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감리교 신학대학 변선환 교수와 총신대학 박아론 교수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변 교수는『월간목회』를 통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논박했습니다.  변 교수는 다시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입장을 고수하였지만 박 교수 역시 “기독교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재차 맞섰으나 더 이상 논쟁이 전개되지 않고 중단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D. Bonhoeffer의 영향을 받은 변 교수는 현대 그리스도인은 성숙한 인간으로서 전통적인 종교의식, 즉 예배와 기도와 각족 모임을 통해서는 진정한 신자가 될 수 없고, 타인을 위한 존재로 세상의 삶속에서 주님의 고난에 대한 참여가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한 반면에 박 교수는 기독교가 세상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지만 세속을 기독교와 동일시하는 세속교회, 또는 인류주의 교회관은 성경에 위배될 뿐 아니라 성경은 인류 대다수의 구원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예를 들어 구원을 어느 한 측면으로 보도하기 보다는 그 전 과정을 각 단계별로 나누어서 취해진 진술 방법을 ‘구원의 서정’이라고 부르는데, 물론 성경이 구원의 서정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해 역사적으로 다양한 견해들이 생겨났고, 그로 인해 가톨릭교회, 루터교회, 알미니안 교회, 심지어 장로교회 안에서도 학자들 간에 이 견해에 대해 다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단지 영혼구원뿐만 아니라(엡 2:8), 육체의 질병(마 9:21)과 귀신에게 놓여남을 받는(눅 8:36), 것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악, 즉 전쟁(출 15:2)과 고통(시 34:6)과 원수들(삼하 22:36), 그리고 포로(시 106:47)와 사망(시 6:4)과 죄(마 1:21)에서 하나님이 건져주시는 것으로 “구원은 총체적인 죄 문제에 대해 하나님이 내놓으신 확실한 해결책이고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 이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사역에 기초한 과거의 사건이며, 그것은 우리의 행위와는 전혀 관계없이(딛 3:5), 별도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우리가 예수 안에서 현재 경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으며(고후 5:17), 장래의 소망이라고 말합니다(벧후 4:13).  다시 말해 신자들은 이미 구원을 소유하고 체험하지만 동시에 장래의 완성을 대망하는데(빌 2:12),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롬 8:21).  이같이 바울은 구원을 과거와 현재와 종말, 즉 삼중적으로 보면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등 일련의 구속사건으로 이루어진 복음을(고전 15:1-4),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의하고(롬 1:16), 인간이 구원을 받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벧전 1:18-19), 믿음에 의해서라는 진리를 선언했는데(엡 2:8-10), 이것은 바울신학의 핵심일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진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구원의 근본조건이 믿음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구원론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가톨릭은 개신교와 달리 믿음으로 시작한 구원이(엡 2:8), ‘선행’으로 완성되어야 하며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증거로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확산으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세 번에 걸쳐 열렸던 트렌트 공의회에서 로마가톨릭교회는 ‘이신칭의’(以信稱義)라는 중요한 문제를 논의한 끝에 사람은 성화은총을 통해 내면적으로 칭의를 얻으며 값없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협력할 때만 선행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 믿음을 통해서만 구속함이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로마가톨릭주의를 대변하는 Ludwig Ott는 막연히 믿는 신앙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가톨릭교회의 가르치는 내용을 받아들이는 교리적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처럼 가톨릭의 입장은 칭의를 전가된 의가 아닌 주입된 의, 즉 사람의 내면을 성화시키고 새롭게 변화시킨 ‘의’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개신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제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의 상태에 근거해서가 아닌(딛 3:5),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근거해(롬 3:21-22),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한 것(롬 8:1)과 달리 단순히 죄사함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죄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개신교와 가톨릭교회 모두가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죄와 더불어 태어났음을 믿지만(롬 5:12),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문제에 대해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만을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믿는(롬 10:9-10), 반면에 가톨릭에서는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어떤 악한 생각이나 정욕(막 7:21-23), 또는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을 개신교와 가톨릭에서는 ‘본죄’(本罪), 혹은 ‘자범죄’(actual sin), 라고 말하는데, 가톨릭에서는 이 죄를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하나는 대죄(mortal sin), 다른 하나는 소죄(venial sin)라고 부릅니다.  먼저 ‘대죄’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는 은혜를 영혼으로부터 빼앗아 가는 죄로 구속의 은총을 잃게 하는 것으로 이유 없이 성일이나 주일미사에 빠지는 것, 술에 만취되는 것, 물건을 절도하는 것, 다른 종교서적을 읽는 것, 등을 말하고, ‘소죄’는 대죄처럼 심각한 죄가 아니며 영혼을 죽이지 않고 구속의 은총을 빼앗기지 않는 가벼운 죄로 험담이나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말, 과식하는 것, 싼 물건을 훔치는 것 등으로 이 소죄가 계속되면 대죄(大罪)/중죄(重罪)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가톨릭대사전에 의하면 인간은 ‘성세성사’(聖洗聖事)를 통하여 원죄와 본죄의 사함을 받으며 성세성사를 받은 이후 범한 죄는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도 가톨릭과 개신교의 핵심적인 차이는 ‘성례’(sacrament)인데, 가톨릭에서는 세례(마 28:19)와 성찬(눅 22:19-20) 이외에도 개신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견진’, ‘고해’, ‘종부’, ‘신품’, ‘혼인’ 등을 지킬 것을 요구하면서 성례 즉, 성사 없이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가톨릭에서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이 성례 자체가 은혜를 준다고 가르치기 때문인데, 가톨릭 대사전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일곱 가지 성사가 있고 성사 없이는 하나님과 상통할 수 없다고 강조하지만, 사실 개신교와 가톨릭교회와의 구원에 대한 논쟁의 초점은 바로 이 점이고, 개신교에서는 성경의 교훈 밖에 아무것도 믿는 바가 없는 반면 가톨릭교회에서는 온전한 성례로 인정받을 수 없는 다섯 가지를 더 추가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례와 성찬을 명하신 것은 성경을 통해 쉽게 증명할 수 있지만(막 16:16, 고전 11:26), 그 밖에 다른 성사들을 명하신 것을 성경적으로 증명할 수 없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엡 2:8), 결코 어떤 외적인 행위나 종교적인 형식을 통하여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말처럼 성례 없이 구원받을 수 없다면 할례를 시행하지 않았던 아브라함 시대 이전의 성도들과(창 17:10), 십자가 위에서 죽기 직전에 회개함으로 성례를 받을 수 없었던 강도의 구원에 대해 결코 설명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눅 23:42-43).

'논쟁거리 > 가톨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톨릭은 마리아를 섬기는가?  (0) 2015.10.03
가톨릭만이 참된 교회인가?  (0) 2015.07.25
가톨릭을 어떻게 볼 것인가?  (0) 2015.05.02
가톨릭은 이단인가?  (8) 2015.02.21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