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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6.16 칼빈과 구원

Calvin은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에 속한 성도들의 견인(Perseverance) 구원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는 뜻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하신 예정에 의해 선택(election) 받고 성령에 의해서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그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구원이 보장된다는 Calvinism의 독특한 교리다.  사실 Calvin의 견인구원은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환영할만한 구원관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Once saved, always saved)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단 한 번이라도 맛본 장로교 신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Calvin의 견인구원을 Wesley는 ‘궁극적 구원’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Wesley는 한번 믿은 사람이 끝까지 타락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성경에 지적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Calvin의 견인구원에 제동을 가하기 위해 성경을 제시한다.  많은 성경 구절들이 있지만 몇 가지만 적고자 한다.  먼저 에스겔 18장 24절과 히브리서 10장 26-29절, 그리고 특별히 구원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도 그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언제라도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로마서 11장 20-22절과 연관 지어 설명하였다.  지면 관계상 에스겔서와 히브리서는 생략하겠지만, 로마서 말씀에 대한 Calvinist들의 해석은 주로 이런 식이다.  “문맥상 바울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나 진정한 믿음을 가지지 않는 자들을 언급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것은 개별신자들이 구원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찍혀 나갈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일반화된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떠나는 한 집단으로서 이방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확증편향적 해석이다.   

먼저 구절들을 눈여겨보길 바란다.  20절에 ‘저희는 믿지 않으므로 꺾여졌다’, 21절에는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다’, 22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걸려 넘어진 자들에게 심판으로 행하셨다(롬 9:32-33). 즉, ‘넘어지는(거역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준엄하심이 있었다’.  다시 말해 선택이고 나발(삼상 25:25)이고,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2)는 말씀처럼 구원은 언제나 조건적이다.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하면 살고(겔 18:30-31),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죽는다는 것이다(창 2:17). 

짧지만 정곡을 찌르는 『Predestination Calmly Considered』에 나오는 Wesley의 말을 들어보자.  “참된 포도나무의 가지인 신자들이라도 떨어져 나갈 수 있으며 마침내 영원히 멸망할 수도 있다”  이것은 거룩함을 입은 자도 죄를 지어 타락하여 돌이키지 않으면 영원히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서 Wesley는 인간의 구원 문제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이와 같이 Wesley는 Calvin의 ‘성도의 견인’ 교리를 성경을 통해 부정했다.

Calvin이 강조하는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그는 영생을 받기로 선택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유효한 본성과 영원한 형벌을 받을 사람들에 대한 배척을 지겹도록 강조하였다.  사실 Calvin에게 있어 예정론이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은 오직 죄 가운데 있으며, 그들 가운데 구원받을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으로 구원받도록 예정된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Wesley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Calvin의 구원론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은 대단히 중요한 주제였다.  하지만 ‘구원의 순서’(order of salvation)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위치는 Calvinist들 사이에서 논쟁이 심한 '타락 전 예정론'(supralapsarianism)과 '타락 후 예정론'(infralapsarianism)처럼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Calvin은 『기독교강요』에서 그리스도의 연합을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그리스도, 즉 신비한 연합”(mystical union)으로 보았다.  대부분 성례전(sacraments)의 맥락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야기했지만, Calvin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에 앞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사람들은 예수의 대속(vicarious)의 공로로 의롭다고 칭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연합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실질적인 부르심을 확신하고 또한 그들이 거듭나고 믿으며 회개할 수 있게 한다.      

Calvin의 칭의론은 그의 구원론에서 가장 뚜렷한 강조점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며, 이는 종교개혁이 강조한 ‘오직 은혜’(sola gratia)와 ‘오직 믿음’(sola fide)을 반영하고 있다.  Calvin은 법적인 방식으로 신학을 세워가면서 바울의 칭의 교리(doctrine of justification)가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인정하였다.  『기독교강요』에서 나오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칭의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하여 의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칭의를 통하여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입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의(Righteousness)가 우리 안에 주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로운 존재들인 것처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를 대신하여 예수의 의를 받으셨고, 택함 받은 사람들은 죄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예수의 대속의 사역을 통하여 용서를 받았다.  Calvin은 계속하여 말한다.  “그러므로 칭의는 징벌을 피할 수 없는 죄인을 마치 죄가 없는 것처럼 확인하여 풀어준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결백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안에 주어진 의로 말미암아 우리를 용서하셨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 안에 의로움이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인정받게 된 것이다”  믿음이 가지고 있는 칭의의 능력은 인간의 공로에 있지 않고, 우리의 칭의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공로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Calvin과 Luther 모두는 믿음을 통한 은혜로 말미암아 칭의와 성화가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Calvin은 Luther보다 성화를 더욱 강조하였다.  Calvin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더욱더 성숙해지고 그리스도를 닮은 신자들이 되기를 얼마나 소망하는지 강조하였다.  그는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또한 성화의 과정을 서술하면서 고통(mortification)과 활력(vivific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율법의 세 번째 용도(The Third Use of the Law)인 도덕적 기준에 따라 살아야 할 필요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성화에 대한 Calvin의 관점은 당연히 Wesley와 달랐다.  이 문제는 추후에 다시 논하겠다.  

Calvin은 하나님이 택함 받은 사람들은 마지막 날 영화롭게 될 때까지 인내할 것이라고 믿었다.  칭의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어떤 이들은 여정을 시작하자마자 넘어지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참아낸다.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인내는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면서 “오직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만이 살아 있는 믿음의 뿌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있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그로 인하여 마지막 때까지 견딜 수 있게 된다” 

여기서 Wesley는 Calvin의 주장에 다시 한번 성경적 제동을 건다.  Wesley는 하나님의 선택(election)을 두 가지의 뜻으로 설명하였다.  하나는 특별한 사명을 맡겨주기 위해 거기에 적합한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택정 하는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복음의 선포를 위해 특별하게 선택되었다(눅 6:12-16).  그러나 이 선택이 영원한 구원과는 관계가 없었다.  왜냐하면 선택된 열 두 제자 중 구원을 잃어버린 자도 있었기 때문이다(요 6:70).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아는 것처럼 가룟 유다는 선택을 받았지만 구원을 받지 못했다(행 1:18, 25).  나머지는 생략하겠다.        

Calvinism 안에서 구원의 확실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한 문구들 가운데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표현들이 있다.  ‘영원한 보장’(Eternal Security) 혹은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는다’(Once saved, always saved)라는 문구들이다.  사실 Calvin은 이러한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가 사용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용어들은 하나님이 사람들 속에 믿음을 심어주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을 갖게 되면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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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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