Calvin을 가리켜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는 말이 나와겠는가?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발람의 나귀처럼 잠깐 사용하신 것뿐이다(민 22:28).  우리들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누구든지 사람을 높이면 그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 가증스러운 것이다(눅 16:15).  신학적 꼰대짓 하는 사람을 높이지 말고 말에나 일에나 예수님만 높여야 한다(벧전 4:11).

그런데 Calvin 신학을 공부하고 나서 느낀 점도 있었다.  Calvin 신학의 장점은 신앙의 기본 요소들을 하나하나씩 정확하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단히 조직적이고 이성적이다.  모든 주제에 대하여 사상적으로 잘 정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준다.  반면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Arminian 신앙의 영향을 받은 신학 전통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허접쓰레기 같은 신학으로 취급하는 것 말이다.  그렇다고 신학의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Calvin의 5대 강령에 필적하는 권위를 가진 만큼 훌륭하고 조직적이며 세련된 문자들로 정리한 표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다.  성경을 아주 상세하게 푸는 Calvin의 능력을 능가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작금의 신학자나 목사들은 R. C. Sproul이 말한 것처럼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흉내만 내는 거의 짝퉁들이다.  자칭 개혁주의자인 것처럼 떠들어 대지만 신학자나 목사로서 품위와 인격을 갖춘 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따라서 갑(甲) 질 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은 ‘쪽’ 팔리는 일이다.  나는 Calvin과 Wesley에게서 좋은 것은 얼마든지 받아들이는 목사다(살전 5:21).  그런데 하나 기억할 것이 있다.  Arminius와 Wesley를 포함하여 Calvin의 등장 훨씬 이전에 살았던 기독교인들은 Calvin의 가르친 사상에 전혀 관심도 없을뿐더러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잘못된 신앙을 가진 자들일까? 

'칼빈과 웨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웨슬리와 성경  (1) 2023.12.17
칼빈과 성경  (1) 2023.12.10
카더라 통신 먹사들  (1) 2023.11.26
웨슬리는 누구인가?  (0) 2023.11.19
칼빈은 누구인가?  (1) 2023.11.12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