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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5.25 선한 행위의 필요성

야고보는 선한 행위가 칭의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물론 야고보서를 다소 무시하는 신학자들이 있기는 하다.  어떤 이들은 야고보서의 ‘의롭게 하다’(디카이오오)와 ‘구원하다’(소조)라는 단어가 구원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야고보의 가르침을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정해진 신학적 틀에 억지로 끼어 맞추려는 시도로서 거부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이런 해석은 나머지 신약성서와 더불어 이 본문의 가장 자연스러운 의미와 잘 부합되지 않는 의미를 이 단어에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야고보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지나치게 읽어내려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선한 행위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동시에 완전함과 혼동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야고보서 3장 2절에서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라는 야고보의 말은 주목해야 한다.  그는 자기 자신도 죄를 범한 자의 범주에 포함시킨다(‘우리가 다’).  그는 우리가 다 ‘다양한 방식으로’ 죄를 범하기 때문에 신자들이 죄를 짓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실은 선한 행위가 칭의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약화시키지는 않지만, 우리로 하여금 선한 행위가 완전함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든다. 

우리가 상습적으로 죄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신자의 삶의 태도와 방향은 반드시 의를 지향해야 한다.  우리는 최종적 칭의에 있어 선한 행위의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약성서에 나타난 긴장 관계를 균형 있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선한 행위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완벽주의에도 빠지지 않기 위함이다.

야고보서 2장 12-13절 역시 중요하다.  신자들은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긍휼을 베풀지 않는 자들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마 18:21-35).  또한  최후의 심판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야고보는 심판이 임하면 하나님의 긍휼히 신자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자신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이나 자신들의 행위에 기초하여 구원을 요구할 만한 자격을 부여하지 못한다.  구원을 얻기 위한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긍휼뿐이다(롬 9:15).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긍휼히 필요하다는 사실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바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갈 2:16).  

야고보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바울만큼 강조하지는 않지만, 야고보서를 면밀히 살펴보면 야고보 역시 선한 행위가 칭의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거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신자들은 심판날에 하나님의 긍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는 여전히 사람은 행위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만약 행위가 칭의의 기초가 아니라면 우리는 행위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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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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