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

하고 싶은 이야기 2019. 2. 16. 19:04

암흑의 시대라고 불리웠던 중세 시대에는 마녀 사냥으로 인한 끝없는 공포와 이교에 대한 편협성, 그리고 성적 타락과 대량 학살로 인한 빈곤과 역병으로 문화적으로 쇠퇴한 시대다.  이 시대만큼은 모든 학문이 살벌한 신학 아래 있었다.  교회의 권위가 인간의 이성을 속박하고 학자들이 논쟁만 일으키는 신학 연구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당시 세례를 줄 때 사용하는 물에 파리가 빠지면, 이 일을 가지고 한 부류는 물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했고 다른 한 부류는 파리가 거룩해졌다고 생각했다.  (?)파리신학 문제를 가지고 두 부류로 갈라져 머리가 터지도록 치열하게 논쟁을 일삼았다.  중세 신학자들이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바늘 끝에 천사가 몇 명이나 앉을 수 있을까를 두고서 궤변적 논리로 싸웠다.    

Lloyd Jones는 정통적인 신학을 가진 사람이 흔히 걸려 넘어지는 함정 가운데 하나가 완벽한 정통적이면서도 메마르고 죽어 있는 교리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 2:24), 이 메마르고 패역하고 악한 세대에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관심이 없고( 16:15), 로마 교인들이 먹는 문제로 싸우는 듯이, 오늘날도 유독 장로교 신학자와 목사들은 어떤 신학적 해석의 차이를 두고 서로 물고 뜯고 싸운다.  그 많은 논쟁들 중 하나가 선택과 유기, 즉 예정론에 대한 것이다.    

예정론(predestination)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뜨거운 논쟁을 일으켜 온 교리다.  과연 하나님의 주권적 선결정, 예정론은 성경적 교리인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만을 가져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에게 자유가 있으며 이에 따른 책임을 가져야 하는가?”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제한을 받는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구원이 무엇인가 기여했다고 자랑할 수 없도록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품인가?”        

칼빈주의자들이 무조건적 선택 교리의 입증을 위해 항상 제시하는 성경의 핵심 본문은 에베소서 13-6절 말씀이다.  이 구절에 의하면 세 가지 분명한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죄인들 중에 일부를 창세 전에 선택하셨다(4).  다른 하나는 이렇게 선택받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예정되어 있다(5).  그리고 예정과 선택은 은혜와 영광 속에서만 찬미해야 한다(6).  이 구절만을 놓고 본다면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인간의 공로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목적에 따라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하시고 선택하시며 성취하신다.  선택과 예정에 관련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때 행하시는 어떤 일도 인간의 의지와 관련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사람이 선택받은 자인지 선택받지 않은 자인지 알 수 없고, 누가 예정되었거나 내적 부르심을 입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일은 우리들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만이 아는 비밀이다(2:9).  다만 각 개인이 자신을 시험하고 믿음으로 확증하는 가운데 스스로 선택받은 자녀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후 13:5).  하지만 이런 믿음조차도 백퍼센트 확실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17:9).  나는 신학에 있어서는 논리적 일관성보다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이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것을 넘어서 논리적인 추론을 하려는 것은 단지 사변(思辨) 정도로 밖에 지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예정론에 대한 문제는 사변적으로 접근할 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예정이나 선택을 믿는 사람이 있고, 또한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궁금한 것은 예정을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인가?  내가 한 가지 만큼 확신하는 것은 예정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간에 누구든지 이 교리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3:16, 10:9-10, 13).  만약 이 점을 놓치게 되면 신학적으로 같은 배를 타고 있는 형제들에게 예정론은 두려운 교리가 되고 극단적인 입장에 빠지게 된다.  쉽게 말해 수 백개의 교단으로 갈라질 만큼 서로 물고 뜯고 싸움박질을 일삼는 장로교단에만 구원이 있고 나머지 모든 교단들, 즉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침례교, 나사렛 등 교단에는 구원이 없다는 종교적 테러범 같은 광기 어린 살인적 주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로교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구원하실 자를 예정하셨다는 예정론을 믿는다.  조금 더 선택교리에 배타적인 자부심을 갖고 있거나, 요한일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구절을 무시하는 사람은 이중예정론(double predestination)을 쉽게 받아들인다.  반면에 John Wesley의 입장을 정통으로 받아들인 감리교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누구를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닌 역사 속에서 주님을 받아들이고 믿을 사람이 누구인가를 미리 아시고, 그 예지에 근거해서 그 사람을 택했다는 예지예정론을 믿는다.  장로교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감리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장로교는 성경적이고 감리교는 이단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복음적 신앙고백을 인정하는 두 교단 모두 성경적이다. 

