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사악함을 깨닫고 겸손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다음과 같은 사실을 묵상하라.

 

하나님의 탁월한 위엄을 묵상하라

하나님의 탁월한 위엄을 묵상하면서 그것에 비해 너무나 동떨어진 당신의 초라한 모습을 생각하라.  이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자신의 사악함을 깨닫고 되고 속에 거하는 죄의 뿌리를 잘라낼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탁월하심을 마침내 목도하게 되었을 때 수치심 속에서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42:5-6).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중에 깨달았던 하박국 선지자는 어떠했는가?  하박국 316절을 보라.

성경은 사람의 비천한 상태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과 비교하여 이 땅의 인간들을 메뚜기’, ‘헛된 것또는 띠끌로 비유했다(40:13-15).  마음의 교만을 제거하고 영혼을 겸손케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천함을 많이 생각하라.  죄의 속임수에 항거할 때 이와 같은 생각만큼 큰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위대함을 깊이 묵상하라.   

 

자신의 지식이 미천함을 묵상하라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지식이 미천하다는 사실을 많이 생각하라.  비록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할 정도의 지식은 있다고 할지라고 그분에 대한 당신의 지식을 정말로 초라한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와 같은 성찰을 통해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30:2-4).  이와 같은 성찰을 함으로써 교만한 마음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라.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정말로 당신의 지식을 빈약하기 짝이 없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위엄을 계속적으로 경외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가장 최고의 업적을 성취하며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교제를 나눈 위인들일지라도 그들이 세상에서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매우 보잘것 없었음을 숙고하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셨고, 언약을 통해 자신의 가장 영광스러운 속성들을 계시하였다.  그럼에도 모세가 본 것은 모두 하나님의 뒷 모습에 불과했다(34:5-6).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모세의 지식은 그분의 온전한 영광과 비교하면 매우 미소한 것이다.  우리가 하루 종일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그분과 그분의 일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로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적다.  그분에 대해 우리의 생각과 묵상 그리고 표현들은 천박해서 그분의 온전함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그분의 영광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바울은 율법의 영광에 비교해서 복음의 빛의 영광을 높이 칭송하고, 지금 어두움을 일으켰던 수건이 사라져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수건 벗은 얼굴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거울을 보는 것 같이그분을 본다고 말했다(고후 3:18).  거울을 보는 것 같이 본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온전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본다는 뜻인가?  분명히 그것은 아니다.  바울은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여기서 거울은 우리가 멀리 있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망원경이 아니다.  이 거울은 사물을 뚜렸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 없다.

그러므로 이 거울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물에 대해 여전히 부족한 지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높은 업적을 쌓아 스스로 자부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그분의 무한한 온전하심에 비해 비추어 보면 정말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장 정확한 개념들 조차도 대부분 매우 불안전한 것이다.  그럼에도 고난 중에 우리가 힘을 얻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이다라는 약속의 말씀 때문이다(요일 3:2).     

 

하나님의 무한하신 속성을 묵상하라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리지어다’(딤전 6:16).  하나님께 접근하여 그분을 볼 수 있는 피조물은 아무도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둠이 조금도 없는 하나님의 빛은 피조물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다.  빛나는 태양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너무나도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무한한 광명의 빛을 볼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연유에서 잠언의 지혜자는 자신을 짐승이라고 고백했고 자신에게 사람의 총명이 없음을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일반 사물에 대한 표현 방식대로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개념을 형상화한다면 결국 우상을 만드는 꼴이 되어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기보다 우리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숭배하는 셈이 된다.  마음속에서 우리의 이해에 걸맞는 존재로 하나님을 형상화 하는 것은 나무와 돌로 하나님을 맏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할 때 최선책은 그분의 존재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생각도 가질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들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 광대하심, 무한하심 그리고 그분의 영원성에 대해 토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말과 개념들을 가지고 이야기할 뿐이며 우리가 실제로 그것들을 아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것을 이해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의 마음은 무한한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이해력이 너무나 조잡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온전한 지혜의 모습이다.

같은 본질 속에서 세 개의 다른 인격이 존재하는 삼위일체교리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진리는 아무도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인해 왔던 신비였다.  실로 그말 하나하나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이다.  성자 하나님의 나심(generation), 성령의 나오심(procession) 그리고 그 둘 간의 차이를 누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 말인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방식은 그분의 존재 상태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행위를 통해서이다.  즉 그분의 본질적인 선하신 속성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행하신 선하심을 통해서 그분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식도 욥이 말한 것처럼 매우 보잘 것이 없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라

하나님과 그분의 경륜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뿐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그분을 알고 그분에게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믿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  믿음은 우리가 믿는 바를 잘못 형상화하고 표현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이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11:1).  우리의 믿음은 전도를 통해 우리가 보지 못한 주님을 증거받을 때 일어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믿음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되고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믿음은 주님에 대한 증거의 말씀을 통해 생겨난다. 

하나님이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알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며, 믿고 순종하면서, 죄를 용서하는 창조자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영광과 존귀를 돌리도록 하는 데에 있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지식만큼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으로 철저하게 변화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은사들을 제대로 사용했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신뢰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말씀과 성령을 통해 자신에 속한 영혼들에게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모든 필요한 방법을 동원해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가르치신다.  그리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품안으로 인도하고 나중에 천국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영원까지 살 수 있게 하신다.  하지만 여전히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다.  그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매우 적다.  우리는 그분의 뒷 모습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복음의 계시는 단순히 믿음, 사랑, 순종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은총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계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계시의 목적은 유혹 가운데 있는 가련한 인생들에게 합당한 믿음과 사역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지식을 보여주는 데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에서 영원히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할 때는 하나님이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을 보여주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그 모든 것들은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이다.   

둘째, 우리의 마음은 우둔하고 더뎌서 계시된 말씀 안에 있는 실체들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드시고, 그분의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 영혼들에게 이 세상에서 모든 지식을 깨닫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복음의 계시 방법이 명확하고 분명하지만 그 계시를 통해 갖는 우리의 지식은 매우 연약할 수 밖에 없다. 

확실히 하나님의 형용할 수 없는 위대하심과 그분과 우리 사이에 있는 엄청난 괴리감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그분에 대해 거룩하고 두려운 경외심으로 채워져 모든 정욕과 맞서 싸울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무소부재하심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을 항상 잃지 말라.  또한 하나님을 묵상하라.  실로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당신의 비천함을 알고 당신의 천성이 그분의 본질적인 영광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왜소하다는 사실을 항상 자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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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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