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르사라는 말은 즐거움이란 뜻의 히브리어 <티르차>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 도시는 본래 에브라힘 산지 북쪽에 있던 가나안의 왕도였으나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시에 여호수아에게 정복당하였다(12:24).  그 후 분열 왕국 시대에 이르자 디르사는 오므리(Omri, B.C. 885-874) 왕이 사마리아로 환도(還都)할 때까지 잠시나마 북왕국의 수도가 되었다(왕상 16:23-24).  즉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 1(Jeroboam, B.C. 931-910)가 디르사에 거주한 이래(왕상 14:17) 엘라(Elah, B.C. 886-885), 시므리(Shimri, B.C. 885)와 같은 자가 이곳에서 즉위하였던 것이다(왕상 16:8-10).  

이러한 도시인 디르사의 정확한 위치에 대하여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나 대체적으로 요단 계곡으로 들어가는 Wadi Farah의 내리막 길목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길은 요단 강 동편에서 에브라힘으로 가는 길 중 제일 좋은 길이며 서쪽으로 연결되어 벳라간 사마리아, 도단 등을 지나 이스르엘 평지에 닿는다.  이 주변의 경치는 대단히 아름다운데 특히 디르사가 위치한 계곡은 석회석을 깍아 내고 거기에 좋은 흙을 덮은 것 같아 주변과는 독특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아가서에서도 언급되고 있어서 저자는 연인의 아름다움을 디르사에 비견(比肩)하였다(6:4).

한편 디르사의 역사는 비극적으로 끝나는데 성경에 나타난 그 개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므리가 엘리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므리를 왕으로 세운 후 디르사를 탈환하러 나섰다.  마침내 성이 함락되는 것을 본 시므리는 왕국에 불을 놓고 자살하였다.  그로부터 6년 후 오므리는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겼다(왕상 16:8-24).  이로 인해 디르사는 일개 지방으로 전락하고 점차 그 명성을 잃어 갔던 것 같다.  그런데 1946년부터 이곳에서의 발굴 작업을 진행하였던 도미니카 수도회의 신부 Pere de VauxSteve는 이곳에서 예루살렘에 버금가는 크기의 엣 도시 터를 발견하였다.  이처럼 디르사의 규모가 상당히 컸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북왕국의 수도라는 명성에 걸맞도록 개발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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