앞으로 이야기 하겠지만 개혁주의 신학 체계에서 예정론이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예정이 칼빈신학의 전부가 아닌 한 구성 요소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선택 교리를 이해하는 다양성이 개혁주의 신학 내부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정론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가진 다른 교단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의 신학적 논의는 결코 적(이단/사이비)들 사이의 통렬한 매도(罵倒)가 아닌 같은 지체들 간의 입장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뜨거운 논쟁을 일으켜 온 예정론 안에서도 몇 가지 모델들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 Calvin이 확립하고 후대의 칼빈주의자들이 정립한 소위 이중예정론이다.  이들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이미 인류의 일부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시고 일부를 버리시기로 예정하셨다.  Calvin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인도하고, 다른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으로 예정한다는 자신의 교리에 대해 『기독교강요』에서 작정 교리는 잔인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Clark Pinnock은 이런 관점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지지하고 변증해야 할 신학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위대한 악의 조성자가 되기 때문이다.  Dave Hunt는 『What Love Is This? Calvinism's Misrepresentation of God』에서 칼빈주의의 잘못된 해석은 무신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일 수 있는가?”(요일 4:8)라고 반문한다.  John Wesley1739  429일에 로마서 832절 말씀을 가지고 ‘Free Grace’이란 제목으로, 그의 전체 설교 가운데 한 획을 긋는 은혜로운 설교를 하고 나서 Calvin 잔인한 작정 교리를 공식적으로 반대한다고 외쳤다.  이들에게 있어 예정론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살벌한 공포로 대체시키는 교리다.      

이러한 엄격한 의미의 예정론은 후대에 와서 Supralapsarianism 의 입장, 즉 전택설로 확립되었다.  전택설을 지지하는 신학자들은 Martin Luther, John Calvin, John Owen, Theodore Beza, Abraham Kuype, Herman Bavinck, Westminster 총회의 초대의장 William Twisse, 같은 이들을 들 수 있다.  타락 전 선택론이 주류였던 16세기 후반 Leiden University의 교수 Jacob Arminius가 죽은 뒤 그의 제자들이 전택설에 반기를 들면서 5개조의 항론을 제기한다.  자유의지/인간의 능력, 조건적 선택, 보편적 구속/일반 속죄, 저항할 수 있는 성령의 은혜, 은혜로부터의 타락, 이 항론의 핵심은 한 마디로 타락 전 선택론이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전택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을 것인지를 미리 알고 그 사람의 믿음을 조건으로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예지는 구원받을 자를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지식이며 선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8:29, 벧전 1:1-2).

같은 개혁주의 안에서도 Calvin을 전택설주의자가 아닌 후택설주의자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한 아르미니우스주의 일부 입장을 받아들이는 칼빈주의자들이 생겨났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예지), 그것(악한 일에 대한 계획)을 허용하시기로 했다는 허용적 작정론, 그리고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동적(能動的) 선택과 수동적(受動的) 유기 사이의 비대칭(Asymmetric) 관계를 강조하는 타락 후 선택론, 즉 후택설(Infralapsarianism) 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저명한 신학자들 중에 Charles Hodge, Louis Berkhof, 고대의 Augustine도 후택설자로 분류할 수 있다.  이 후택설 교리를 받아들이는 학자들 중에 제한속죄를 수용하는 파와 거부하는 파로 다시 갈라진다.  이들은 칼빈주의 5대 교리 중 4개는 받아들이는 일명 ‘four point’ 칼빈주의자로 불리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침례교 조직신학자인 온건 칼빈주의자 Millard J. Erickson이다.  그는 이중예정론을 모든 교리 가운데 가장 다루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교리라고 결론을 짓는다.

이들 모두가 하나님 계획의 불변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타락 전 선택론(전택설)자들은 예지와 예정을 동일시 하는 예정 유일론을 주창한다.  전택설자인 Herman Bavinck는 『The Doctrine of God』에서 하나님의 예지는 절대적인 확실성으로 그 대상을 예지한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예지는 예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예지에 대한 칼빈주의 교리는 사실상 예지가 아니라 예정에 대한 것이다.  한 마디로 이들에게 있어 예지는 예정이다.  반면 타락 후 선택론(후택설)자들은 예지와 예정을 구분하지만, 이 둘이 함께 역사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하나님께서 존중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효적 작정으로 모든 사건에 대한 계획, 즉 하나님의 적극적인 면으로 사물의 창조와 보존과 통치 등 목적적 의지인 효과적 사역이 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소극적인 면으로 허용적 의지인 악한 일, 즉 인간의 범죄의 허용과 사탄과 악의 활동을 허락하는 허용적 작정이 있다.  악한 일에 대해서 유효적 작정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악의 조성자가 되신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Louis Berkhof 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거룩함으로 예정하시는 것처럼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죄로 예정하셨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죄의 조성자가 되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교계의 입장은 어떠한가?  한국 장로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신조문서들, 도르트 신조(Canons of Dort)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The Westminster Standards)은 후택설 교리를 함의하고 있다.  아이로니컬 하게도 Westminster 회의를 주관한 초대의장 William Twisse는 전택설자였다.  이러한 다양한 모델들 외에도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로 꼽히는 Karl Barth의 선택론과 개혁주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대한 아르미니우스주의를 결합시킨 아미랄두스(Amiraldus)가 있다.  이처럼 예정론에 대해 다양한 모델들이 있다는 것은 이 교리가 그만큼 모순이 많고 난해한 문제인 것을 말해준다.  칼빈주의 내에 존재하는 전택설과 후택설 간의 논쟁은 지금까지도 속시원하게 해결된 적이 없다.  한 마디로 없어져야 할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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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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