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수난'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9.06.11 제자들은 끝까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는가?
  2. 2019.06.08 왜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셨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가?
  3. 2019.05.23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의미를 알고 있었는가?
  4. 2019.05.17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범한 죄인이었는가?
  5. 2019.05.09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수난도 죄에 대한 형벌이라 할 수 있는가?
  6. 2019.04.17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것인가?
  7. 2019.04.10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범죄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분이 아닌가?
  8. 2019.04.02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도 시험을 받고 고난 당하실 수 있는가?
  9. 2019.03.26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수난을 면하게 하실 수는 없었는가?
  10. 2019.03.19 그리스도께서는 자발적으로 수난을 받으셨는가?
  11. 2019.03.12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일반사람보다 더 고난당한 것은 무엇인가?
  12. 2019.03.05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어떤 유형의 것이었는가?
  13. 2019.02.26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의 유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14. 2019.02.19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영적 고난이 성도들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15. 2019.02.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적, 정신적 고난 외에 영적 고난도 당하셨는가?
  16. 2019.01.29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고난이 주는 유익한 점이 있었는가?
  17. 2019.01.22 예수님께서 당하신 정신적 고난은 어떤 것들이었는가?
  18. 2019.01.15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육체적 고난은 어떤 것들이었는가?
  19. 2019.01.08 예수 그리스도는 얼마 동안 수난을 당하셨는가?
  20. 2018.10.16 그리스도는 왜 수난을 당하셔야 하는가?
  21. 2018.10.09 낮아지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세 번째 사역은 무엇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으로 충만케 된 후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신 까닭에 대해 확실한 이해를 가졌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박해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고 동참하였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고난 당하는 그 당시에는 그 고난의 동기나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성령을 받은 후 그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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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메시야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따랐지만 그들이 기대한 메시야는 고난을 받으며 무기력하게 죽는 메시야가 아니라 원수를 물리치고, 이 땅에 다윗 왕국을 능가하는 나라를 건설할 정치적 승리의 메시야 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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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18:34).  베드로는 이를 만류하다 책망을 들었고(16:22-23), 요한과 야고보 등은 십자가 고난을 예고하는 말을 듣고서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었습니다(20:21, 24).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체포되자 제자들은 모두 달아나 버렸습니다(14:50).  그것은 비겁한 도주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신앙의 미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실적으로 위협에 직면하여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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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율법관을 가졌던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율법을 범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규례를 어기고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10:10, 13).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거역하는 행위로 보였습니다(7:23).  또한 예수님은 모세의 권위보다 자신의 권위를 우위에 두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여호와로부터 율법을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면서 대대로 지키도록 명령했습니다(6:1-3, 28).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었으나,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를 모세 위에 둠으로써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을 모독하는 자로 보였습니다(5:17-18, 6:14).  더 나아가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자신을 동등시 하는 예수님의 주장을 하나님께 대한 모독으로 생각했습니다(10:23).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주를 모독한 자를 돌로 쳐 죽이라는 율법에 따라(24:16),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10:30-31).  이상의 이유로 유대인들은 예수가 율법을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 주님을 대적한 사울의 태도를 통하여(8:1, 26:9-11), 당시 유대인들의 감정의 일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님은 율법을 범하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을 모독하지도 않았습니다.  왜곡된 율법관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유대인보다, 예수님이 옳았다는 것은 부활을 통하여 증거되었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무죄에 대한 증거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의 증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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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받듯이 죄에 대한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그리스도는 개인적으로 범죄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죄 없이 출생하였고 일생 동안 악행을 한 일도 없습니다(4:1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자신의 죄 값으로는 형벌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죄인으로서 받을 형벌을 대신 받은 것이었습니다(갈 3:13).  이처럼 그리스도는 자기의 죄 없이 형벌을 받는 유일한 사람이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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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이 세상에서 수난을 받으셨으며,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진노는 증오나 살의를 품는 것과 같은 보복적 성격의 분노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반응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결코 죄를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수난도 바로 죄의 결과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속에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인간의 죄를 전가시키시고, 그 죄에 대하여 진노하셨으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고 만유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근본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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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셨기 때문( 1:1)에 범죄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사람이신 그리스도(2:6), 역시 범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가능성은 보통 사람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인간은 이미 범죄한 자로서 그 육신은 죄의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7:20-23).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므로(4:15),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를 하기 이전의 아담의 경우처럼 추상적인 가능성만을 가지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Abraham Kuyper).  또한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자연적 본능과 생리적인 욕구를 가지고 계셨다는 사실도 범죄할 가능성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Geerhardus Vos).  예를 들어 그는 40일을 금식하신 후 몹시 배가 고프셨고 강한 식욕을 느꼈습니다(4:1-4).  