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vin은 『기독교강요』에서 신자들에게 통치하는 창조주(창 1:1)이며 구세주이신 하나님(사 43:3)을 가르치고 인도하기 위하여 성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성경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경’(眼鏡)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시력이 약한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내보이면, 어떤 종류의 책인지는 겨우 알 수 있겠지만 겨우 두 낱말도 해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경을 쓰면 똑똑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혼란한 지식을 우리 마음에서 바로잡고 우리의 우둔함을 쫓아 버리며 참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는 성경이 선지자(행 3:21)와 사도(행 1:2)와 그리스도(히 1:2) 통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고 보았다(벧후 1:21).  완전함(시 19:7)과 영원함(시 119:10) 그리고 능력 있는 권위(행 20:32)는 오직 성경 밖에 없고 다른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Calvin의 성경 이해는 Roman Catholic Church의 성경관과 확연하게 구별되었다.  Catholic Church는 정경화 과정(canonization process)을 포함하여 교회의 권위(authority)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성경을 포함하였다.  즉 하나님의 성령이 교회 지도자들과 공의회(councils) 그리고 교회의 결정을 통하여 역사하고 정경(canon)의 내용을 정했다는 입장이다.  초대교회가 성경을 성문화하였기 때문에 역사적(historically)으로나 신학적(theologically)으로 교회가 성경의 권위보다 우선하다고 믿었다.  이것은 교회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경이 교회에서 나온 것처럼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Calvin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성령을 통하여 성경의 감동과 권위만을 인정하고(벧후 1:21), Catholic Church의 입장에는 일절 동의하지 않았다.  『기독교강요』에 기록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입장을 고수하자.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진심으로 성경을 신뢰한다는 것, 그리고 성경은 자증(自證)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증거나 이성(理性)에 종속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성경이 마땅히 지녀야 할 확실성은 성령의 증거에 의해서 얻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 믿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교회의 모든 권위가 성경에서 나오기 때문에 교회는, 특별히 Catholic Church 은 제멋대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 권한이 일절 없다는 것이다.   Calvin에게 있어 성경의 단순성(simplicity)은 성령의 감동과 권위 그리고 신뢰성을 확증한다.   

Calvin은 요한계시록을 빼놓고 성경  대부분에 대한 주석서를 집필하였다.  그는 성경해석, 즉 전문적인 성서해석(biblical interpretation)의 이론(theory)과 실제(practice)를 연구하는 해석학적(hermeneutic) 접근에 서투르지 않고 노련했다.  당대의 최고의 학문과 인문주의 학문(humanistic studies)을 배운 그의 성경 해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기억할 것이 있다.  Calvin은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이 일어난 19세기 이전 사람이라는 것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그의 성경해석학을 후대의 발전된 차원과 비교하는 것은 낡고 뒤떨어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대와 중세 교회 성서해석의 실재적인 유산과 함께 당대의 뛰어난 해석가들, 즉 종교개혁가 Martin Luther와 인문주의자 Desiderius Erasmus, 그리고 Luther와 함께 종교개혁에 힘썼던 Philip Melanchthon과 1.5세대 종교개혁가라고 부르는 Martin Bucer 등의 해석학을 인지(認知) 하고 있었다.

그는 성경연구에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능숙했다.  성경을 해석하는 네 가지 방법, 즉 literal(historical) 역사적 문헌과 allegorical(symbolic) 상징적 비유 그리고 topological(moral) 윤리적 유형과 anagogical(metaphorical) 비유적 유추의 방식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Commentaries and Prefaces』에서 Raymond A. Blacketer는 Calvin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Calvin 당시의 다른 주석가들과 비교할 때 추상적인 주석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본문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영적 감각을 중보적으로 사용하는 ‘사두마차’(Quadriga) 즉, 네 가지 방법론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성서해석 방법론을 자주 비판하였다. 본문에 대한 본능적(Instinctive) 느낌과 문헌적(literary), 그리고 역사적(Historical)이며, 직설적인(Straightforward) 의미 파악에 중점을 두었다” 

Calvin은 Luther의 주장처럼 성경의 명료성(clarity)은 사람들이 스스로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난해하거나 숨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Catholic Church는 성경의 해석이 전적으로 교회의 권한에 두었다.  하지만 Calvin은 각 사람에게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보았다.  『기독교강요』에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생래적(生來的)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Calvin의 말을 들어보자.  “사실상 인간의 마음속에 타고난 본능에 의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각(知覺) 이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아무도 무지를 구실로 삼아 핑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 위엄을 어느 정도나마 깨달아 알 수 있는 이해력을 각자에게 심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신선한 물방울을 떨어뜨려 주신다”

더 나아가 그는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미신적으로, 때로는 광신적으로 수용하는 현상을 비판하였다.  예를 들면 현재에 대한 예언을 하나님께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우였다.  그의 비판은 하나님이 성경보다 교황(Pope)과 주교(Bishop)들에게 가르치는 권위가 주어진다고 주장하는 Catholic Church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Calvin은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Calvin은 성경의 가르침을 뛰어넘는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당대의 사람들의 주장도 배격하였다.  이것은 교회와 정부 간 관계의 고리를 끊고, 교회 모델을 회복하려고 노력한 Anabaptist 사람들을 지적한 것 같다.  Calvin은 아버지의 성령(마 10:20)이 성경을 초월하여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강요』에서 그는 말한다.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의 임무는 아직 들어 보지도 못한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새로운 교리 자체를 날조하여 ‘용인’(容認) 된 복음의 교리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복음이 말하는 바로 그 교리를 우리의 마음에 인쳐 주는 데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록된 말씀 밖에’(고전 4:6) 넘어서는 계시(啓示)라는 주장들로부터 지켜주는 확실한 안전장치다.

