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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08 사랑의 피상적 표현

사람들이 체험하는 감정에서 사랑이 나타난다는 것 자체는

그 감정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감정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사랑은 지식이나 예언이나 기적이나 사람과 천사들의 방언보다도 더 귀한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 가장 숭고한 것이며 참된 믿음의 생명이고 본질이며 요체다.  사랑으로 우리는 천국의 모습에 가장 근접하게 되며 지옥과 마귀의 모습에 가장 반대 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성질 때문에 사랑에는 모조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어떤 것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그것의 모조품들은 더욱 많다. 그래서 철이나 청동보다는 금이나 은의 모조품들이 더 많다.  가짜 다이아몬드와 루비는 많지만 누가 흔한 돌의 모조품을 만들려고 할까?  어떤 것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그 본질과 내적 성질을 닮은 모조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그 모조품들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그 외형을 정확하게 모방하려고 더 많은 공교한 기술들을 사용한다.

 

그리스도인의 미덕과 은혜도 마찬가지다.  사탄이 교묘함과 사람에게 있는 기만성은 최고의 영예를 누리는 이런 미덕들과 은혜를 모방하는데 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과 겸손 보다 더 많은 모조품을 가지고 있는 은혜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은 사람에게 일종의 종교적인 사랑이 있더라도 그 사랑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을 고백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사랑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랑의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2-13).  하반절이 분명히 보여주는 그들의 사랑이 끝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식어지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매우 강하고 진하게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사랑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많은 유대인들이 분명하게 이 경우에 속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아주 높이 칭송하였으며 고기나 물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밤낮으로 그분을 따라다녔으며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주를 따르겠나이다’라고 말했으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다.  사도 바울은 그가 살던 시대에 그리스도를 가짜로 사랑한 사람들이 많았음을 암시하는 듯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불순하고 영적이지 않게 사랑하고 있었음을 바울이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 역시 가짜로 모방될 수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가 없이도

사람들은 이런 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에 대한 갈라디아 교인들의 사랑이 그 좋은 실례일 것이다(갈 4: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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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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