사탄이 이것을 이용하여 시험한데에서도 예수님에게도 범죄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범죄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면 주님의 생애 가운데 나타나는 시험과 순종 그리고 의로운 행동 같은 일들은 전혀 무의미해지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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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없더라도 시험을 받고 고난당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 이전에 죄를 지은 적이 없었지만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는 시험을 받았습니다(3:1-13).  그리고 욥의 경우도 직접적으로는 죄와 관계 없이 모진 고난을 당했습니다(1).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전혀 죄가 없는 분이지만(4:15), 사탄은 그를 넘어뜨리려고 시험을 했으며(4:1-11), 사탄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로 인하여 전생애를 통하여 고난을 당했습니다(8).  예수께서 이런 시험과 고난을 당하신 것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과 동일하게 되셨기 때문입니다(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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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 동시에 거룩하고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비록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공평과 정의로 판단하십니다.  따라서 죄를 지은 사람은 누구든지 벌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고, 죄를 지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인간을 사랑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죽도록 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했기 때문에 죄의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그리스도로 하여금 담당케 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담당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취소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지켜지면서 동시에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의 죽음 외에 다른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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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어떤 사람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우리 인간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고난을 당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의지로 십자가를 지고 생명을 버리는 것이라고 명백히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10: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결단은 예수의 독단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성경에 기록된대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결단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무리들을 제지하려는 제자들에게 지금 당장이라도 천사를 동원하여 막을 수 있다고 언급하신 후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라고 말했습니다(26:54-56).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고, 성부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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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예수는 바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구속사역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사탄은 모든 성도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예수께서 자신을 멸하기 위하여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대적하였습니다(요일 3:8, 1:24).  마귀는 예수께서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배후에서 역사했습니다(22:3, 53).  또한 예수는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제사장을 비롯한 당시 종교 기득권자들과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야 할 위치에 있었지만 자신들의 이익과 편견에 빠져 오히려 그리스도를 비난하며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 했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십자가에서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 당국은 국가에 대한 반란자나 극악 무도한 범법자에 한하여 십자가에 달아 처형했습니다.  예수를 죽일 죄만 찾던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예수의 주장은 로마에 반역하는 것이라고 몰아세워 십자가 형에 처하도록 시위를 벌였습니다(15:1-2).  이상과 같이 우리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였기 때문에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보통 사람보다 더 고난을 당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의 환대를 받아야 마땅했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고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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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바로 네번째 유형에 속하는 의를 위해 받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할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4:15).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이 땅에 오셔서 멸시와 고난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한 것처럼 예수께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항을 배웠기 때문에(5:7-8), 세번째 유형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원하여 고난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의로운 고난으로 인하여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같이 복음과 정의를 위하여 고난당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뒤따르는 자입니다.  그리스도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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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들이 겪는 고난을 그 원인을 토대로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을 받습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인과응보(因果應報 )사상과 통하는 것으로 형벌의 성격이 강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구약성경 욥기에 등장하는 욥의 친구들의 일관된 견해이기도 합니다(4:7, 8:4, 11:6).  둘째로 징계로 받는 고난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으로 하여금 교만한 마음과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주를 찾도록 만들며 의롭게 살려는 마음을 갖도록 만듭니다(벧전 4:1-2, 12-13).  형벌이라기 보다는 바른 길로 가도록 하기 위한 사랑의 매라는 의미에서 첫번째와 다릅니다.  셋째로 영혼을 순결하게 하고 강하게 하기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죄와 상관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믿음을 세워주기 위한 수단으로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4:2-6).  이 경우 고난을 받는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게 되지만 대개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게 됩니다.  넷째로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고난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나 정의를 위하여 무고하게 당하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고난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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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철저하게 영적 시험과 고난을 당하셨으나, 그것을 완전히 이김으로 주님을 믿는 성도들로 하여금 영적 시험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즉 주님의 영적 고난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사탄의 종노릇하며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 덕분에 영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의 시험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그리스도인들을 육신에 속한 영광을 추구하도록 유혹합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섬기는 대신 세상에서 돈 벌고 권세잡고 쾌락을 즐기는데 빠지도록 역사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시험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여기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잠간 동안 쾌락을 누릴지 모르나 결국은 고통과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탄의 계략입니다.  우리는 악하고 음란한 시대에 영적 고난을 극복하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세속의 물질주의와 쾌락에 시험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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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2:8)는 전인적인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당연히 영적 고난도 당하셨습니다.  오히려 원래 순수한 영이셨으며, 영적인 일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영적 고난은 육체적, 정신적 고난보다 훨씬 큰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신 것을 들 수 있습니다(4:1-11).  