Luther는 그리스도의 믿음과 실천을 결정하는 성서의 권위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Calvin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종교개혁의 첫 번째 원리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차용(借用) 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Calvin은 이 짧은 어구를 『기독교강요』에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했다.  그러나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에 담긴 본질은 그의 저서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Luther는 1521년 Diet of Worms에서 열린 이단 재판에서 황제와 제국의 대표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자신의 주장이 성경에 의하여 오류라고 입증되지 않는 한 주장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면서 ‘이성적 판단’과 ‘양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들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성서’라는 명제 아래 성경 외에 다른 어떤 자료나 요소들은 기독교 안에서 절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나팔을 불어대는 벤뎅이 소갈딱지 같은 ‘고답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History of the Church, vol. 5』에 기록된 최종 변론 마지막 부분에서 나오는 Luther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성서의 증언이나 뚜렷한 이성적 판단에 근거하여….. 제 양심은 말씀 안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그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고 양심에 반하는 행동은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에….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의지했던 것은 오직 성경이었다.  Luther는 성경의 권위를 대체하려는 Catholic Church의 교황권과 교권의 권위에 강경하게 맞서는 입장을 견지했다.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은 Calvin의 저서 전체를 꿰뚫고 있었다.  또한 성경의 충분성(Sufficiency)을 강조하고(갈 1:8-9), 기독교의 최종적 표준(딤후 3:16)과 규범적인 기준(계 22:18-19)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그는 『기독교강요』 에서 이렇게 말했다.  “율법과 예언서에 다음에는 사도들의 글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거나 교회 내에서 자리를 내줘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 인정된 교수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지시와 표준을 따르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교회 안에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권위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다는 것이다.

Augustine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했던 것처럼 Calvin은 성서의 권위를 이해하면서 다른 한편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무비판적인 문자주의(Literalism)에 빠지지 않았다.  더 나아가 Calvin 역시 치밀하게 교회사에 나타난 교부들의 문헌들과 신학적 판단에 필요한 자료와 요소, 그리고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성경을 보충하는 2차 자료(Secondary Sources)로 사용하였다.  그가 보여준 정교한 논리와 사고방식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Protestant 전통에서 제외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성경 외에 다른 권위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종교개혁자들에게 심한 냉대를 받았던 Anabaptist를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해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Luther는 Anabaptist를 ‘광신자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Calvin은 한걸음 더 나아가 ‘미친개들’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였다.  그들을 혐오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Calvin은 자신의 기독교 처녀작 『Psychopannychia』에서 Anabaptist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일어날 일도 모른 채 비판 정신만 살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Calvin이 하이델베르크 논쟁(Heidelberg Disputation)에 참석해 Luther의 영향을 받은 Martin Bucer의 중매로 Anabaptist 출신이며, 아이 둘 있는 과부 Idelette de Bure와 결혼을 했다.  주례는 Geneva에 종교개혁 운동을 정착시킨 William Farel이다.  Calvin은 아내를 무척 사랑했다.  그런데 첫째 아기가 태어난 지 2주 만에 죽었다.  그에게는 너무나 큰 아픔이었다.  그리고 3년 후 딸이 태어났지만 둘째 역시 죽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세 번째 아기가 태어났지만 이 아이도 죽었다.  사랑하던 아내 역시 결혼생활 9년 만에 병으로 죽었다.  신학적 논쟁에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지만 삶은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다.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같다(약 4:14).  왜 그렇게 하셨는지 하나님도 침묵하셨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몰라서 침묵하셨는가?  공중에 나는 새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성경구절을 생각하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마 10:29).  François Baudouin은 Calvin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후손을 남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비참한 이야기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적이 많으면 삶이 평탄하지 않다는 것이다.  복음을 증거 하기보다는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에 혈안에 되어 있는 자, 기도 하기보다는 비판 정신만이 살아 있어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자들 말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목사들이 꼭 있다.  나는 이런 자들이 목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요지가 무엇인가?  “귀는 길어야 하고 혀는 짧아야 한다”(전 5:2).        

Calvin의 저작들 곳곳에서 Jerome과 Augustine, Chrysostom과 같은 교부들을 인용하고, 자신의 신학과 사역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기초라고 주장하였다.  Calvin의 사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Augustine이다.  그의 책을 가장 많이 인용하였다.  특히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과 인간의 자유 (Free Will) 관계를 논하면서 그랬다.  추후에 논의하겠지만 Calvin은 예정론에 관한 교리를 해설할 때, Augustine 외에도 Melanchthon과 Bernard의 글도 자주 인용하였다.  이러한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예정을 주장하고 강조한 부분들을 인용해서 그는 예정론을 체계화시켰다.  Calvin은 개신교회의 규범(規範)과 신조(信條)들을 만드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고, 성서와 그의 책들은 후대 칼빈주의 추종자들의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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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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