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합니다(고전 14:33).  여기서 ‘어지러움’이란 말은 ‘무질서’를 의미하는데 고린도전서 14장 마지막 절에는 이점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지금 현재 예언에 대해 배워가고 있는 중이지만 많은 교회들이 회중적이든 개인적이든 그들 가운데 주어지는 예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만약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예언을 올바르게만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교회 공동체에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가령 잘못 해석해서 사용하게 될 경우에는 엄청난 혼동과 함께 교회의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가장 심각한 것은 어떤 사람이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예언을 남발하는 것이 문제인데, 예수님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라.’(마 7:16)고 말씀하셨듯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날 때 그 은사에 사랑이 있는지(고전 13:1-3), 덕을 세우는지(고전 14:12, 26), 질서가 있는지(고전 14:33, 40),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지를 보고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고전 10:31).  만일 이것에서 하나라도 벗어난다면 그 은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사가 아니라(살후 2:9-10),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것이라고 판단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고후 11:13-15).

 

우리는 성경을 배우는 것처럼 예언적으로 사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전히 유익함을 받고자 할 때 꼭 밟아야 할 단계가 있는데, 먼저 성경의 메시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읽고 공부하는 가운데(행 17:11),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해야 하고(느 8:8), 마지막으로 듣고 배운 말씀을 삶속에 반드시 적용해야 합니다(요 14:21).  즉,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적용해야 신앙생활에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마 7:24-27).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것은 말씀은 받았지만 해석하는 것과 삶속에 적용하는 것에 실패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성경지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약 1:22).  마찬가지로 예언적 계시를 받을 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유익함을 온전히 받기 위해 따라야 할 단계가 있는데 예언의 말씀을 듣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음성일 수도 있고(요 10:27), 아니면 우리 마음의 상상일 수도 있으며(겔 13:17, 렘 23:26), 또 어떤 예언은 원수가 속이려는 것도 있습니다(렘 23:13).  사실 예언은 실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란 통로를 통해 오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면 반드시 시험해 보아야 하고(고전 14:29, 살전 5:20-21), 그런 다음 예언의 말씀을 해석하고 어떻게 삶 속에 적용해야 하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예언의 말씀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분별하고, 해석하고, 적용을 해야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고전 12:7).

 

가령 어떤 사람들 중에 자신에 대해서 굉장한 예언을 받으면 그것이 곧 바로 이루어지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예언이 이루어지려면 때로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언은 가능성을 선포하는 것이지 필연성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하고 누군가 예언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언이 주어질 때는 반드시 분별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위대한 예언을 탁월한 예언사역자에게 받았을지라도 그 예언의 말씀은 물거품처럼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요셉이 꿈을 꿀 때 그것이 하나님께로 왔지만 해석과 적용을 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성경은 그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 말씀이 요셉을 시험했다고 말하고 있고(시 105:17-19), 그가 처음 꿈을 꾸고 나서(창 37장),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무려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습니다(창 42:6).  또한 열국의 아비의 가능성을 지닌 아브라함도 그의 첫 아들 이삭을 얻기 위해 무려 25년 이상을 기다렸으며(창 21:5), 다윗은 왕이 되리라는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 15년 이상을 광야에서 보내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 나갔습니다(삼하 5:3).  그러기 때문에 예언을 받았을 때는 거기에 맞게 예언을 받은 사람이 분별하고, 해석하고, 삶속에 적용해야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예언은 조건적이며 그것을 받은 사람의 반응을 요구하고 있으며 개인적 예언에는 도덕적인 규범이 따르는데 만일 예언을 받은 사람이 서투르게 반응하고 사울 왕처럼 불신앙에 차있거나(삼상 13:13, 15:11), 이스라엘 백성처럼 계속적으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삶을 산다면(히 3:15), 그 주어진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그 말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으며 만약 반응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빼놓고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가던 중에 끝나는 것처럼 예언이 성취가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민 14:30).  뿐만 아니라 예언은 상징 속에 가려져 있을 때가 많아 반드시 해석을 필요로 하는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주시면서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라고 물으실 때 그는 “한 광주리에는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렘 24:1-3).  여기에 예언해석에 대한 일반원칙이 있는데 모든 해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즉, 예레미야는 그 무화과의 의미를 알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무화과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지 않았고 직접 하나님께 물어 그 뜻을 알아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셉이나(창 41장), 다니엘처럼(단 2, 4장), 해석의 은사가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 뜻을 알 수도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기를 원하시고 있고, 만약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주시면 그 예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찾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말씀이 장래에 꼭 필요한 말씀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때때로 그의 뜻을 쉽게 찾지 못하도록 계시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해석을 구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길과 말씀을 갈망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계발되길 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결국 그 예언을 해석해 주십니다(렘 29:13).  또한 예언적 계시를 받을 때 그 뜻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느냐가 중요하고 하나님이 왜 이 계시를 주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언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느냐는 왜 그 예언이 주어졌는지를 기억하면 되는데 고린도전서 14장3절에 예언을 주시는 목적이 쓰여 있듯이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며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예언을 주셨을 때 적어도 세 가지 중에 하나는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새로운 믿음과 비전을 줌으로 주님 안에서 덕을 세워주고, 또한 그들의 소명에 확실한 용기를 불어넣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풀어놓아 상처받은 자를 위로하고 치료합니다.  쉽게 말하면 신앙이 성장하도록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거나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어려움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오늘날에만 적용되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언에 관한 모든 해석은 진리의 말씀으로 걸러내야 하는데 왜냐하면 성경은 삶의 기초이자 예언의 기준선이기 때문입니다(딤후 3:16-17).  다시 말해 교훈이란 미명하에 사람의 입에서 나온 예언의 메시지를 기록된 말씀보다 우위에 두거나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성경 66권의 말씀보다 예언의 메시지를 더 높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베드로가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벧후 1:19).  이 말의 의미는 베드로 자신이 예수님을 직접보고 듣고 또한 변화산의 확실한 체험을 가진 장본인이지만(마 17:1-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체험보다 훨씬 더 믿을 만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이라는 것입니다(벧후 1:16-21).  한마디로 예언적 계시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근간은 성경 외에는 없습니다.  사실 오늘날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이 무엇이며, 어떻게 역사하며, 지역교회에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해서 목회자들 중에 성경 66권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예언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에 주어진 예언과 완성된 성경에 대한 차이를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에는 계시(예언)와, 방언과 통역과 찬송과 말씀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고(고전 14:26), 사도 바울도 신약의 성도들에게 예언을 사모하고 구해야할 은사라고 말했습니다(고전 14:1,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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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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