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Wesley는 성경의 중심적인 교훈은 하나님의 능력(power of God) 보다 사랑(love of God)을 강조한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의 통치(sovereignty))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능력은 성경에 나타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온전하게 읽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에 기록된 요한일서 4장 8절에 대한 주석에서 Wesley는 사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통치의 특성으로 하나님의 모든 다른 완전함에 따뜻한 영광을 더해 주는 특성이다”

물론 Calvin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하였다.  『기독교강요』에 나온 그의 말을 들어보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대가 없이 기꺼이 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사랑을 경험하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일에 빠져들게 된다”  Calvin은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대속의 사역이 기인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그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엡 1:4-5)’ 세워지고 굳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당연하고 성경의 교훈에 부합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고 선포하는 말씀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Calvin의 신학에서 사랑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가장 우선적인 강조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강요』의 소제목들을 잠시 살펴보면 Calvin이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의 지식, 율법과 복음, 은혜의 유익함과 영향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특별하게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장의 주제는 성서,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거룩한 역사, 신앙, 영원한 선택 등이다.  그런데 사랑은 『기독교강요』의 소제목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Calvin은 다른 저작들에서도 사랑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적어도 Wesley가 기대한 것처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이 문제를 조금 더 다루고자 한다.  복음주의 신약 신학자 Leon Morris는 요한일서 4장 8절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썼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말은 하나님은 사랑하신다는 의미보다 더한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할만한 대상을 찾으셨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본성이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신학자들,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 주의(Augustinianism) 자들은 사랑과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Essential Attributes of God)이라는 생각을 반대한다.  예를 들어 Calvin은 이런 개념을 주의 깊게 고려하면서 신중히 반대했다.  그가 이 개념을 거부한 이유는 명확하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과 자비의 대상으로서 모두가 아니라 어떤 이들만을 자유롭게 선택하시는 분이라면, 그 말은 곧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과 자비를 오직 제한된 이들에게만 베푸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된다.  또한 이 말은 하나님이 어떤 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Calvin의 『기독교강요』는 무려 1500페이지나 된다.  이 책에서 그는 성경의 증거를 따라 기독교 교리를 요약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다룬다.  Westminster Press가 편집한 『기독교강요』의 성경 색인은 한 페이지를 3단으로 구성했음에도 39페이지나 된다.  이렇게 방대하고 철저한 책에서도 Calvin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요한의 진술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Calvin은 이 구절들을 무시하고, 이 주제에 대해 설명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개혁주의 신학자 Louis Berkhof도 자신의 『조직신학』 책에서 이 구절들을 한 번도 인용하지 않았다.  제한적 선택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Knowing God』의 저자 J. I. Packer 역시 이 구절에서는 논리적 모순으로 걸려 넘어졌다.  하나님의 사랑이 제한적으로 선택된 이들에게 한정된다고 주장하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들은 요한일서 4장 8, 16절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이것이 제한적 선택교리 안에 있는 모순되고 어색한 점이다.  할 얘기는 많지만 여기까지만 하겠다.   

Wesley가 하나님의 사랑의 역동적인 성격을 강조한 이유 중 하나는 삼위일체(Trinity)를 관계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세 위격(three persons)이 사랑의 관계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Wesley는 성부, 성자, 성령의 본성을 지닌 삼위일체의 신비에 관하여 별로 의문을 갖지 않았다.  대신 성령을 통하여 성부와 성자와 지속적인 연합을 이루는 것이 ‘새로운 창조’라고 보았다.  The New Creation에서 말한 것처럼 “세 분이 하나가 되는 하나님과 그 안에서 누리는 모든 피조물들의 지속적인 기쁨이다”.

Wesley가 삼위일체 교리에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Calvin이 정통적인 삼위일체 교리에 비판적인 관점을 발표한 Spain 출신 의사이자 신학자인 Michael Servetus를 처형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The Works of Wesley, Vol. X』 에서 Wesley는 말하고 있다.  “나는 그 같은 용어가(삼위일체나 위격) 아주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채로 사람을 불에 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르지 않은 생나무로 서서히 불을 지퍼 죽이는 것은 더욱 그렇다”    차후에 이 문제도 조금 더 살펴보겠다.

Wesley는 하나님의 통치와 사랑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보완한다고 보았다.  물론 Calvin도 하나님의 통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설명할 때 비슷하게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Calvin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하나님의 통치를 훨씬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Wesley는 하나님의 사랑의 동인(動因)이 하나님의 통치라고 말한다.  God’s Love to Fallen Man』에서 기록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저주받은 죽음으로 내어줄 정도였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도대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독생자를 그것도 아버지와 동일한 영광과 위엄과 영원성을 가진 아들을 내어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Calvin이나 Calvinists과 달리 Wesley는 하나님의 사랑과 온유가 하나님의 모든 특성들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Predestination Calmly Considered』에서 그는 다시 말한다.  “성서는 ‘하나님은 정의시라’, 혹은 ‘하나님은 진리시라’고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기록하였다. 사랑은 관념적이고 한계가 없으며 ‘그의 선하심은 끝이 없으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뿐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도 확대된다. 하나님은 악인과 감사하지 않는 자들에게까지 선을 행하신다”

Wesley는 Calvinists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 대신 하나님의 통치와 능력을 강조하는 모습을 특히 염려하였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타락하거나 선택하지 못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선대 하거나 사랑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두 가지 표현 중에서 고를 수 있다. 무조건적으로 선택된 사람들 외에 구원받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면, 이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동일하다). Calvin이 분명하게 언명한 대로 ‘살아서 수치를 당하고 영원히 죽는(in vitae contumeliam et mortis exitium)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의 영원한 지위를 생각한다면 그가 하나님의 사랑이나 선하심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Wesley의 관점에서 특별히 구원받을 사람의 선택과 유기에 대한 하나님의 역할에 집중하는 Calvin의 하나님의 교리는 『Free Grace』에서 말한 것처럼 ‘신성모독의 교리’이며, 하나님을 “더욱 잔인하고, 더욱 잘못되고, 악보다 더욱 불의한 존재로 만든다”  독일 개혁주의 전통에서 자라난 Philip Schaff는 20세기 초에 활동한 세계적인 교회사학자다.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8 vols』 에서 Calvin과 Calvinists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칼빈주의는 어거스틴 계열의 신앙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유익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제한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선택된 소수의 사람에게만 적용하고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요 3:16)을 무시하는 근본적인 오류를 갖고 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하나님의 통치 신학이다”

Calvin과 Wesley  모두 하나님의 통치와 능력, 위엄을 믿었다.  Calvin은 그러한 믿음을 가질 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으며, 사람은 그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반면에 Wesley는 그러한 믿음이 자유를 훈련하는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거룩한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칼빈과 웨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은혜  (0) 2024.10.06
하나님의 통치  (1) 2024.09.01
웨슬리와 사역  (0) 2024.08.04
칼빈과 사역  (0) 2024.07.21
다양한 사역  (0) 2024.07.07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