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감정이 성경 본문을 마음속에 기억나게 한다는 것은 자체는

그 감정들이 진정으로 거룩하고 영적인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성경 말씀이 생각남과 동시에 일어날 때 그것이 그 감정을 구원하는 은혜로운 감정이라고 판단 내리는 적합한 근거가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특히 고양된 감정이 소망이나 기쁨 또는 즐거움과 기쁨과 연관된 감정일 경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험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그 감정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알리는 표지라고 여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마음속에 아주 달콤한 약속들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한 본문 다음에 그 다음 본문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성경 전체에 걸쳐서 관련된 말씀들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런 감정이 확실히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올바른 것이며 그들의 영적 상태가 건전하다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문제에서 무지하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잘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잘못된 것이 없고 순전하며 완전하기에 성경 말씀에서 비롯된 체험들은 반드시 옳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이 성경 말씀과 더불어 생길 수 있지만 성경을 오용하지 않고 바르게 실천하여 참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의미로 볼 때 성경에서 합당하게 나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성경 본문이 성스러운 것이어서 마귀는 감히 그것들을 만지지도 못하고 오용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너무나 담대한 나머지 그리스도를 붙잡아 광야로 높은 산으로 성전 꼭대기로 끌고 다닌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성경을 악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강한 능력을 소유한 사단에게 소리나 글자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르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단의 도구로 타락한 이단 교사들이 성경말씀을 악용할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벧후 3:16).  우리는 그들이 성경의 모든 부분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성스러운 분문이라고 하는 것은 없으며 그들은 성경 본문을 악용하도록 허용되고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영혼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무기들을 사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따라서 사단은 성경과 자신의 도구들을 그렇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결론내릴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거짓 교사들이 그런 일을 할 때에 그들은 사단의 도구와 종으로서 그리고 사단의 자극과 영향을 받아 그런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마귀가 사람들을 기만하고 멸망시키려고 성경을 악용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어리석음과 부패함 역시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남과 더불어 생기는 고조된 감정을 체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인해 자극된 감정을 체험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돌밭과 같은 심령의 소유자들처럼

그 감정 안에 참되고 구원으로 이르게 하는 믿음의 본질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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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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