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敎理)라는 한자어 용어는 “가르침에 담긴 근본원리”, 또는 “특정 종교가 제시하는 이법(理法)”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데, 이를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정의한다면 ‘기독교 교리’란 하나님의 특별계시로서 신앙의 절대근거인 성경의 가르침에 담긴 인간 구원에 관한 근본진리를 조직적이고 논리적으로 체계화 한 기독교 신앙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구원받은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공동체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교리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엡 5:23)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각 지체로서(엡 4:16), 각 교회가 일치 통일을 이루기 위한 근거로서도 교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가 세상에 대해 진리를 선포하고 공중 권세를 잡은 사단의 공격에 저항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바 그 진리의 내용을 체계화한 것이 바로 교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거대한 풍차를 향해 싸우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돈키호테처럼 스스로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진리를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진리의 내용을 체계화한 교리를 가지고 마치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형제를 향해 공격하는 것입니다. Lloyd Jones의 말을 인용한다면 “성령을 소멸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간구하는 잘못”을 서슴치 않고 범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교리가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교리 때문에 서로 물고 뜯고 싸운다면 그런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교리’는 갖다 버려야만 할 것입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미국에서 제자훈련을 잘 가르치기로 이름나 있고 오래 전 한국에 가서 목회자들을 위한 제자훈련 세미나를 인도한 Bill Hull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로 한국이나 미국에서 제자훈련을 교회에 접목시킨 목회자들은 이 분이 아주 오래 전에 쓴 『목회자가 제자를 삼아야 교회가 산다』라는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분의 또 다른 책인『성령의 능력에 관한 솔직한 대화』를 읽다보면 Bill Hull 목사는 대학교 시절부터 오순절 계통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강하게 주장했던 사람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던 분이 Talbot School of Theology를 들어가고 나서부터 그의 신앙관이 변하기 시작했는데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2년 뒤 그토록 성령의 은사를 주장하던 나는 성령의 은사가 중단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성령의 은사들 즉 방언, 신유, 기적, 그리고 예언과 같은 것들은 이제 교회 안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만약에 아직도 이런 은사들을 활용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싸구려 연기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마귀의 도구로 전락한 자들일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내 주위에 있는 매우 경건하면서도 훌륭한 강해설교자들의 영향 때문이다.” 그 당시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적 교리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자 그렇게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주장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성령의 역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Talbot School of Theology의 공식적 입장은 전통적인 은사중단주의인데 ‘은사중지론’이란 특별계시인 신약정경 완성과 더불어 모든 예언적 은사가 중단되었다는 주장으로 사도와 예언자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졌으므로(엡 2:20), 사도의 역할이 끝난 것처럼 예언자 역할도 A. D. 1세기말에 종료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령의 은사는 초대교회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사중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당수의 세대주의자들과 개혁주의 신앙과 언약신학 노선에 서있는 자들로 많은 신학자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사람은 Robert L. Reymond와 Richard B. Gaffin을 들 수 있고, 특별히 은사중지론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오늘날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목회자들 중 한 사람이 제가 좋아했던 John F. MacArthur입니다. 물론 드물긴 하지만 Talbot School of Theology을 공부한 친구 목회자들 중에 성령의 사역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튼 Bill Hull 목사는 신학교 시절 주제 강의 시간에 늘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고린도전서 12-14장에 대한 주해로 헬라어 본문을 찾아봐도 성령의 은사가 중단되었다는 것이 설득력이 없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신학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면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은사들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은사에 대해 결론짓기를 오늘날에도 성경에 기록된 모든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여기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은 것은 A. D. 1세기말에 모든 은사가 끝났다고 배웠기에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그다지 환영하는 편은 아니었고, 물론 개인적으로 방언기도를 했지만 누군가 예언이나 환상, 혹은 꿈을 꾸었다고 하면 지금 기록된 성경 66권의 말씀이 있는데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느냐고 책망을 하면서 그런 것들은 마귀가 주는 것이라고 반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에 대해 반박했던 것은 정식 신학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은사들과 영성훈련의 광범위한 분야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도 대학원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하면서 그 좁은 틀(교리) 안에 갇혀 다른 견해와 체험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가운데 신랄하게 비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고 나중에 그것을 깨닫고 보니 성령의 놀라운 역사에 대한 영적인 갈급함이었습니다. 사실 지금은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균형 잡히게 강조하는 이유는 그럴만한 특별한 사건이 있었는데 목회를 관두려고 마지막 금식에 들어갔을 때 남들이 말하는 ‘성령의 불’ 받는다는 것을 뜨겁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것은 개인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만큼 확실한 것은 너무나 은혜스러운 것이었고 거의 서너 시간 내내 내 자신의 초라함과 비참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성령의 임재와 은혜와 사랑을 몸으로 직접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성령을 빼놓고 말씀만 강조하면 죽은 정통주의 신앙생활을 할 가능성이 많은데 Lloyd Jones는 『부흥』에서 죽은 정통주의는 교리적으로 지극히 정통이지만 전혀 생명이 없고 인간이 만든 제도에 묶여서 예배에 생명력이 없어 성령을 소멸한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딤후 3:5).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서 이단 못지않게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죽은 정통주의'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또한 말씀을 빼놓고 예언과 환상과 치유와 은사를 너무 강조하면 신비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많은데 이것 역시 오늘날 현대교회의 심각한 문제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역사와 능력이 지금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사역의 모델이 예수님이시고(히 13:8), 분명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의 삶에서 말씀과 성령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또한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고(요 15:26, 16:13), 모든 성령의 역사는 말씀 안에서 이루어지기에(엡 6:17),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만약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거스리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아무 쓸모없는 메마른 성경지식(교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진리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는다면(마 21:21), 그 말씀에는 능력이 따르게 되어 있고(고전 4:20),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히 4:12), 그 역사는 지금도 믿는 자속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막 16: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