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속죄

칼빈과 웨슬리 2024. 1. 14. 11:25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가 모든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하셨는가(요일 2:2), 아니면 그가 이미 알고 계셨던 구원받을 자들만의 죄 값을 지불하셨는가?(요 17:9)  이 부분에서 Calvin과 Wesley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Calvin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였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롬 8:22).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결국 택함을 받은 사람들만 대속(vicarious)의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보았다(롬 8:33).  이것은 개혁주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가 모든 사람(딤전 2:6)을 대신하지 않고 오직 선택(election)된 사람만(요 17:9)을 위해 죽었다는 뜻이 된다. 

『기독교강요』에 나온 Calvin의 말을 들어보자.  “성경이 분명히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원하고도 변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구원받는 사람들과 멸망당할 사람들을 오래전에 확정하셨다고 말한다. 선택된 사람들에 관해서 이 계획은 그들의 인간적 가치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값 없이 베푸시는 자비를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멸망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고 정당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이 되고, 그 결과 생명의 문을 닫으셨다고 볼 수 있다” 

‘제한적 대속교리’라는 표현은 Calvin이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용어다.  하지만 후대의 Calvin 추종자들이 이 교리를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Calvin의 신앙 체계 안에서 논리적 함의(含意)가 되었다.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생략하겠지만 특별 구속(particular redemption) 혹은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교리는 Calvinism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는 매우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다.  왜냐하면 같은 개혁주의 진영 안에 전택설(Supralapsarianism)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과 후택설(Infralapsarianism)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신학적 견해를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어떠한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계셨는가?”(사 55:8-9). 

타락 전 선택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다음에 죄를 세상에 허락하셔서 그 죄로부터 선택받은 그들을 구원하신다고 말한다.  반면에 타락 후 선택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먼저 죄를 세상에 허락하시고 그다음에 죄로부터 선택받은 일부를 구원하신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 이 신비를 해결하도록 하기 위한 자료나 뒷받침할 만한 성경구절들이 지극히 제한적이다.  양쪽 진영 모두가 옳은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사색적이고 그럴듯한 논리를 가지고 서로 잘났다고 나팔을 불어댄다.  이 말에 오해가 없기를 바라지만, 추상적인 신학적 용어(타락 전, 타락 후, 수동적 순종, 능동적 순종)들을 가지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신학이 개혁신학인 것 같다.      

이 문제를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Calvin의 요한복음 3장 16절 주석에 기록된 말을 들어보자.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초대하는 것을 볼 때, 그가 온 세상에 대하여 호의적인 관용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은 과연 생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여기서 ‘모든 사람들을 예외 없이 초대하는 것을 볼 때’  이 말을 주목해야 한다.  내가 난독증이 걸리지 않은 이상, 이 말은 확실하게 무제한적 속죄(unlimited atonement)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저는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는 구절을 생각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실제로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의 죄 값을 지불하신 것이다(딤전 2:6). 

그러나 이어지는 다음 문장에서는 Calvin은 또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약속되어 있다. 하지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모든 이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그를 찾고 구하는 택함 받은 자들의 문만 열어 주신다”  Calvin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혼자 힘으로는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의 전적 무능력(Total Inability)을 강조했던 학자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찾고 구하는 택함 받은 자들’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궁금한 것은 “전적으로 부패한 사람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Reformed Theology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Calvinist들은 이에 대한 답변은 분명 이럴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아무런 조건 없이 구원을 위해 어떤 이를 무조건 선택하고 성령의 유효적인 부르심, 즉 항거할 수 없는 은혜를 그에게 적용시켜 구원이 일어나게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협력에 의존하지 않는 하나님만의 주권적인 은혜로운 일이다”  이런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말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진다면 쓸데없는 논쟁과 논란을 야기시킬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하겠다.  솔직히 Calvin 자신도 이 문제를 가지고 오락가락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전자에서는 ‘보편속죄론’ (universal atonement)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최종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선택받은 사람들, 즉 ‘제한속죄론’(unlimited atonement)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Wesley는 대리 대속(penal substitution)이 어떤 식으로든 제한적(limited)이란 입장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인류에 대한 보편적 구속(universality redemption)을 제시하였다.  그러자 Calvin 추종자들, 특별히 극단적 칼빈주의자(Hyper Calvinism)들은 Wesley의 보편주의(universalism)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들이 거침없이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격은 Wesley의 선행은총(prevenient grace)과 구원의 수용과 거부에 대한 결정을 인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강조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에서 나왔다.  마가복음 16장 16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구원을 제공하지만 믿고 회개하는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선물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자(요 12:32, 딛 2:11), ‘온 세상’을 위한 것이며(요일 2:2), 하나님의 구원은 조건적이다.  여기서 Wesley가 말하는 그 조건이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다(요 3:15).  다시 말해 믿음에 의해서이며,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막 16:16).  지면 관계상 몇 군데의 성경구절을 인용하겠지만, 특별히 성경이 믿음에 의해 조건 지어진 구원을 가르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요한복음 3장 18절, 3장 36절, 사도행전 16장 31절의 구절들을 주목해야만 한다.   물론 Wesley의 이러한 주장에 Calvinist들의 답변은 뻔하다.  “만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온다고 말한다면, 이는 그가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을 믿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Wesley는 그리스도의 복음(고전 15:1-4)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관해 말할 때, 성경은 우리를 기계적인 피조물이나 로봇으로 보지 않았다(계 22:17).  즉 복음을 수용하든지 거부하든지 간에 선택할 수 있는 인격적인 피조물, 즉 참된 인간으로 보았다(마 23:37).  달리 말하면 속죄 사역의 범위에 있어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지 않는 한 어떤 죄인이라도 구속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믿든지 믿지 않든지 간에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강조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요 5:40).  더 나아가 선악과에 관해 아담에게 하신 말씀 안에는 잘못된 선택(불순종)을 벌하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한다(창 2:16-17).  그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셨더라도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사용하여 고의적으로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거나(히 10:29), 가지고 있는 양심과 믿음마저도 얼마든지 파선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딤전 1:19).

작금의 Calvinist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오직 하나다.  Calvinism의 5대 강령에 하나인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를 강조하는 것이다.  외적 소명(external call)이 아닌 내적 소명(internal call)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강력한 입장이었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Calvinist들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믿었다.  때문에 오직 하나님이 창세 전에 선택받은 사람들만 구원을 받아 영생의 유익을 누린다는 믿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 교리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온건 칼빈주의자(Moderate Calvinist) Norman Geisler는 TULIP의 맨 마지막 항목만을 인정하는 신학자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  누구든지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믿으면 된다(롬 12:3).  궁극적으로 속죄에 관한 가르침은 신비를 포함하고 있다.  그 어떤 인간적인 유비(類比)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죽게 하시는 일의 비밀을 다 아는 것처럼 독선과 독단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Wesley의 말을 인용하면 “속죄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려 든다면 결국 목적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미로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 ‘미로’(迷路)에서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신학적 ‘카르텔’(Kartell)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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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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