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예언

예언사역자 2017. 6. 3. 12:18

처음 성령의 사역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할 때 가장 관심을 가지고 사모했던 은사(고전 14:1)는 ‘치유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였습니다(고전 12:9-10).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성령의 은사에 관한 서적들을 수백 권 이상을 탐독하며 책을 읽고 연구하는 가운데 내용들이 너무 추상적이고 마음으로 와 닿는 것이 없어, 읽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은사 집회를 참석하는 가운데 눈으로 보고 몸과 마음으로 섭렵하기를 원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예언의 은사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없었기에, 사실 서너 번 걸쳐 먼 곳은 비행기를 타고 가서 집회에 참석을 해보았고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10시간 이상을 운전하는 가운데 다양한 은사 집회들을 여러 번 참석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중 Global Awakening 사역자인 Randy Clark 집회와 아프리카 복음전도자인 Reinhard Bonnke가 강사로 참석한 선교 집회, 그리고 Dallas Seminary 구약학 교수였던 Jack Deere 목사의 세미나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이들의 균형 잡힌 사역이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성령의 사역자들, 물론 이들을 판단하실 분은 예수님이시지만(롬 14:4), 이들에게서는 복음에 관한 예수님의 증거보다는 ‘치유’와 ‘예언’, 그리고 은혜 받은 ‘간증’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열 명중 여덟 명은 복음보다는 표적과 기사에 많은 시간을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참된 예언’이란 예언 사역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계 19:10)는 말씀처럼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 바르게 쓰임을 받았던 성경에 기록된 예언사역자들은 언제나 모세와 같이 주님의 영광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출 33:18).  만약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떠한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그것이 스스로의 힘과 경건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기적을 통해 예수님만을 바라보도록 인도했습니다(행 3:12).  예를 들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마 11:13)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면서(막 1:2),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 끈조차 풀어드릴 수 없는 가장 하찮은 종으로 여기면서(막 1:7),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어야 하며(요 3:29), 오직 주님만을 높이는 가운데 자신을 일절 드러내려 하지 않았습니다(마 3:11).  세례 요한이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을 열렬히 추종하는 자들에게(마 3:5), 스스로의 한계를 분명히 주지시켰고, 사람들의 관심을 오직 예수님에게로 돌리게 하였습니다(요 3:26-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 요한 보다 더 큰 사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9-11). 이렇듯 세례 요한의 삶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에 온전히 받쳐진 반면에 오늘날 예언사역자들이 실수하는 것은 예수님을 증거 하기보다는 거창한 ‘예언’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볼 때,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예언과는 정반대가 되는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언사역자들이 저지르는 또 다른 실수 중에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또는 자신이 잘못을 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인데, 여기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오늘날 유명하다는 예언사역자들 중에 백 퍼센트 정확한 예언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 예언을 분별하라고 말한 것처럼(고전 14:29), 신약의 예언은 구약의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과 달리(출 9:1, 민 22:38, 신 18:19, 삼상 10:18, 겔 33:7), 얼마든지 실수하거나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일 4:1).  얼마 전 어떤 사람의 글을 읽다가 의구심이 생긴 적이 있었는데, 그의 글에 의하면 자신은 오랫동안 주님의 음성을 가려내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께서 말씀을 주시면 자신에게 주어진 예언을 진리의 말씀으로 검증하고 그 검증된 대언은 정확성에 있어 단 한 번도 틀려본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솔직히 이러한 궤변은 신약에서 말하는 예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물고 뜯고 싸울 수 있는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분명 성경은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고 말하는데(고전 13:9), 이 사람은 자신의 육적인 연약함과 죄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롬 7:17-25),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대부분이 예언사역 안에서 진정한 삶의 열매가 없거나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는 것입니다(마 7:15-23).


단언하건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음의 상처와 영적교만을 철저히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통로가 되지 않는다면 예언사역을 불명예스럽게 만들거나 그 다듬어지지 않는 예언을 통해 교회를 어지럽히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오래 전에 D. A. Carson은 구약 선지자가 참된 예언자로 인정되면(삼상 3:19), 그 예언의 내용에 대해서 점검하는 일은 없지만(민 22:38), 신약의 예언자는 그 예언의 내용을 조심스럽게 점검받아야 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살후 5:20-22), 만약 누군가 성령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 중에 자신만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일단은 요주의 인물로 경계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요일 4:1).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든지 아니면 메시지의 느낌을 받든지 간에 예언에는 불순물이 섞일 수 있는데(살전 5:20-22), 그 이유는 우리의 생각과 사상이 우리가 받은 메시지에 묻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예언사역자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을 하나님이 주시는 느낌으로 잘못을 범할 때가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신령한 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면 그 사람을 신뢰하지만, 만약 예언자가 실수를 한다면 자신이 예언한 것에 대해 신뢰성을 잃어버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쉽게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단’, ‘사이비’, ‘신비주의’, ‘교주’로 가는 첩경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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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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