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당시 나는 출석하던 교회의 믿음(?)이 좋은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령을 받으면 믿음생활을 하는데 있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좋다는 말만 들었지 왜 성령을 받아야만 하고 성령을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알지는 못했습니다.  얼마 후 다니던 교회에서 어느 성령이 충만한 사역자를 초청하여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광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경회 같은 말씀 집회가 먼저 끝나고 난 후 초청한 강사를 통해 성령받을 사람들은 교회 목사관으로 모이라는 말에 어떤 아는 분과 다른 사람들처럼 줄을 서서 초초한 마음으로 성령을 받기 위해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오랜 세월이 지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교회 안에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아무튼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씩 목사관에 들어가 기도를 받고 뒷문으로 나갔기 때문에 그들이 성령을 어떻게 받았는지, 또 성령을 받을 때 어떠한 느낌이나 일(현상)이 일어나는지 초신자인 나로서는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와서 안내하는 집사님을 따라 목사관으로 들어가 그 사역자를 통해 안수를 받게 되었는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머리에 손을 얻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두 눈을 지그시 짓누르는 것이엇습니다.

신앙이 초보인 나로서는 남들도 다 그렇게 받는 줄만을 알았고 무엇보다도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속된 말로 ‘눈깔 찌르는 안수’가 성경에 나오는 정상적인 안수인줄만 알았습니다.  사실 한 번도 안수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 시간이 호기심과 긴장감이 넘치는 시간이었지만 그가 선 상태가 아닌 드러누운 상태에서 눈에 티슈 한 장을 덮고 손가락으로 처음에는 서서히 나중에 조금씩 강도가 높아지더니 세게 눌러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빛이 보인다고 말하자 그 사역자가 그것이 ‘성령의 불’이라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교회 신자들이 그렇게 받기 원했던 성령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안수기도를 해주신 그 강사분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 눈은 너무 아팠지만 그래도 성령을 받았다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거울에 비추어진 내 눈을 보니 많이 충혈 되어 있었고 손으로  살짝 만지기만 해도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다음날 아침 호기심이 많은 나는 거울 앞에 서서 그 사역자가 하던 대로 내 눈을 손가락으로 처음에 지그시 나중에는 강하게 눌러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놀라운 빛, 그 사이비 사역자가 말한 가짜 성령의 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이상하게 누르면 누를수록 눈은 아팠지만 그 빛은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오늘날 성령 받은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에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제각기 가지고 있는 신앙관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먼저 ‘방언’을 강조하는 사람은 방언을 해야 만이 성령 받은 것으로 주장하면서 오순절날 성령이 임할 때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한 것을 성경적으로 제시합니다(행 2:4).  또한 하나님 앞에서 떤다는 뜻을 가진 퀘이커 교도들처럼 ‘몸에 진동’을 느끼거나 떠는 사람, 혹은 기도를 받고 쓰러져 ‘성령 안에 안식’ 하는 것을 통해 성령을 받으면 몸에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말하기도 하고(겔 1:28, 단 10:7-10, 계 1:17), ‘환상’을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베드로가 성령받기 전에는 환상을 보지 못했지만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후에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 본 것을 내세우기도 합니다(행 10:9-16).  더 나아가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서 안수할 때 사람들이 성령 받은 것(행 8:14-17)과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제자들에게 안수할 때 그들이 성령 받은 것을 내세우면서(행 19:6), 만약 누군가 ‘불의 종’, ‘능력의 종’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은 사람은 이미 그를 통해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험상 이런 것들은 성령을 받은 절대적인 증거가 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오늘날 불건전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역사가 있어야만 성령이 역사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조용하고 세미한 음성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왕상 19:11-12).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는데(요 14:16),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이 오면(요 15:26),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는  것입니다(요 16:8).  따라서 성령 받은 첫 번째 증거는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 깨닫는 것’인데, 이것은 어두움 속에서는 바른 사물을 볼 수 없듯이 타락한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서운 죄인인줄을 전혀 모르고 방탕하며 살다가(롬 3:11-12), 하나님 아버지의 이끌림을 받고(요 6:44), 빛 되신 그분의 부르심을 통해(롬 8:30), 어느 날 예수님을 믿고 자신이 그분 앞에 죄인인 것을 깨닫고 애통해 한다면(마 5:4), 그는 이미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지만(갈 1:14),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그분 앞에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딤전 1:13).  그러나 다메섹에서 빛 되신 주님을 만난 후(행 9:3, 22:11, 26:13),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처럼(딤전 1:15), 성령은 죄로 병든 인간을 그리스도 앞에 세울 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간(엡 2:1)이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출 3:1-5, 사 6:1-5, 눅 5:8).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세리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Martin Luther가 말한 것처럼 날마다(마 6:12), 용서받은 죄인임을 깨닫게 되지만(눅 8:18:13),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롬 3:9-18).

성령 받은 두 번째 증거는 ‘의에 대하여 아는 것’으로(요 16:8),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지식적으로는 알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적으로 모를 수밖에 없고(요 5:39),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되심(마 11:27)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구원의 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요 1:29), 그분에  대해 올바른 신앙관을 가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성령 받은 후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 설교한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마 1:21), 대속의 죽음(히 9:12), 부활(막 16:6), 승천(행 1:11), 재림(마 25:31)과 심판(계 21:11-15)에 대해 확실히 알고 증거 했습니다(행 2:14-36).  사실 베드로는 세상적으로 배운 것은 없지만(행 4:13), 예수님에 대해서만큼은 ‘명약관화’하게 된 것처럼 성령을 받으면 세상지식에는 무지할지라도 그분에 대해서는 아는 지식이 생기고(빌 3:8), 성령을 받지 못하면 니고데모처럼 세상 교육은 많이 받아 해박할지라도 예수님에 대해 알 수는 없습니다(요 3:10).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 사죄의 확신을 갖게 되는데 바울은 성령 받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도 했지만 (딤전 1:15), 다른 한편으로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는 확신을 가지기도 했습니다(롬 8:31-39). 이렇듯 성령을 받으면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고(고후 13:5), 성령을 받지 못하면 구원의 확신이 생기지 않는데, 그것은 성령은 내 죄에 대해 ‘검사’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변호인’ 역할도 하기 때문입니다(롬 8:14-16).

성령 받은 마지막 증거는 ‘심판에 대하여 아는 것’으로(요 16:8), 요한복음에 보면 사탄을 세상 임금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14:30), 여기서 사탄의 역사는 두 가지로 외부적인 역사와 내부적인 역사로 나타납니다.  먼저 성령이 오시면 사탄은 외부적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주님은 성령의 사역을 대적하는 바리새인들과의 치열한 논쟁에서 사탄을 집 주인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마 12:24_29).  다시 말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고(막 2:17), 그 죄인이 사탄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인간을 구원하려면 먼저 집 주인이 되는 사탄을 결박해야 하는데(요일 3:8), 이러한 외부적인 사탄의 역사를 성령이 오심으로 심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눅 10:17-20).  그리고 내부적인 심판은 성령 받기 전의 내 마음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엡 2:2), 언제나 두려움과 공포 속에 떨면서 일평생 종노릇하는 가운데 살았지만(히 2:14-15),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행 2:38), 사탄이 쫓겨났기에 두려움과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평안(요 14:27)과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요 16:22).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갈 5:22-23)와 성령의 은사(고전 12장)와 상관없이 성령을 받으면 가장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진심으로 고백하고(눅 18:13-14),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며(행 4:12), 내 마음을 다스리는 분이 사탄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의심 없이 믿는다면 이미 그는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갈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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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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