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고전이 된 『Quiet Talks on Prayer』에서 S.D. Gordon은 “실제적인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향력을 끼치거나 그분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과 그의 졸개인 악의 세력들에 대항하여 주님과 함께 그분의 능력에 참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사실 귀신들과의 영적싸움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는 하나님께 참여함으로써 사단과 귀신들을 무찌르는 것이지만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는 사악한 영들을 무찌를 아무런 힘과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4:6).  솔직히 오늘날 목회자와 신자들이 세상과 거룩하게 구별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며 산다고는 하지만(고후 2:15), 천국에 갈 때까지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용서받은 죄인들이고(요일 1:8-10), 누군가가 마음을 상하게 하면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이 말한 것 같이 우리 안에 있는 “짐승 한 마리”의 정체가 들어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이길 만한 힘도 없고( 4:23), 특히 귀신들과의 영적전쟁에서는 제자들처럼 묵사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9:14-29).  쉽게 말하면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성경구절을 줄줄이 인용하여 귀신들의 세력을 대적하지만 그것을 이길만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때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는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많은데( 4:18-19), 문제는 성경 말씀만을 강조하는 사역자들이 언제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는지 그것도 의문이고 만약 그들이 선포하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이라면 초대교회 제자들이나( 3:1-10), 평신도 빌립 집사처럼( 8:4-13), 아니면 사도바울과 같이 성령의 능력과(고전 2:4),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5:39), 복음을 통해 타락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면( 1:16), 그 말씀을 통해 영혼뿐 아니라 백부장의 하인을 고친 것과( 8:8), 귀신들의 세력에서 놓여남을 받는 것과 같이( 8:16), 육체도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요삼 2).  그래서 예수님의 지상사역에서 영혼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2:5), 혈루증 걸린 여인처럼( 9:21), 육체의 질병과( 1:32-34), 마귀에게 눌려( 10:38),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원시켜 주신 것입니다( 8:36).  이렇듯 우리 사역의 모델은 예수님이기에 그분의 삶에서 말씀과 성령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11:4-5, 1:21-27),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가 서로 조화를 이룬 것처럼( 28:18, 11:29), 제자들의 삶과 사역에서 마찬가지로( 4:29-30), 현재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을(고전 12:4-11), 등한시 하고 말씀만을 강조하는 것은 균형 잡히지 않는 목회 사역이라고 볼 수 있고 사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일하신 직접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고 실제로 바울 서신에 맨 처음 등장하는 성령에 대한 언급도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된 것은 단지 바울이 복음을 증거 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 복음 증거에는 성령이 능력으로 함께 하셨고 이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그 복음을 듣는 모든 이에게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살전 1:5).  또한 고린도전서 24절에서도 바울은 자신이 증거한 설교 내용에(고전 1:18-25), 설득력 있는 지혜와 수사는 없으나 그럼에도 그 증거가 지혜나 수사보다 훨씬 더 효력이 있었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로마서1518절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복음 증거가 ‘말’로만이 아닌 ‘행위’로 이루어 진 것이며 이 두 가지는 모두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기적적인 것들이 복음 증거에 뒤따르지 않거나( 16:20), 둘 중 어느 하나만 있어도 된다는 식의 ‘양자택일’로 생각하는 것은 바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이 두 가지 능력이 그에게는 당연히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1:29).

 

영적전투에서 선구자 중 한 사람이었던 Dick Bernal은 “하늘의 악의 영들을 다루는데 있어 그 정체를 밝히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아무리 입으로는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우리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고( 4:13), 성공적으로 마귀를 대적하려면( 6:11), 반드시 행해야 할 요소들이 있습니다.  먼저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과 그분을 가까이 하는 것, 그리고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4:7-8).  물론 이 효과적인 영적싸움을 수행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진리의 말씀과 개인적인 기도도 중요하지만( 6:14-17),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더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함인데(벧전 1:15-16), 여기서 말하는 거룩함이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원하는 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이 원하시는 바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요일 2:3).  사실 사역을 행하기에 앞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거룩함을 얻기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만 만약 거룩함이 없이 귀신들과 영적싸움을 치르게 된다면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처럼 벌거벗고 뛰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 19:13-16), 기도하지 않은 제자들처럼 소리만 지르다가 끝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9:17-19, 28-29).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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