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vin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를 믿었.  『기독교강요』 머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며 기동 하므로’(행 17:28),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곧바로 하나님을 묵상하는 데로 생각이 옮겨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그 굉장한 재능들도 그 근본이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며 사실상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생존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Calvin의 관점에서 하나님에 대한 확언들은 성서(Bible), 혹은 그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대로 성경(Scripture)이 분명하게 가르친 내용이다.  성경의 모든 구절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 지식과 현존(presence)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Calvin은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을 말했는데, 그 능력은 ‘하나님의 전지전능’(God's omnipotence)을 의미한다.  『기독교강요』에 기록된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가 행동하실 수 있지만 때때로 행동을 멈추고 한가하게 앉아 계시거나 아니면 미리 정해 놓으신 자연의 질서를 그저 일반적인 충동을 통해서만 지속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그의 섭리로 다스리시며 자신의 뜻이 아니고서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일을 운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독자들은 섭리라는 말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하나님이 하늘에서 한가하게 구경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열쇠를 쥐고 모든 사건을 지배하신다는 뜻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Calvin은 하나님의 섭리(God's providence)를 말하면서 영원한 형벌로 고통받게 되는 타락의 문제를 제기한다.  만일 하나님이 모든 일을 주장한다면 어떻게 인간들 가운데 타락하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는 분명하게 타락을 포함하는 모든 미래의 일이 창조 이전에 이미 정하신 하나님의 의지, 혹은 명령에 의하여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계획으로 오래전에 선택하여 구원을 받게 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있고, 반면에 멸망당하기로 결정한 사람들도 있다”  그는 계속하여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시하는 자를 저주하시는데, 이는 그가 자녀 삼기로 예정한 상속자들의 반열에서 제외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확언에 담긴 논리적인 의미에 주목하면서 실제로 굳게 믿었다.

더 나아가 Calvin은 『기독교강요』 첫 장부터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제시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지나친 신학적 호기심을 갖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모든 인간의 지각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먼저 예정에 대하여 질문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의 거룩한 경내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그릇된 확신으로 이 영역을 망가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호기심을 만족하기는커녕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궁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Calvin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억제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쳤다.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의문과 염려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대답할 능력이 없다.  영생(eternal life)에 관한 질문과 염려는 더욱 그렇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들의 모든 의문과 염려에 대답할 충분한 능력을 갖고 계신다.  물론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상황을 생각한다면, 유한하고 죄 많은 인간을 도울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진 유일한 하나님께 겸손하게 순종하는 것 외에 어떤 선택도 없는 것 같다.  성경이 분명하게 기술하지 않고 최소한의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문제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이 제기하는 모든 물음과 염려에 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Wesley 역시 하나님의 통치를 믿었다.  『Thoughts upon God’s Sovereignty』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창조자로서 하나님은 만물 안에서 그의 통치의 뜻대로 행하셨다.  … 하나님은 가장 절대적인 의미에서 그가 뜻하신 일을 모두 행하실 것이다. 그에 따라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지으시고 만물이 그 안에 있게 하셨으며, 그의 선하신 기쁨에 따라 모든 것이 보기에 좋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었다.   다시 그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또한 전지전능하시더. 그의 능력과 현존에 한계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강한 팔과 능한 손을 가지고 오른손을 높이 드셨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깊은 곳에서 당신이 기뻐하는 모든 일을 행하신다.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모든 일이 가능하다. 하나님이 뜻하는 모든 일은 그와 함께 현실이 된다”

그러나 Wesley는 하나님의 주권(God's sovereignty)과 거룩하심(Holiness)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성서적으로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은 그분의 거룩하심으로 보았고, 거룩하심이 전능하심보다 앞선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The Unity of the Divine Being』 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거룩하심은 전능하고 전지 하신 하나님의 또 다른 속성이다. 그분은 악이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무한한 거리에 계신다. 그분은 ‘빛이시고, 그래서 그분 안에 어둠이 있을 수 없다’ 그분은 한 점 흠 없는 정의와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출애굽기 33장 17-23절과 34장 5-7절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의지로 행동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면서, 자신의 통치를 축소하지 않으신다.  실제로 Wesley는 하나님의 통치를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랑과 믿음과 소망 안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에게 응답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위대한 성취로 해석하였다.  확실히 인간 편에서 볼 때 의지의 능력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God's Reign)를 확인하는 것이 하나님이 스스로 거룩한 능력을 제한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Wesley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보다 인간의 주도권을 주장한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와 반펠라기우스주의(Semi Pelagianism)에 반대하는 Calvin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사실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를 둘러싼 기독교의 논쟁은 Wesley와 Calvin 이전부터 오랫동안 지속된 논쟁이었다.  그러나 논쟁에 기름을 부은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특별히 바울이 강하게 부정했던 인간의 선행과 공로로 구원을 말하는 모든 종류의 펠라기우스적 입장에 대한 Augustine의 정죄를 다시 소개하면서부터였다.  불행하게도 Calvin과 Augustine처럼 둘 중의 하나를 택하는 방식으로 논쟁을 전개하였다.  즉 인간의 공로로 구원을 얻듣지(Pelagianism), 공로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듣지(Augustinianism) 둘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논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교회사에서 일어났던 두 가지 관점 이상의 지평을 가지고 있었다.  Augustine이 펠라기우스주의처럼 선행으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던 반펠라기우스주의자를 반박하며 주장한 것 같이, 반대쪽에는 반(半) 어거스틴주의(Anti Augustinianism)라는 부를 수 있는 입장도 있었다.  교회사에서 반어거스틴주의는 어거스틴주의(Augustinianism)를 대체하였고, Luther와 Calvin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오늘까지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반어거스틴주의는 Catholic Church, Orthodox Church, Anglican Church에 주로 수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하나님의 예정론(Predestination)에 대한 정통 어거스틴주의 입장과 대립하면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켰다.  반어거스틴주의 관점을 보여준 대표적 인물들로 Caesarius of Arles, Thomas Aquinas,  Desiderius Erasmus를 들 수 있고, Calvin 이전에 살았던 많은 이들이 그러한 입장을 자기고 있었다.  반어거스틴주의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인간의 구원을 주도하고, 지속하고, 성취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라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과의 화해를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거인지 선택해야 한다.

Wesley는 자신이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자유를 함께 강조한 영국교회(Anglican Church)의 신학 전통에 충실하게 서 있다고 인식하였다.  만일 그가 Calvin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그가 자라고 교육과 안수를 받아 충실하게 봉사했던 성공회 전통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Wesley가 당대 Calvinist들의 견해에 공감하지 못한 점들이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Wesley는 Augustine과 Calvin으로 이어지는 개신교회 전통보다 Catholic Church와 성공회 정통(Anglican tradition)이 성경의 가르침을 보다 충실하게 반영한다고 확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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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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