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설

칼빈과 웨슬리 2024. 5. 26. 11:35

우리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사 55:8).  그분은 우리의 지각을 넘어서기 때문에 두 입장에는 각각의 신비가 담겨 있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단독설(monergism)과 신인협동설(synergism), 두 입장은 각각 신학적인 유효성과 적절성이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의 신비에 따라 살 것인지, 어느 쪽을 따르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은 ‘조삼모사’(朝三暮四) 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은 상황과 환경을 따라 얼마든지 이쪽저쪽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신약의 다양성을 인정하기 위해 Pentecostal Theology과 Wesley Theology, 그리고 Calvin Theology을 공부했다.  엄청난 학비를 들여 가면서 12년이 넘는 세월을 공부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불통(不通)과 골통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이다.  하나의 신학만을 공부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무엇인가?  불통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골통’ 소리를 듣는다.  한 마디로 건설적인 신학적 대화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 차이가 무엇이며, 그런 차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능력이 이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배운 신학하고 다르면 다 이단인가?  나는 정말 이런 개소리하는 목사를 만나 일대일로 살벌한 토론을 하고 싶다.  상대의 신학이 나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감(語感)이 조금 그렇지만 ‘골통 목사’ 그리 좋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목사를 만나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이 불쌍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원과 상황의 관계에 대한 성경의 진술이라는 차원에서 일관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Calvin 신학의 강점은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강력한 확증이다.  Calvin은 인과관계의 관점에서 구원을 이해했기 때문에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음을 확증하고자 했다.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함 없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모든 선하심이 근본이며 우리는 그분 안에서 다른 것을 찾아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이 경외하고 흠모할 대상이 한 분 있다고 단순하게 주장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지혜와 빛, 혹은 의로움이나 능력, 혹은 정직이나 참된 진리 그리고 그분이 원인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의 단 한 조각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Wesley 신학의 강점은 하나님의 통치를 믿으면서 인간의 자유를 확증하는 것이다.  그는 구원을 보다 관계적으로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죄악의 조건에서 법적으로 구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들을 의롭다고 할 수 있는 충분한 원인을 준비하셨다.  물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자유는 회심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롭게 행하고(갈 5:1),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과의 사랑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엡 4:13) 자라도록 부름 받았다.  그들은 처음 창조될 때 가졌던 하나님의 본래 형상(창 1:27)을 새롭게 함으로써 더욱 많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거룩하게 하는 성령과 관계 속에서 협력하며 행한다(롬 8:4).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요일 4:16)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사랑으로 사람을 지으셨고, 사람은 사랑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다.  Wesley는 이 사랑에 대한 강조를 『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사랑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실제로 아무것도 없다. 만일 여러분이 사랑보다 귀한 무엇을 찾으려 한다면 과녁에서 빗나간 것이며 왕도를 벗어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복을 받은 적 있습니까? 질문할 때 그것이 사랑보다 귀한 것을 의미한다면 여러분은 틀렸다. 여러분은 사람들을 옳은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죄에서 여러분을 구원한 그 순간부터 여러분은 다른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사랑 이상의 것을 바라야 한다”

Calvin과 Wesley 두 사람 모두 인간의 죄성과 타락,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영생을 얻는 것이 불가능해진 인간의 상황을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구원의 소망을 잃도록 내버려주지 않으셨다.  두 사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마 27:50) 그리고 부활(요 20:19)을 통해 구원을 예비한 것을 찬양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통하여 구원을 얻었다(엡 2:8-9).  이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딛 3:5) 십자가에서 구원을 받은 죄수처럼 값없이 선물로 주어졌다(눅 23:43).  하지만 Calvin은 하나님이 죄로 인하여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행동하신다고 믿었다.  반면에 Wesley는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시작하시고 은혜로 가능하게 하며, 인간의 구원을 완성하신다고 믿었다. 

Wesley에 의하면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는다(요 3:36).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원하여 진정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는 선택을 하기를 바라며 구원의 과정에서 사람과 협력하는 것을 기대한다(요 3:16-21).  그 선택은 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선택을 하도록 허락하는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이다.  그러한 자유는 성령 안에서 개인이나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닮아간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며 살아가도록(마 22:36-40) 그리스도인의 생애 전체에 걸쳐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빌 3:13) 계속된다.    

'칼빈과 웨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빈과 구원  (0) 2024.06.16
구원의 순서  (0) 2024.06.09
신인 협동설  (0) 2024.05.12
이중 예정  (1) 2024.04.21
웨슬리와 예정  (0) 2024.03.24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