사단은 세상의 왕노릇하며 사람들을 속박하고 있는 자신을 멸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세상에 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16:11).  따라서 사단은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관심을 영적인 것으로부터 떠나게 하며 육신의 영광을 추구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말씀으로 사단의 유혹을 이겼습니다(4:1-13).  둘째로 예수님께서 마귀를 멸하고 마귀의 종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으나(2:14-15), 그는 오히려 마귀의 세력으로 매도되었습니다(12:22-27).  영적 진리에 눈이 먼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사탄의 권세를 쫓아내는 것을 목격하고도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12:28-37).  셋째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와의 단절을 겪으신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린 후 죽음 직전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이었고, 단순한 육체의 고통과 비교되지 않는 절망감이요 영의 죽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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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난을 통하여 순종하는 법을 몸에 익힐 수 있었습니다(5:8-9).  일반적으로 고통은 인간을 겸손케 하며 인생의 깊이를 더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역시 고난 중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였습니다(26:38-39).  또한 그리스도는 육체로 고통을 당하셨으므로 육체의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아품을 아시며 도움을 베풀어주십니다(2:18).  나아가 그리스도의 고난은 주를 따르는 성도들에게 본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8:17).  성도들의 인생이 언제나 평탄하고 형통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의롭게 살려는 사람일수록 핍박을 받고 고난을 겪을 가능성이 많습니다(7:13-14).  이런 경우 그리스도의 고난은 악과 타협하지 않고 주를 따를 수 있는 힘과 위로가 됩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도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벧전 4:12-14).  고난 그 자체는 결코 선하다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뜻을 위한 고난은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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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예수님은 가족을 비롯하여 고향 사람들과 다수의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불신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 큰 고통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을 믿지 않고 오히려 귀신들렸다고 비난하며 배척했습니다(6:3-4, 12:14, 24).  또한 예수님은 배반의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세속적인 부요함과 안정을 주는 메시야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여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6:67).  그는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배반을 당했습니다(22:47-48).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것은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근거없는 욕설과 모욕을 당하고 참아야 했습니다(22:63-65).  사람들은 그를 귀신들렸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다,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한다등의 말로써 조롱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가당치 않은 불신과 배반과 비난으로 예수님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남을 불신하는 것은 인격을 살해하는 것과도 같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것은 참담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허물 없이 이러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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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 자체가 고난이었습니다만 의식주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더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소유주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형편 없는 생활 환경에서 지내셨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다’(8:20)는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편안히 쉴 자기 소유의 방 한 칸도 없었습니다(9:58).  실제로 그는 입에 맞는 음식을 가려먹을 처지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선교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는 자원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의 도움 외에 그 어떠한 선교 후원금도 없었습니다.  그는 천국의 복음을 전하도록 여러 마을로 제자들을 내보낼 때 전도비나 식비를 제공하지 못했습니다(10:9-14).  또한 복음 사역의 고초를 들 수 있겠습니다.  에수님은 사역을 준비하기 위하여 사 십일을 금식하며 주렸습니다(4:2).  그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여러 고을을 하나하나 걸어다녀야 했습니다(1:38-39).  그는 피곤한 몸을 이겨가며 밤이 맞도록  어떤 때는 이른 새벽에 단잠을 깨고 기도생활을 했습니다(1:35).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 온갖 조롱과 멸시와 극한 육신의 고통을 당했습니다(27:39-44).   그는 채찍에 맞았고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은 가지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그만 가시에 찔리고도 고통을 느끼는 연약한 육신인데 그는 양손과 발에 큰 못이 박혔습니다.  이미 못이 박힌 한 손의 고통은 다른 손에 못이 내려칠 때 몇 배로 증가했을 것입니다.  그는 고통과 갈증 속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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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수난의 삶을 살았습니다.(마 2:13, 27:45-51).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출생하신 것 자체가 하나의 수난이었습니다(빌 2:8).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오시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누렸습니다(요 1:1-3).  그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된 자신의 위치를 버리고 종의 형상을 입고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기 때문에 출생 자체가 수난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의 수난은 점진적으로 더 했습니다.  그는 변변한 출산 준비도 없이 출생한 후 말구유에 뉘어졌습니다(2:7).  그는 강보에 싸인 채 헤롯의 살해 위협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2:13-15).  그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했고 사회적 신분으로도 존경받는 계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아닌 변두리 갈릴리에서 자랐습니다(2:39-40).  이러한 생활들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적합치 않는 비천한 것이었으며, 이런 생활을 통해 수난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수난은 복음 전파 사역이 진점됨에 따라 더 심해졌습니다.  백성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여 돌로 치려했습니다(8:59, 10:31).  유대인들은 귀신이 들렸다고 예수님을 비방 하였고(9:34),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몰아세웠습니다(9:3, 2:7).  그들은 마침내 예수님을 로마 정부의 반란자로 몰아 세워 결국 십자가에 죽게 만들었습니다(요 18:28-38).  이상과 같이 예수님은 아무 잘못이 없었으나 의를 위하여 수난을 당하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을 원망하거나 고난을 회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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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합니다(4:15, 요일 3:5).  각 사람의 죄가 고난의 이유라면 예수님은 고난 당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죽어 마땅하였으나(5:12),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예수님에게 담당케 하여 고난받고 죽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대신하여 받으신 것입니다(고전 15:3).  우리는 죄인으로서 고난받고 죽는 것이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대신 고난당하며 우리는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고 천국을 소망하는 가운데 살게 된 것입니다(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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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수난 받으심입니다.  즉 근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연약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이 낮아지심의 첫 번째 단계이고(2:6-8, 2:14), 율법의 제정자이셨으나(5:22, 28, 32), 율법에 복종하신 것이 낮아지심의 두 번째 단계이며(4:4), 이에 이어 무죄한 자이면서도(4:15), 수난까지 받으신 것이 낮아지심의 세 번째 단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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