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ley의 입장은 확고했다.   Calvin이 하나님을 궁극적으로 죄에 대하여 책임 있는 분으로 만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Calvin은 주야장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예정된 원리’ (determinative principle)라고 일관되게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기독교강요』 나오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의지는 만사의 원인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의 모든 계획과 일에 대한 결정적 원리로 삼는다. 하나님의 섭리는 성령의 지배를 받는 선택자에게서 그 힘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또한 유기자(reprobate)를 복종케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조금 섬뜩하게 성경을 해석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빛과 어두움을 지으시고 평안과 환난을 지으신다고 말씀하신다(사 45:7). 그리고 자신이 시키지 아니하시면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암 3:6). 그러나 모세가 가르친 대로 우연히 자루에서 빠진 도끼에 맞아 죽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시킨 대로 되어진 것이었다(신 19:5)”.  이 난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조금 더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그런데 도끼에 맞아 죽은 사람이 세상적으로 보면 재수 없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Calvin은 도끼를 휘두르다가 도끼머리로 맞아 죽은 사람도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Calvin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2004년도 일어난 Indian Ocean Tsunami 역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서 일어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공중에 나는 새도 하나님의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마 10:29).  참새는 시장에서 팔리는 가장 싼 종류의 새다.  세상에서 큰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참새에게까지 관심을 갖고 계시기에 하나님의 동의가 없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참새에게까지 이 정도로 관심을 갖고 계신다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이 귀한 것(마 10:31)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인도양 쓰나미 희생자는 3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보다 죄가 더 많아 죽은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누구든지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멸망당한다는 것이다(눅 13:4-5).

최근의 실례를 들어보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 이루어진 것인가?  Calvin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것 같다.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탄과 모든 불경자들은 하나님의 지배와 주권하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어떠한 목적에도 저들의 악을 지도해 나아 가신다. ….저들은 그런 일은 오직 하나님의 ‘허용’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속임수로 그 난점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명백한 말씀으로 자신이 그 일을 하신다고 주장하심으로써 그러한 핑계를 거절하신다. …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시고 자신의 은밀한 지시에 따라 결정하신 것 이외에도 저들이 무슨 일을 결정해도 인간으로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명백한 증거들이 입증해 주고 있다”  여기서 ‘허용’이 아니라 ‘의지’라는 말과 ‘작정’이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한다.

그러면서 시편 115편 3절 말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이 시편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전쟁과 평화의 참된 조정자라고 한다면 그리고 여기에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면, 누가 감히 인간은 하나님 모르게 혹은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는 동안 맹목적 충동에 따라 닥치는 대로 행동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만 불경자들이 전쟁의 자극을 받는다”(습 2:1-3 참조).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주권자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직접 진두지휘 하신다는 것이다(렘 33:2).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겠는가?(삼상 2:6-7). 

여기서 궁금한 것은 모든 사건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은 죄와 상관이 없으신 분이신가 하는 것이다.  『기독교강요』에서 나온 Calvin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압살롬은 근친상간으로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히는 추악한 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자신의 처사라고 말씀하셨다. 곧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에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삼하 12:12).  예레미야는 갈대아 사람들이 유대에서 행한 잔인한 살육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고 말하였다(렘 1:15-16, 7:14, 50:25-27).  이러한 이유로 느브갓네살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려졌다(렘 25:9). … 또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무너짐은 하나님 자신이 하신 일이라고 하셨다(사 28:21).  …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여(삼하 16:10)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내버려 두라’(삼하 16:10-11)”. 

그러면서 이런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에서 발생하는 사건마다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  … 성경을 적절하게 배운 사람이라면 내가 많은 증거들 가운데서 다만 몇 개의 증거만을 제시한 것이 바로 간결을 도모한 때문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몇 개의 예증만으로도 하나님의 섭리의 자리에 단순한 허용이라는 것을 대치시키는 자들이 얼마나 불합리하게 지껄이고 있는가를 매우 명백하게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은 망대에 앉아서 우발적인 사건들을 기다리고 있는 분이시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결정은 인간 의지에 좌우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누구든지 허용’이고, ‘나발’(삼상 25:25)이고, 불합리하게 지껄인다면, 그것이 바로 ‘개소리’라는 것이 Calvin의 입장이었다. 

Calvin의 글을 읽어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작정(Decrees of God)과 예정(predestinate)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Calvin이 주장하는 것은 허용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이 그 일을 행하셨다는 것이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라면 Jerome Hermes Bolsec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을 죄에 대하여 책임 있는 분으로 만든 것 말이다.  오늘날도 누군가 Calvin이 하나님을 죄의 원인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면 이단으로 찍힐 수 있는가?  Harry Frankfurt 교수의 말대로 ‘ 개풀 뜯어먹는 소리’다.  나는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은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신다’(욥 34:10)라고 성경은 말한다.  바울 역시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고 주장한다(롬 9:14).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냥 속 편하게 시편 구절에 나와 있는 대로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 115:3), 또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엡 1:11)이라는 말씀을 믿고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 인권 후진국 한국처럼 ‘입틀막’ 해야 하는가?  논쟁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여기까지만 하겠다.  도끼에 맞아 죽은 사람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둘 중에 하나이다.  다른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부주의로 일어난 일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안에서 일어난 일인가?  선택과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Wesley는 Calvin의 예정론이 숙명론적(fatalistic)이라고 반대했다.  Calvin의 성경해석과 신학방법론, 즉 죄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모든 사건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신학적 논리에 하나도 동의하지 않았다.  Wesley는 하나님의 숨겨진 비밀을 확인하기 위해, 혹은 인간이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이미 성경과 교회사를  통해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신학적 설명을 잘 준비해 왔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와 예정은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여전히 신비(mystery)로 남아 있는 것으로 분명했다.  그러기 때문에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우리의 지식은 다른 교리적 문제들을 다루는 구절들에서 추론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 아는 것 같이 나대거나 관종처럼 때로는 하나님의  마지막 대변인인 것처럼 나팔을 불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Wesley는 인간이 전적인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가르쳤다(창 3장).  즉 인간의 원죄,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은 ‘원시적 오염’(original pollution)을 인정하였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게 만드는 죄성을 가지고 있으며(창 6:5),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으리이까’(행 16:30)라고 말한 빌립보 간수처럼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입장에 서 있었다(롬 3:23).  그러나 인간에게 죄에 대한 책임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Calvin과 의견이 엇갈렸다.  Wesley의 입장에서 보면 Calvin의 주장하는 신학적 논거들, 특별히 예정론은 성경적이지 않았다.  Wesley의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Calvin의 예정론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Calvin의 추종자들 보기에는 ‘야마’(山)가 도는 일이다.   

Wesley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서 어느 정도 인간에게 책임을 허용하고 또한 가능케 하신 것을 믿었다.  즉 인간은 타의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의적인 존재라고 강조했다.  이 은혜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응답하고(롬 8:14) 하나님의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엡 2:8)을 받아들일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막 16:16).  하지만 얼마든지 성령을 거스를 수도 있고(행 7:51),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칠 수 있다’(갈 3:3).  인간이 멸망을 당하는 것은 아담의 죄보다는 그들의 실제적인 죄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겔 18:30-32).  그러므로 인간의 죄성은 그들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 18:19-20), Calvin이 주장한 것처럼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 이미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작정과 예정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Wesley의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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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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