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k Deere가 말하길 성령의 은사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끝나지 않으며,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교회)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고 개개인뿐 아니라 교회전체에 도움을 주고, Bill Hull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것은 모든 자질구레한 신학적 논쟁을 끝나게 만들고, Charles Craft 역시 성경 어느 구절에도 표적과 기사가 기독교 초기시대 이후로 중단되었다는 내용이 나타나 있지 않으며 은사들이 종식되었다는 이론들은 인간적인 해석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은사중지론 교리를 믿다가 지금은 은사지속론 입장에 서 있는 Samuel Storms는 표적과 기사의 능력은 복음의 능력을 희석시키지 않을뿐더러, 만약 기적과 말씀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면 문제는 우리의 생각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Lloyd Jones도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기적적인 은사들이 사도시대와 함께 끝났거나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단지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라고 상기시켰고, 성령의 권능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한 R. T. Kendall은 신학적으로 성령께서 지금도 역사하신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합니다. 지금 이들의 공통점은 양쪽진영에서 신학과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접해본 사람들이기에 개혁주의와 오순절은사주의의 장단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경험을 기초로 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오늘날에도 성령의 은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Talbot School of Theology를 나온 John MacArthur는 줄 곳 한 신학과 한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신학이기 보다는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신학을 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 같아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신학만이 정통이라고 줄기차게 우겨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 안에는 다양한 신학과 교단/교파의 전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서로 열린 마음으로 상호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연합하려는 정신을 가져야 하는데, 문제는 칼빈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신학의 폭이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너무나 좁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교단 신학만이 정통이라고 주장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신학의 틀을 가지고 다른 신학/신앙을 비판하거나 이단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기편에 속한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편에 선 사람에게는 무자비한 모습으로 마녀사냥 하듯 몰아세우는 것인데, 이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연합을 깨트리는 기독교 폭력일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열매는 아닐 것입니다. R. A. Torrey는 『신학과 사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서 “성숙한 신학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경험하고 확인하는 신앙인 반면에 미성숙한 신학은 분쟁을 일으키고 당을 짓는 집단정신을 초래하는 불안전한 신학”이라고 지적했는데, 사실 미성숙한 신학을 가진 목사들은 복음주의 우산 안에 있는 다른 견해와 입장을 가진 신학적 이슈들에 대해 듣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고 오직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는데, 이런 사람은 Gregory A. Boyd, Paul R. Eddy의 『복음주의 신학논쟁』이라는 책을 일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2013년에 MacArthur가 Strange Fire Conference를 준비한다는 말을 들은 은사주의자들 진영의 목회자들은 그에게 은사운동에 대해 공격(비판)하지 말 것을 제안했지만, 막상 컨퍼런스가 시작되면서 그는 오늘날 은사운동 하는 사람들이 마치 버림받은 자들인 것처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MacArthur와 네 명의 목회자들이 Panel Q & A, Session One 시간에 은사운동에 대해 결론내리기를 이들(은사주의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이며 성령을 모독하고 복음을 모르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혹평을 했는데, 다섯 명의 목회자들이 한 시간이 넘는 토론에서 결론짓기를 한마디로 은사주의자들은 사탄의 노예들이고 길 잃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패널 질의응답에 나온 목회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주님 보시기에 죄인이고(롬 3:9), 기회만 주어지면 죄짓는 것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인데(사 59:7), 어떻게 하나님도 아니면서 똑같이 마음에 악이 가득하고(렘 17:9), 평생 미친 마음을 품고 살다가 죽을 인간들(전 9:3)이 어떠한 영적분별력을 가졌기에 오순절/은사주의자들을 향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롬 14:4). 이러한 독설들이 과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책임질 수 있는 말일까요?(잠 18:21). 사실 미성숙한 신학을 가진 자들의 착각은 은사주의자들 모두가 그리스도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은사만을 추구하는 과대망상증 환자나 신비주의적인 사람들인 것처럼 판단할 때가 많은데(요 8:16), 이것은 대단한 오해라는 것입니다.
한편 이들이 오순절/은사주의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자 개혁주의 신학과 은사주의 진영에서 풍부한 사역을 감당했던 R. T. Kendall은 Strange Fire Conference 패널토의를 다 듣고 나서 편지 한 장을 MacArthur에게 보낸 적이 있습니다. Charisma Magazine 2월호에 나온 Kendall이 보낸 편지 내용을 요약하자면 “당신은 은사중지론이 진리인 것처럼 신봉함으로 무서운 운명에 처할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당신은 가설에 불과한 은사중지론을 마치 교리인 것처럼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나의 전임자였던 Lloyd Jones 목사가 마치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처럼 암시하고 있는데… 그분은 은사중지론자가 아닐뿐더러 은사중지론을 혐오하셨다. 오늘날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를 체험한 모든 간증들을 당신이 마귀적인 것으로 폄하해 버리는 사실에 대해 그분은 아마 전율하실 것이다. 당신이 그토록 교리처럼 고수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가능한 빨리 알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공개토론의 가능성을 내비 춘 적이 있었는데, 사실 Kendall은 『Holy Fire』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초대교회 시대로 한정되었다고 성경을 뒤튼다면 나는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것을 바로 잡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오늘날 신학자/목회자들 중에 Lloyd Jones의 후임목사인 Kendall에 대해 왜 신비주의적 과대망상증 환자나 귀신에게 미혹 당해 거짓방언으로 옹알거리는 자라고 낙인을 찍는 신령(?)한 사람들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