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

칼빈과 웨슬리 2024. 3. 10. 11:25

『What Love Is This?: Calvinism's Misrepresentation of God』의 저자 Dave Hunt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경 안에서 예정(predestination)과 선택(election)은 서로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는 동의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정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있을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답을 주지만 선택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개념 간에 미묘한 차이는 이것이다. 선택은 특정한 개인들을 선택하는 하나님의 행위인 반면 예정은 최종적 운명을 위해 그렇게 선택된 이들을 미리 선정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다. 이 두 단어가 의미상 매우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  요약하면 선택과 예정은 자기 개념 속에 서로 함축하고 있는 상호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Reformed 전통에서 ‘예정’은 상당히 폭이 넓은 단어로 사용된다.  이 용어는 수여자(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신자를 위한 ‘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과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는 완전히 구원에서 제외된 불신자를 위한 ‘유기’(reprobation)의 양면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선택과 유기의 대상이 모두 죄인이라는 것이다.  영생으로서의 ‘선택’은 하나님의 자비, 즉 죄인들이 행한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와 호의에 근거한다.  반면에 영원한 정죄로서의 ‘유기’는 하나님의 심판, 즉 죄인들이 행한 것에 근거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그리 쉽지 않다.  지난 2천 년간 학자들 사이에서 이 문제를 놓고 살벌하게 논쟁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Louis Berkhof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작정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이 선택이든 유기이든 간에 하나님 자신이 직접적으로 모두 일으키신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작정은 의심할 바 없이 세상에 죄가 개입되는 것을 확실하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거룩함으로 예정하시는 것처럼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죄로 예정하셨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죄의 조성자가 되실 수 없기 때문이다”

『Systematic Theology』에서 나오는 Berkhof의 말이 사실이라면 Calvin의 예정론을 비판하다 Geneva에서 추방된 Jerome Hermes Bolsec의 주장이 틀린 것 같지 않다.  그는 회중 앞에서 하나님을 죄의 원인으로 만들었다며 Calvin을 고소했던 사람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Calvinism 신학에서 타락 후 선택론(Infralapsarianism)과 타락 전 선택론(Supralapsarianism)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Calvin의 추종자들 보기에 이것이 좋은 전통이라고 자부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좋은 전통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중 예정’이 다른 신학적 입장에서 바라보면 성경적이지 않을뿐더러, 이 용어가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는 논쟁의 소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Reformed Theology에서만 가지고 있는 골치 아픈 전통이다.         

예정(predestination)이란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Calvinist 입장에서 예정의 근거 본문을 비스름하게 제시할 수 있는 구절들이 있다.  그것이 창세기 6장 8절, 12장 1절, 신명기 10장 15절, 14장 2절, 예레미야 1장 5절, 말라기 1장 2-3절이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는 정확하게 여섯 번 정도 나온다(행 4:28, 롬 8:29, 30, 고전 2:7, 엡 1:5, 11).  특별히 로마서와 에베소서에 사용된 경우에는 모두 사람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예정하다’로 번역된 동사는 헬라어의 ‘프로오리조’(proorizo)다.  전치사 ‘프로’는 ‘~전에’, 또는 ‘~앞에’라는 뜻이 있고, 동사 ‘오리조’는 ‘제한하다’ 또는 ‘결정하다’라는 뜻이 있다.  이 둘은 합쳐진 합성동사로 문자적인 의미는 ‘앞서 결정하다’, ‘미리 경계를 정하다’가 된다. 

영어로 ‘예정하다’(predestine)로 번역된 것은 ‘‘종국적인 운명을 결정하다’라는 뉘앙스(nuance)가 있지만 헬라어 원어에는 그 뜻이 담겨 있지 않다.  그럼에도 로마서와 에베소서에서는 영어의 뉘앙스가 담긴 의미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운명에 대한 미리 결정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접두사 ‘프로’(~전에)는 에베소서 1장 4절과 요한계시록 17장 8절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정이 일어난 시점이 창세전인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구원과 관련해서 예정은 영생을 주려는 특별한 목적에 따라 특정한 개인들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유기는 비택자들을 영원한 정죄에 처하도록 정하시는 것을 말한다.  

Calvin에게 있어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 of God)이란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그의 뜻에 따라 미리 정한 것을 예정(豫定)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예정론에 관한 교리를 설명할 때 Bernard와 Augustine, 그리고 Melanchthon의 글을 인용해서 설명했다.  이러한 신학자들이 예정을 주장하고 강조한 부분들을 인용해서, Calvin은 하나님의 주권을 핵심이 되는 조직 원리로 삼는 예정 교리를 완전히 체계화했다.  그러면서 『기독교강요』에서 말한 것처럼 예정의 교리를 반드시 성경에서만 찾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 주장은 Calvin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Calvin의 추종자들 역시 이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다. 

그러면 Wesley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그는 Calvin의 절대 예정론을 하나도 믿지 않았다.  Wesley는 『The Works of John Wesley』에서 주장한 것처럼 ‘조건적 예정’(conditional predestination)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Wesley가 말하는 조건적 예정은 예지(foreknowledge)를 기초로 한 예정이다.  즉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또 보시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음을 아시고 구원으로 예정하신다는 것이다(롬 8:29).  예정에 대한 Wesleyan의 핵심은 바로 예지의 역할이다.  그러면서 그는 『The Works of John Wesley』에서 말하기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이 질문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 모두 다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분명 Calvin과 Wesley는 성경이 가르치는 예정을 믿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예정된 명령의 성격과 범위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Calvin의 관점에서 보면 구원의 소유가 하나님의 작정(예정)의 토대에 의존한다고 본다.  즉 예정이 무조건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구원이 어떤 이들을 구원으로 선택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의 문제며, 무조건적인 선한 기쁨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이들이 아닌 이들을 선택하심에 있어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으신 것은 전혀 없다.   

반면에 Wesley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선택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선택의 능력에 달렸다고 본다.  즉 예정이 하나님의 예지에 기초함으로 조건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하나님은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조건을 제공하셨다.  하나님은 이 조건을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충족시키시는지에 대해 예지 하시고 이를 기초로 해서 선택하신다.  따라서 선택은 조건적이 되는 것이다.  Wesley의 신학이 잘못된 것인가?  Calvin의 ‘예정론’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둘 다 성경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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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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