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급변하는 세계 정세 가운데 현대인들의 성 윤리관은 개방적인 쪽으로 치우쳐 가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성()에 대하여 도덕 지향적인 태도를 갖기 보다는 쾌락 지향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성의 상품화’ 라는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영화나 신문, 잡지, 소설, 그리고 안방을 점령하고 있는 TV의 내용들은 대부분 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상품을 팔기 위한 광고 역시 사람들의 성적 심리에 호소하고 그로부터 관심을 촉발하는 것들 일색이다.  더우기 놀라운 것은 이러한 풍조가 기독교인들의 의식 속에도 은영중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나간 세계 역사를 돌이켜 보자.  어느 사회이건 간에 그릇된 성 윤리에서 비롯된 성적 타락의 결과는 사회의 붕괴와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소돔 고모라의 멸망(19)과 로마 제국의 몰락이 극도의 사치와 성적 방탕의 결과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사회가 그릇된 성 풍조에 휩쓸리지 않도록 경성(警省)해야 한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본고는 성경이 가르치는 성 윤리를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올바른 성 윤리관이 어떠한 것인지를 재정립해 보려고 한다.

 

2. 성경적 가르침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면서 성경적 성 윤리관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 의연한 것이라고 부정해 버리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까닭은 그들이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성의 본질을 오해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러면 성경은 성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① 하나님께서는 성()에 관한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셨으며 사람들이 구속(救贖)의 기쁨과 아울러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셨다(참조, 9:9, 5:18-19, 3:29).  즉 성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많은 축복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② 이러한 의미에서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며 이로써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첫 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결합이란 정신적 결합 뿐만 아니라 육체적 결합까지도 의미하는데, 육체적 결합은 곧 성 관계 (sexual intercourse)를 뜻한다(2:18-25).

③ 따라서 사랑하는 부부간에는 자연히 보다 깊은 사랑의 감정을 체험하기 위한 성적 욕망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욕망 자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남녀간의 성적 욕망은 결혼에 의해서만 충족되어야 하며, 그 외의 방법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리는 범죄 행위가 된다는 점이다(참조, 18:6-23, 고전 7:2-5). 

④ 그러므로 성교(性交)는 단순히 쾌락만을 위한 유희거리가 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취급되어도 안 된다.  성경에서 성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 히브리어 <야다>안다’(know)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은 곧 두 남녀가 하나님의 창조 섭리 안에서 가장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⑤ 간음은 결혼 관계를 깨뜨리는 범죄 행위이다.  이것은 첫째,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선서한 신성한 계약을 위반하는 행위이며 둘째, 비정상적인 성교라는 점에서 죄이다(참조, 19:3-9).  여기서 비정상적인 성교라는 말은 타인과의 불법적인 성 행위, 즉 혼외(婚外)의 성 관계나 상대편의 인격을 무시하고 행하는 성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부부간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의 인격과 요구를 무시한 일방적인 성 행위는 옳지 않는 것이다.   

⑥ 한편 음행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제누트>인데창녀 같은 행위를 한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헬라어로는 <포르노스>, <포르네이아> 등이 있는데, 모두 더럽고 저질스러운 성 행위를 의미한다.  오늘날 무단으로 방영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포르노 비디오 (porn video)도 바로 이 같은 말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⑦ 이러한 뜻을 지니고 있는 음행이라는 말은 본래 남자와 창녀 간의 성 행위를 가리키고 있다(참조, 5:32, 15:20, 2:21).  특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음행에 대하여 경고하였는데, 그 음행이란 자식이 아버지의 아내 즉 어머니(계모로 추측됨)와 성 관계를 가졌던 것이다(고전 5:1).

⑧ 이상과 같은 가르침을 좇아 사람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순결한 생활을 하여야 하는데 특별히 성도들은 이러한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 하기오스)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따라 살도록 부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고전 1:2).  이러한 성도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권면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살전 4:3-6).   

⑨ 위에서 살펴 본 것에 덧붙일 점은 음행한 연고가 아닌 기타의 연고로 인한 이혼이나 동성 연애와 같은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는 범죄 행위로 간주되며 어떠한 사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참조, 24:1, 5:32, 19:3).  이혼과 동성 연애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물의와 부작용을 초래하게 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에서도 이혼을 승인하기에 앞서 화해를 종용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동성 연애 행위를 제재하고 있는 것이다. 

 

3. 결론

멸망 직전의 로마 사회에서는 순결 자체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이혼이란 제도마저도 쓸모가 없었다.  William BarclayDemosthenes(B.C. 384-322)의 말을 인용하여 당시 로마의 사회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우리는 쾌락을 위하여 창녀들을 가지고 있으며, 몸을 돌보기 위하여 가정부를 가지고 있으며, 집을 충실히 관리하기 위하여 아내를 소유하고 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남편이 아내와 가족들을 부양하는 일에 성실할 것 같으면 다른 여자와 성 관계를 갖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행위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서구 사회가 바로 이 같은 로마 사회의 양상을 답습하고 있으며 우리의 사회까지도 침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를 우려하여 사회 일각에서는 청소년들에 대한 성 교육 실시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지금까지 교회는 강단에서 성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꺼려 왔다.  그러나 이는 마땅히 지양해야 할 자세로서 교회는 뭇 사람들에게 성경에 입각한 올바른 성 윤리관를 제시해 주어야 하는 사명도 지니고 있다.  외설스러운 잡지나 그릇된 서적 등을 통하여 배우는 성 지식 및 윤리관은 오히려 개인의 앞날을 그르치며 사회의 장래를 어둡게 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회내에서도 한시바삐 성경적인 성 교육을 실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성 윤리의 붕괴는 사회 붕괴의 전조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짓는 것’(고전 6:18)이라는 말씀도 잊지 말자.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것으로 더 이상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여야 할 것이다(고전 6:19-20).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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